페르젠과 함께 단란히 어디론가로 걸어가는 유리엘을 보며, 리지는 허망한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그래, 모두가 보고 있는 자리이니.
핍박을 받고 있어도 어떻게 싫은 티를 낼 수 있겠는가.
틀림없이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리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두웅!
이내 점심의 배급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리지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 * * * *
머지 않은 곳.
진지와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굳이 걸음을 옮기지 않는다면 병사들의 시야에 닿지 않는 장소에서 유리엘은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대지에 간섭했다.
그러자 발을 딛고 서있는 바닥이 서서히 움푹 꺼지더니, 두사람을 지하로 초대하는 듯한 계단이 나타난다.
그에 유리엘은 페르젠의 손을 붙잡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래로 향했다.
그 직후, 살짝 고개를 뒤로 돌린 유리엘이 손을 까딱하니.
뻥뚫린 천장이 공기가 들어올 틈만을 남겨둔 채 완전히 메워진다.
화륵!
그리고 어두컴컴한 지하를 밝히는 자그마한 불꽃을 피워 허공에 고정시킨 유리엘은, 다음어지지 않은 지하를 마저 손 보고서는 페르젠을 올려다보았다.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차마 그럴 수가 없는 수준의 짙은 피로가 내려 앉아 있는 얼굴.
스륵……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분명, 페르젠을 만나면 자신의 입은 잠시도 쉬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초췌해진 페르젠을 보고 있으니, 굳게 다물린 입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요……”
가느다란 손으로 페르젠의 얼굴을 한참 더듬거리던 유리엘이 손을 뻗어 그의 제복을 벗겨 내린다.
그러자 흙먼지, 땀, 피, 연초의 냄새로 가득 뒤엉킨 그의 체취가 화악 풍겨오나 유리엘은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제복을 벗겨 내리니 보이는 수많은 자상들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다.
이것은 페르젠이라는 사내가 자신이 알던 평소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바닥을 처연히 구르고 구르며 새겨진 상처일 터.
자신의 위신 따위는 모조리 망각한 채, 오직 살기 위해 바둥거렸다는 몸부림.
그래, 그는 자신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툭.
아이처럼.
바보처럼.
그 탄탄한 몸 위에 아로 새겨진 자상을 자신의 손끝으로 훑으며, 유리엘은 “아팠어요?” 같은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아팠을 것이고.
굳이 묻지 않아도, 괴로웠을 것이리라.
이내 그의 자상을 더듬던 손을 밑으로 내린 유리엘이 바지를 벗겨 내린다.
그러자 일순간 머리가 몽롱해질 만큼 짙은 수컷의 냄새가 자신의 코끝으로 스며들자, 유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일말의 미동도 없이 축 늘어진 채 발기를 하지 않은 그의 성기를 보고 있으니 참으로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성욕이 왕성한 사내라도, 이렇게 발기를 하지 않은 것이 평소의 모습 일텐데.
오히려 발기한 그의 성기가 익숙하고, 발기를 하지 않은 그의 성기에 낯선 감각을 느끼는 자신이라니.
“이렇게 힘없는 당신은…… 정말 처음 보네.”
만지작.
쪼물.
축 늘어진 페르젠의 성기를 왼손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유리엘이 작게 웃는다.
그에 페르젠 또한 옅게 웃으며 그녀의 뺨을 매만지려다 더러운 자신의 손을 보고서는 다시금 거두어들였다.
그녀에게는 놀림을 받아도.
이렇게 지치고 힘이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어도.
아무런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는다.
드득!
이윽고 자신의 손을 치워낸 유리엘이 벽면의 대지에 간섭하여 옷걸이 같은 거치대를 만들어 벗겨낸 페르젠의 옷을 올려 놓고는……
스륵.
조금의 민망함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옷 또한 과감하게 벗어 내린다.
그러자 눈앞에 있는 페르젠과는 비교 될 만큼 청결하고 새하얀 피부가 드러나고.
탄력있는 커다란 가슴, 그 아래로 이어지는 잘록한 허리, 손을 얹히기 좋을 만큼 탐스럽게 굴곡진 골반이 그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아무리 지쳐있는 맹수라 한들, 자신의 입가에 먹이가 고개를 내민다면 어찌 입을 닫아 씹어 삼키지 않을 수 있을까.
