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릭.
아무런 대화도 오고 가지 않는 침묵 속에서, 휠체어가 언덕을 천천히 올라간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수도의 황궁.
“……”
페르젠은 그날 자신이 소집에 응하지 못하여 보류되었던 일을 오늘 시키려는 것일까.
“어서오십시오!”
“수고하게.”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황궁의 성문을 넘어선 페르젠이 지하 감옥 쪽으로 자신을 인도하자 리지는 자연스레 휠체어의 턱걸이를 두 손으로 꾸욱 붙들었다.
세상을 떠난 오빠들의 흔적이 부정적인 의미로 남아 있는 곳이니, 그녀가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것이리라.
끼릭……
지하로 점점 내려갈수록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불쾌한 공기가 짙어진다.
벽에 걸린 횃불로 밝혀지는 어둠함 속에서 페르젠과 단둘이 이 기나긴 길을 나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심적으로 리지를 무척이나 힘들게 만들었다.
“엇……! 신분을 밝혀주시겠습니까?”
그러나 머지 않아 두터운 철문 앞에 서있는 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하자, 리지는 자신을 옭아매는 트라우마가 조금이나마 옅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루에르그 백작이다.”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사정이 있어 며칠전 소집일에 참석할 수 없었던 부대원을 데려 온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확인 되었습니다!”
끼익.
모든 확인 과정을 마치고,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열쇠로 두터운 철문을 열어주는 간수.
그러자 너머에서 풍겨오는 짙은 피비린내에 리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분명, 안으로 들어서서 지나치는 감옥들 하나하나는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한데……
오히려 그 모순된 점이 지독한 소름을 끼치게 만든다.
끼릭……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던 자신의 휠체어가 정차하자, 리지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정면의 쇠창살 너머에는 전신이 결박당한 채로 바닥에 누워 있는 죄수 한 명이 보인다.
“으…… 으읍!”
추하게 발버둥을 치며, 두려움이 뒤섞인 볼썽사나운 신음을 흘리는 남자.
“이름은 케레스, 나이는 35세. 여섯명의 어린 여아들을 강간하고 살해한 죄목이 있으니 부디 죄책감을 가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박또박, 뒤따라온 간수가 눈앞의 죄수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읊어주고서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난다.
받았던 통지서에는 어떤 일을 진행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적혀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이 저 죄수를 죽여야 한다는 건 리지 또한 인지를 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다만,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리라.
자신은 사람을 죽여 본 경험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거부감은 어디까지나 심리적 요인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온 일생, 그 과정에서 교육받은 도덕감이 선사하는 거부감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리지는 문득 자조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이 자라며 교육받는 도덕이란, 타인을 인간으로서 대우하기 위해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사회적 약속일텐데.
그 약속을 이들은 지켰는가.
그래, 애당초 이 상황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자신 자체가 웃기는 꼴이었다.
진실에 귀닫고 왜곡된 정의를 찬양하는 세계의 짐승들을 위해 할애 할 감정 같은 건, 더 이상 남아 있을리가 없는 것이다.
“……”
그렇기에 리지는 자기 자신조차도 낯설만큼, 무척이나 무덤덤하게 제단을 쓰다듬어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는 관한짝을 꺼내 놓은 뒤, 잠들어 있는 시신 한구를 사역하여 일으키고는……
“끄…… 끄으읍!”
주저없이 살생이라는 행위를 저지른다.
지글지글!
피어오르는 불꽃에 사람의 피부가 녹아내리며 타들어가는 소음.
몇 걸음 뒤로 물러나있던 간수는 퍼져 나가는 불쾌한 탄내에 자연스레 코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리지는, 이윽고 죄수의 복부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리자 성질을 변화시킨 고체 형태의 불꽃을 투하했다.
직후, 그 자그마한 구멍을 덮어버리니 복부 내에서 연소를 거듭하며 차오르는 연기에……
“꺼……! 꺼으으──!”
죄수의 배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몸안의 장기가 훈제라도 되듯 모락모락 익어가는 고통, 그것은 차마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
오죽하면 해당 광경을 힐끔 바라보고 있던 간수 또한 고개를 돌리고 말았을까.
일순간 그가 악질적인 사형수라해도 안쓰러운 감정이 피어오르게 만들만큼, 눈앞의 사형 집행 방식은 잔혹했다.
퍼엉──!
그러나 머잖아 그러한 감상조차도 더이상 품을 수 없게, 부풀어 오른 배가 터지며 눈앞의 죄수가 즉사하자 리지는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까앙!
철퍽……!
쇠창살을 맞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어디 부위인지 모를 뼈들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자아낸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비산하는 살점들과 비릿한 피는 리지의 몸을 적시며, 또 질척하게 달라 붙었다.
“……”
멍하니 두 눈을 떠서 그 육편들을 손으로 더듬어 보니, 아직 꿈틀 거리는 듯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 그리 느껴지는 건 자신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기 때문일까.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니, 바닥에 전시된 시신은 마치 씹다버린 음식물과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풍겨오는 노릇하게 익은 불쾌한 냄새는 순간 헛구역질을 유발하려드나, 리지는 그것을 꾸역꾸역 참아내며 자신의 뺨에 달라 붙은 살점들을 천천히 떼어냈다.
주륵.
“……”
왜지.
어째서지.
눈물이 흐른다.
무섭고, 두렵고, 끔찍하다는 감정이 피어오르고 있지도 않은데.
자신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죄수의 뜨거운 피와 뒤섞여 뺨을 타고 떨어졌다.
과연 이 눈물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또,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움찔!
상념에 집어 삼켜지려던 찰나, 페르젠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턱을 붙잡자 리지는 몸을 옅게 떨었다.
