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몬드 황자가 출진 전에 말을 했듯, 전쟁의 참상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포장을 할 수가 없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오고.
보기 싫은 광경이, 차마 눈둘 곳 없이 펼쳐지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의 본질이자, 또 모든 것이었다.
끄흐…… 흐, 흐아아악!
기어다니는 개미를 밟아 죽이듯.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간단하고 부질없이 사라지는지, 이곳에 있는 모두가 목도하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는 마법을 역산하여 본래의 마력으로 되돌리지 못해, 그대로 직격하는 것들은 순식간에 아군 병사들의 목숨을 무수히 강탈해갔고.
사역 될 만큼 훼손되지 않은 시신들은 흑마법사들에게 일으켜 세워져, 죽어서도 창과 칼을 휘둘렀다.
뒤엉키는 두 제국의 발 아래,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들은……
사람의 시신이 아니라, 한 때 사람이었던 육편들 뿐이었다.
물론, 기사들과 그들의 보호를 받는 마법사들조차.
찰나간의 생긴 틈으로 파고드는 적군 기사의 급습으로 인하여 허망히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러한 정예 병력들과, 일개 병사들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하나 같이, 죽어 나가는 순간에.
엄마, 아빠, 아들, 딸을 부르며 숨을 거두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을 듣는 자들은 없었다.
그 간절한 외침을 모조리 뒤덮어 버리는, 창과 칼의 노래가 거대한 북소리처럼 전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기에.
* * * * *
전선이 기이해진다.
맞닿는 중앙에서 소모전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에르네스 제국은 좌측에서, 엘마르크 제국은 우측에서부터 적군을 서서히 갉아 먹듯 파고드는 모양새가 그려졌다.
그 이유는, 좌측에서는 페르젠을 막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고.
우측에서는, 그레모리 여제를 막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다 아쉬운 것은 본녀가 아닐지니, 네 놈이 오거라.’
죽어 나가는 아군의 수보다, 더욱 많이 적군을 죽이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레모리 여제는 우측으로 파고든 최전선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에는 우직한 신념도, 간절한 소망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입가에 기괴하게 걸린 웃음을 따라, 오직 전쟁이 가져다주는 즐거운 쾌락만이 검 끝에 서려 있을 뿐이다.
쩌억!
휘두르는 참격에 병사들은 종이처럼 잘려나갔고.
그 검풍의 여파에 휘말린 병사들은 찌그러지는 찰흙처럼 몸이 짓뭉개진다.
“으, 흐아……!”
그리고 그레모리 여제는 무척이나 어려보이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에르네스 제국의 병사를 보고는 재미있는 장난이라도 생각 났다는 듯 마치 그를 보호하듯 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그 병사의 근처로는 무수한 아군의 시신이 둥글게 쌓여 나갔고.
그 젊은 병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고 있는 창 하나 제대로 내지르는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분해 눈물을 흘렸다.
“흐, 흐아아아악!”
하지만 그 반복되는 조롱 끝에, 기어코 격앙된 감정을 터트린 젊은 병사는 창을 내질렀으나……
뽀각!
그 창끝은 그레모리 여제의 옷자락에 가벼운 흠집하나 내지 못하고, 처량히 부러졌다.
“아……”
그 직후 , 고개를 돌리는 그레모리 여제와 시선이 마주 닿자 젊은 병사는 다리의 힘이 풀려 동료들의 시신 위로 털썩 주저 앉아 덜덜 몸을 떨었다.
“어, 엄마……”
머잖아 죽을 것이라는 건, 본능이 인지해주고 있었기에.
저항할 무기 조차 잃은 순간, 그 젊은 병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향에서 자신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엄마를 간절히 불러 보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 젊은 병사로부터 시선을 떼어낸 그레모리가 다시금 앞을 바라보자, 젊은 병사의 뒤로는 엘마르크 제국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고.
그들이 휘두르는 창과 검은, 그 병사의 목을……
히이잉!
떨어트리지 못했다.
“크흑!”
커다란 손이 주저 앉은 병사의 뒷덜미를 붙잡아 끌어 당긴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동시에 흙먼지를 휘날리는 말들의 발자국과 함께, 엘마르크 제국의 병사들의 측면을 파고들어 도착한 에르네스 제국의 기사들이 무너진 전열을 바로 잡고.
그 중심에서 자신의 검을 빼들어 적군을 베어 넘기는 레이몬드 황자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에게 말했다.
“정신을 차리거라!”
“아, 아……”
“무기는 네 주변에 널브러져 있지 않나! 전장에서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때는……! 무조건 앞을 보거라.”
다짐하고.
맹세했듯.
나는, 그대들의 등 뒤에 숨지 아니하고.
언제나 앞에서, 그대들에게 등을 내보일지어니.
“결코, 이 전장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짐이 등불이 되겠다.”
“끄, 끄흑……!”
레이몬드 황자의 외침에 젊은 병사는 눈물로 얼룩진 자신의 눈가를 황급히 닦으며, 죽어간 전우들이 떨구었던 창을 쥐어들고 몸을 일으켰다.
