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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10화 (210/260)

꽈아악!

붙들린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자신의 오른손.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천천히 들려오는 건……

우물.

우물.

마치 아이가, 음식을 씹는 것만 같은 소리.

콰직!

콰득!

하지만 그 여린 이빨로는 도저히 씹는 것이 힘들었을까.

힘을 주어 더욱 게걸스레 씹어 보려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뒤이어 그레모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덮고 있는 두터운 마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꾸우욱!

힘을 주어 뒤로 내빼려 하나, 얼른 자라고 장난감을 뺏으려 드는 부모님의 손길에 저항하는 아이처럼.

넘실 거리는 어두운 그림자는, 자신의 오른팔을 놓아 주지 않았다.

콰득!

콰득!

콰득!

끝끝내, 오른팔을 덮고 있던 마력을 모조리 지워버리더니.

으드득!

극한으로 단련된 자신의 오른팔을 기괴한 방향으로 꺾어내며……

으적!

욕심 가득히, 살점을 한웅큼 물어 뜯어 간다.

또각.

“……”

“……”

동시에 완전히 등을 돌리는 페르젠이 특유의 붉은 눈으로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자, 그레모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냐하면 그의 눈동자는, 마치 품평이라도 하듯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훑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 시선은, 굶주린 늑대들에게 파먹히고 버려진 사슴의 시체처럼 되어가고 자신의 오른팔보다 더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같잖은 여유를 부리는 구나. 고작, 그 마녀를 사역하고 있는 것이 전부일텐데.”

얼음의 길 위에 널브러진 브뤼테인의 전대 가주들.

아마 페르젠의 마력은 더이상 다수의 시신을 사역할 수 없을 만큼 한계에 봉착한 것이리라.

최전선에서 움직이고 있을 다른 브뤼테인의 전대 가주들도 분명 상황은 다르지 않겠지.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꿰뚫리기 전 까지. 본녀는 죽은 것이 아니다.”

“……”

“그러한데 건방지게, 산채로 포획하여 욕보일 생각부터 하고 있느냐?”

“……”

도발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거늘.

자신 혼자 의도를 곡해하여 받아들이고 있는 그레모리를 보며 페르젠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레모리.”

“……”

“주제넘지 말아라. 네 년을 안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초점을 흐트리지 않고.

상대방을 온전히 직시한다는 것.

그 의미를 그녀로서는 알 수가 없겠지.

하지만 페르젠은 굳이 알려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왼팔과 다르게 너덜너덜한 걸래짝이 되어가는 오른팔.

가까이서 훑어보면 훑어볼수록, 심기를 자극하는 미세하게 어긋난 신체의 비율.

이러한데 무엇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란 말인가?

그녀에게 “완벽.” 이라는 단어는, 감히 수식어로 허락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태생부터가 불량품에 지나지 않은 것이, 참으로 과한 꿈을 꾸고 있도다.

‘인간이란……’

참으로 못난 것들이구나.

타인을 이렇게 온전히 직시해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그래서일까.

페르젠은 더더욱 이곳에 없는 유페미아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특유의 붉은 그 눈동자에.

그레모리 엘딘 이슈타르 엘마르크라는 존재를 선명히 각인한 시점에서부터.

이 전쟁은 휴전 없이, 오로직 종전만이 남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강박 장애를 인지한 그 시절 이후, 페르젠이 누군가를 자신의 눈동자에 온전히 담는다는 건.

대상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그러한 목적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치워라.”

이내 중저음의 목소리로 낮게 읊조리는 페르젠의 한 마디가 괴이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받든 괴이는, 거무칙칙한 무엇인가로 그레모리의 얼굴 옆면을 세차게 후려쳤다.

퍼억──!

그러자 거센 바람이 페르젠의 얼굴을 화악 스치고 지나간다.

“큭……!”

허나 그레모리는 튕겨져 날아가지 않았다.

어디 한 번, 힘겨루기를 해보자는 심산인건지.

전신에 힘을 주고 버텨보는 중이나, 그럴 수록 그레모리는 여기서 힘을 빼고 충격을 흘리지 않으면.

자신의 목이 부러질것이라는 직감을 하게 되었다.

퍼엉──!

그에 버텨내던 힘을 풀고, 그 충격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콰아앙!

그녀의 몸은 너무나도 힘없이 허공을 나부끼며 무저갱의 벽면에 처참하게 처박혔다.

그리고 스멀스멀, 자신의 형체를 온전하게 드러내는 괴이가 페르젠을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자그마한 키로, 마치 머리카락과도 같은 무엇인가를 흐느적 거리고 있는──그림자 형태의 아담한 소녀.

