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멍하니, 뒤로 물러나 있던 페르젠은 피드백 과정을 마치고 관료들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하는 흑마법사들을 보며 눈을 감았다.
아무리 심증이 확실하다고 한들, 입증할 물증이 없는 이상 자신의 의견을 관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내 그 내용을 정리한 관료들이 황제 폐하에게 보고를 올리자……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그녀의 이름이, 고요한 처형장 사이로 잔잔히 울려 퍼진다.
꾸욱.
그리고 리지는 그것이, 곧 자신이 뒤따라 죽을 차례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기에.
목이 없는, 세자르의 시신의 손을 마주 잡으며 흐릿한 시야 너머의 단두대를 올려다 보았다.
“반란 사실을 사전에 알리려 했던 바, 그 노고가 입증 되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그대에게 무고를 선고하겠다.”
“아……”
“단, 그럼에도 작위는 회수 될 것 이며. 추후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을 통해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웅성웅성.
고요했던 처형장 내부의 분위기가 뒤바뀐다.
참관했던 이들은 리지가 사형을 피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들 입장에서 핵심이 될 부분은 황제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전쟁’을 언급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리지는 그들과 반대의 의미로 놀라 입조차 제대로 뻥끗하지를 못했다.
애당초 자신의 오빠들이 반란을 기획했던 것도 몰랐거니와, 그 사실을 사전에 알리려 했던 일은 더더욱 없었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오히려 로에르와 세자르를 전부 죽여 놓고, 자신은 살려준다는 이 상황 자체가 믿기지가 않을 뿐이었다.
이것은 지독한 악몽일까.
철컥!
툭!
그러나 가까이 다가온 근위병들이, 손과 발에 묶인 족쇄를 하나 둘 풀어주자 리지는 그제야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으, 아……”
말이 되지 않는 사실이다.
이렇게 비참히 살아가게 만들 바에야, 차라리 함께 죽여주는 것이 더 나을 텐데.
아니면 이것 조차,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낸 죄로 더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려는 페르젠의 수작질일까.
저벅.
이윽고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가까이 다가온 페르젠이 걸음을 멈추어 선다.
그에 엉망이 된 얼굴로 리지는 그의 냉랭한 표정을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비웃는 것만 같은 조소는 조금도 비추지 않고, 뒤에 서있는 근위병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릴 뿐이었다.
“시녀들을 불러 목욕을 시켜고, 의원을 붙여 상처를 돌봐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주저 앉아 있는 리지를 향해 머뭇 거리던 근위병들이 명령을 받고 손을 뻗지만, 그것을 바라보던 리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감옥에서 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기에, 이내 어거지로 그들의 손에 붙들린 채 몸을 일으킨 리지는 페르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너덜너덜하고 만신창이가 된 몸에서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자신을 데려가려는 근위병들에게 억세게 저항하며 페르젠의 옷자락을 간신히 움켜쥔다.
“얼, 마나……”
피딱지가 말라 붙은 입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감정을 토해내지 않는다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기에……
“도대, 체…… 얼…… 마나……!”
리지는 필사적으로 입을 열어 절망으로 점칠된 목소리를 뱉어냈다.
“도대체…… 얼마나……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냐고.
“……”
채 이어지지 못하고, 끊겨버린 말은 환청처럼 페르젠의 귀로 들려온다.
미인은 우는 모습조차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까.
흉하다 싶을 정도로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 서럽게 울고 있는 리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하니……
페르젠은 참으로 못났다는 생각을 품으며, 자신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리지의 여린 손을 떨쳐냈다.
그리고는 근위병들에게 붙들려 점차 멀어지는 그 모습을 보며 등을 돌린다.
그녀는 자신이 더더욱 비참하게 만들 생각으로 손을 썼거나, 아니면 일말의 동정심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정말이지 우스운 망상이었다.
“리지.”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나는……’
아마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오늘 너의 죽음을 바랐을 것이다.
자신이 남긴 죄악의 흔적을 무엇하러 남겨두고 지켜보고 있단 말인가.
또각.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염원을 이루어 내지 못한 것은, 단순히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페르젠은 조용히 처형 가운데에 서서 운반되는 세자르의 시신을 보며 눈을 감았다.
패배라는 경험은, 정말이지 지독하리만큼 쓰디쓴 맛이었다.
* * * * *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으나, 비공식적으로 황제가 ‘전쟁’을 입에 올렸기에.
수도를 비롯해, 에르네스 제국 전체를 관통하는 시장의 흐름은 대격변을 맞이했다.
분명 흉작이 아닌 가을임에도 곡물의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하였고.