레이몬드 황자는 마력에 대한 재능이 없다.
검술을 배웠을지언정, 그 또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전선에 앞장 서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젊은 병사는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었다.
드리운 어둠을 몰아내기에는, 너무나도 보잘 것 없이 불타오르고 있는 전장의 등불이나……
젊은 병사는, 그 보잘것 없는 전장의 등불을.
자신의 창으로 지켜내고 싶었다.
‘웃기는 꼴을.’
반면, 자신이 고립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레모리 여제는 여유를 잃지 않고 오히려 비웃음을 머금었다.
엘리알타 협곡의 전투가, 고작 레이몬드 황자 한 명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전력의 가치는 높게 쳐줘도, 병사 세 명의 몫.
하지만 상징성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적어도 그의 목을 들어올리는 순간, 에르네스 제국의 군대는 사기가 곤두박질 칠 터.
물론, 그의 곁에는 충혈된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는 오러 나이트들이 서있었으나.
그것을 뚫고, 레이몬드 황자를 죽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검이 연인이라는 것도, 부질없는 소리이지.’
가벼이 검을 휘둘러 고인 피를 털어내고.
자신의 왼발을 들어 올리는 그레모리 여제가, 형용하기 힘들 만큼 새어 나오는 마력을 둘러 그대로 대지를 내려 찍는다.
콰앙!
그러자 인간의 몸으로 실행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만큼, 그 폭력을 받아낸 대지는 마치 바닷물처럼 일렁이며 요동을 쳤고.
치솟아 오르는 대지에 레이몬드 황자의 등을 지키고 있던 오러 나이트들의 자세가 찰나간 흐트러지자, 그레모리 여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검을 뒤로 크게 빼둘러……
──!
그대로 집어 던졌다.
파앙──!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체적 능력덕에, 일순간 음속을 초월한 그 행위는 뒤늦게 찢어지는 듯한 공기의 소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내뻗듯 날아가는 검은 담겨 있는 회전 덕에 나선 형태의 바람을 휘몰아치며, 에르네스 제국의 전선을 아이다루듯 무너트렸다.
이내 그 검의 궤적을 유일하게 쫓을 수 있는 시각을 가진 그레모리 여제는, 자신이 내던진 검이 오러 나이트들의 사각을 돌파하자……
등을 꿰뚫린 레이몬드 황자의 육신이 시계 방향으로 으드득 말려 들어 갈것이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그래, 분명 그 결과를 의심치 아니하였는데.
번쩍──!
쿠웅!
어두운 하늘에 한줄기의 여명이 내리비추듯.
가공할 마력으로 형질이 변환된 전류가 우뢰처럼 지상으로 낙하하더니, 자신의 검을 한 줌의 재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다.
후두둑.
“……”
그것을 보고 있던 그레모리 여제는, 낙하한 우뢰에 의하여 사방팔방으로 비산하는 돌조각들을 맞이하며 좌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지직!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있음에도, 여파로 남은 잔재 전류들이 자신의 몸을 스치며 흐르고 있는 마력들을 갉아 먹는다.
자신의 손을 떠나간 검은, 분명 막대한 양의 마력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 마력을 모조리 상쇄시키고, 자신의 검을 태워버렸다는 건.
조금전의 낙뢰가 그 이상의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병사들과, 에르네스 제국의 병사들이 뒤엉켜 전투를 하는 난잡한 전장 너머……
음침한 기운이 맴도는 아름다운 여인을 곁에 두고,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을 엄호하듯 정갈한 솜씨로 쥐고 있는 검과 창을 휘두르는, 천칭의 문양이 새겨진 제복을 입고 있는 네 구의 시신들.
그 탓에 그레모리는 어렵지 않게 그 사내의 정체가 페르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얼마나 많은 자신의 병사들을 죽인 것인지, 흠뻑 젖을 만큼 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악귀와도 같았다.
또각.
이내 흐트러진 오러 나이트들을 대신하여, 레이몬드 황자의 뒤를 지키듯 걸음을 멈춰 세우는 페르젠.
그에 그레모리 여제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널브러진 검 하나를 쥐어들고 아이처럼 웃었다.
“본녀가 이겼구나.”
전장이라는 곳에서, 유치한 기싸움에 승리한 것이.
그녀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 * * * *
페르젠의 뒤를 지키며, 앞을 바라보는 레이몬드 황자도.
그의 뒤를 지키며, 그레모리를 바라보는 페르젠도.
각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며,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 들었다.
터를 지키는 것이 지붕의 의무라면, 그 지붕을 받치는 것이 기둥의 의무일 터.
“……”
다만, 페르젠은 그레모리와 다르게 그리 여유가 있지 않았다.
이사벨과 전대 가주들을 포함하여, 자신의 마력으로 사역 되고 있는 것은 총 13구의 시신들.
물론, 전대 가주들은 자율 통제가 되고 있는 터라 상대적으로 마력의 소모가 적으나.
