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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11화 (211/260)

「 잘했어요……? 」

「 잘했어요……? 」

「 잘했어요……? 」

흐물흐물, 으스러졌던 칠흑과도 같은 그림자가 모여들며.

회수되기 위한 명계의 문 너머로 이끌려가더니, 페르젠을 향해 묻는다.

「 “엄마”는…… 먹지 않아도 되나요……? 」

“……”

마치, 자신이 “아빠”는 먹게 만들었다는 듯한 물음.

그러나 그것에 무어라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몰랐고.

대답을 해줄 여력조차 없었기에, 페르젠은 침묵으로 응수하려 했으나……

“어미가…… 몇명이더냐.”

지독한 그의 강박 장애는, 없는 여력조차 생기게 만들었다.

보통 부(父)와 모(母)는 각기 한 명씩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나.

그래도, 명계에 서식하는 괴이들은 그 족보가 다를 수도 있지 않은가.

「 두, 두명…… 두명…… 」

아니나 다를까, 부르르 몸을 떠는 괴이의 입에서 어미가 두 명이라는 소리가 튀어 나오자.

페르젠은 사그라지는 자신의 강박 장애를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뒤이어 내려지지 않는 페르젠의 명령에, 명계의 문 너머로 강제 송환되는 괴이는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 웅…… “엄마”는 먹지 않아도 괜찮아…… 」

「 다행이야. 」

「 다행이야. 」

쿵!

이윽고 명계의 문이 완전히 닫히자, 페르젠은 숨을 고르며 얼음의 길 위에 주저 앉았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그러한 피로함이 몸을 엄습한다.

고갈된 마력 때문인지, 그 마력이 모여드는 부근이 너무나도 아프다.

사람이 한계까지 굶주려 아사하기 직전의 순간을 체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페르젠은 몸을 일으켜, 이사벨을 통해 남은 브뤼테인의 전대 가주들과 완전히 망가진 13대 가주의 시신을 붙들고 본래의 전선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제단을 쓰다듬어, 다시금 명계의 문을 열 준비를 한다.

그녀 또한 자신처럼 마력이 고갈되었다고 한들.

극의에 오른 오러 나이트는, 그 신체 자체가 강대한 무기.

……이대로, 잠시나마 이 전투가 소강되면 좋겠으나.

전쟁이 개시된 시점에서, 자신의 목숨을 제외하고는.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 * * * *

“……”

창과 칼의 노래가 서서히 잦아 들고.

병사들의 울음과 비명이 수면 위로 서서히 드러나는 때.

엘마르크 제국과 에르네스 제국은 각자의 전선을 물리며, 짙게 내려 깔린 하늘의 노을을 등지기 시작했다.

오늘 따라 유난히 붉은 노을이 전장에 흩뿌려진 피를 가려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참상은 인세의 지옥이라 해도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페르젠은 최전선에서 묵묵히, 병사들이 완전히 후퇴 하기를 기다렸다.

부르르 떨리는 다리가 당장이라도 이 대지 위에 주저 앉고 싶어하나, 그러지 못하도록 그를 붙드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이 어떠한 지를 잘 알고 있기 떄문.

허나 전선을 지키고 있기도 잠시, 몇명 병사들이 자신의 앞을 지나쳐가자……

“무얼 하느냐.”

페르젠은 그들을 멈춰 세우고는 물었다.

이 참상 속에서도 번듯한 얼굴로 움직이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도 제법 오랜 세월, 용병 생활을 했던 이들이 아닐까.

“아…… 브, 브뤼테인의 전대 가주님들의 회수를 도와 드리라고 명을 받아서……”

“이미 하였다.”

“어…… 하, 하지만……”

당황하는 병사들이 눈을 돌린다.

그리고 그 곳에는 그레모리 엘딘 이슈타르 엘마르크.

그녀에게 박살난 13대 가주의 시신과, 마력이 모두 고갈 되어 통제가 풀린 시점에서 완전히 망가진 21대 가주의 시신이 아직 전장에 놓여 있었다.

“저 두 구의, 내 선조들의 시신은 회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이유가 궁금하였으나, 그것을 묻기 보다도.

그들은 몸에 자연히 베여있는 처세술로, 그 시신들을 향해 예를 표하려 들었다.

“돌아 가거라.”

하지만 페르젠은 그것조차 막아 세우며, 그들에게 돌아 가기를 명했다.

‘브뤼테인에게 한낱 병사들의 예우는 필요 없다 이건가.’

