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까앙!
‘이곳이……’
로벨리움 왕국에서의 귀환 후, 북부로 돌아가지 않고 페르젠의 부대에 소속 되어 그를 대신해 난잡한 행정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던 사내──림벨은 침을 꼴깍 삼켰다.
언제나 말로만 듣던 브뤼테인의 광경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웅장했고.
도시 전체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철의 노래와 피어오르는 열기는, 마치 이곳이야말로 에르네스 제국의 심장이라 주장하는 것 같았다.
“림벨.”
“아…… 예!”
“가지.”
“알겠습니다!”
대번에 시선을 빼앗겨 버린 자신과 다르게, 이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 앞서 나아가는 페르젠이 자신을 부르자 림벨은 황급히 뒤를 따랐다.
그리고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두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브뤼테인의 풍경은, 북부가 얼마나 작은 우물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분명 이러할진데.
‘도대체 무엇이 북부의 브뤼테인이란 말인가!’
이제는 과거형으로 칭해야 하는, 북부의 패자였던 아스란 백작가가 자신들을 칭할 때 마다 지겹도록 내뱉었던 그 말을 떠올리며 림벨은 조소를 멈추지 못했다.
이것을 보라.
아스란 백작가의 그 오만은, 정말 여우가 사자의 흉내를 내는 겪이었지 않았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곧이 고대로 믿어버린 자신의 부족한 안목에 림벨은 수치심이 몰려드는 걸 느꼈다.
또각.
그렇게 십여분 뒤, 브뤼테인의 중심──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저택.
자신의 본가에 도착한 페르젠은 정문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저 멀리서 시녀들을 대동하여 걸어 나오는 집사, 크리스가 보인다.
언제나 대칭을 신경 쓸 필요 없는 그의 대머리는, 변하지 않는 편안함을 페르젠에게 선사했다.
“어서오십시오. 도련님.’
“……그래. 반갑군.”
“먼저 도착하셨던 아내분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모시도록 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형님을 뵈어야만 한다.”
전쟁에 앞서, 반드시 그의 허락을 맡아야만 할 일이 있었기에.
페르젠은 크리스에게 자신의 부사관 겪인 림벨을 맡긴 뒤, 조용히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
직후, 집무실 앞에서 노크를 하자 자연히 들어오라는 제레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페르젠은 문을 열어, 자신의 형님──아니 오늘 만큼은 브뤼테인의 가주로서의 그와 마주했다.
“생각보다 일찍 올라왔구나.”
“밑사람들을 조금 많이 굴렸습니다. 그러니 여유가 조금 남더군요.”
“하하.”
이제는 자신에게 편히 농담도 던질 줄 아는 걸까.
제레미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몸을 일으키는 자신과 다르게, 페르젠은 그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여온다.
“……”
저것이 자신과의 거리를 벌리려는 행동 같아 보이진 않았기에, 제레미아는 순간 차오르려는 섭섭함을 티내지 않으며 얌전히 페르젠의 다음 말을 기다려주었다.
“제레미아 후작 각하.”
“그래. 할 말이 무엇인가. 루에르그 백작.”
“제가 부디…… 영면에 잠든 브뤼테인의 기둥을 일으키는 걸 허락해주십시오.”
흐르는 세월에 새겨 넣은 역사와 함께, 브뤼테인의 저택 또한 함께 해왔다.
그 시간 동안 여러 보수 공사를 진행하기도 하였지만, 유일하게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채 과거를 보존하고 있는 곳은 깊숙한 지하에 마련된 선조들의 묘(墓).
그래, 페르젠은 브뤼테인의 적자이자 전장에 나서는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로서.
현재 브뤼테인의 가주인 제레미아에게 그들을 사역할 권리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러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때와 다르게 지금은 전장에 나서는 순간 시신들이 완전한 훼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특히나 이번 전쟁은 페르젠 본인에게 지분이 없다고도 할 수 없었기에,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가 싸지른 똥을 치우기 위해 선조들의 손을 빌리는 격이었다.