그렇다고 한들, 경지가 결코 낮지 않은 그들을 이렇게 다수로 사역하고 있으니 기하급수적인 마력의 소모를 불러일으켰다.
그레모리가 굳이 이런 유치한 기싸움을 벌인 것 또한, 자신이 먼저 찾아 올 것이라는 확실한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번 전투의 진행 양상이 어떻게든, 자신의 마력이 먼저 고갈 될 테니.
애당초 전쟁이 개시된 시점에서 곧바로 명계의 문을 열지 않은 것 또한, 자신의 마력이 먼저 고갈 되었을 때.
그에 맞추어 그레모리를 물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점을 자신도, 적 또한 알고 있을지라도.
페르젠은 나약한 모습을 내보이지 않고,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그레모리를 마주 보았다.
“고작 네 명의 가주들만 이끌고 본녀를 맞이하러 온 것은, 너무 오만방자하다고 생각하지 않더냐?”
“……”
“게다가 도대체 무엇이 지붕이고, 무엇이 기둥이라는 것인지. 나약한 것들이 서로를 꼴사납게 핥아주는 행위가 참으로 눈꼴시렵구나.”
“……”
“멀쩡한 기둥 아래 지붕이 먼저 무너지는 것은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 허나 차례차례 기둥부터 부러트려 지붕을 주저 앉히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
전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비명들과, 무수한 창과 칼의 노래는 귀를 멀게 만드나.
그녀의 목소리는 그 틈을 비집고 무척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에 페르젠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여제.”
콜레오네 웨인 바레타 알프레드.
그 빌어먹을 노친네를, 페르젠은 죽도록 싫어했으나.
적어도 전장에 고상한 품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동의하는 바였다.
겉으로 멀쩡히 전장에 서있을지라도.
전쟁을 경험 해본적이 없는 페르젠이기에, 남들과 다르지 않은 두려움을 머금고 있었으니까.
지금이라도 눈을 감았다가 뜨면, 유페미아와 유리엘을 품안에 끌어 안고 아침을 맞이하는 자신을 그리고는 한다.
다만, 그것은 작금의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이 전장에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니, 그 돌아가는 길을 잊지 않을 수만 있다면.
페르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대는 역사에 길이 남을 정복왕으로 새겨 지고 싶다는 야심이라도 있어보이는 군. 하지만 지금 그대의 자태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는 있나? 엘마르크 제국의 병사들과 귀족들은 그대를 의지하기 보다는 두려워했지. 하지만 그 조차도 전쟁이 개시 되니 맞닥트린 죽음에 더욱 떨고 있다. 그대를 향한 두려움이 적군의 손에 죽는다는 두려움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건 폭군으로 군림하려는 것 조차 실패했다는 뜻이고.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괄량이 소녀처럼 적군의 한복판에서 검이나 휘두르고 있는 그대에게는 황제라는 호칭이 아까워 보인다.”
“……”
“그렇다고 자신이 있는 검술은 군더더기가 없는가? 그또한 아니다. 검을 쥐고 있는 그대의 자세는 격식이 없으며, 오만방자한 성격 탓에 제대로 된 스승을 두지 못했다는 것을 일컫는다. 마력에 대한 재능 덕분에 패배를 경험해보지 못했을지 언정, 독학으로 쌓아 올린 그대의 검술은 마치 빨리 성인이 되고 싶다는 조급함에 괴상한 화장을 하고만 소녀 같군. 아니 거기에 은은하게 스며들어있는 천박함은…… 지위를 이용해 사내들을 멋대로 탐하기라도 했나?”
“……”
“분명 쥐고 있는 것은 검인데, 꼬락서니는 사내의 성기를 움켜쥐고 있는 것만 같아 평소 그대의 행실이 보여.”
“……”
“그레모리 엘딘 이슈타르 엘마르크. 적어도 내가 자기 주제도 모르는 탕녀가 아니라, 한 국가의 수장과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다오.”
“하, 아하하!”
사실, 그녀의 자세에는 빈틈이 없었다.
검술을 알려준 스승이 없다는 건 사실이어도, 스스로 갈고 닦은 그녀의 검술에 하자가 있어 보인다는 건 단순한 비난.
다만, 이것은 대결 따위가 아니고.
명백한 전쟁이었기에, 지켜야만 하는 정해진 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승률을 높이기 위해, 상대방을 흥분시키는 도발을 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곱상한 얼굴에 예상치도 못했던 독기어린 말들이 튀어 나오니 웃기는 구나.”
“……”
“그렇게도 본녀를 능멸하여 도발할 만큼, 이 검이 두려웠느냐?”
특유의 푸른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그레모리가 자세를 고쳐 잡는다.
“나중에 생포한 그대를 죽이기 전, 그 곱상한 얼굴 위로 소변이라도 뿌려줄테니 얼마나 허황스런 말을 했는지 두 눈으로 지켜보고 떠나거라.”
이내 검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평소보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