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장식되는 무언가는, 항상 사람에게 묘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실제로 오늘이 페르젠이 이곳에 머무르는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이 들자, 라우라는 자신의 침실에서 벗어나 페르젠 곁에 있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느꼈다.
“……”
그러나 오늘 밤,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권리는 자신이 아니라 유리엘에게 있는 것이기에.
라우라는 죄없는 토끼 인형의 귀를 쭈욱 잡아 당기며 대상을 지정할 수 없는 짜증을 속으로 삭혔다.
‘……나갈까.’
이대로 침실에만 틀어 박혀 있자하니, 무언가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라우라는 토끼 인형을 품에 꼬옥 끌어안은 채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복도를 걷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엘이 홀로 드레스 룸을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시녀들조차 대동하지 않고 드레스 룸에 들린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또각.
상념을 흩트리며, 라우라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서 고개를 치켜드는 추악한 질투심을 마주한 채 드레스 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내부에 있는──또다른 자그마한 방의 문을 한번더 열자, 누가봐도 유리엘의 체형과 일치하는 속옷들과 잠자리를 위한 옷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두리번 거리니, 명백히 사람이 들렸다 갔다는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다.
“……”
태양은 아직도 창밖에서 저리도 버젓이 떠있는데.
유리엘은 벌써부터 밤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스륵.
슬그머니 손을 뻗어 젖가리개를 쥐어드니, 이게 도대체 무슨 크기일까 싶어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놓여 있는 팬티들은 자신이 입었다가는 바로 흘러내릴 것 같았다.
심지어 제 역할을 하지도 못하게끔,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팬티를 집어든 라우라는 그곳에 손가락을 집어 넣고는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누가봐도 이것은 벗는 과정 조차 생략한 채, 사내의 자지를 받아 들이기 위한 용도가 아닌지.
뿐만이 아니라 잠자를 위한 다른 옷들도, 이못지 않게 천박한 것들 투성이었다.
창관의 닳고 닳은 창녀들조차 여기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흥.’
페르젠이 어째서 유리엘을 후방으로 배치시켰는지, 이제야 좀 이해가 가는 듯 했다.
이리도 음탕한 년이 최전선에 있게 된다면, 전리품으로 삼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적군의 사기만 더 올라가지 않겠는가.
그녀가 알프레드라는 명문가에 태어난 것은 어찌보면 다행일 것이다.
기품과 품격을 몸에 두르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그 천성적인 음탕함을 감추기가 어려웠을 테니.
“……”
하지만 속으로 아무리 유리엘을 비난하고 힐난해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지독한 패배감뿐이었기에, 라우라는 드레스 룸을 나와 복도를 거닐었다.
또각.
그러다 문득, 페르젠의 집무실 앞에서 그녀는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아무런 생각 없이 노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노크를 했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안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기에 그녀는 적막하기만한 집무실의 풍경을 훑은 뒤 문을 닫았다.
“……”
삐걱.
책상 앞에 놓인 커다란 의자에 앉으니, 희미하게 남아 있는 페르젠의 잔향이 코끝을 스친다.
아직 처리 못한 서류들과, 그 옆에 단란히 놓여 있는 만년필, 루에르그 가문의 인장.
특히 손으로 만년필을 감싸쥐는 부분에는 그의 손길이 고여 새하얀 색이 조금 빛바래 있었다.
그에 그것을 만지작 거리던 라우라는 자신도 모르게 음탕한 생각을 품으며 치맛단을 살포시 걷어 올린 뒤……
“응……”
자신의 새하얀 팬티 위로, 둥그스런 만년필의 끝부분을 가져다대어 문질렀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인만큼 분명 애용하는 물건이었을 터.
그러한 물건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배덕감을 그녀에게 선사했고.
동시에 좋아하는 사내의 물건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고 있다는 비틀린 독점욕을 충족시켜주었다.
“아…… 응……”
고작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암컷의 냄새를 솔솔 풍기는 묽은 애액이 흘러 나오더니 새하얀 팬티를 적나라하게 물들이며 맨들거리는 음부를 비추어지게끔 만든다.
이내 자신의 팬티를 옆으로 슬그머니 밀어 젖힌 라우라는 매끈한 음부 가운데로 조심스레 만년필을 밀어 넣었다.
도중에 가녀린 손을 흠칫하며 망설임을 머금기도 했지만, 그 망설임은 찰나 밖에 되지 않았고.
찌붑!
곧이어 눅눅해진 음부 안으로 별다른 저항없이 파고드는 만년필이 추잡한 소리를 내며 벌름거리는 분홍빛 속살을 따라 느릿하게 흔들린다.
몸통이 집어 삼켜져 툭 튀어나와 있는 펜촉이 어찌그리 우스꽝스러울수가 있는 건지.
몰려오는 자괴감이 적지 않았으나, 라우라는 그 펜촉 부분을 손가락으로 붙잡은 뒤 천천히 자신의 질내부를 문질렀다.
“하…… 으…… 아앙……”
그의 손가락이 아마 이 정도 굵기일까.
꾸욱 만년필을 옥죄는 속살이, 무수한 질주름으로 거기에 묻어 있는 페르젠의 손때를 게걸스레 핥아 나간다.
찔꺽!
찔꺽……!
그렇게 어느덧 수치심이 선사하는 저항감조차 희미해지자, 라우라는 의자의 팔걸이에 자신의 두 다리를 천박하게 걸친 뒤 만년필을 더욱 거칠게 쑤셔댔다.