그렇기에 페르젠은 동생이 아니라 브뤼테인의 적자로서, 현재 브뤼테인의 가주인 제레미아에게 묻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에게 선조들을 사역할 권리를 허락해줄 수 있는지.
“……”
그리고 제레미아 또한, 페르젠의 그 의도를 눈치채고 상당히 깊은 시간 침묵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어차피 내뱉을 대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 대답을 내뱉으려는데 있어서 조금의 망설임도 품으려 하지 않는 자신을 보고, 제레미아는 쓰게 웃었다.
‘후손들이 그릇된 길을 걸어 갔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주는 것 또한…… 선조들의 몫 아니겠습니까.’
물론, 속마음은 페르젠이 조금이라도 생존할 확률을 높였으면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브뤼테인의 가주로서, 해당 위치에 부끄럽지 않은 변명 정도는 필요 했기에.
자신의 속내를 뒤이어 생각 해낸 핑계로 덮어 씌운 제레미아는 길고 길었던 침묵을 깨트렸다.
“허락하도록 하마.”
“……”
침묵을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 그리도 영겁 같았는지, 소리없는 한숨이 자연스레 입밖으로 새어 나온다.
동시에 땀으로 흥건해진 자신의 손을 억지로 감추며, 몸을 일으킨 페르젠은 최대한의 예의를 담아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직후, 집무실을 나서는 페르젠을 보고 제레미아는 자신의 자리에 착석하여 서류를 집어 들었다.
대화 할 사람이 없어진 방 안에는 다시금 적막한 침묵이 맴돌아야 하는데, 그 빈자리를 울려 퍼지는 철의 노래가 메워 나간다.
“……”
그리고 그는 분명 브뤼테인의 가주였지만.
브뤼테인에서 울려 퍼지는 이 철의 노래가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철의 노래에는 지휘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 * * * *
선조들의 묘(墓)로 진입하기에 앞서, 페르젠은 욕실에 들려 깔끔히 자신의 몸을 씻었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 입은 뒤, 그 누구도 대동하지 않은 채 저택의 지하로 내려간다.
브뤼테인에게 있어서 년간 고정적으로 빠지는 가장 많은 돈은 세금이겠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틀림없이 이 묘(墓)의 유지비가 순위권을 다투리라.
명계에 서식하는 괴이들과 장기적인 계약을 맺어 해당 능력을 진(陳)의 형태로 펼쳐 놓았기에.
또각.
이내 깊숙한 지하의 문, 그 앞에서 페르젠은 자신의 양 손가락을 그어 피를 떨어 트렸다.
브뤼테인의 혈통이 아니고서야 결코 진입할 수가 없는 선조들의 묘.
그리고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것이 브뤼테인의 가주들이 심사숙고하여 반려를 찾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설령 방계라 할지라도 그 피가 짙은 편이라면 입장을 할 수가 있었으니까.
물론, 혈통이 직계에 가깝다고 한들.
이곳에 펼쳐진 괴이의 진(陳)은 현재 브뤼테인의 가주의 허락 또한 필요로 했다.
그래서 저번처럼 페르젠은 제레미아에게 허락을 구한 것이다.
쿠웅!
곧이어 페르젠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입증 되자, 현재의 후손들에게 과거의 역사로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
그에 페르젠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오랜 세월 유지 되어온 지하의 묘지는 세월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었지만, 철저하게 관리가 되어 온 터라 방치가 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또각.
이윽고 지하의 묘지의 중앙, 그곳으로 가까워지자 야광석의 불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조들의 시신이 매장된 묘원에 들어선 페르젠은, 늘어선 묘비들이 선사하는 무게감에 가장 먼저 깊숙히 허리를 숙였다.
선조들의 시신은 관에 담겨 묘에 안장되어 있었지만, 그 위를 흙으로 덮지는 않았다.
이것은 자신들이 비록 죽어서 무덤에 묻히지만, 그 죽음조차 초월하여 반드시 가문과 제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충념(忠念)의 표명.
그렇기에 저번과 다르게 이곳에 서있는 페르젠은 숙였던 허리를 반듯하게 피지 못했다.
