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81화 (181/260)

가을비가 쏟아지는 수도의 거리를 걷다, 페르젠은 걸음을 멈추었다.

수도의 광장에 효수된 세자르와 로에르의 수급은 까마귀들에게 파먹혀, 어느새 무척이나 흉측한 몰골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 비가 그치고 난 뒤에는 구더기들이 들끓어 더욱 많은 까마귀들을 불러 들이겠지.

그리고 저 살점들이 다 파먹혀 유골만 남게 되었을 때, 황실은 엘마르크 제국을 향해 선전 포고를 하리라.

이미 그레모리가 황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니, 길어야 2주 일까.

“……”

그렇게 의미가 없을 감상을 마치고, 페르젠은 우산을 고쳐 잡은 채 리지가 머무르고 있을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품 안에는, 이번 전쟁에 앞서 리지가 차출된 부대가 적힌 서신이 들어 있었다.

일종의 통지서라고 봐도 좋으리라.

그리고 리지가 차출된 부대는, 당연하게도 최전방의──페르젠이 소속된 군 부대였다.

제대로 걷지 조차 못하는, 전장에서 조차 휠체어를 타고 있어야 하는 그녀에게 이것은 분명 가혹한 처사다.

하지만 리지가 아무리 로에르와 세자르 덕에 반란죄에 연좌 되지는 않았다고 한들.

클로디아 가문의 피가 흐르는 것만으로도, 후방 부대로 차출 될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의 사기는 물론이고, 귀족들의 반발도 극심하리라.

또각.

쏴아아……

이내 십여분을 걸은 끝에, 생전 로에르와 그의 아내였던 유리엘의 언니가 생활한 저택 앞에서.

페르젠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마중을 나오는 시녀들과 집사들은 없었다.

그래, 이 저택에는 오직 리지 한명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심지어 안으로 들어오니 담벼락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정원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분노한 백성들이 한가득 쓰레기를 집어 던졌기 때문인지, 빗물에 뒤섞인 악취가 코끝으로 파고들어왔다.

정말 이런 생활을 영위할 것이 눈에 훤했을 텐데도.

로에르와 세자르는 리지가 이것을 극복한 뒤,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살아 나갈 것이라 믿었던 걸까.

‘모르겠군.’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이 저택의 문을 열고, 그녀가 누워 있을 침실로 들어섰을 때.

목을 매달아 자살한 시신을 보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딸칵.

그러나 저택의 침소 그 어디에도, 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적막하고 고요하다 못해, 음침하고 싸늘한 내부를 거닐어 모든 곳을 둘러 보았지만.

이 저택에서 리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수도에서, 그녀의 행적만큼 추적을 하기 쉬운 게 있을까.

때문에 페르젠은 다시 한 번 우산을 펼치며 걸음을 내딛었다.

투둑!

투두둑!

쏴아아아!

“……”

거칠게 우산을 때리는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단 시간내에 그칠 것 같지는 않은 비였다.

* * * * *

수도의 후문을 지나 나오는 숲 속.

그 깊은 곳에서 리지는 우산을 쥐어든 채, 자신의 마력을 소모하여 시신들을 사역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이곳까지 올리는 없었던 터라 당연히 관리도 되어 있지 않았기에.

무성하게 자라난 수풀에 긁힌 그녀의 피부는 풀독이 올라 가려움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리지는 집중을 하고 있는 상태라, 곧이어……

“아……”

완전히 땅을 파낸 시신들을 보고는 뒤로 물러나게 만든 뒤, 조심스레 자신의 아공간을 열어 로에르와 세자르의 유품을 꺼내들었다.

반역자의 무덤을 만들어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죄다.

리지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등잔 밑이 어두우면서도.

동시에 아무도 들리지 않는 이곳에 로에르와 세자르의 무덤을 만들어 주려고 했다.

이곳에 묻힐 그들의 시신은 없었지만, 이 세상에서 로에르와 세자르의 흔적이 전부 지워지는 것을 리지는 원치 않았기에.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유품을 던져 넣는다.

그 다음 다시금 시신을 사역하여 구멍을 메우려했으나……

사락.

굵게 쏟아지는 빗소리 너머, 수풀을 헤집는 소음이 들려온다.

들짐승일까.

이런 폭우가 쏟아지는 날, 사람이 여기까지 올리는 절대 없었기에.

리지는 땅을 메우려던 시신들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사박.

“아, 아…… 흐, 아……”

그러나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걸어 나오는 것은, 굶주린 들짐승 따위가 아니라 한 사내였다.

단정한 차림새의 검은색 정장에 달라 붙은 나뭇잎들을 불쾌하다는 듯 하나하나 떼어내며, 우산을 고쳐 잡는──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그래, 그의 모습을 보고 리지는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떨림을 주체하지 못한 채 통증이 일어나는 가슴을 부여 잡았다.

입 안에는 씹을 것이 없는데도 이빨이 수차례 딱딱 부딪치고.

두 눈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았다는 듯, 자연스레 초점을 흐트러트린다.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서 페르젠과 단 둘이 놓여 있게 되니, 안 그래도 그가 한 번 쐐기를 박아 넣었던 트라우마는 가족을 모두 잃은 리지의 정신을 무자비하게 범해나갔다.

“끄…… 끄흑……! 꺼…… 꺼윽……!”

숨을 쉬지 않으면 이대로 죽을 거라고 본능이 알려주는데.

어떻게 숨을 쉬었던 것인지, 순간적으로 망각한 그것이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아 리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나간다.

저벅.

그에 리지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선 페르젠은,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려 자신의 손가락을 깊숙히 쑤셔 넣었다.

