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01화 (201/260)

에르네스 제국의 황제가 전쟁을 선포했어도, 제국의 수도는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그려나가게끔 명을 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수도에 머무르고 있던, 또 수도로 내려와 지내고 있던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걸음을 내딛는 병사들은……

자신들 없이 거리의 활기를 채워주고 있는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을 보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별탈 없이 잘 지낼 것 같은 안도감을 전해 받기도 했고.

항상 함께 하던 일상에 자신들만이 빠져 있는 광경을 보고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

그리고 그렇게, 하나 둘 성벽의 외곽으로 모여드는 병사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던 제 2 황자──레이몬드는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형님.”

“왜 그러느냐.”

“전쟁을 앞둔 백성들의 눈빛을 보고 있으니, 부끄럽게도 해야만 하는 전쟁이라고 주장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그것은 오히려 다행인 게 아니더냐.”

자신의 동생이 죄책감을 머금고 읊조리는 말을 조용히 경청하며, 제 1 황자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전쟁을 앞두고 있는 황실의 핏줄들이, 전쟁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무게감과 공포를 인지하고 있다.”

“……”

“전쟁을 즐기려 드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 만큼 군주로서 참된 덕목이 있겠느냐.”

“그런가요……”

“동생아. 부정한 평화 속에 살아갈바에야, 올바른 전쟁을 치루는 것이 옳다.”

“예.”

“그럼 우리도 준비를 하자꾸나.”

휘몰아치는 상념을 떨쳐내고, 두 황자들이 등을 돌린다.

동시에 그들은 각자 마음속으로, 똑같은 결의를 했다.

전장에서 비참하게 살아남는 군주가 될 바에야, 백성들의 손에 묻힐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거머쥐겠다고.

* * * * *

“……”

유치한 신파극을 찍고 있는 눈앞의 페르젠과 유리엘을 바라보며 라우라는 괜스레 제복의 목덜미를 더듬거렸다.

주변에 이리도 사람이 많은데, 그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하니 민망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부럽다는 마음이 치민다.

‘어차피 전장에서 가장 힘이 되어주는 것은……’

전생의 자신 일 텐데.

어찌 이리도 자신을 향한 대우가 야박한지.

이윽고 꽈악 끌어 안고 있던 두 사람이 슬며시 떨어지자 라우라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페르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조심하거라.”

특유의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페르젠의 한 마디.

마음 같아서는 그의 목덜미를 붙잡아 고개를 숙이게 만든 뒤, 앙큼하게 까치발을 들어 입술을 맞추고 싶다.

“네……”

하지만 곁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유리엘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라우라는 조용히 대답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페르젠이 자신의 소속 부대가 있는 방향으로 떠나가자, 라우라는 곁으로 다가오는 유리엘과 함께 자신들의 소속 부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킁킁……

곁에서 따라 걷는, 유리엘의 몸에서 풍겨오는 향수 냄새가 무척이나 짙다.

향과로 변질된 자신의 체취를 가리기 위함이었으나, 그것을 알 도리가 없는 라우라 입장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추잡하게 페르젠과 몸을 섞었기에 향수를 이리 짙게도 뿌렸나 싶었다.

건전하게 제복으로 감추어졌으나, 특유의 음탕함을 가릴 수 없는 커다란 엉덩이와 풍만한 가슴.

분명, 옷을 벗기면 그곳에는 페르젠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새겨져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자신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테기에, 라우라는 괜스레 의기양양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게다가 후방의 지원 부대가 물자를 전달하는 주기는 어렴풋하게 만월이 찾아오는 간격과 동일하다.

때문에 전장에서 구르고 굴러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흙투성이에 땀투성이가 된 그의 자지가 비릿한 냄새를 풀풀 풍기며 자신의 보지를 쑤셔댈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꼬옥 다물린 음부가 음탕하게 벌름거리며 찌르르하는 감각을 뇌리로 올려 보낸다.

‘……’

그에 라우라는 옅은 실소를 머금었다.

곁에 있는 유리엘을 향해 태생이 천박하고 음탕한 년이라고 힐난했던 게 바로 어제인데.

정작, 자신 또한 똑같지 않은가.

‘사랑하는 여자는 아름다워 진다더니…… 그것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구나.’

틀림없이 더할 나위 없이 음탕해진 다는 것을, 아주 잘 포장한 한마디 이렸다.

* * * * *

“오셨습니까!”

자신이 책임지고, 지휘해야 할 부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자 부사관인 림벨이 가장 먼저 달려나와 허리를 꾸벅 숙인다.

그에 페르젠은 너머에 바짝 군기가 잡힌 채 서있는 30명의 부대원들을 스윽 훑었다.