가문 내에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 이들은, 부랴부랴 전쟁터로 보낼 양자를 입양하려 들기도 했다.
그렇게 세상이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유일하게 평온히 침상에 누워 있던 리지는……
부스럭.
새벽 2시라는, 무척이나 늦은 시간에 두 눈을 떴다.
움찔!
그리고 정신을 차리는 순간 그녀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 피곤한 기운과 졸음을 몰아내는 통증들이었다.
더는 긴장을 머금을 상황이 아니기에 자연스레 골정을 당한 곳과 전신 곳곳에 새겨진 타박상을 그녀의 뇌가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통 성분이 섞인 수액이 그녀의 여린 팔에 꽂혀 혈관으로 주입되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때 마다 아파오는 갈비뼈 부근은 숨조차 쉬기 힘들게 만들었다.
“조금 더 주무셔야 합니다.”
“……”
점차 선명해지는 정신 가운데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은, 하얀색 가운을 입은 채 앉아 있는 노년의 의원.
“이걸 받으시지요. 영애의 물건이라 들었습니다.”
“……”
압수당했던, 흑마법사로서 지정한 자신의 제단을 건네주는 의원을 보며 리지는 그것을 처연히 받아들였다.
“간단한 미음을 준비하라고 할 터이니, 그것과 함께 약을 복용하시고 다시 주무시길 바랍니다.”
“……”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는 리지였지만, 그럼에도 의원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치 산송장처럼 멍하니 상체를 일으켜 앉아 있던 리지는, 잠시 뒤 자신의 제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아공간을 열었다.
“사람을 불러 드리면 되겠습니까.”
“……괜찮아요.”
평소에 사역하던 시신을 마력으로 통제해, 가까운 곳에 있는 휠체어를 가지고 오도록 만든다.
그리고 간신히 그곳에 옮겨 앉은 리지가 이 방을 나서려 하자, 의원은 그녀의 수액대를 붙잡고 함께 움직일 준비를 하였다.
의원 입장에서는 단순히 시신이 휠체어를 밀테니, 현재 수액이 달려 있는 수액대를 리지가 같이 끌고 갈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배려를 하려던 것이었으나……
리지는 그가 자신의 감시 역할을 겸해서 붙어 있는 것으로 알았기에, 억지로 피어오르는 통증을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화장실…… 갈 거예요.”
“아…… 시녀를 불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구를 더 사역하면…… 괜찮아요.”
아공간에서 나오는 관으로부터 시신이 한 구 더 일어나 그녀의 수액대를 대신 붙잡자, 의원 또한 자신이 화장실 안 까지 따라 갈 수는 없었기에 얌전히 물러났다.
“공기가 차갑습니다. 아픈 몸이니 괜히 바람을 쐬지 말고 들어오시길.”
“……”
대답을 건네지 않는 리지가 병실을 나선다.
끼릭.
끼릭……
굴러가는 휠체어의 소리와, 그 뒤를 따르는 시신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어두컴컴한 복도.
그래서 일까.
리지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로에르와 세자르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아카데미 생활을 하며 내심 자신의 오빠들의 품을 어느정도 벗어 났다고 생각 했는데.
만날 수 있으나 만나지 않은 것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것은, 이리도 커다란 차이를 머금고 있었다.
혹시 명계를 투영하는 듯한 이 짙은 어둠 너머를 거닐다 보면, 그곳에 로에르와 세자르가 기다리고 있을까.
끼릭.
그러나 그 어둠 끝에서 리지를 반기는 건, 닫힌 창문 너머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달빛들 뿐이었다.
“……”
그래, 로에르와 세자르가 만날 수 없는 곳에 있다면.
그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자신이 직접 가면 되는 게 아니던가.
그래서 리지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 닫힌 창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파고드는 쌀쌀한 가을 바람이 리지의 피부를 훑으며 타박상의 통증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주지만……
지금 이 순간, 리지는 그 아픔을 자각할 수가 없었다.
끼익.
“……”
하지만 그 때, 불어오던 바람 때문인지 몰라도.
뒤편에서 슬며시 열리는 문 너머로 희미한 빛줄기가 새어나오자, 리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인기척이 느껴져서라기 보다는, 자그맣게 열린 저 문너머로 알수없는 이끌림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데자뷰처럼, 다리를 다치기 전.
어린 시절의 자신과 숨박꼭질을 하던 가족들과의 추억이 투영 되고.
무척이나 자그맣고 여리지만, 지금과는 다른 튼튼한 다리로.
밝은 미소와 함께 오빠를 찾았다며, 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어린 자신이 보인다.