「 배고파요…… 」

「 배고파요…… 」

「 배고파요…… 」

칭얼칭얼, 페르젠에게 투정을 부리듯.

자신의 허기를 주장하나, 그것에 어울려 주지 않는 페르젠은 손을 뻗어 벽면에 처박힌 그레모리를 가리켰다.

「 맛 없어요…… 」

「 맛 없어요…… 」

「 맛 없어요…… 먹기 싫어요…… 」

그러나 그 손짓에, 괴이는 고개를 도리질치며 거부했다.

“……”

「 아…… 」

움찔!

하지만 위에서 자신을 굽어다보는 붉은 눈동자가, 불쾌하다는 듯이 찌푸려지자.

괴이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페르젠으로부터 떨어졌다.

「 먹어요……? 」

「 먹어야해요……? 」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면서도, 그것을 한 번더 되물어 보는 것은.

정말로 아이와도 같았으나, 페르젠은 무심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

“먹어라.”

거절할 기미조차 없는, 단순한 명령.

우아아앙!

그에 괴이는 서글픈 울음을 터트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 네…… 먹어요. 」

「 먹을게요…… 먹어야해요…… 」

펄럭!

조금씩 허공을 거닐며 나아가는 괴이,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페르젠의 옆으로.

기이한 언어가 적힌 책이 홀로 페이지를 넘기나, 페르젠은 굳이 그것을 바라보지 않고도.

저 괴이의 이름을, 뇌리에 떠올릴 수가 있었다.

이것은…… 좋은 변화인건지.

아니면, 그러지 못한 변화인건지.

내적 갈등이 조금 치밀었으나, 처참하게 처박힌 그레모리가 벽면을 뜯어내며 몸을 일으키자.

페르젠은 그 상념을 지우고 그녀를 응시했다.

* * * * *

「 ■…… ■■■…… 」

「 ■…… ■■■…… 」

“■■■.”

뭐라고 하는 것인지.

극도로 발달된 그녀의 청각에, 괴이와 페르젠의 목소리가 들려오나.

그녀의 뇌는 그것을 해석하지 못했다.

주륵.

아니, 오히려 그 대화를 선명히 인지한 것만으로도.

그녀의 코에서는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정작 괴이와 대화를 이어 나갔던 페르젠은,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후두둑!

뜯어내어 움푹파인 벽면에서 돌조각들이 떨어진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에게로 다가오는──형체를 가진 그림자 소녀를 보며 그레모리는 자신의 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스윽 닦아냈다.

마주한 순간에 느꼈던 오싹한 소름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움, 또는 공포라고 그레모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했다면 고개를 치켜들고, 저 괴이를 응시하는 것조차 불가능 했을 테니.

그 즉슨, 이 감정은 전율에 가까운 것이리라.

“하.”

더는 오를 산이 없기에, 스스로 높다란 산을 만들어 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 앞에, 호승심을 자극하는 거대한 산이 손수 드러나니.

어찌 이 기쁨을 감출 수 있겠는가.

뚝!

촤악!

달고 있는 것이 처량할 정도로, 걸레짝처럼 너덜거리는.

제 기능을 상실한 오른팔을 스스로 떼어내며 그레모리는 몸을 일으켰다.

마법사들과 다르게, 오러 나이트는 본인의 마력을 얼마만큼 가용할 수 있는지.

그 질적 농도를 스스로 정할 수가 없었다.

불순물이 제거된 신체를 타고, 마력은 그저 흐를 뿐이었으니까.

물을 가득 머금은 수건을 쥐어 짜내듯.

근육에 힘을 주어 순간적으로 그 출력을 높일 수는 있어도, 자의적으로 얼마만큼의 마력을 뿜어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오른팔이 완전히 제거된 이 시점에서, 본디 그곳에 흘러야 할 마력은.

자연스레 다른 부위에 그 몫 만큼 가산 된다.

그래, 안정성이 떨어지는 만큼.

오러 나이트는, 위기에 몰릴 수록.

더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꽈아악!

힘을 주는, 그레모리의 왼팔에서부터.

넘쳐흐르는 막대한 양의 마력이 대량으로 흘러 나온다.

푸르른 그것이, 저토록 선명한 형체를 지닌다는 건.

그 농도가 가히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짙다는 것.

퍼억!

동시에 그레모리는 자신의 두 귀를 후려치며 고막을 터트렸다.

그러자 청각을 상실한 그 시점에서, 자연히 그녀의 왼팔을 타고흐르는 마력의 농도는 더욱 짙어졌다.

「 아─── 」

이내 허공에서 걸음을 멈추는 괴이가, 자그마한 소녀 형태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쩌어어어억!

그 입을 거대하게 벌리자, 그레모리는 제자리에서 몸을 둥글게 박차고서는 앞으로 나아갔다.

