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앞의 호화스런 만찬이 무색하리만큼 입맛이 돌지 않는다.
너머에 앉아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식사 예절을 유지하고 있는 페르젠 때문일까.
아니, 이유는 비단 그것 뿐만이 아니겠지.
자신도 그렇고, 페르젠도 예상을 했듯.
자신의 속은 이 기름진 고기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다섯 점을 먹었을 뿐인데, 니글 거리는 속에 불쾌감이 치민다.
꼴깍……
이걸로 몇잔 째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일까.
씹은 음식을 억지로 삼키려 하다보니, 거의 물로 공복감을 채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 끝으로 스치는 기름진 스테이크의 향기를 맡을 때면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다.
“끄…… 흑!”
아니, 이번에는 단순한 헛구역질이 아닌 듯 했다.
식도 부근이 따가우리만큼 솟아오르는 위액.
결국 쥐고 있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두고 입가를 가리자,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묵묵히 식사를 이어나가던 페르젠이 눈썹을 꿈틀하며 스테이크를 자르던 손을 멈춘다.
“……”
어찌, 지금 당신의 눈에는 내가 얼마나 추하고 비참하게 비추어지고 있을까.
어느새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턱끝에 옹골종골 모여 툭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손끝이 창백하게 질린 걸 보아하니, 자신의 얼굴 혈색도 별반 다르지는 않으리라.
드륵.
이윽고 앉아 있던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페르젠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자, 흐릿한 초점을 맞추어 그를 올려다보던 리지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생애 처음으로, 그녀가 페르젠에게 선보이는 비웃음이라 할 수 있을 터.
‘자……’
페르젠.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이제는 그 역겨운 위선으로 가득찬 친절을 내게 베풀어야 할 때가 아닌지.
“……”
스륵.
아니나 다를까, 예상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는 그가 부드럽게 몸을 들어 올리자……
움찔!
리지는 전신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끔찍한 감각을 억지로 인내하며 그의 목에 두 손을 둘렀다.
또각.
또각……
내딛는 그의 걸음에 맞추어 흔들리는 몸 때문인지 구토감이 점점 심해진다.
고작 고기 몇 점과 차가운 냉수로 들어찬 속이 요동을 치며 역류하려드는 느낌은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흐…… 으……”
파리해진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자신의 옅은 신음을 잘도 들은건지, 얼마 남지 않은 화장실과의 거리를 보고서 페르젠이 걸음 속도를 높힌다.
벌컥!
“욱──!”
하지만 화장실의 문을 여는 순간, 아무리 잘 관리 했어도 희미하게 풍겨오는 특유의 역한 냄새에 리지는 기어코 잘 참고 있던 구토감을 본인의 의지로 제어하지 못했다.
“우엑……!”
억지로 게워지는 빈속, 흘러나오는 위액이 그의 단정한 셔츠를 더럽히며 번져나간다.
이 그림 자체는 리지 또한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니었기에, 반사적으로 자신의 입가를 손으로 틀어 막아보았으나 하등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심지어 퇴원을 하기는 했어도 목이 완벽하게 나은 상태는 아닌 건지, 희미하게 뒤섞인 핏물이 그녀의 병든 몸 상태를 아주 잘 알려준다.
“콜록……! 끄…… 흑……!”
괴로울 정도의 따가운 통증은 둘쨰 치고, 샛노랗게 더럽혀진 페르젠의 새하얀 셔츠를 보고 있으니 리지는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한가득 치미는 걸 느꼈다.
분명, 그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기는 것이야 말로 제일 바라던 바였을 텐데.
어째서 그가 그 가면을 벗고 자신을 망가트리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을 집어 먹는 것일까.
터엉.
뒤이어 화장실의 문이 닫히며 페르젠과 단 둘이 남았다는 고립감이 퍼져 나가자, 그 공포심은 순식간에 덩치를 부풀리며 리지의 뇌리를 잠식했다.
