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89화 (189/260)

“……”

옷을 갈아 입히고, 침상으로 데려와 눕힌 리지는 순식간에 잠에 빠져 들었다.

그에 그런 그녀의 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던 페르젠은 병실의 문을 닫고는 밖으로 나섰다.

제복이 젖어 들어서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에 으슬으슬 몸이 떨린다.

그래서 페르젠은 잠시 인적이 드문 장소로 걸어가 조용히 연초 한대를 꺼내들어 피우기 시작했다.

입밖으로 새어나오는 연기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복잡한 상념이 뇌리를 어지럽게 만들지만……

어째서인지 그것들을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는다.

‘로에르, 세자르.’

너희들이 리지를 살리려 발악했던 이유가, 단순히 가족애가 아닌.

나를 괴롭히고 싶다는 의도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니.

‘기꺼이 명계에서 축배의 잔을 들어올리도록 하거라.’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그저 일말이라도 리지의 행복을 바랐던 것이라면.

‘……너희들의 죽음은 희생이 아니라, 비겁한 도피에 불과한 것이다.’

이내 다 태운 연초를 바닥에 버리는 페르젠이, 그것을 발로 짓이긴 뒤 걸음을 옮긴다.

* * * * *

“……”

사형수의 사형 집행을 마친 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마차 안에서 유리엘을 슬그머니 바라보던 라우라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유리엘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으니, 가급적 눈을 마주치기가 싫은 것이다.

애당초 자신이 어쭙잖게 위로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으리라.

전쟁에 나가기 앞서 진행하는 사형수의 사형.

그것은 단순히 목을 내려치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정확히는 가장 잔인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이는 것이었다.

기사들의 경우 대상의 신체를 조금씩 잘라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형수들을 지켜보는 것이고.

마법사들의 경우, 대상의 신체를 폭발 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장은 그보다 더욱 참혹한 형태의 광경을 수없이 만들어내는데, 이러지 않으면 미리 대비를 하는 의미가 퇴색 되지 않는가.

반면, 라우라 본인의 경우에는 전생의 기억 때문에 타격을 입지 않았다.

굳이 고쳐 말하자면, 아무런 감흥 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리라.

본인의 손으로 죽인 사람의 수가 적지 않았고, 저택의 지하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지른 참상은 어찌보면 전쟁의 참혹함과 비견될 정도인데.

고작 사형수 한 명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으로 벌벌 떤다는 것도 웃기는 꼴이겠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명문가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 답구나 싶어 라우라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조금 걱정이 되는 게 있다면, 오늘은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인데.

만약 유리엘이 페르젠의 위로를 바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런 고민이 들어 옅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하지만 그런 걱정 따위는 사치라는 듯, 저택으로 도착한 유리엘은 넌지시 말했다.

“라우라. 그이가…… 페르젠이 돌아오면 전해주렴.”

“……”

“오늘 하루 만큼은, 아무도 내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또각.

자신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는 유리엘이 그대로 문을 잠가 버린다.

“……”

이것은, 자신을 위로 하러 와달라는 뜻을 에둘러 페르젠에게 전달하려는 걸까.

아니, 그것은 분명 아닐 것이라고 라우라는 생각했다.

애초에 여기에는 유페미아도 없는데, 유리엘이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니 저것은 고작 사형수 한명을 죽인 것으로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페르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강하구나.’

마차 안에서 품었던 감상과는 다른 의미로.

역시, 명문가의 여인 답다구나 싶어 라우라는 자신의 침실로 걸음을 내딛었다.

* * * * *

삐걱.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주저 앉은 유리엘은 떨리는 자신의 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알프레드는 에르네스 제국의 암흑가를 주름잡고 있는 가문이기에, 어릴 때 부터 비참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과 그들의 죽음을 적지 않게 지켜봐왔지만……

단순히 보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의 차이는 이리도 크나큰 괴리감이 존재했다.

아직도 자신의 마법에 의하여 터져나간 죄수들의 시신이 눈앞에 아른 거리는 것만 같다.

덕지덕지 감옥의 벽에 달라 붙어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장기들의 파편.

도대체 어느 부위에 해당하고 있었는지 알 수도 없는 뼛조각들.

겨우 사람 한명이, 형체도 알아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되는 것은 그리도 간단한 것이다.

비단 페르젠 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얼마든지 그리 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전장일 터.

“하, 아하하……”

고작 이 정도도 견디기 힘들어 벌벌 떨고 있는 주제에, 도대체 자신은 그날 페르젠에게 무슨 고집을 부렸던 건지.

하지만 그만큼, 최전선에 서게 되는 페르젠이 짊어지는 위험부담이 어떠한 것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로.

그 누구도 찾을 수가 없는 단절된 세상이 있다면, 페르젠과 함께 도망을 치고 싶어지나……

그것이 의미없는 가정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유리엘은 거울에 비추어진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다듬으려 애를 쓸 뿐이었다.

“……”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빈 테이블 위를 바라보니, 술기운을 빌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광경을 배 안에서부터 보고 자랄 아이에게, 어찌 자신의 부담감을 덜어내고자 무리를 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에 유리엘은 자신의 아랫배를 상냥하게 어루만지며 두 눈을 감았다.

‘아가……’

이 힘든 시기를 버티고 나면.

‘내게도, 너에게도……’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선물해줄게.

* * * * *

오후 4시.

저택으로 돌아온 페르젠은 지나치리만큼 조용한 분위기에 아직 라우라와 유리엘이 돌아오지 않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저택 안에 주차된 마차가 홀로 돌아왔을리는 없을 터.