빙글.

한 바퀴, 몸을 돌려 원심력을 담아 내지르는 그 일권은.

치장된 화려함 없이, 너무나도 투박하고 담백했으나.

「 앙. 」

거대하게 벌려진, 괴이의 그 입이 닫히며.

폭식이라는 능력──아니 권능과 맞물리자……

핑──!

그녀의 주먹으로부터 자그마한 소음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더니, 곧이어 세상이 부르짖는 것만 같은.

막대한 비명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 마찰로 인해 생기는 공기의 흐름이, 저 밑에 뚫려 있는 무저갱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며.

마치 지하에 봉인 되어 있는 듯한 괴물의 목소리를 자아내는 것이다.

사각.

사각.

콰득.

콰득!

콰드득!

왼손에 담겨 흘러넘치던 마력이, 고작 그 한번의 부딪침만으로 반절이 사라진다.

허나 처음과 다르게, 마치 닳아버린 날로 고기를 썰듯.

자신의 마력을 먹어 치우는 힘이 나약해지는 것이 느껴지자, 그레모리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조금씩 자신의 주먹을 전진시켰다.

그래, 제 3층에 서식하는 괴이의 권능에 맞서.

그녀의 주먹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드득!

드드득!

억지로 밀어 넣는 자신의 주먹에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하는 무언가.

폭압적인 그 힘을 강제로 파고드는 것만 같은, 이 미묘한 정복감은 그녀를 즐거움에 취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사내들이 처녀를 붙잡고 범하는 것을 좋아했던 걸까.

꾸욱!

콰직!

이윽고 균열이 일어나는 것만 같은 촉감이 자신의 주먹 부근에 와닿자, 그레모리는 그대로 남은 힘을 자신의 주먹에 실었다.

쨍그랑──!

그러자 마치 유리가 부수어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그레모리는 자신의 주먹에 한대를 얻어 맞고.

퍼엉!

그 형체가 쓰레기처럼 일그러지는, 괴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잉──!

하지만 그 동시에 그녀의 왼손에 머무르던 마력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맞부딪힌 반발력으로 인해, 그녀의 몸뚱이는 순식간에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쾅!

쿵!

물가에 던진 돌멩이가, 물수제비를 하듯.

처량하게 바닥에 부딪치며 날아가는 그녀의 몸은……

철퍽!

에르네스 제국의 병사들과 맞닿아 그들의 몸을 터트리고.

찰팍!

자신들, 엘마르크 제국의 병사들과 맞닿아 그들의 몸을 터트려나갔다.

혼비백산 하며 비명을 지르는 병사들이 대해처럼 갈라지나.

일시적으로 청각을 상실한 그녀의 귀는 그 비명을 전해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도저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직선의 튕겨짐을 멈춰 세우기 위해서.

콰득!

그레모리는 자신의 두 다리를 대지에 박아 넣고,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쿠드득!

그리하여 한참을 미끄러진 끝에.

쾅!

그녀는 엘리알타 협곡의 출구, 자신들 제국의 진지 앞에 도달했다.

“……”

그리고 뒤로 한가득 젖혀진 허리를 조금씩 올바르게 피며, 주변 풍경을 바라보던 그레모리는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선명히 인지했다.

“퉤! 쿨럭……!”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육편을 떨쳐 내고.

입가에 들어간 내장 조각 따위를 뱉어 내려 하자, 기침과 함께 흘러 나오는 선홍색 혈흔.

“아……”

오러 나이트의 재능을 개화하고 나서.

얼마 만에 느껴보는 피로함이란 말인가.

그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그녀의 육신은 지금 심각히 지쳐 있었다.

그 방대한 마력조차 온전히 고갈 된 것인지 쥐꼬리만큼의 마력도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이탈되어버린 전장.

이대로 아군이 후퇴를 하게 두는 것이 나을까.

“……”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자신이 이렇게 된 만큼.

페르젠 또한 이겨낼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을 터.

그러하다면 조금더 전투를 속행해, 한 번이라도 더 명계의 문을 열게 만들어야 한다.

고위 등급의 흑마법사가 제단을 통해 명계와 하는 거래는, 막대한 양의 재화를 지불해야하는 것.

심지어 그것이 제 3층이라면.

아무리 제국이라 한들, 무한정 자원을 제공할 수 없을 터.

후퇴는 그때 해도 늦지 않았다.

후두둑.

이윽고 대지에 박아 넣었던 자신의 두 다리를 꺼내며, 그레모리는 몸을 움직였다.

아직 드높은 하늘에는 태양이 선명히 떠있으니.

그것을 등지는 건, 자신의 그림자만으로 족했다.

그래, 전쟁은.

아직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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