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어진 막사, 아니 정확히는 움막 안.
따로 마련된 페르젠의 장소에서, 리지는 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왼손 엄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와서 가면을 쓰는 걸 포기할 게 아니라면…… 의원부터 불러주지 그래요.”
“……”
“아니면 그것보다 더 상냥하게, 당신이 손수 치료를 해줄 건가요?”
생기하나 없는 보랏빛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는 리지가, 조막만한 입술에 선명한 조롱을 머금는다.
하지만 자신의 말에 끝끝내 페르젠이 그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자, 리지는 내민 손을 거두어 들이고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 아파요.”
“……”
“이 호소로도 부족하다면, 앓는 신음이라도 당신에게 들려줘야 그 가식적인 친절을 베푸려들까.”
지금의 페르젠이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추악한 욕망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
그것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리지는, 계속해서 그의 심기를 자극했다.
“아…… 생각해보니, 서순이 잘못되었네요.”
“……”
“먼저 그 수많은 병사들에게 적대 당하던 나를 위로하는 것부터가 시작이겠죠.”
자신의 옆자리를 가냘픈 손으로 토닥거리는 리지가 입꼬리를 비틀어 끌어 올린다.
“뭐해요? 곁에 앉아 어깨를 빌려줘야 당신에게 기대 편히 위로를 받을 수 있잖아요.”
“리지.”
움찔.
자신의 무례함과 방자함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듯.
무척이나 낮게 으르렁 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담자, 리지는 본능적으로 흠칫 몸을 떨었다.
동시에 자신에게로 걸음을 내딛는 페르젠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자……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아니, 좁혀지려던 거리가 다시금 멀어진다.
천막 밖으로 자신의 식사를 가져온 부사관, 림벨이 페르젠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숨통을 조르던 무거운 분위기가 풀어지자 리지는 크게 숨을 들이키며 흘러내리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렸다.
탁.
그리고 림벨이 가져온 식사를 받고, 그것을 한편에 내려 놓는 페르젠이 천막을 닫자 리지는 침을 꼴깍 삼켰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끼는 천이 혹여나 내부의 광경을 밖으로 드러낼까봐 저러는 것일까.
틈새 사이로 놓인 줄을 서로 엮어 단단히 묶는 페르젠.
“……그러지 않아도, 내가 도망칠 수 없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시각적으로 와닿는 밀폐감에 리지는 각인된 트라우마가 발작하려는 조짐을 느꼈으나, 그것에 굴하지 않고 페르젠을 향한 조롱을 이어 나갔다.
이것은 일부나마 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라기 보다는……
그에게 패배했고, 굴종했다는 사실을 체념한덕에.
조금씩 진절머리나는 처절함과 좌절감에 익숙해진 것이다.
“눈이 무섭네요.”
“……”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던 그 가면을 잠시 벗기로 한 건가요.”
“……”
“이제 나를 때릴 거예요? 아니면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지 못한 성욕과 함께 배설할 건가요.”
“……”
“생각해보면 전쟁터에서는 쓸모도 없는 내가 당신의 부대에 소속된 이유가 있었네요.”
한편에 놓아 두었던 자신의 배식판을 들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페르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리지는 보기 애처로울만큼 덜덜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그를 조롱하는 입술은 닫지 않은 채, 떨리는 몸을 움직여 어설프게 사내를 유혹하는 창부처럼 요염한 자세를 취한다.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제게 다리를 벌리라는 명을 내려주세요. 루에르그 백작 각하.”
“……”
끝없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녀를 응시하던 페르젠이 코앞에서 쭈그려 앉는다.
그리고는 한 손을 뻗어 그녀의 오른손을 붙들고는, 끔찍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상냥하게 매만졌다.
“리지.”
이내 지금까지 유지하던 기나긴 침묵을 깨트리는 페르젠이, 그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부른다.
“그 공포와 두려움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냐.”
“……”
“그렇다면, 너는 무척이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구나.”
“하…… 아하하……”
피부 너머로 선명히 느껴지는, 그의 커다란 손길이 자신의 손을 매만지고 있는 역겨운 촉감.
그것을 당장이라도 떨쳐내기 위해 오른손을 내빼고 싶었으나, 리지는 그러지 않고 실소를 터트리며 웃지 않는 눈가를 억지로 휘었다.
그리고는 페르젠의 한 마디를 또렷하게 받아친다.
“다시, 직면하게 해줄 거예요?”
“……”
“과거에는 다리였으니, 지금은 손이겠네요.”
양들의 비명이 끝없이 울려 퍼지던, 그 도살장 앞으로 끌려가는 듯한 분위기에 리지의 안색은 점점 창백하게 질려 갔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터득했다.
“왜…… 망설이고 있어요?”
“……”
“사람을 망가트리는 방법은, 당신에게 있어서 낯선 것이 아니잖아요.”
이미 좁혀진 거리를 더욱 좁히듯.
고개를 앞으로 내미는 리지가 그의 어깨에 턱을 얹히고, 추악하고 음습한 욕망을 부채질 하는 듯한 속삭임을 지저귄다.