그러자 만년필의 몸통을 타고흐르는 묽은 애액이 의자 위로 떨어지며 음란한 얼룩을 아주 선명히 새긴다.
“끄…… 흐…… 으응……!”
움찔!
소변을 눌러 참은 방광을 꾸욱꾸욱 누르듯, 짜릿하고 오싹한 쾌감이 몰아 닥치기 시작하는 아랫배.
조금만 더 있으면 절정에 도달할 것이 틀림없었기에, 라우라는 두 다리를 바르르 떨며 펜촉을 붙잡은 만년필을 깊숙히 쑤셔 꽂았다.
딸칵.
“흣!”
그러나 그 순간, 문고리가 돌아가며 벌컥 문이 열리자 라우라는 혼비백산하며 그대로 팔걸이에 걸치고 있던 자신의 두 다리를 아래로 내렸다.
“……”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선 페르젠은, 조금전 자신이 보았던 광경이 무엇이었나 싶어 문조차 닫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라우라가 아무리 대처를 빨리 했어도, 주어진 것은 찰나의 시간 뿐이었기에.
그의 만년필로 천박하고 음탕한 자위를 하고 있던 광경을 감추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타악.
이내 문을 닫은 페르젠은 괜스레 자신의 넥타이를 정돈하며 시간을 끌었다.
어린 아기는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입안으로 넣으며, 그것을 통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알아나간다.
그러니 성적인 쾌락에 눈을 뜬 여인이, 호감있는 사내의 물건으로 자위를 하는 건……
모르겠다.
이런 말로 지금의 라우라를 위로하기 보다는, 차라리 못 본척 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아 페르젠은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던 라우라는 그 어느때보다도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이며 옆으로 일어나 몸을 비켜주었다.
“……”
거리를 좁힐수록, 풍겨오는 암컷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의자에 묻어 있는 얼룩은, 누가봐도 선명한 자위의 흔적.
“……”
“……”
길게 이어지는 침묵이 어색하다.
왜 여기에 있는지, 그런 형식적인 질문 조차 건네기 어려운 분위기였기에.
페르젠은 본래의 목적이었던 루에르그 가문의 인장을 자신의 품으로 챙겨 넣었다.
가능하면 라우라를 배려하기 위해 시선은 아래쪽으로 유지를 하고 있었으나……
주륵.
오히려 그 때문에, 그녀의 새하얀 다리를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야릇한 애액이 눈으로 들어온다.
“아…… 아, 아니……”
그 시선의 머무름을 라우라도 눈치를 채고 말았기에, 자신도 모르게 의미없는 부정을 하며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툭!
하지만 그 순간, 바닥으로 떨어지는──그녀의 음부에 깊숙히 꽂혀 있던 만년필.
“……”
“……”
데구르르, 바닥을 구르는 만년필이 흥건한 애액을 머금은 채 반들거린다.
저것을 주워야 하는지, 아니면 말아야 하는지.
페르젠 또한 당혹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라우라는 기어코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끄…… 끄흑……!”
이사벨, 아니 라우라는 본디 눈물을 자주보이는 여인이 아니었다.
만월의 괴벽에 수차례 시달리며,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시달릴때도.
저주의 연쇄를 끊기 위해, 자신의 가문을 스스로의 손으로 멸문 시킬 때도 울지를 않았으니.
그녀의 자존심이, 그녀의 자아가 얼마나 강한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하지만 그 아무리 강직한 여인이라도, 이러한 상황에 놓이니 찾아오는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좋아하는 사내에게, 몰래 그의 애용품으로 수음을 하고 있던 광경을 보여주고 말았는데……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자살하지 않은 것이, 어찌보면 역으로 그만큼 강직한 여인임을 알려주는 반증일까.
“죄…… 죄…… 끄…… 흑! 죄, 죄송…… 흐윽!”
건네보려는 사과조차도, 뒤섞이는 흐느낌에 막혀 완성되지 못한다.
평소보다 심하게 말을 더듬고 있는 라우라의 모습은 이쯤되니 애처롭다 못해 애잔할 지경이었다.
“사과할만큼…… 네가 잘못한 것은 아니다. 라우라.”
그에 페르젠은 어물쩍 넘기기에도 틀렸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만년필을 주워 책상 위에 올려 놓은 뒤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유독 피부가 새하얗기 때문일까.
연홍색 눈동자 아래로 팅팅 부어오른 눈가와, 전체적으로 붉어진 얼굴은 마치 토끼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라우라.”
“끄…… 흑! 흐끅!”
울음이 멎은 뒤 찾아오는 딸꾹질에,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부름에 응하는 라우라.
“눈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 솔직히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히끅!”
“너는…… 내가 이 순간을 뇌리에서 지워버린 채, 조용히 이 방을 나서길 원하느냐.”
그게 아니라면.
“지금 네 곁에, 남자로 있어주기를 바라느냐.”
“흐끅!”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 침묵은 전자를 선택한 것으로 받아 들이마.”
여전히 딸꾹질에 시달리는 라우라가 어깨를 움찔하며 페르젠의 말에 머뭇거림을 선보인다.
“……”
그리고 끝끝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침묵이었다.
다만, 입은 침묵을 했어도……
꼬옥.
그녀의 자그마한 손은, 페르젠의 옷깃을 붙들며 자신의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아카데미의 교수도, 브뤼테인의 차남도, 루에르그 백작도 아닌……
오직, 자신을 여인으로 대해줄 수 있는 사내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