인원은 총 30명.

제국에 있는 흑마법사들의 수는 분명 이것보다 많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이들은 황실이 발굴하여 애지중지 키워낸 보석──최정예.

물론, 이들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동 떨어져 휠체어에 앉아 있는 리지는 이들에게 견주기 어려우나……

그녀에게 주어진 황제 폐하의 명은 국가에 헌신해 스스로 오욕을 씻으라는 거였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최전선, 그것도 가장 격렬한 전투를 치루게 될 자신의 곁에 반역의 핏줄을 배정하지 않았다가는 쓸데없는 말들이 지속적으로 튀어 나올 테니.

“전에 십인조로 나누라고 언질을 주었을 텐데, 상의하여 각 조의 십부장은 선출하였는가.”

──예!

페르젠의 물음에 크게 대답을 하는 세 명의 흑마법사들이 선두로 걸어 나온다.

그에 페르젠은 틈틈히 외워 두었던 그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벨라테인.”

“예.”

“뤼브리오.”

“예!”

“아스텔.”

“예…… 예!”

“앞으로 중요 사안은 그대들에게 먼저 전달을 하도록 하겠다. 더불어 전장에서는 내가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는 한, 그대들이 나를 대신해 유기적인 명령을 내리도록.”

──알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세 명의 십부장들을 보며, 페르젠은 뒤편에 동 떨어져 있는 리지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들 30명은 전장에서 등을 맞대어야 할 전우들일텐데, 거기에 뒤섞이지 못하고 낙오된 듯한 모습은 애처로움을 자아낸다.

움찔!

그리고 페르젠의 시선이 리지에게 옮겨 갔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소속 된 조의 십부장인 아스텔은 몸을 살짝 떨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한 눈에 봐도, 여기 있는 모두가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하듯 외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

하지만 페르젠은 아스텔의 예상과 다르게, 그를 나무라는 듯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물론, 상관인 자신 입장에서는 이들의 차디찬 불화가 좋게 보일 수는 없었기에 허울 좋은 야단을 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일말의 효과도 존재하지 않겠지.

따돌리는 아이와, 따돌림을 받는 아이를 불러 친하게 지내라고 살갑게 중재하는 격이리라.

오히려 차가운 무관심으로 그녀를 대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적어도 선을 넘지 않는 가장 어른 다운 방식일 것이다.

이들이 죽음에 관대한 바보가 아니고서야, 전장에 서게 되는 시점에서는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들먹이지는 않을 터.

……오히려 적군을 눈앞에 두고 그럴 여유가 있다면, 어느 의미로 난 놈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면 나는 전하를 찾아 뵙고, 연설이 끝이난 뒤에 돌아오도록 하겠다.”

“예!”

시선을 거두어 들인 페르젠이 등을 돌려 막사를 나가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가 조금씩 환기 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막사에 찾아온 이들은……

“반갑습니다.”

제국의 황실 소속 기사들이었다.

최전선에 있는 흑마법사들이나 원소 마법사들은 적군 입장에서 당연히 최우선 제거 순위였기에, 그들을 보호해줄 기사들이 배정되는 것이다.

“오……! 다들 어서오게.”

그리고 각자가 모두 안면이 있는 만큼, 그들은 특유의 친밀감을 드러내며 빠르게 뒤섞여 들었다.

유일하게 그러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동 떨어진 채 휠체어에 앉아 있는 리지이리라.

‘아……’

지독하리만큼 불편한 분위기, 차라리 얼른 개전을 하면 좋을 텐데.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던 중, 리지는 자신들에게 찾아온 기사 중 한명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름은 잘 기억 나지 않으나, 그래도 그의 얼굴은 선명히 뇌리에 떠올랐다.

마지막 시험, 그 장소에서 자신에게 유독 친절한 호의를 배풀어주었던 젊은 기사.

그 또한 자신의 시선을 느낀 건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 한다.

“……”

하지만 그 때 자신에게 보내주었던, 상냥하고 따뜻한 눈길은 온데 간데 없고.

옅은 경멸만이 서려있는 눈빛이 자신을 훑고 떠나갔다.

마치, 오랜 시간 단련해온 자신의 검으로.

반역자의 핏줄이나 지켜야 한다는 것이 지독히도 불명예스럽다는 듯.

‘그래……’

어울리지 않게, 순간적으로 자신은 무엇을 기대하고 만 것일까.

이 세계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건 충분히 경험을 했을 터인데.

‘바보, 같네……’

고개를 푹 숙이는 리지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전쟁의 개전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그녀는 이 전쟁에 아무런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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