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초가 지났을까.
페르젠은 왼손으로 쥐고 있던 검을 오른손으로 옮겨 쥐며 그레모리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그녀의 육신은 음속을 돌파하여 움직인다.
그런 그녀 조차도 뇌전을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 하겠으나, 애당초 그것은 자신이 움직이는 그레모리를 포착하여 마법을 사용했을 때의 이야기.
때문에 이 승부에서 자신이 불리하는 것 정도야 페르젠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대신, 처음 한 번에 한해서는.
자신이 그녀의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대량의 마력이 형질 변환된 낙뢰를 직격시키는 게 가능했다.
“……”
파지직.
특유의 푸른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며 산발이 된 채로 허공에 떠오른다.
동시에 자신의 얼굴을 따갑게 스치는 정전기를 느끼며 그레모리는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의 전신을 뒤덮고 은은하게 흐르고 있는 마력들이 조금도 반응을 하지 않았기에.
‘그렇다면……’
이것은 페르젠이 자신의 마법으로 만들어낸 현상이 아니라는 것.
마력을 불로 형질 변화시켜 다른 곳에 불을 질렀을 때, 퍼져나가는 그 불은 더 이상 마법이 아니라 순전한 자연 현상이 되듯.
이 또한, 조금전의 우뢰가 만들어낸 자연 현상의 부산물일 터.
‘흐음.’
엘마르크 제국에서 그녀의 위치란, 모든 것을 취할 수 있는 것이기에.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이라면 굳이 외면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
그덕에 그레모리는 현재 자신이 일종의 인간 피뢰침이 되었다는 상황을 인지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에서 자신이 유리하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자각을 하고 있었다.
유도되어 직격 될 낙뢰는 확실히 위협적이겠지만, 그것이 유효타를 가지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육신을 타고 흐르는 이 마력들을 전부 상쇄시킬 만큼의 방대한 마력을 담아 형질을 변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페르젠은, 최전선에서 사역하고 있는 시신들 덕분에 마력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장기전으로 치닫게 될 수록 이 개수작은 하등 쓸모가 없어 질 테고.
마음이 급하여 단기전으로 끌고 가려 한다면, 심리전에서 결코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되겠지.
그렇기에 이 전투의 흐름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능동적인 전투야 말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대.
콰득!
가녀린 다리로 대지를 딛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순간적으로 진흙이 밀려 나가듯 황무지의 바닥이 그녀의 발에 벗겨지고.
──!
시위를 당겨 쏘아내는 화살처럼, 순식간에 페르젠의 정면으로 당도한 그레모리는 검을 내질렀다.
파앙──!
뒤늦게 울려 퍼지는 공기의 비명.
쿠우웅!
그리고 검과 검이 맞닿은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의 묵직한 소리가, 휘몰아치는 돌풍과 함께 전선의 중심에서 퍼져 나간다.
끄극!
까극!
마력이 뒤덮힌 그레모리의 검과, 그것을 막아선 브뤼테인의 가주들의 검이 마찰을 일으키며 듣기 싫은 소리를 자아내나……
그들의 보호 아래, 이사벨과 함께 뒤에 서있는 페르젠은 불어 닥치는 바람으로 깔끔히 올려진 자신의 머리를 무시한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렇군.”
동시에 그레모리 또한, 태연한 페르젠의 얼굴을 마주보며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막아선 브뤼테인의 전대 가주들, 그들은 살아 생전 오러 나이트의 극의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불순물이 제거 되어 마력이 온전히 타고 흐를 수 있는 신체의 부분은 일부.
예컨대 검을 움켜 쥐는 두 팔이 완전히 불순물이 제거 되어 마력이 타고 흘러도, 하체인 다리가 상대방의 일격을 받아 냈을 때 버텨내주지 못한다면 그대로 자세가 흐트러져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때문에 그러한 점을, 깔끔한 합격진으로 보완을 하였으나.
그레모리가 내심 놀라고 있는 점은, 눈앞에 있는 브뤼테인의 전대 가주들──정확히는 자신의 움직임을 어설프게나마 응시했던 그들의 눈이었다.
가장 먼저 팔과 다리를 단련하여 불순물을 제거시키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지만.
전반적인 육체 활동의 중심이 되어줄, 심장이 머무르는 흉부.
그리고 시신경과 청각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그 중에서도 감각기관 쪽은 함께 묶는 것이 어불성설일정도.
처음부터 몸을 불에 불사지르거나, 자신처럼 작정하고 한파에 노출되어 전신에 동상을 입는.