그의 몸에 흐르는 브뤼테인의 피가 무슨 면목으로 이곳에 서있느냐고 맹렬한 질타를 날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차마 이번만큼은 그 엄청난 자의식 덩어리를 페르젠은 찍어 누를 수가 없었다.
변명의 여지라고는 단 한 점도 존재하지 않는, 적나라한 진실이었으니까.
자신은 살고 싶었기에, 스스로의 목숨으로 죄악의 잔재를 뿌리 거두지 않고 여기까지 키워 냈다.
그 덕분에 가문에 오점을 남겼으며, 제국에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재앙까지 드리우게 만들었다.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결국 선조들을 찾은 자신은 면목이 없는 것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젠은 선조들의 힘이 필요했기에 여기서 물러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 답지 않게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페르젠이라는 사내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이런 행각은 생전 처음보는 것이라 두 눈을 크게 뜰고 말 터.
하지만 페르젠은 현재 자신의 이 행동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는 듯 입을 열었다.
“못난 후손이 이 비루한 목숨을 연명하고자 저지른 업보들이…… 더 이상 스스로의 손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럴 싸하게 표현을 했으나, 그 본질은.
우는 아이가 어머니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는 것과 다르지가 않았다.
문제는 그 어머니의 손을 빌리고자 하는 것이 전쟁이니, 머리를 조아리고 있어도 페르젠의 어깨에는 더더욱 무거운 짐이 가득 실린다.
“염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부디, 영면에서 깨어나 못난 후손과 함께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어 주십시오.”
죽은 자들에게 허락을 맡는 것은 하등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그것을 그 누구보다, 흑마법사인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페르젠은 시종일관 그들의 의사를 묻는 듯한 대화를 이어나가며, 자신의 마력을 조심스레 방사했다.
그 끝에, 브뤼테인의 저택──깊숙한 지하 묘원에 안장된 선조들의 관이 열리며 하나둘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 한 채 일어난다.
선조들의 일생, 그 삶 전체가 닮겨 있는 기록 일지.
그리고 페르젠 본인의 흑마법사로서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재능은, 자율통제로 돌입 했을 때 말만 하지 못할 뿐이지.
생전의 버릇과 습관들을 그대로 투영하여, 마치 과거를 현재에 공존시키는 듯한 광경을 이루어낸다.
이내 지하 묘원에 안장 되었던, 브뤼테인의 역사를 품고 있는 12명의 가주들이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페르젠을 내려다보고서는……
또각.
저벅.
그를 지나쳐, 묘의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생전의 기억대로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여, 못난 후손인 페르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먼저 앞서 나가 그를 이끌어 주듯 길을 여는 것만 같았다.
설령 못난 후손이 자신의 욕심으로 만들어낸 재앙이 제국을 덮친다 하더라도.
제국을 떠받쳤던 기둥들은, 언제나 그랬듯.
그런 것에는 관심을 주지 않고, 변치 않는 자신들의 충성을 다시 한 번 바칠 뿐이었다.
“……”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앞서 나아가는 그들을 뒤따르며 페르젠은 생각했다.
선조들이 자신을 인도하듯, 한걸음 한걸음 밟으라고 하는 이 길 끝에 서게 된다면……
기다리는 것은 틀림없이, 페르젠이라는 한 사내의 온전한 삶 뿐이리라.
* * * * *
페르젠을 따라왔던, 부사관인 림벨은 크리스에게 안내를 받아 쉬던 도중이었지만.
결국 그 평온함을 참지 못하고 저택의 문을 열어 정원으로 나왔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철의 노래와, 쌀쌀한 가을 바람 조차 몰아내는 뜨거운 열기는 전쟁의 태동을 이리도 적나라하게 알리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배정받은 방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그 모순된 점에서 찾아오는 위화감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무엇이라도 일을 붙잡고 있어야 오히려 편안해질 것 같은데, 그러지 않으니 현재 주어진 일말의 휴식은 그를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이었다.
“어……”
그리고 정원을 서성이던 림벨은, 의도치 않게 브뤼테인의 문양이 새겨진 제복을 입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저것은 틀림없이 브뤼테인의 가주들에게만 허락된 것일 텐데.