스륵……
다정하게 자신의 눈물을 훔쳐오는 그의 손길.
그러자 사람을 죽였음에도 좀처럼 반응하지 않았던 감정은…… 뒤늦게 두렵고, 무섭고, 끔찍하다라는 비명을 질러댔다.
“아…… 하하……”
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당신은 그리도 꼴뵈기가 싫은 걸까.
이 생지옥과도 다를 바 없는 끔찍한 무대는 분명 당신의 손으로 마련해준 것일 텐데.
어째서 당신은 그 무대 위에 올라 춤을 추는 나를 그리도 보기 싫어 하는 것인지.
그래도 당신이 그것을 싫어한다면, 이 원치 않은 무대에서 배정받은 역할을 끝까지 이어 나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망가지고, 짓밟히고, 으스러져 움직일 수 없는 모습으로 당신의 눈을 괴롭히고.
음울하고, 처절하고, 절규스런 비명으로 당신의 귀를 괴롭히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나의 비참한 무대.
“……”
그리고 과연, 당신의 그 위선적인 친절이 이것들을 덮을 수 있을지……
“배…… 고파요……”
이제는 조금 궁금해진다.
“그래…… 자리를 옮기지.”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나를 괴롭히는 추악한 악몽.
그러니 나 또한, 당신을 괴롭게하는 죄의 가시가 되어 그 끝을 맞이 하리라.
* * * * *
“……”
황궁에 근무하는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하고, 알맞은 차수의 제복으로 옷을 갈아 입은 리지는 생기가 돌지 않는 보랏빛 눈동자로 저편의 거울을 마주보았다.
분명, 비추어지는 건 자신의 모습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다가올 전쟁을 대비하고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에르네스 제국이든, 엘마르크 제국이든.
그들의 눈에 자신은, 검을 쥐지않고 전장으로 나서는 기사들로 보이겠지.
끼릭.
그렇게 짧디 짧은 자학 서린 감상을 마치고 드레스 룸을 빠져나오자,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던 페르젠이 고개를 돌려온다.
“가지.”
꾸욱!
벌써부터 그와 가질 식사 자리를 생각하니 구역질이 치미는 것 같다.
하지만 리지는 애써 그것을 인내하며, 자신의 시신을 통제하여 휠체어를 움직였다.
“먹고 싶은 것이라도 있느냐.”
“……”
황궁을 나와 언덕을 내려가던 도중,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의사를 물어오는 페르젠의 목소리에 리지는 조용히 그를 올려다 보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당신이라는 남자가, 나의 의사를 물었던 것인지.
그 위선적인 친절과 모순적인 배려를 하주 할 때면, 온 몸이 뒤틀리는 듯한 괴로움이 느껴진다.
“……스테이크, 먹도록 해요.”
“네 위가 받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염증의 상태가 심해, 병상에 누워 먹었던 건 따뜻한 스프가 전부.
그렇기에 페르젠의 말대로, 갑자기 기름기가 진 음식을 먹었다가는 자신의 속이 받아들이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그 자리에서 니글거리는 구토감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내는 광경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고작 식사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은, 틀림없이 그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광경일 테니.
“원치 않은 동행은 저도 바라지 않아요.”
“……”
“다만, 그렇게 되면 저는 가진 게 없으니…… 식사를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겠네요……”
“무슨 뜻이냐.”
“저택도, 저택의 물건도. 반역자의 소유물이었던 건 그 누구도 사주지 않거든요.”
“……”
“저택에 남은 돈으로는 호화스런 식사도 불가능하니, 유일하게 가치가 남아 있는 이 몸뚱이를……”
“리지.”
“왜요? 아…… 어때요. 괜찮으면 백작님이 사주실래요?”
죽어 있는 보랏빛 눈동자와 상반되는, 억지 웃음을 짓는 리지의 붉은 입술이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인다.
“반역자의 핏줄이라고. 제 몸을 쓰고서 한푼도 주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당신이라면, 적어도 그러지는 않겠죠.”
“……”
“아무런 말이 없네요.”
홀로 말을 이어가는 리지가,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자신의 제복 단추를 하나 둘 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헐렁해진 옷섶을 옆으로 열어 젖히더니, 봉긋하게 솟아오른 자신의 가슴을 페르젠에게 적나라히 보여주었다.
“그 날, 그 때 보다는…… 덜 비루하지 않나요?”
스륵.
직접 손을 뻗는 리지가 페르젠의 커다란 손을 붙잡고, 자신의 가슴 위로 가져다댄다.
하지만 그 새하얀 피부에 페르젠의 손길이 닿는 일은 없었다.
도중에 방향을 트는 그의 손이 좌우로 젖혀진 옷섶을 붙잡았기에.
“……”
툭.
투욱.
조용히 움직이는 그의 손길이 단추를 하나 둘 잠구며, 경박하게 젖혀진 옷섶을 깔끔하게 정돈해나간다.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페르젠이지만,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붉은 눈에는……
마치, 발버둥을 치는 것조차도 추하다고 말하는 것 같은 희미한 경멸이 뒤섞여 있었다.
“……”
이 지울수도, 감출수도 없는 끔찍한 흉터는 다름 아닌 페르젠 본인이 손수 새겨준 것 일텐데.
어째서 그는 그것을 마주한 뒤 저러한 감상을 내뱉는 것인지.
설마, 자신이 이 역경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드는 모습이라도 기대했던 걸까.
‘내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건, 그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혹여라도 그런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등 의미가 없는 바람이 되리라.
‘당신이 마주해야하는 건……’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는 여인이 아니고.
흉측하고, 비참하고, 처절하게 절규하며 조금씩 시들어가는 추레한 여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