그러한 방식이 아니고서야, 따로 단련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
하지만 브뤼테인이라는, 전대 가주들은 전부 그런 식으로 단련을 했다.
팔과 다리에 불순물을 제거 하고 나면, 그 육체를 뒷받침 하기 위한 심장이 머무르고 있는 흉부를 단련하는 것이.
살아 생전 훨씬 더 “괴물.” 이라는 존재로 거듭나기 좋은 방향일 텐데.
그들은 그러지 않고, 아주 망가지기 쉽고 자칫하면 마력으로 복구도 되지 않을 섬세한 곳인 시신경을 단련하였다.
그것에 이유가 있다면, 그래 오직 하나 뿐이겠지.
죽어서 시신이 되는 순간, 단련된 팔과 다리를 따라 가지 못하는 육체가 체력에 허덕일 이유가 없기에.
브뤼테인이라는 가문의, 오러 나이트의 재능이 있던 전대 가주들은 그 다음 단련 방향을 눈으로 정한 것이다.
“네 놈들 가문은, 확실히 미쳐 있는 곳이로구나.”
산자가, 자신의 생을 염두하지 않고.
고작 싸늘한 주검이 되어, 타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사후를 위해 노력한다라……
“그것을 충의라 부를지도 모르겠으나, 본녀가 보기에는…… 단순한 광기로다.”
다만, 이리 말을 하면서도.
그레모리는 어째서 브뤼테인이라는 가문이, 에르네스 제국의 기둥이라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만약, 그들이 황좌를 보필하는 제관의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황좌에 올라, 황제를 자처하고 있었다면.
이 전쟁을 계획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엄격한 광기.
그것만큼 황제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요소가 어디있던가.
하지만 결국, 이들이 택한 건 황좌가 아니라 제관의 자리.
그리고 본인에게 어울리는 야망을 품지 않고, 빛바랜 자리에 남아 안주한다는 건……
“어차피, 그정도 그릇이라는 것이다──!”
채앵──!
힘으로 맞닿은 검들을 물리고.
자신의 검에 방대한 마력을 뒤덮은 그레모리가 밑단, 황무지의 바닥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쩌억!
그러자 마치 천자락을 찢듯, 대지가 간단히 베이고.
콰직!
그 선명한 검의 흔적이 남은 틈새 사이로 자신의 오른발을 박아 넣은 그레모리는, 가공할 힘을 주어 페르젠과 그가 사역하는 전대 가주들이 딛고 있는 대지 일부를……
쿠궁!
퍼올리듯 걷어 차버렸다.
콰앙!
자그마한 건물 한채가 자리 잡을 수 있는 면적만큼의 바닥이 들어 올려져 날아가자, 그 밑으로는 하늘에서 낙하한 운석이라도 충돌한듯.
움푹 파인 크레이터 같은 흔적이 남고.
자신의 검을 고쳐 잡은 그레모리는 다리를 잠시 수그렸다가, 자신이 걷어차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대지의 일부를 향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큭……!”
그리고 날아가는 그 상태에서, 전대 가주들의 도움을 받아 중심을 잡은 페르젠은 귓가로 파고드는 엄청난 공기의 소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자신으로서는 지금의 이 막대한 관성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간신히 호흡을 이어 나가는 것.
쩌적!
이내 날아가는 허공에서 자세를 잡은 전대 가주들이 검을 내질러 앞의 시야를 가로 막는, 그레모리가 걷어 차올렸던 땅을 갈라내나……
당연히 그 너머의 광경에 그레모리가 포착되는 일은 없었다.
그에 페르젠은 이대로 높고 가파른 절벽에 마주 닿기 전, 자신의 마력을 대량으로 쏟아부어 이사벨과의 연결을 더욱 긴밀하게 만들었다.
가장 처음 내려쳤던 낙뢰로 인해 대전된 그녀의 몸은 어차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두번은 없을, 반드시 유도되어 직격될 낙뢰는.
어차피 아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
펄럭──!
이윽고 에르네스 제국의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원소 마법사의 재능을 지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대의 마녀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 썼던──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
그녀의 옷자락이 불어 닥치는 바람의 반대로 세차게 나부낀다.
탁!
그리고 그녀와 페르젠, 그가 사역하는 브뤼테인 가문의 전대 가주들이 가파른 절벽 면에 잠시 안착했을 때.
번쩍──!
푸른 창공.