그에 걸음을 옮겨 유리엘의 방 앞에선 페르젠은 노크를 하려고 했지만……

“아, 안돼요……”

“……”

끼익, 문을 열고 나오는 라우라가 그것을 저지한다.

“무엇이 말이냐.”

“오, 오늘 하루는…… 아, 아무도 드, 들이지 말라고…… 하, 하셔서……”

“……”

딱히, 라우라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기야 애당초 그녀가 자신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겠지.

“그러느냐.”

때문에 노크를 하려던 손을 내린 페르젠은 얌전히 등을 돌렸다.

유리엘이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의 만남도 허용하지 않는 건, 틀림없이 나약해진 스스로의 모습을 조금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일 터.

……마음 같아서는 그 의사를 존중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렇기에.

곁에서 유리엘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작금의 자신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건, 페르젠 본인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유리엘이라면 오히려 자신에게 위안을 얻기 보다는, 반대로 그것을 베풀려고 할 터.

……주객이 전도가 되어서는, 억지로 이 문을 여는 의미가 없을 테기에.

“저녁에 들리도록 하마.”

페르젠은 그 한마디를 라우라에게 던져두고는, 자신의 침실로 들어섰다.

* * * * *

붉은 노을이 진다.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석양은 조금 뒤면 밤이 찾아 온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기에, 라우라는 자신의 침실을 벗어나 조용히 다른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침실에서 괴벽을 앓았다가는, 그 과정에서 울려 퍼지는 소음 모든 것이 유리엘이 머무르고 있는 방까지 들리리라.

페르젠도 그것을 원치 않을 테기에 적적한 빈 방에 들어선 라우라는 홀로 밑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보지는 않으련지.’

가구가 몇개 놓여 있지 않은 방이었지만, 커다란 전신 거울은 존재하고 있었던 터라 그 앞에 선 라우라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색함을 집어 삼켰다.

본래는 어차피 괴벽을 앓는 과정에서 입은 옷이 더러워지기에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옷을 걸쳐 입는 편이었는데.

지금 그녀의 옷차림은 마치 첫날밤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 같았다.

특히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를 다듬어주는 옅은 화장은 그녀에게 있어서 귀여움이라는 매력을 들어내고, 요염함이라는 매력을 부가해준다

이것은 페르젠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나, 적어도 이번 보름달이 내려앉은 밤.

그가 자신이라는 짐승과 교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라우라라는 여인과 몸을 섞고 있는 것이라는 자각을 가져주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밑준비를 모두 마친 라우라는 얌전히 페르젠을 기다리다, 슬며시 또 한번 거울에 비추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부근을 매만졌다.

‘단 한번도, 지금 생의 몸에 딱히 불만을 품은 적은 없는데……’

물론, 강렬한 햇살 아래에 연약한 자신의 피부가 거슬렸던 적은 많았지만.

이처럼 빈약한 몸뚱이에 아쉬움을 가진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전생의 자신처럼 조금더 성숙한 여인의 몸을 지니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라우라는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게 어리기만한 사내에게 한 번이라도 예쁨을 받아 보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암컷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의 모습이, 어찌 우습지 아니할 수 있을까.

‘천박하다 싶을 정도로 음란한 몸뚱이를 가진 창녀들이, 어찌 그리 쓸데없이 자존감은 높았는지 이해가 되는 구나.’

하기야 그 점에서 비추어 본다면, 천한 배경을 가진 유페미아라도 자신 보다 나은 점이 딱 하나 있구나 싶어 라우라는 오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딸칵.

하지만 그 오묘한 불쾌감을 곱씹기도 전에, 페르젠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라우라는 생각을 접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

타악.

말없이 문을 닫는 그가 시선 조차 주지 않고 창가 앞의 의자로 걸어가 앉는다.

어느 방향이든 현재 자신의 차림새에 관한 감상을 내뱉어 주었으면 하는데.

그러나 그러한 실망감을 품기도 전에, 상당히 짙게 풍겨오는 연초 냄새와 술냄새를 맡은 라우라는 조심스레 페르젠의 분위기를 살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겨울, 먹이를 찾지 못해 지친 몸으로 떠도는 늑대를 보는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페르젠이라는 사내를 그리도 힘들게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평소 그의 언행으로 비추어 볼 때, 저러한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건 조금 위화감이 있지 않나 싶었다.

‘아……’

그러다 문득, 페르젠과 시선이 마주친 라우라는 깨닫고 말았다.

잠시 뒤 이성을 잃게 될 자신이니, 저러한 모습을 비추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으리라.

특히 자신을 담고 있는 그의 붉은 눈은, 눈으로 뒤덮인 허허 벌판에서 찾아낸 유일한 먹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래, 어쩌면 페르젠은 곧 이성을 잃게 될 자신에게 지금 품고 있는 모든 감정들을 배설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어렴풋하게 눈치 챈 라우라는 참으로 싱숭생숭한 감정이 들었다.

조금 뒤면 자신은 이 침대 위에서 페르젠이라는 사내의 감정 쓰레기통이자, 그것의 부산물을 받아낼 뿐인 정액 받이로 굴려 지게 되겠지.

하지만 본인의 가장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을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 괴벽을 앓는 자신이라는 게.

……이상하리만큼 싫으면서도, 또 좋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차려 입은 옷과, 옅게 칠한 화장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는 것이리라.

‘무식하게 쑤셔대지만 않으면 좋으려만……’

하기야 자신 부터가 무식하게 그의 몸을 탐하려 들 테니, 교접보다는 교미에 가까운 상황이 연출 되는 건 피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

그렇게 창문 너머의 노을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어느 때 보다도 찬란한 보름달이 떠올라 밤하늘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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