그에 페르젠은 붙들고 있는 그녀의 오른손을 놓아 주었다.
“……”
그리고 페르젠의 그 행동에, 미묘한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말로는 좀처럼 설명할 수 없는 아쉬움에 리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턱!
“악!”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뒤덮어 버리듯, 놓아 주었던 자신의 오른손을 순식간에 낚아 채는 페르젠이 엄지 손가락을 강제로 피게 만들고……
“끄……! 끄흡!”
배식판의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는 스프 쪽으로 담구어 버리자, 리지는 본능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비명은 입가를 틀어 막는 페르젠의 다른 손에 의하여 목소리가 되지 못하고 묻혀 버린다.
“읍! 으읍!”
엄지 손가락이 새빨갛게 달구어지는 통증에, 짓밟힌 지렁이처럼 추하게 꿈틀 거리는 리지가 반항을 해보나……
그의 완력을 이겨내는 것이란 불가능했다.
주륵.
기어코 그녀의 눈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뺨을 타고, 입을 틀어 막고 있는 페르젠의 손등을 적신다.
그러나 아픔과 두려움으로 점칠된 그녀의 표정과 다르게, 특유의 보랏빛 눈동자는 명확히 웃고 있었다.
흠칫!
그리고 그 눈웃음을 코앞에서 직면하게 된 페르젠은, 맞추어진 대칭이 선사하는 극도의 안락함과 편안함이……
순식간에 더할 나위 없이 역겨운 자기혐오로 뒤바뀌는 걸 아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꽈아악!
“끄…… 끄극……!”
결국, 그 토악질이 나올것만 같은 자기혐오에.
페르젠은 자신도 모르게 뇌리를 짙게 물들이는 분노에 잠식 당해 리지의 가냘픈 목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창백했던 그녀의 안색이 호흡을 하지 못해 빨갛게 물들어 가고, 보랏빛 눈동자는 초점을 잃기 시작하나……
리지의 입가는 눈을 대신하여 적나라한 비웃음을 그렸다.
……애당초, 이제와서 무슨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쓰고 영광을 거머 쥔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 가려고 한단 말인가.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스프에 담구고, 그 달구어 지는 통증에 몸부림을 치는 자신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던 그는 8년전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인간의 본성이란 결국 바뀌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을 통한 성숙과, 잡다한 치장을 하여도.
결코, 숨길 수가 없는 것이 개개인의 본성.
‘아아……’
당신은 지금, 자기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본의 아니게 가면이 벗겨져 드러난 민낯에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사나운 맹수가 따로 없었다.
공석이든, 사석이든.
이토록 증오를 표출하는 그의 표정을 본 사람이 있기나 하련지.
‘정말……’
추악하고, 추레한 모습이다.
이러할진데, 그 본질을 어떻게 감추고 살아가겠다는 걸까.
페르젠이 부조리한 세상과,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인지시켜주었다면.
반대로 자신은, 페르젠이 숨기고 있던 그 추악하고 추레한 모습을 되새겨주는 것이다.
“끄…… 으……”
이내 완전히 초점이 풀리는 눈동자와 함께, 리지의 몸이 추욱 늘어진다.
그에 페르젠은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뒤늦게 자신의 손을 치워내고 호흡을 확인했다.
“……”
숨을 쉬지 않는다.
가냘픈 목에 선명하게 새겨진 손자국은 자신이 조금도 힘조절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것을 인지하자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은 회의감과 자기혐오, 수치심을 비롯한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
그러나 그것을 애써 외면하며, 페르젠은 리지의 기도를 확보한 뒤 숨을 불어 넣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녀의 폐부를 압박했다가는 갈비뼈가 고스란히 부러지고 말 것이다.
“콜록……!”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잠시 숨을 멈추었던 리지가 기침과 함께 두 눈을 뜨며 몸을 웅크린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추스리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고, 페르젠은 등을 돌렸다.
“그 병사가…… 당신에게 좋은 것을 알려주었네요.”
“……”
“한 번에 부러트리는 것보다는…… 콜록! 이러는 편이 장난감의 내구성이 더 오래가겠죠.”
자신의 말에 걸음을 멈춘 그를 보며 리지는 입가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불쾌한 촉감을 더듬 거렸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 붙인다.
“제 입술은…… 어땠어요?”
“……”
“좋았나요.”
“의무병을 불러주도록 하마.”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전혀 연관이 없는 대답.
이윽고 천막을 열어 젖히는 페르젠이 밖으로 빠져 나가자, 그 뒤를 리지의 웃음소리가 천천히 따라온다.
“……”
이후, 자신의 부사관인 림벨에게 의무병을 불러 달라고 부탁한 페르젠은 한적한 곳으로 걸음을 옮겨 연초 한대를 입에 물었다.
……밤이 찾아와서 다행이다.
지금 자신의 얼굴을 아무도 볼 수 없었으니까.
……또, 유리엘이 이곳에 없어서 다행이다.
이 추악한 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기에.
그리 연초를 피우고 페르젠이 떠나갔을 때, 그 빈자리에는 그의 현 심정을 대변하듯 무참히 짓밟혀 꺼진 연초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