“꺼, 흑……! 콜록……! 콜록!”

그러자 억지로 치솟는 구토감이 헛구역질을 유발하며, 일순간 망각했던 숨쉬는 법을 그녀의 몸에 되새겨준다.

그리고 페르젠은 자신의 손가락에 덕지덕지 묻은 그녀의 침을 손수건에 닦아낸 뒤, 뒤편의 광경을 쳐다보았다.

“무덤을 만들고 있었나.”

“아, 아……”

자신을 지나쳐 나아가는 페르젠을 향해, 리지는 트라우마로 잠식된 몸을 억지로 움직여 그의 팔을 붙들었다.

아무리 낭떠러지로 몰려 있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그 마지막 한 걸음 만큼은 리지로서도 양보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제발…… 제, 제발……”

“……”

쏟아지는 비에 젖어 나가는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 붙어, 흐르는 눈물과 함께 처량함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페르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도덕심과 양심이라는 것이 어찌 이리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인지.

그녀가 살아가는 나날, 그 시간 동안.

자신은 죄악의 잔재를 끊임없이 마주하며 마치 깨어날 수 없는 악몽처럼 이 기분을 달고 살아야 하리라.

하지만 그것은 리지도 다르지 않을 터.

가족을 모두 잃은 세상에서, 죄값을 치르지 않는 악당이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만한 생지옥이 없지 않을까.

때문에 그 날,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좋았을 텐데.

“제발…… 부, 부탁…… 드, 드립니다……”

다 낫지 않은 아픈 몸으로, 앉아 있던 휠체어에서 내려온 리지가 페르젠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그가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이렇게 비참하게 구걸을 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인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죽게 만든 이에게, 그 무덤을 만드는 것조차 자비를 갈구해야 한다는 상황이 서글펐으나.

리지는 이 세상에 한줌이라도, 로에르와 세자르의 흔적을 남겨주고 싶었다.

정확히는 반역자가 아니라……

언제나 자랑스럽고, 사랑했던 자신의 가족들로 그들의 마지막을 장식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페르젠이 그 한줌의 자비조차 베풀지 않겠다는 듯 앞으로 걸음을 내딛자, 리지는 여린 손을 뻗어 그의 발을 필사적으로 끌어 안았다.

첨벙!

바닥에 고인 흙탕물이 리지의 깨끗했던 옷을 더럽히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자그마한 돌맹이들이 리지의 피부에 생채기를 낸다.

그에 페르젠은 한동안 걸음을 멈추었다가, 통제가 풀린 리지의 시신들을 보고서는 그것들을 사역하여 구멍 밑의 유품들을 꺼내들었다.

“아……”

그것을 보고서 다급하게 자신의 마력을 뻗어 통제권을 탈취해보려 드는 리지였지만, 두 단계나 차이가 나는 그의 마력을 치워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윽고 유품을 꺼내든 페르젠이 시신들을 움직여 무덤의 구덩이를 메워 나가자……

“흐, 흐아……”

리지는 쉴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빗물에 씻겨 내리며, 페르젠의 다리를 가냘픈 손으로 억세게 내리쳤다.

“흐아아앙……!”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을 옭아매는 지독한 트라우마조차 잊어 버릴 만큼, 정말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게 만드는.

그저 그가 너무나도 밉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점칠된 마음은, 두 손에 그를 향한 원망만을 가득 싣게 한다.

그리고 무덤덤히,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페르젠은 세자르와 로에르의 유품을 손에 쥐고 말했다.

“이리도 멍청하게 굴 바에야, 차라리 네 스스로 목숨을 끊지 그랬느냐.”

이곳은 겨울에만 피어나는 해열 효능을 품고 있는 약초, 에끌레아를 채집할 수 있는 곳이다.

겉으로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건, 자연이 눈이라는 이불을 덮고 잠에 빠져들었을 때야 비로소 인간들이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눈 위에 새겨진 흔적은 봄과 함께 녹아 내린 뒤, 여름과 가을을 걸쳐 지워지기에.

해당 흔적은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는 것.

더군다나 무분별한 시신의 매장은 역병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았기에, 신고를 하지 않고 무덤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래서 허가 없이 만들어진 무덤을 제보하면 포상금을 지급하는 구조가 존재하는 터라, 이것을 발견한 용병들이나 약초꾼들이 그냥 넘어 갈리는 만무할 터.

심지어 여기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흔적 또한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반역자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는 죄목은 자연스레 그녀에게 중형을 선사하겠지.

물론, 이 모든 것을 못본 척 눈을 감고.

제 3 자를 시켜 리지를 신고할 수도 있었으나, 페르젠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패자가 승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

사실 시답잖은 개소리였고.

구차한 자기합리화였다.

곧 전쟁이 시작된다는 걸 고려한다면, 흑마법사라는 전력에게.

해당 사안으로 사형을 선고하기는 어려울 터.

그래서 가식적인 위선으로, 조금이나마 편안함을 얻으려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것인지도 몰랐다가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네 통지서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장소로 도착하도록 해라. 그러지 않는다면 탈영으로 간주되어 사형 될 것이다.”

로에르와 세자르의 유품과 함께, 통지서를 그녀에게 던져주며.

페르젠은 우산을 고쳐 잡은 뒤, 우거진 숲속을 떠나갔다.

투두두둑!

거칠게 쏟아지는 빗방울이 무성한 나뭇잎과 마주닿아 시끄러운 빗소리를 크게 자아낸다.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리지의 울음 소리는, 그것에 묻히지 않고 어찌 이리 선명히 들려오는 것인지.

문득 귀를 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페르젠은 그러지 않고 묵묵히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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