‘분명……’
현재의 가주는, 제레미아 후작 각하가 아니었던가.
어찌 브뤼테인의 중심에서 브뤼테인을 능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자신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림벨이었으나, 그 뇌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듯.
“어어……”
브뤼테인의 가주에게만 허락된 제복을 입은 자들이, 하나 둘 지하에서 추가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에 그는 자신의 푸른 눈을 수십번, 아니 수백번을 끔뻑였다.
‘아……’
그러다 뇌리에 떠올리고 만다.
브뤼테인에는, 재능이 있었던 전대 가주들이 후손과 제국을 위해 자신들의 시신을 온전히 안치해둔 묘(墓)가 있다는 사실을.
마력에 대한 재능을 품고 있는 시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지어 손상 상태가 거의 없다면 부르는 것이 값이라 해도 좋은 수준이기에.
반드시 훔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은 틀림없이 황궁의 보물 창고 보다 브뤼테인의 묘원으로 향하는 것을 선택하리라.
이윽고 총 12명의 전대 가주들이 좌우로 도열하고, 그 너머에서 자신이 충성을 바친 페르젠이 걸어 나오자……
림벨은 무어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고 말았다.
‘아버지……’
이 페르젠이라는 사내에게 충성을 바치는 건, 결코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현재는 북부에 있을,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림벨은 주먹을 부릅 쥐었다.
울려 퍼지는 철의 노래는 다가 올 전쟁의 두려움을 상기시키나, 어째서인지 지금은 묘한 고양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면 누구나가 그랬으리라.
에르네스 제국, 그 상징인 황실을 떠받들어온 기둥.
브뤼테인은 자신들의 충성을 단순히 역사에만 새겨두지 않고.
제국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다시 한 번 그 역사를 재현하려 들고 있었다.
브뤼테인은 결코 제국을 등지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들의 과거는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에 앞서 제국의 미래를 열어 주려 하는 것이다.
‘……’
그래, 이러한데.
황실이 어찌 브뤼테인을 총애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그의 수족이 되어 곁에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옭아 메이는 충성심이 솟아 오르는데.
그들의 변하지 않는 충절로 떠받들여지는 황실은 과연 무슨 기분일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순간.
엘마르크 제국의 귀족들이, 여제인 그레모리를 보는 것처럼.
림벨의 뇌리에는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가 않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 기대하고.
살아가는 자들을 평가 절하하고.
이미 죽어버린 자들을 찬미하는 세계.
분명 그러한 세계에 림벨은 살아가고 있었으나, 더는 그것들이 부조리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감히 누가 저들을 망자라고 부를 수 있으리!
“림벨.”
“예, 예──!”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전대 가주들 중심에서 자신의 소매를 정돈하는 페르젠이, 언제나와 같은 위압적인 품격을 내뿜으며 묻자 림벨은 눈가를 황급히 닦았다.
지나치게 기쁘지도, 지나치게 슬프지도 않는데.
이 몸뚱이는 어째서 눈물을 보였던 걸까.
“아, 아닙니다──!”
우렁차게, 군기가 가득 잡힌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림벨이 자세를 고쳐 잡는다.
분명, 브뤼테인의 역사가 이끄는 자신들의 앞을 가로 막을 존재는 이 세상에 없으리라.
저벅.
그래, 바로 지금 이순간.
림벨은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감히 그러한 브뤼테인의 역사 앞을 가로막는 존재가 있었다.
“백작.”
토끼처럼 새하얀 소녀를 뒤에 두고, 그 앞에 당당히 나서는 무척이나 품격 있어 보이는 아름다운 귀부인.
“제게 할 말이 있을 것 같군요.”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그녀의 어머니가 페르젠 앞에 당도한다.
분명, 브뤼테인의 오랜 역사가 가져다주는 위압감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언제나 자식을 위하는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법이었다.
“……”
그리고 그 뒤에서 라우라만이.
페르젠과 자신의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품안의 토끼 인형을 꼬옥 끌어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