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로 만든 것 치고는, 무척이나 깔끔하고 정교히 세워진 단상.
그리고 그 옆의 막사, 지휘부로 들어간 페르젠은 연설을 준비하고 있는 제 2 황자와 그런 그를 보좌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황녀를 볼 수 있었다.
지혜의 신에게 축복을 받아, 제한적이기는 해도 앞날의 길흉을 점칠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
그것은 틀림없이 커다란 힘이 되어 줄 터기에, 전쟁이라는 대사(大事)를 앞두고 그녀를 썩힐 이유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
이내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레 눈웃음을 짓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눈짓으로 인사를 건네온다.
참으로 말로 형용하기 힘든, 먼듯 하면서도 가까운 거리감에 페르젠 또한 눈짓으로 인사를 하며 제 2 황자──레이몬드 앞으로 걸어갔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지금 도착하였습니다. 전하.”
“아…… 왔는가. 백작.”
집중하여 연설문을 읽고 있던 제 2 황자가 환하게 웃으며 페르젠을 맞이한다.
“단상에 올라 가기 전 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데. 잠시 쉬고 있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페르젠이 걸음을 옮겨 막사 안의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른다.
삐걱.
그리고 그런 그의 앞으로 자연스레 걸어와 옆에 앉는 한 명의 사내.
정확히는 무척이나 낯이 익은 노인──콜레오네 웨인 바레타 알프레드.
“……”
“끌끌.”
내뻗은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의미 모를 웃음을 흘리는 그가 페르젠을 슬며시 쳐다본다.
“어찌,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기라도 한가.”
“새삼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요.”
전쟁을 앞두고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들먹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지가 조금 전이니, 페르젠은 구역질이 치밀어도 꾸역꾸역 존칭을 사용해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명줄을 스스로 앞당길 필요가 있습니까.”
물론, 존칭을 사용한다고 해도 내뱉는 말에 가시가 서려있는 건 어쩔 도리가 없으리라.
“……현 알프레드의 가주가 전쟁에 참가해도 될 터인데. 가문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으로 지극정성이군요.”
“그럴리가 있겠느냐.”
“……”
“페르젠.”
“이름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루에르그 백작.”
“예.”
“그대는 아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만약, 제국의 역사에 몇차례나 전쟁이 있었다면…… 알프레드는 지금의 브뤼테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명예를 거머쥐었을 것이다.”
“그 지독한 열등감을 전쟁을 앞두고 꼭 발산시켜야만 합니까?”
페르젠의 표독스런 비난에 콜레오네는 껄껄 웃으며 자신의 지팡이를 매만졌다.
“정치는 유혈없는 전쟁이고, 전쟁은 유혈이 낭자하는 정치이지.”
“……”
“전장에 숭고한 품격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야.”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밑바닥인 본성이 드러나는 곳.
그러니 그곳만큼, 알프레드의 방식이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브뤼테인은 아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적군이 위축 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적군이 두려움에 떨도록 하지는 못할 것이다.”
“……”
“백작. 그대들의, 브뤼테인이 여지껏 비웃던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끔찍한 권좌에 앉아 있는 인간의 악의가 전쟁을 어떻게 이끄는지 몸소 보도록 하거라.”
전쟁에 승리한다면 적어도 칭송 받는 얼굴 마담은 그대들이 될지 언정.
실리적인 주역은 자신들이 거머쥐게 될 터이니.
“끌끌.”
말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는 콜레오네가 구부정한 자신의 허리를 토닥인다.
“아…… 그리고 이곳으로 오기전, 그대들의 방계를 조금 찾아 보았다.”
“……”
“아마 그대가 전장에서 죽고, 유리엘이 그대의 씨를 품지 못했다면…… 목록을 추린 방계들에게 넘어 갈 것이다.”
“그렇습니까.”
무덤덤하게 반응을 하고 있는 페르젠을 힐끔 훑으며 콜레오네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와서 저런 반응을 보여줘도 하등 의미가 없을 텐데, 그 놈의 자존심이 참으로 강직하구나 싶다.
“그래. 그러면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뚜벅.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가는 콜레오네가 페르젠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그가 막사를 벗어 났을 때, 페르젠은 눌러 참고 있던 불쾌감을 담아 짙은 숨을 내뱉었다.
유치한 도발이다.
아니, 어쩌면 저 빌어먹을 영감의 방식대로 죽지 말고 살아남으라는 격려를 한 것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페르젠은 몸을 일으켜 뒤편으로 나아갔다.