참으로 오만한 자존심.

역시, 브뤼테인이라 한들.

다른 귀족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오랜 용병 생활로 각인된 귀족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그들이었으나……

“이미 죽었던 이가, 죽은 것이다.”

“……”

“이곳에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살아 있는 그대들이고.”

또.

“예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이곳에서 죽어버린 백성들이다.”

“아……”

“그러니 예를 표하지 말거라. 이미 죽었던 이가 더욱 대접을 받는 것은, 살아남은 그대들과 죽어나간 이들에게 참으로 악독한 모독이지 않느냐.”

지금의 이 감정을 무어라 표현을 해야 할까.

페르젠의 앞에 서있는 병사들은 그의 말에 남모를 자부심과, 은은하게 스며드는 감동을 느꼈다.

그래, 이것이.

아니, 이러한 자가.

‘귀족으로 불리는 것인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마주했고, 경험했던 이들은 귀족의 탈을 쓴 백정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병사들은 페르젠에게 깊숙히 허리를 숙였다.

“……얼른 돌아 가거라. 그래야 나 또한 걸음을 돌리지 않겠느냐.”

“예! 예……!”

빠르게 걸음을 돌려 후퇴하는 전선에 합류하는 그들이 서서히 멀어지자, 페르젠은 고개를 돌려 처참하게 망가진 전대 가주들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브뤼테인에서는, 오랜 시간 내려오는 하나의 규칙이 존재한다.

그것은 전쟁 같은 대사를 앞두고, 선조들의 시신을 사역해야만 할 때.

그들의 시신이 망가지거나, 더 이상 사역할 수 없을 때는.

이미 죽어나간 이들과 같은 곳에 버려 두고 걸음을 돌리라는 것이다.

또, 대우를 해서도 안되고.

예우를 하게 두어서도 안된다.

페르젠이 앞서 말을 했듯, 이미 죽었던 이가 죽는 것에 불과했기에.

감히 살아 남은 이들과, 죽어나간 이들보다 대접을 받을 수는 없었으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페르젠은 처참하게 망가진 선조들의 시신을, 육편 조각이 되어 흩뿌려진 병사들의 품에 두고.

고개를 작게 숙이며, 사죄를 건넸다.

“백작.”

그 끝에, 자신과 함께 최전선에 서있던 레이몬드 황자가 곁으로 다가오자……

“수고하셨습니다.”

페르젠은 그에게 한 마디를 건네며, 옅게 웃었다.

“수고했네.”

그에 레이몬드 황자 또한, 피로 얼룩진 자신의 얼굴을 닦아 내리며 작게 웃었다.

그렇게 전선이 완전히 물러지자, 레이몬드 황자와 페르젠은 등을 돌려 걸음을 내딛었다.

여전히 피로는 풀리지 않는다.

전쟁은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 들었을 뿐이니까.

언제든지 오늘과도 같은 전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리라.

페르젠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자신의 뇌리에 단단히 각인시켰다.

* * * * *

만날 순간이 머지 않았다.

그것을 직감한 유리엘은, 두 손을 꼬옥 움켜쥐며 흐릿하게 보이는 엘리알타 협곡을 눈에 담았다.

그 동안 그 어떤 승전보도, 그렇다고 패전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기에.

최전선에 있을 에르네스 제국군들과 페르젠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는지는 예상을 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어느덧 한해가 바뀌어, 1월 7일.

완연히 내려앉은 겨울 덕에, 냉혹한 바람이 전장에 불고 있을 것이고.

지금쯤 바닥을 보이는 식량은, 그들에게 굶주림을 선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잠시나마 따뜻한 모닥불이 되어 주기 위해.

지금의 자신들이 이곳에 있었다.

그들이 앞서 나아갔던 발자취를 더듬으며, 엘리알타 협곡으로 찾아 가는 것이다.

──보급이다!

그 끝에, 엘리알타 협곡의 입구.

에르네스 제국군의 진지로 도달했을 때, 자신들을 반기는 듯한 병사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유리엘은 조금더 부대의 걸음 속도를 높여 진지 안으로 들어섰다.

움찔!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가져온 식량을 훑는 병사들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후방 보급 부대에 소속 되었던 이들은 몸을 떨며 어깨를 움츠렸다.

먼저 나아간 이들의 본대는, 고기 같은 식량을 대량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그들이 그것을 제대로 씹어 삼킬 수는 없을 테니까.

전장에 흩뿌려진, 전우들의 육편 조각.