끼릭……
그에 리지는 아무런 생각 조차 하지 못하고, 시신 조차 통제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손으로 휠체어의 바퀴를 굴렸다.
툭!
그러자 혈관에 꽂혀 있던 바늘이 어거지로 뽑혀져 나가며, 선홍색의 피가 리지의 팔을 타고 흘러 내린다.
지혈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해당 부위가 퉁퉁 부어 오르지만, 리지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끼익.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문을 열어, 안쪽으로 들어섰다.
“아……”
그러자 그 너머에는, 붉은 천에 쌓인 무언가가 사이좋게 한 쌍으로 놓여 있었고.
리지는 직감적으로 저것들이 세자르와 로에르의 수급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붉은 천에 단단히 쌓여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찌 모를 수가 있으랴.
스륵.
기어코 가까이 다가간 리지가 그 천을 풀어, 세자르와 로에르의 머리를 밖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레 자신의 마력을 방사하여, 자신의 가족인──두 오빠들의 수급을 감싸 안았다.
……아무리 페르젠이 브뤼테인의 적자라고 한들.
그 상황에서 자신을 빼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상황을 마련한 건 높은 확률로 자신의 오빠들이 아니었을까.
애초에 로에르가 반란을 저질렀다는 것 부터가 리지는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기에, 마력으로 연결된 사역을 통해 피드백을 받아나갔다.
“아, 흐…… 아……”
물론, 같은 혈육인 리지라 한들.
두 사람이 만들어낸,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비밀을 파헤칠 수는 없었다.
애당초 ‘과정’ 부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해당 비밀이 설령 사랑하는 여동생을 위한 것이었다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로에르와 세자르는 그 판도라의 상자를, 리지조차 열 수 없게끔 해두었다.
하지만 ‘과정’ 부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페르젠과 황실의 관료들처럼.
리지 또한 남아 있는 초입 부분의 기억은 충분히 피드백 받을 수 있었다.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그 화가 자신에게는 닿지 않게끔 계획을 했던 수많은 사안들.
그래, 그것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리지는 작금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어쩌면 페르젠 못지 않게, 아니 더더욱.
강렬한 심증을 품고, 리지는 세자르와 로에르의 머리를 품안으로 끌어 안았다.
“흐아…… 아…… 흐아아아앙!”
싸늘하게 식은 체온은, 더 이상 자신의 온기로도 데워지지가 않는다.
이리도 애타게 울고 있으나, 이미 죽어버린 오빠들은 상냥하게 손을 뻗어 자신을 달래 줄 수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니, 분명 잘못은 페르젠이었다고 한들.
이토록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것은 자신 때문일지도 몰랐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외면해버렸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그 남자에게 꺾여버린 그 날 이후,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 뿐만이 아니라.
자신은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외면해버린 것이다.
복수를 하지 못한 미완성의 행복을 추구했었다고 한다면, 끝까지…… 끝까지.
자신의 오빠들을 설득했어야 했을 텐데.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비굴하고, 비참하고, 한심하게 자신의 오빠들이라면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허황된 희망이나 품지 않았던가.
그리고 로에르와 세자르는, 그 허항된 희망을 이루기 위해 나아갔다.
물론, 그것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리지와 동일하게 가족을 등지는 행위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복수를 포기한 채, 그대로 함께 살아 간다는 미래를 포기한다는 말과도 같았으니까.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로에르와 세자르는 리지를 외면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망가지는 미래가 기다린다 하더라도.
그 풍파가 리지에게만큼은 결코 닿지 않게, 자그마한 조각배를 마련해두었다.
“끄흐윽……! 흐아……! 흐아아앙!”
그렇기에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로에르와 세자르가 마련한 조각배에 올라타 수장되는 가족이라는 배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더 이상 그녀와 함께 울어 줄 세계는 없으며.
더 이상 그녀와 함께 웃어 줄 세계 또한 없었다.
* * * * *
“엇……!”
움찔!
늦은 새벽, 황궁의 복도를 가득 울리듯 퍼져 나가는 애잔한 울음 소리에.
기사들과 근위병들이 근원지로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조용히 벽에 몸을 기댄 채 서있는 페르젠을 보고는 당황하며 걸음을 멈추어 섰다.
“루, 루에르그 백작님……”
“돌아 가도록.”
“아, 안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페르젠은 손을 저어 그들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 보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연초를 찾다 쓰게 웃고는 열려 있는 복도의 창문을 닫는다.
이곳에 남아 있던 흔적으로 유추하건데, 아마 리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돌이킨 것 또한, 저 방에 있는 로에르와 세자르라면.
과연, 누가 더 잔혹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페르젠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