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78화 (178/260)

“으, 아……”

투욱!

데구르르……

처연히 허공을 날아 바닥으로 떨어지는 세자르의 머리가 리지의 무릎 앞으로 굴러간다.

그에 간신히 치켜뜰 수 있는 왼쪽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리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힘없이 세자르의 머리를 품에 안아 들었다.

두 눈 조차 제대로 감지 못한 얼굴과, 목을 잃고 처연히 바닥으로 쓰러지는 몸을 보고 있자하니……

리지의 눈동자에서는 자연스레 눈물이 흘러 나와 그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애달프게 울어 주고 싶어도, 막대한 슬픔에 틀어 막힌 목구멍은 비참하게 끄윽 끄윽 거리며 감정을 제대로 토해내지 조차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리지의 곁으로 다가선 황실 소속 흑마법사들은 리지의 품에서 세자르의 수급을 매정하리만큼 거칠게 강탈해갔다.

“아아……”

아직 두 눈 조차 제대로 감겨주지 못했는데.

뒤이어 자신이 죽게 된다면 누가 그의 눈을 감겨 줄까.

“흐, 으…… 아……”

그에 비틀비틀, 수많은 타박상이 점칠된 여린 다리로 리지가 걸어 나간다.

아니, 채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볼품없이 철푸덕 쓰러졌다.

애당초 한쪽 다리가 온전히 체중을 지탱할 수 없는 상태이니, 이 얼마 되지 않는 거리조차 좁힐 수가 없는 것이다.

꿈틀!

“흐억!”

때문에 리지는 자연스레, 단두대 옆에 널브러진 세자르의 시신을 자신의 마력으로 옭아맸다.

그 광경을 보고서 세자르의 시신을 옮기려던 근위병이 놀라 뒤로 넘어진다.

세자르의 수급을 가지고 가던 흑마법사들 또한, 목없는 시신이 자신들 쪽으로 걸어 오고 있으니 아무리 시신과 친숙하다 한들 자연히 몸이 굳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리지가 케테르 등급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기에, 선두에 있던 흑마법사는 자신의 마력을 방사하여 해당 통제권을 탈취하려 했다.

움찔!

그러나 촘촘하게 옭아 매어진 리지의 마력은 타인의 마력이 파고들 틈 따위를 주지 않았다.

목이 없는, 손상도가 무척이나 높은 시신이기에 사역을 해봤자 높은 구현율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터.

아니, 혈육이니 구현율이 높다고 한들 유클리드 등급의 흑마법사인 자신이 케테르 등급의 흑마법사가 사역하는 시신을 탈취하지 못한다?

그 사실에 그는 일순간 수치심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리지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세자르의 몸을 이동시켜 두 손을 뻗게 만든 뒤……

스륵.

황실 소속 흑마법사들이 쥐어들고 있는, 세자르의 목의 두 눈을 감겨 주었다.

“웃기지도 않는 짓을!”

그제야 리지의 의도를 파악한 흑마법사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세자르의 몸뚱이를 발로 차서 넘어 트린다.

구현율이 높다고 한들 어차피 일반인의 몸뚱이였기에, 단순한 발길질에도 세자르의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고 페르젠 또한 자신의 마력을 방사 해볼까 싶었지만, 어차피 그녀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굳이 나서지 않았다.

특정 구현율에 도달했을 때, 결코 통제권을 탈취 당하지 않는 희귀한 재능을 품고 있으니.

아무리 자신이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라고 한들,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지금 중요한 건, 세자르의 수급을 통한 피드백이었기에.

페르젠은 세자르의 몸뚱이를 자신의 앞으로 불러와 가녀린 손으로 끌어 안는 리지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 지금부터 세자르 폴 드미안 클로디아의 피드백을 시작하겠다.”

흑마법사들이 가져온 세자르의 목을 향해 마력을 방사하는 페르젠이 눈을 감는다.

난파당하는 배로부터 리지를 탈출시키기 위해 마련한 조각배.

로에르는 그 상세한 전말을 일부러 공유 받지 않았다 해도, 해당 일을 계획했을 세자르 본인까지는 결코 그럴 수가 없었을 터.

‘역시……’

가장 처음 피드백을 시도한 건, 리지의 배신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 였다.

이것은 연극에 불과하니, 실제로 리지가 배신을 했을리가 없었기에.

그 사실은 세자르의 시신으로부터 피드백 되지 않는다.

이리 되면 관료들이 지금까지 유추한 결론들이 자연스레 무너진다.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들이 전해지지 못했던 이유가, 리지의 배신 사실을 눈치채고 있던 세자르가 암암리에 손을 썼다는 것으로 짐작을 하고 있는 상태인데.