“으아…… 아…… 죄, 죄…… 죄, 죄송…… 끄윽……! 죄, 죄송……”
비굴하게 눈물을 쏟으며, 원수를 향해 제멋대로 사과를 뱉어내는 자신의 입이 증오스럽다.
하지만 뿌리 깊게 심어진 페르젠을 향한 트라우마는 감히 이성으로 건드릴 영역이 아니었기에, 리지는 수차례 말을 더듬으며 자신의 소매로 페르젠의 셔츠를 북북 닦아 나갔다.
그럴 때 마다 깨끗해지는커녕 더욱 번져 나가며 더러워지는 그의 셔츠는, 리지가 품고 있는 공포심을 간접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는 듯 했다.
“괜찮다.”
“아……”
그러나 커다란 손을 뻗으며 자신의 발악을 멈춰 세우는 그가 상냥한 목소리로 등을 토닥이자, 리지는 울쌍을 지은 얼굴 그대로 온 몸을 덜덜 떨었다.
은연중에 피어오르는 안도감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리도 끔찍할 수가 있는 건지.
“당장은 갈아 입을 옷이 없을 테니, 내 옷을 입어야 겠구나.”
한쪽 손으로 자신을 받친 채, 제단을 쓰다듬어 아공간을 여는 페르젠이 여분의 옷을 꺼내든다.
쿠웅.
그리고는 에르네스 제국 역사상 최악의 마녀라 불리었던 이사벨의 관을 내려 놓고는, 그녀를 사역하여 일으킨 뒤 자신의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
툭.
투둑.
하나 둘, 단추를 풀어 제복 상의를 열어 젖히자 새하얗고 매끈한 피부에서 솔솔 피어오르는 풋풋한 여인의 체향이 화장실의 역한 냄새를 밀어낸다.
더불어 거기에 뒤섞인 옅은 알코올 냄새와 희미한 병상의 냄새는 리지에게 퇴폐미를 부가해주었다.
“차가울 것이다.”
“흐끅……!”
이사벨을 통해 자신의 마력을 물로 변환시킨 페르젠이 그녀의 입가와 손, 쇄골 부근에 묻은 위액을 깨끗하게 씻어 내린다.
그리고는 이사벨에게 리지를 맡긴 뒤, 페르젠 또한 자신의 상의를 벗고 더러워진 부근을 청결하게 지워 나갔다.
그렇게 옷을 갈아 입고, 리지에게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셔츠를 입힌다.
허벅지 부근까지 내려오는 옷의 기장, 소매에 덮어지는 자그마한 손.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옷이 너무나도 헐렁헐렁 했기에 그녀보다 키가 크다면 목덜미 부근 너머로 앙증맞은 분홍빛 유두가 적나라하게 스쳐지나가는 걸 무리없이 지켜볼 수 있었다.
“소변이라도 마려운 것이냐.”
“으…… 아……”
이사벨에게 붙들린 채로, 두 다리를 바르르 떨고 있는 리지를 보며 페르젠이 묻는다.
그에 리지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으나, 페르젠은 마치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듯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온 김에 볼일을 보고 가면 되겠구나.”
그런 것이 아니라고.
소매 밖으로 자신의 손을 꺼내 힘없이 그의 팔뚝을 밀어내보지만, 당연히 그의 완력을 이겨내는 건 불가했다.
스륵.
이내 모욕적이고, 치욕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다 큰 여인을 아이 다루듯, 손수 바지를 벗겨 내리는 페르젠이 리지를 변기 쪽에 살포시 앉힌다.
움찔!
그러자 엉덩이에 맞닿는 그 차디찬 감각에 리지는 몸을 떨며 두 다리를 최대한 오므렸다.
또각.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나는 페르젠.
꾸욱!