그 다음 근처에 피워진 불에 연초를 가져다 댄 뒤, 깊게 한 모금을 빨아 들인다.
“몸에 해로운 것을 배웠구나.”
“황녀 전하.”
“피우던 연초를 마저 피우지 그러느냐.”
움찔!
“……괜찮겠습니까.”
갑작스레 찾아온 그녀를 보고 곧장 연초를 바닥에 버린 뒤 발로 짓밟아 끄려 했던 페르젠이었지만, 그녀의 한 마디에 몸을 멈칫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고 말고. 본녀도 피우는 것을.”
“……”
“농담이니라.”
굳어 버리는 듯한, 페르젠의 어색한 반응을 보며 눈가를 곱게 휘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는다.
“연초 냄새가 몸에 배인 여인을 사내가 좋아할리가 없지 않느냐. 아직 배필도 없는 몸인데, 그런 것에 손을 댈 수는 없겠지.”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연초를 피우는 자들도 타인의 연초 냄새는 무척이나 싫어 할 텐데.”
“……”
“왜 그러느냐. 본녀가 이런 생리를 알고 있는 것이 의심이 드는 게냐.”
“그렇지 않습니다.”
진솔하게 내뱉은 한마디였지만, 가까이 다가온 엘리자베스 황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연초를 부드럽게 낚아 채갔다.
그것을 도로 뺏어 저 아름다운 입술에 닿지 않게끔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일텐데.
어찌, 가느다란 손으로 서툴게 연초를 붙잡고 한모금 연기를 들이키는 그녀의 모습이 이리도 아름다운지.
“콜록……! 콜록!”
“……괜찮으십니까.”
목구멍을 타고 뒤로 넘어가는 매캐한 연기에 거센 기침을 하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찔끔 눈물을 흘린다.
“잘도…… 콜록! 이런 걸 피우는 구나……”
“그러게 무얼하러 입으로 가져다 대셨습니까.”
뒤늦게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연초를 도로 빼앗아 바닥에 버리는 페르젠이 발로 밟아 끈 뒤, 품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의심은 지우는 것이…… 콜록! 맞지 않겠느냐.”
조금씩 멎기 시작하는 기침에 엘리자베스 황녀는 조용히 가까운 거리에서 눈에 들어오는 페르젠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승리를 기원하는 듯한, 월계수가 자수 된 이 손수건은 아마도 그의 것이 아니겠지.
유리엘이 만들어준 것 일까.
아니면, 브뤼테인에 남아 있을 유페미아가 만들어 준 것일까.
‘참……’
보기보다 자신이 이미 임자가 있는 사내라고, 아내들의 흔적을 덕지덕지 묻히고 있는 그를 보자하니 서글픈 마음이 든다.
움찔!
그에 엘리자베스 황녀는 그의 목덜미, 옷깃 쪽으로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페르젠은 참으로 오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이 가까운 거리감에 몸을 떨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스륵.
하지만 엘리자베스 황녀는 꼼꼼히 그의 옷깃을 정돈해준 뒤, 내려앉은 묘한 분위기를 단숨에 흐트리며 얌전히 거리를 벌렸다.
“곧 연설이 시작 될 것이다. 가도록 하자꾸나.”
까치발을 살짝 들기만 했다면, 자신의 입술이 그의 입에 맞닿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전쟁을 앞두고 있는 페르젠에게 괜히 자신의 욕심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빌미를 안겨줄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엘리자베스 황녀는 불어오는 바람에 어수선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긴 뒤 몸을 돌렸다.
“……예.”
그리고 페르젠은 한박자 늦게 대답하며, 조금전 그녀의 손길이 맞닿았던 자신의 옷깃 근처를 조심스레 매만졌다.
왜냐하면 자신의 옷깃은 처음부터, 조금도 꾸겨져 있지 않았기에.
그 때문인지 조금 머리가 복잡해지려드나, 페르젠은 그것을 억지로 털어낸 뒤 걸음을 내딛었다.
* * * * *
수도를 비롯해, 수도와 밀접한 거리에 있는 영지에서 징집된 병사들의 수는 3만 2천명.
그리고 그들 앞에 세워진 커다란 단상 위에 오른 제 2 황자 레이몬드는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었다.
앞에 도열해 있는 저들에게 추태를 보여 주고 싶지 않았고.
뒤에 서있는 페르젠을 비롯한 귀족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개전을 알리는 연설은, 전쟁의 첫 단추.
때문에 레이몬드 황자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곁에 있는 원소 마법사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는 입을 열었다.
──두려울 것이다.