꽈악!
하지만 페르젠이 손을 내뻗기도 전에, 유리엘이 먼저 한 걸음을 내딛어 페르젠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움찔.
그 낯선 적극성에 자신도 모르게 미약한 당황을 머금은 페르젠이었으나, 곧이어 긴장된 근육을 서서히 풀며 그녀의 허리에 상냥히 손을 둘렀다.
“……네 몸도 더러워 질 것이다. 유리엘.”
전신을 타고 흘러 내리는 땀방울이 흙먼지와 굳은 핏자국을 머금고, 탄탄한 자신의 몸에 비벼지는 그녀의 새하얀 피부를 물들여 나간다.
“당신도, 나도……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하지만 유리엘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조금더 적나라하게 자신의 몸을 페르젠에게 문지르며 자그마한 지하 내부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워 넣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두 사람의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르더니, 단란한 호수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찰박.
그에 유리엘은 고개를 치켜들고서는 물을 묻힌 손으로 페르젠의 얼굴에 덕지덕지 달라 붙은 핏자국과 흙먼지를 씻겨주기 시작했다.
“……”
분명,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텐데.
하지만 싫지는 않은, 무척이나 포근하고 나른한 느낌에 페르젠은 얌전히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푸흐.”
그러자 빈틈없이 달라 붙어 자신의 얼굴을 씻겨주던 유리엘이 문득 웃음을 터트린다.
“무엇이 그리도 웃긴 것이냐.”
“되묻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걸.”
꾸욱.
자신의 아랫배로 반쯤 발기가 풀린 페르젠의 성기를 누르며 유리엘은 눈가를 곱게 휘었다.
“당신이 얌전해진 것 못지 않게, 이 아이가 따라서 얌전해진 것도 신기해.”
“……내가 성욕이 치민다고, 무작정 풀어내야만 하는 짐승인줄 아느냐.”
“응. 틀림없이 당신 자지는 내 보지로 씻겨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으니까.”
“유리엘.”
저것을 험악하다고 해야할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자신의 천박한 단어 선택에 주의를 주는 페르젠을 보며 유리엘은 말려 올라간 입꼬리를 한동안 내리지 못했다.
이런 추잡한 어휘를 사용하면 매번 자신을 혼내던 그였는데.
단순한 주의에서 끝이난다는 건, 자신에 한해서 허용 범위가 그 만큼 넓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스륵.
이윽고 페르젠의 얼굴을 말끔히 씻겨준 유리엘은 지면을 솟아오르게 만들어 평평한 의자를 만든 뒤 그곳에 페르젠을 앉혔다.
찰박.
그리고는 땀과 흙먼지로 뒤엉킨 그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감겨주고서, 자신의 가슴을 넓은 등 뒤에 문지르며 조용히 탄탄한 몸을 끌어 안는다.
그러자 탄력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가슴과, 봉긋 솟아오른 유두가 비벼지는 음란한 촉감에 얌전해졌던 성기는 언제나처럼 익숙한 흉물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에 그것을 자신의 두 손으로 붙잡은 유리엘은 기둥 전체를 상냥히 훑어내리며 페르젠의 뒷목에 고개를 묻었다.
하……
잔잔하게 찰랑거리는 물소리 사이로, 그의 뜨거운 숨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봉사를 받고 있다고 생각 하고 있을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틀리지 않겠으나.
유리엘은 어째서인지 반대로, 이 상황을 자신이 리드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이 흉물을 자신의 안에 밀어 넣고 수시로 자궁을 학대하던 그가.
자신의 가슴을 난폭하게 베어물며 적나라한 흔적을 매번 새기던 그가.
탄탄한 몸으로 자신을 깔아뭉개고 수컷으로서 군림하던 그가.
이렇게나 얌전히 자신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순종적으로 몸을 움찔거리고 있으니, 유리엘은 마치 그를 길들인 느낌이 들었다.
결코 그 누구에게도 길들여 지지 않을 것 같은 맹수가, 자신 앞에서는 얌전해진다는 것.
그 사실은 유리엘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선사했다.