배변 훈련을 당하는 짐승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무슨 꼬라지인가 싶어 스며드는 강렬한 자괴감에 리지는 여린 손을 거세게 말아쥐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페르젠에게 선보일 수 있는 최선이자, 모두인 저항.
“……너는, 손이 정말 많이 가는 구나.”
기어코 하염없이 기다리기를 5분 째, 얌전히 앉아 떨고만 있는 리지를 보며 가까이 다가서는 페르젠이 그녀의 굳게 다물린 허벅지 사이로 손을 집어 넣는다.
“흐윽……!”
그러자 힘없이 벌려지는 두 다리가 새하얀 팬티를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그 속옷마저 붙잡혀 무릎 쪽으로 끌려내려가니 털 하나 없는 매끈한 음부가 야릇하게 드러난다.
“끅……!”
결혼한 남편도 아니고, 자신의 인생을 짓밟은 원수한테 몇차례에 걸쳐 이리도 간단히 고간을 내보이고 있는데……
치욕감 이전에, 바닥에 누워 배를 까뒤집는 개처럼 강렬한 굴복감을 느끼는 자신이 환멸스럽다.
이제 이 세상에 자신을 사랑해줄수 있는 사람이란, 자기 자신 밖에 남지가 않았는데.
그러한 자기 자신 조차도 경멸감을 들게 만드는,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라는 여인은 얼마나 비참한 존재란 말인가.
“읏……!”
이윽고 그의 두터운 손이 자신의 아랫배 근처를 살살 짓누르자, 리지는 희미한 통증을 느끼며 신음을 흘렸다.
애당초 배뇨감을 일절 느끼지 않으니, 페르젠의 이 행위 자체가 하등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 분명 그래야만 했을 텐데.
남은 손으로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페르젠이, 자신의 귓가에 자그마한 목소리로……
“쉬……”
라며 속삭이자, 리지는 머잖아 화장실 전체에 울려 퍼지는 민망한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쪼르륵.
“아……”
제멋대로, 의사와는 상관 없이.
페르젠 앞에서 소변을 누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리지는 그저 헛웃음 밖에 나오지가 않았다.
“하…… 아하하……”
지나치게 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투명한 소변이 상당히 오랜 시간 이어지고.
그것이 멎었을 때, 리지는 공허한 표정으로 조용히 눈물만을 흘리며 자신의 고간을 휴지로 닦아주는 페르젠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이 가혹하고 비참한 무대는, 결코 자신의 의지로 서게 된 것이 아닌데.
거기서 선보이는 연극조차도, 이제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페르젠의 의사를 따라야 하는 것일까.
“……왜요.”
“……”
“마무리도, 마저 해주지 그래요?”
자신의 음부를 닦아준 뒤, 숙였던 상체를 일으키는 페르젠이 가만히 있자 리지는 뒤틀리고 망가진 웃음을 선보이며 그리 말했다.
“아니면 이제와서 음욕이라도 들어요?”
“……”
“하고 싶으면…… 하지 그래요. 식대를 낸다는 셈 칠 테니.”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꼬옥 다물린 자신의 음부를 열어 젖히는 리지가 페르젠을 올려다 본다.
벌어진 음순 너머로 보이는 좁디 좁은 구멍과,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한 적이 없어 탐스러운 분홍빛을 선보이며 벌름거리는 속살은 너무나도 음탕했다.
그러나 페르젠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리지의 팬티와 허벅지를 손수 끌어 올려주고는 다시금 부드럽게 몸을 안아 들었다.
“……”
차라리 여기서 그가 자신을 범했다면, 육체적으로는 괴로울지언정 마음은 훨씬 편했을 텐데.
고통의 선택 조차,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서글프다.
꾸욱.
몸에 와닿는 페르젠의 촉감.
가까운 거리에서 풍겨오는 그의 체취.
하나하나, 모든 것이 역겨우리만큼 진절머리가 나지만……
지치고, 병이 든 어린 양은 감히 울음 조차 토해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