마력으로 간섭된 대기에 의하여, 그의 목소리가 크게 확산되듯 퍼져 나간다.
──전쟁을 경험해본 사람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참한 광경을 불러일으키는지 알고 있다.
도열된 군중은 조용했고, 그의 목소리는 내쉬는 병사들의 숨소리와 맞물려 깊게 스며들었다.
──누구는 이것이 하지 않아도 되는 전쟁이라고 주장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백성들이여, 그대들을 전장으로 내보내지 않고자 굽히려 든다면.
──오히려 그대들을 지키고자 스스로 지붕을 허물었던 선택이, 터를 망가트리는 독이 될 것이다.
──단비가 되어 줄 비는 홍수가 될 것이고, 생명을 불어 넣어줄 햇살은 가뭄을 불러 일으키게 되겠지.
──그대들의 한숨 소리가 짙게 들려오는 구나.
──어쩌면 미래의 후손들은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시켜도 모자랄 순간에, 나약한 점을 꼬집어 말하는 연설을 보고 나를 비판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레이몬드 황자는 이 연설에 구차한 미사여구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 보이는 곳. 그것이 바로 전장이다.
──그러할진데 어떻게 전쟁을 미화하여 그대들에게 가식적인 거짓말을 할 수 있겠나.
──동시에 나는 그대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전쟁을 치루는 목적과, 그 이유를.
단순히 전쟁이 일어나, 국가가 불러.
영문도 모른 채, 화살 받이로 죽어 나가는 소모품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다루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레이몬드 황자는 이런 식으로 연설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하는 이유를 알고 창과 칼을 쥐어드는 병사들과.
전쟁을 하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창과 칼을 쥐어드는 병사들은 명확히 다르리라.
──그대들이 지키려 나서는 건, 황실이 아니라 그대들의 보금자리이고.
──우리 황족들 또한, 그대들처럼 이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이니.
──우리들은, 결코 그대들의 뒤에 겁쟁이처럼 숨지 않겠다.
──징집된 인원은 총, 7만 5천명.
──이중에서, 그 누가 죽더라도. 결코 이름없는 병사의 묘로 순장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에르네스 제국은 그대들의 헌신을 기억할 것이고.
──에르네스 제국은 그대들의 희생에 보답할 것이다.
──다만, 황족으로서 감히 그대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부디, 우리가 죽었을 때는 그대들의 손으로 묻어다오.
──물론, 그럴 순간 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전우였던 이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쓰러지듯, 또 그러한 전우가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는 것도 모르듯.
──그대들과 함께하는, 우리의 죽음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자! 나의 백성들이여! 그대들이 지금 이 순간 창과 칼을 쥐어든 이유는 무엇인가!
「 살아갈 터전을 위해────! 」
어쩌면 자신의 감정이 다분히 담긴 연설일텐데.
그것에 3만 2천명의 병사들이 커다란 목소리로 일제히 화답해오자, 레이몬드 황자는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약속하마!
──그대들이 지켜 낼 터전인, 에르네스 제국은.
──영원히 그대들의, 그대들에 의한, 그대들을 위한 국가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연설의 마침표를 찍는 레이몬드가 황자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웅장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가 전역을 감싸 안는다.
직후, 출진을 명하는 레이몬드 황자의 마지막 한 마디가 서막을 일깨우고.
병사들의 함성이 일대를 다시 한 번 뒤덮는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닐세.”
“그럼, 저는 제자리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무운을 비네. 백작.”
“예. 전하 또한, 무운을 빌겠습니다.”
몸을 돌려 단상에서 내려가는 페르젠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그래, 드디어.
개전(開戰)이었다.
* * * * *
뜨겁다.
연설에 호응하는 이들이 내뿜는 열기란, 무척이나 화려한 불꽃이었다.
하지만 그 연설에 호응할 수 없었던 리지는, 그저 박수갈채를 치는 이들을 따라 덤덤하게 손뼉을 치며 죽은 눈으로 단상 위를 바라볼 뿐이다.
……이들의 열기가, 적군을 집어 삼키는 것이 아닌.
도리어 자멸하는 파멸이 되어, 한줌의 유해도 남지 않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 된다면, 자신 또한 죽음을 피해갈 수 없겠지만.
타들어가는 그 광경 속에 페르젠이 함께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 최후가 아닐까.
과연, 재를 쫓는 나비들이 어느 국가의 뒤를 쫓을지.
참으로 궁금하다고 생각하며, 리지는 자신들에게로 걸어오는 페르젠을 조용히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