정작 세자르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피드백 되었으니, 해당 증거들이 전부 ‘우연의 일치’로 가로 막혔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 말도 안되는 우연의 거듭이 진실로 탈바꿈 되려면.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들을 세자르 본인이 조작하지 않았다는 피드백이 받아들여져야 하겠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틀림없이 0에 수렴할 터.

아니나 다를까 사전에 반란을 알리려 했다는 식으로 증거를 조작해 리지가 처형을 면하게끔 계획을 세우려 했다는 부분이 피드백 된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하다고 볼 수 없었다.

리지가 처형을 면하게끔 짜놓았던 수많은 계획 중의 일부였으니까.

실제로 피드백을 거듭해보니, 세자르는 이것 말고도 다른 수단들을 상당히 많이 고려해두고 있던 상태였다.

결국, 핵심은 고려하고 있던 그 수많은 수단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였느냐가 되겠지.

그리고 수집된 증거들은, 그가 어떤 수단을 골랐는지를 아주 잘 알려주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수집된 증거들을 세자르 본인이 조작하였다는 사실만 피드백 된다면 이 매듭은 완전히 끊어지리라.

움찔!

“……”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의 피드백도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리지의 필체를 흉내내어 편지를 쓰고, 제 3 자를 리지인척 내세워 의뢰를 맡긴 뒤, 그 의뢰를 받아 떠나는 용병들을 죽였다는 것 등.

분명 그가 아니라면 이 증거들을 조작할 수가 없었을 터인데.

당사자의 뇌리에는 해당 기억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가 않았다.

물론, 인간의 기억은 왜곡 시키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 수많은 증거들을 조작했던 일련의 기억들만 골라서 전부 없애 버린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망각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일 뿐, 결국에는 무의식의 표층에 남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기억의 왜곡 또한, 사탕을 먹었다라는 것을 쿠키를 먹었다라는 것으로 교묘히 바꾸듯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어야 왜곡할 수가 있는 법이었다.

특정 기억을 완전히 탈바꿈 시키는 건, 그 사람의 정신 자체를 붕괴에 가깝게 몰아 붙이거나 엄청나게 기나긴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것인데.

‘정신 의학 관련 약물을 복용했다는 기억 조차 피드백 되지 않는 군……’

설령 그것까지 왜곡 시켰다 한들, 마약이나 환각제 같은 건 암시장을 통해 거래 되는 편이기에 틀림없이 알프레드의 정보망에 걸렸을 터.

하지만 그런 보고가 올라오지는 않았으니, 정말 그가 그런 것에는 손대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분명 A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B라는 수단을 사용했을 터인데.

당사자는 B라는 수단을 사용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슨 말도 안되는 모순 이란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기에 페르젠은 주먹을 억세게 말아쥐며 의미가 없을 피드백 과정을 어거지로 이어 나갔다.

“백작님.”

그러나 그 끝에, 자신을 부르는 황실 소속 흑마법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페르젠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래.”

자신 혼자만 세자르의 수급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 페르젠은 마력을 거두어 들인 뒤 그들의 손에 세자르의 수급을 넘겨 주었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도 페르젠은 도저히 이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의 행동이라는 건, 필수불가결하게 뇌의 신호에서부터 시작 되는 것이다.

인지라는 첫단계를 밟고 난 뒤에야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법인데, 어떻게 세자르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이 모든 증거들을 조작했단 말인가?

그가 몽유병이 있고, 그 몽유병에 걸린 동안 증거들을 조작했다고 하지 않는 이상에야 말이 될 수가 없는 결과였다.

심지어 보고서에는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까지 처방 받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그 조차도 불가능 했다.

“……”

그러나 분명 의심을 품을 만한 요소는 없어 보였던, 그 부분들이 이제와서야 왜 이리도 거슬리는 걸까.

그래서 페르젠은 피드백 과정을 이어 나가는 황실 소속 흑마법사들을 뒤로한 채, 품안에서 두터운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마비 장애를 완화시키기 위한 약과 불면증 때문에 처방받은 수면제……’

그 항목 부근을 읽어 나가던 페르젠은, 세자르가 오른팔을 비롯한 얼굴의 신경 마비 장애를 앓기 시작한 때가 리지의 아카데미 입학 시기와 겹친다는 걸 발견했다.

세자르의 병명은 일종의 후천적 뇌성마비.

이서진이 살던 현대 였다면 주요 원인이 교통사고였겠으나, 이 시대라면 낙마를 통한 중추 신경과 뇌의 손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잦다.

다만 그러한 점이 기재가 되어 있지 않으니, 세자르는 다른 방식을 통해 손상을 입었다는 말이 되겠지.

‘다른 방식……’

다른 방식이라.

무언가 잡힐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고뇌에 페르젠은 입술을 질끈 깨물다,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하나의 가설에 표정을 멍하니 굳혔다.

정말로 만약에.

세자르가 지급 받은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물에 잠겨 익사를 시도 했다면.