그것이 오버랩되어 말끔히 속을 비워내고 말 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살아 남은 병사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자신들이 살아 남아야 한다는 의지를 머금게 되었다.

그래, 후방 보급 부대에 소속된 병사들이 지니고 있는 게 잘 잡혀진 군기라면.

그들이 머금고 있는 것은, 더이상 군기가 아니라 악착 같은 독기였다.

“어서오게.”

그리고 이곳의 총사령관인 레이몬드 황자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자, 유리엘은 예의 있게 그를 맞이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이러한 겉치레 조차 떨쳐 버리고, 페르젠을 맞이하러 가고 싶었으나……

그런 사적 감정을 먼저 우선시 하는 건, 이들에게 틀림없이 무례이고 모독일것이다.

“뒤는 내게 맡기고, 가보도록 하게.”

“아……”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했다는 듯, 레이몬드 황자가 한 마디를 내뱉자.

유리엘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필시 백작도 그대를 보면 좋아하겠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네. 백작의 막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뛰어가면 금방일걸세.”

“예……!”

대답과 동시에 유리엘이 두 발을 내딛는다.

아니, 그전에 가장 먼저……

“라우라! 황자님을 보좌하며 식량과 보급품들을 전달하렴!”

자신 뒤에 서있는, 라우라에게 명을 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네……”

그리고 그 명령을 받든 라우라는, 아름다운 미간을 살포시 찌푸리며 페르젠의 막사로 달려 나가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가슴을 출렁거리며 뛰어 가는 꼴이, 전장에서 주제도 모르고 분내를 풀풀 풍기는 암캐같다.

그를 보고 싶은 건,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

‘흥……’

아무렴 되었다.

어차피 그와 몸을 섞는 것은, 자신 일 테니.

* * * * *

“하아…… 하아……”

빠르게 달리며 유리엘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끝에 페르젠의 막사가 눈에 들어오고,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그가 바깥에 서있자 유리엘은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아니, 불러보고 싶은데.

벅차오르는 마음이 그것을 가로 막는다.

마치, 지금 이 순간 재회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건.

두손으로 그를 끌어 안는 것 뿐이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타악!

이윽고 페르젠의 바로 뒤에서 유리엘이 걸음을 멈춰 세운다.

“……”

동시에 페르젠 또한, 자신의 뒤에서 희미하게 풍겨오는.

잊을 수 없는 체향에 뒤섞인, 익숙한 향수 냄새에 몸을 돌렸다.

“아……”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유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울상을 지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해, 먼지와 말라 비틀어진 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 그의 처참한 몰골.

항상 위압적이고 특유의 고고한 생기가 서려있던 붉은 눈동자는, 너무나도 짙은 피로함을 머금은 채 지쳐있다고 호소를 하는 것 같았다.

“유리엘……”

놀란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또각.

그에 그것에 이끌리듯, 유리엘은 멈춰 세웠던 걸음을 내딛었다.

끼릭.

“……”

하지만 그러한 페르젠의 너머로, 비참한 몰골의 리지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자.

우뚝, 유리엘은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절망감을 반영하고 있는 듯한 보랏빛 눈동자.

그래서일까, 유리엘은 더더욱 리지가 자신을 보고 약간의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을 간단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클로디아 가문이 세력을 확장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가로 막기 위해 페르젠이 자신을 취했다고 알고 있을 테니.

틀림없이 죄책감과 함께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겠지.

그녀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 아픔에 공감해줄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안식처 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 앞에서 지금 눈앞에 있는 페르젠을 끌어 안는 건, 정말로 벼랑 끝에 내몰린 그녀를 절벽 밑으로 밀어버리는 잔혹한 짓이리라.

꾸욱!

그러나 유리엘은 그것을 무릎쓰고,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 까치발을 들고서는 만신창이가 된 페르젠을 다정히 끌어 안았다.

페르젠은 굳이 자신의 죄업을 나누어 받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으나.

그래서는 어찌 상대방의 인생의 반쪽이 된다는 부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남편이 악당이라면, 응당 아내 또한 악녀가 될 수 있어야 할 터.

때문에 유리엘은 리지의 시선을 외면한 채, 페르젠을 꽈악 끌어 안으며 그리운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 싶었어……”

그러자 그것에 화답하듯, 페르젠이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그래, 나도. 보고 싶었다…… 유리엘.”

그리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리지의 보랏빛 눈동자는, 더할 나위 없이 처량히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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