구름 한점 없는 그 하늘 아래에서부터 낙하하는 빛줄기가 허공을 가르며, 엘리알타 협곡에 세워진 절벽면의 정상을 세차게 강타했다.
콰아앙!
그래, 그 뜻은.
움직임을 놓친 그레모리의 현 위치가, 자신들의 머리 위라는 것.
‘……’
어째서 시야에서 사라진 적은 매번 위쪽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이서진의 기억에서는 이런걸 일종의 약속된 전개라하여 클리셰(Cliche)라고 칭하던가.
파아앗──!
후두둑!
직시한다면 곧바로 두 눈이 멀어 버릴 만큼의 찬란한 섬광과 함께, 부서진 돌들의 파편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대량의 마력으로 형질이 변환된, 그 전류를 감당하지 못한 절벽면이 눈처럼 녹아 들더니……
쿠우웅!
가장 처음, 전쟁의 개시를 알렸던.
그레모리의 주먹질에 박살난 맞은편의 절벽처럼, 그들이 위치한 절벽 또한 처참히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프구나.’
그에 페르젠보다 조금 위에서, 비산하는 절벽의 파편들과 함께 추락하는 그레모리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나름대로 만전의 준비를 하고, 페르젠이 낙뢰를 떨어트리게끔 모습을 감춘 채 대기를 하였는데.
그렇게 하였음에도, 직격된 낙뢰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에 떠오르는 태양보다 밝게 빛날 수 있다고 주장이라도 하듯.
그 특유의 광채를 뽐내며, 수천 마리의 새들이 지저귀는 듯한 소음과 함께 자신의 피부 표면에 흐르는 마력들을 모조리 상쇄시켜버렸다.
그탓에 타들어간 옷의 뒤로 붉게 그을린 등은 화상을 입더니 기포를 일으키고.
옆구리와 허벅지는 완전히 피부가 벗겨져 검게 타들어갔다.
물론, 일순간 상쇄된 그 빈자리를.
다시금 솟아오르는 마력들이 순식간에 채워나갔으나, 그 동안 직격한 낙뢰에 노출된 그녀의 몸뚱이는……
여전히 남아 있는 차디찬 아름다움과 대조 될 만큼의 흉측한 화상과 흉터를 머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자신의 미관이 망가지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것이었다면, 전신을 한파에 노출시키는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
새하얀 피부와,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며 사내들에게 아양이나 떠는 계집의 삶을 살 생각은 없었다.
수컷들 아래에 깔려 울부짖던 오베른 왕국의 왕녀들이, 같은 여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천하고 구역질이 나던지.
한 번 뿐인 인생이다.
그러한 인생 속에, 황제라는 호칭을 거머쥐어 보았으니.
두 손이 움직이고.
두 다리로 걸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보아야 하지 않겠나.
적어도 신이라는 존재들이 거주하는 천상을 넘보지는 못하더라도.
지상에서는 유아독존의 패자로 군림을 해보겠다는, 그것이 그레모리 엘딘 이슈타르 엘마르크라는 인간의 야망.
꽈악!
‘이런……’
움켜 쥐고 있던 검의 날이 모두 녹아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자신의 손바닥에 붙들려 있는 검의 손잡이뿐.
하지만 언제부터 자신이 무기에 연연하였다고.
피식 웃는 그녀가 손잡이만 덜렁 남은 검을 뒤로 훅 던져버린다.
극의에 오른 오러 나이트에게 무기란 단순한 손의 연장선.
‘바닥에 닿을 때 쯤이면, 이 거슬리는 마비도 풀리겠구나.’
자세를 고쳐 잡으려 해도, 대량의 뇌전이 관통한 몸뚱이는 수시로 경련하며 뇌의 명령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으리라.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이냐?”
앞으로 이어질 전투에서, 자신이 이만큼이나 무방비할 때도 없을 텐데.
떨어지는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페르젠은 이 순간을 노리려 들지 않았다.
하기야 어차피 체공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합격진을 펼칠 수가 없을 테니,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걸까.
“도박을 하지 않는 건, 장군으로서는 이상적일지 몰라도…… 사내로서는 무척이나 시시한 마음가짐이구나.”
페르젠을 비웃는 그레모리가 이내 후두둑 비산하는 절벽의 파편들과 함께 대지로 안착한다.
콰직!
그리고는 숨조차 고르지 않고, 곧바로 바닥을 박차며 달려 나갔고.
파앙──!
뒤늦게 울려 퍼지는 공기의 비명만이, 이미 제자리에서 사라진 그녀의 흔적을 조용히 더듬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