그리고 골든 타임이 지속되는 동안, 흑마법사가 그의 몸을 사역해 일을 주도했다면.

세자르는 자신의 몸으로 해당 계획을 실행했으나, 뇌리의 기억에는 남기지 않을 수가 있었다.

이 몸뚱이야 이서진의 기억을 통해 골든 타임이 5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세자르는 그 사실을 모를 터.

뇌성마비의 원인은, 분명 그 골든 타임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과정에서 뇌세포가 손상 되었기 때문이리라.

‘……말도 안되는 가설이다.’

도박이라 부르기도 시원찮을 만큼, 이 가설은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익사 후, 심정지를 통해 6분이 넘어가는 순간 생존률은 15% 아래로 떨어진다.

수집된 증거들은 분명 짧은 시간 동안 충분히 조작을 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나, 도중에 높은 확률로 사망할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인데.

“엇……!”

기어코 멍하니 굳혔던 표정을 가차없이 일그러트리며 자신의 마력을 대량으로 방사한 페르젠이, 피드백을 거치고 있던 세자르의 수급을 강제로 탈취한다.

그리고는 ‘욕조, 또는 물가에서 수면제를 복용했다.’라는 사실을 대입하자……

꿈틀.

시신의 구현율이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 하하하……”

헛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온다.

그래.

그는 정말로, 그 미친짓을 통해.

자신의 여동생이 처형을 면할 수 있게끔, 증거를 조작해온 것이다.

아무리 믿기 힘든 사실이더라도, 불가능을 배제 하고 남은 것이야 말로 명료한 진실이라 하였던가.

일종의 프리 랜서로 활동하는 케테르 등급의 흑마법사들이 없는 건 아니기에, 고용 자체는 어려울 게 없었을 터.

……보고서에는, 클로디아 가문과 연관된 흑마법사 한 명이 죽었다는 사실도 기재되어 있으니.

아마 이 자가, 거액의 보수를 받고 해당 과정을 대신 처리 해준 사람 이리라.

시신이 남아 있지 않으니 하등 의미가 없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고용주의 입장에서 고용한 자가 무엇을 해줘야할지.

틀림없이 지시를 했을 터인데.

그렇지 않은가.

심정지한 세자르 본인을 대신하여 사역해줄 흑마법사 만큼은, 그 과정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그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세자르 본인은 상세한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했을 텐데.

“……”

하기야 생각해보니, 그것은 의미가 없었다.

완전히 엉터리인 내용이라도, 진의를 전달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니까.

이서진이 살던 세계에서의 사례를 예시로 들자면, 경찰서에 음식을 주문하는 전화를 했는데.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낀 경찰이 출동을 하여 가정 폭력범인 남편을 잡아 들인 일화도 있었다.

그러니 현재, 이곳에서 완전히 쇄기를 박으려면.

세자르가 엉터리로 작성한 그 내용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 내용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몇차례 피드백을 거치며 꾹꾹 숨겨두었던 의도까지 완전히 증명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이것은 경우의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흑마법사가 시신을 통해 받는 피드백은, 정확히 그 내용을 대입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

때문에 경우의 수가 많은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그가 어떤 엉터리 내용을 작성하여 그 안에 진의를 숨겨 놓았는지 읽어낼 수 있겠는가.

“백작님……?”

“말도 없이 무례를 저질러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욕조, 또는 물가에서 수면제를 먹은 의도가.

뇌리에 자신의 기억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피드백이 받아들여지지만.

세자르는 리지가 처형을 면하게끔 많은 수단을 세워두었기에, 결국 이것만으로는 어떤 수단을 선택했는지를 알아 낼 수가 없었다.

수집된 증거들을 그가 조작했다는 피드백이 받아들여졌다면, 그것과 연관이 되면서 리지에게 유죄가 선고되었겠으나……

그러지 않으니, 자연스레 무고를 선고해야만 할 터.

그래, 확실한 심증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농락하듯.

로에르와 세자르는, 난파당하는 배에서 리지를 태운 조각배를 온전히 떠나 보냈다.

여동생이 화를 면하게끔 준비를 하며 반란을 기획했던 가족들과, 그것을 모르고 가족의 반란 사실을 알리려 했던 여동생.

심지어 반란 사실을 알리려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은 우연이 겹쳐 전달되지 못한 것.

황실 소속의 흑마법사들과, 그 내용을 보고 받은 황실의 관료들 또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결국은 거기서 온전히 마무리가 되겠지.

이 세계는 분명 죽음을 통해서도 완전한 비밀을 만들 수가 없는 곳인데.

세자르 폴 드미안 클로디아.

……그는, 감히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완전한 비밀을 만들어 냈다.

그래,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그는 악당이라는 것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낯선.

패배라는 경험을, 처음으로 겪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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