“가득…… 찼네.”
기둥을 훑던 손을 내려, 페르젠의 허벅지를 더듬거리던 유리엘이 그의 고환을 어루만지며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리고는 다시금 귀두 끝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흥분을 가득 돋우고서는, 몸을 일으켜 지하의 벽면을 짚고……
찰박.
투명한 물 아래로 자신의 엉덩이를 쭈욱 내민 채, 한 손을 밑으로 뻗어 꼬옥 다물린 음부를 열어 젖혀 분홍빛 속살을 내비춘다.
“페르젠.”
“……”
그에 한 동안 그 유혹스런 자태를 지켜보고 있던 페르젠은, 자신을 부르는 유리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어느때처럼 자신의 이름만을 부르며 헐떡이던 암컷은 온데간데 없고.
요염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도발이라도 하듯.
“자지 정도는…… 당신이 스스로 씻어봐.”
라고, 요망한 한 마디를 읊조리는 음탕한 여인이 있을 뿐이었다.
하.
첨벙.
그에 페르젠은 실소를 흘리며 몸을 일으키고는, 성큼성큼 물결을 가르고 가까이 다가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그 포동포동한 살집을 좌우로 천천히 벌린 뒤, 흐트러진 물결 너머로도 선명히 보이는……
찔꺽.
벌름거리는 음부 안으로, 자신의 성기를 밀어 넣는다.
“흐앙……!”
꾸국!
오랜만이라 그런지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 속살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귀두 부근부터 꼬옥꼬옥 달라붙는 조임을 페르젠은 선명히 느끼며 그녀의 자궁구를 가볍게 두드렸다.
“끄흑……!”
유리엘 또한 낯설다 싶을 정도로 오랜만의 교접이라 그런지, 자신의 아랫배에 들어차는 묵직한 감각에 두 다리를 바르르 떨며 간신히 까치발을 들었다.
살살 자궁구를 문지르며 자극하는 그의 흉물 앞에는, 그와의 아이가 자라나고 있으나……
주변에 채워진 물 때문에 그가 아무리 격렬하게 성교를 하려고 해도, 그 저항감이 막아주리라.
한 마리의 암컷처럼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수컷을 유혹하기는 했어도.
자신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잊지는 않은 것이다.
찰팍!
“아앙!”
두 손으로 붙잡기 좋을 만큼 살집이 오른 엉덩이가 밀착하는 서로의 치골 덕에 살짝 말려 올라간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뻐끔뻐끔 거리는 항문이 이제는 수줍어 하지도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 가장 추잡스런 곳 까지도.
어떻게든 페르젠이라는 사내의 애정을 받아보고자 앙탈을 부리는 것이다.
그 광경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페르젠 입장에서는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그에 페르젠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등에 밀착하고서, 두 손을 밑으로 뻗어 풍만한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고는 뒷목에 입술을 맞추었다.
지금은 격렬히 움직이기 보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를 조금더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자세 보다는, 서로를 마주보는 체위를 하고 싶었으나……
어차피 자신은 그녀의 두 눈을 올곧게 바라볼 수가 없었기에, 한편으로 미안한 감정을 품고 여린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두 눈으로 그녀를 향한 애정을 전할 수도, 마주 할 수도 없으니.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몸으로 그 감정을 전달하는 것 뿐이겠지.
그렇기에 페르젠은 자신을 유혹한 그녀가 어색하리만큼, 부드러운 몸짓으로 농밀한 여체를 탐미해나갔다.
움찔!
그리고 유리엘 또한, 낯설만큼 상냥한 페르젠의 움직임에 숨을 헐떡이고 있다가……
“사랑한다.”
자신의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온 몸을 가늘게 떨었다.
돌이켜보면 자신이 먼저 사랑한다고 말을 해서, 그가 뒤따라 사랑한다고 대답을 해준적은 있어도.
먼저 나서서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그에 유리엘은 주인의 뺨에 얼굴을 문지르는 고양이처럼, 자신의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혀 페르젠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응…… 나도…… 나도, 많이 사랑해…… 페르젠.”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서로가 그걸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의 말은 섞지 않고.
각자의 온기로, 품고 있는 애정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