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새벽이 물러가고 찾아오는 아침.
스르륵 눈을 뜬 페르젠은 가장 먼저 짜릿하게 저려오는 자신의 왼팔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가녀린 손으로 자신의 몸을 꼬옥 끌어안은 채, 내뻗은 왼팔을 베개삼아 베고 있는 유리엘이 보여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팔을 빼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그런 실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니.
어젯밤 뇌리를 어지럽히던 그 수많은 상념들은 무엇인가 싶어 어색해질 따름이었다.
“으응……”
몸을 뒤척이는 유리엘이 꼼지락 거리며 자신의 품안으로 아이처럼 파고든다.
그에 페르젠은 살포시 내려가는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준 채,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분명 황궁의 지하 감옥은, 이 밝고 따스한 햇빛 조차 스며들지 않겠지.
만약, 복수를 하려는 자는 그 순간부터 원수와 동등한 수준의 사람이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그들은 동등하기는커녕, 반역자가 되어 빛 한줌 스며들지 않는 지하 감옥에 처박혀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가.
꼼지락.
꼼지락……
잠결에 몸을 뒤척이던 유리엘이, 서서히 그 빈도를 늘리더니 기어코 눈을 뜨며 특유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를 멍하니 끔뻑인다.
그 백치미가 넘쳐흐르는 표정에 페르젠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정리해주고서는, 유리엘의 이마에 애정이 가득 담긴 입맞춤을 선사해주었다.
“아……”
좀처럼 제대로 된 사고가 되지 않는 비몽사몽한 정신임에도, 자신을 어루만지는 커다란 손길과 코끝으로 스며드는 이 체취를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이윽고 반쯤 눈을 뜬 그 너머, 흐릿한 초점이 조금씩 올바르게 잡아주는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에 유리엘은 배시시 웃으며 조금더 밀착했다.
스륵.
그러자 어깨 부근까지 덮고 있던 이불이 자연스레 내려가며, 상당히 차디찬 공기가 피부를 훝고 지나가지만.
유리엘은 자신의 맨살에 와닿는 페르젠의 온기에 의존하며 행복한 기분을 마음껏 만끽했다.
페르젠의 탄탄한 몸에 자신의 맨살을 비비적 거리는 이 촉감이 어찌 그리도 좋은지.
특히나 아침의 생리현상으로 빳빳하게 발기한 페르젠의 성기가 자신의 허벅지 부근을 쿡쿡 찌르자, 그녀는 수줍어 하기 보다는 요염한 색기를 선보이며 다리 사이로 그것을 끼운 채 말랑말랑한 허벅지 살로 부드럽게 조여주었다.
“해도…… 괜찮은데……”
아침 댓바람부터 은근스런 유혹을 해오는 유리엘의 몸짓에 페르젠은 너스레 웃으며 그녀의 뒷머리를 살살 쓸어내리며 답했다.
“이제 슬슬 돌아가봐야 할 테니, 아쉽게도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구나.”
“……”
돌아간다는 것은, 현재 유페미아와 라우라가 지내고 있는 수도의 거처를 말하는 것이리라.
제일 중요했던 로에르의 피드백이 끝났고.
클로디아 가문에서 가져온 자료는 그것을 일일히 검수를 해야 하니 시일이 걸릴 터.
더는 황궁에 머무르고 있을 필요가 없는 건 사실이었기에,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역시, 페르젠을 독점하던 시간이 이리도 짧게 끝나니 적지 않은 미련이 남는다.
“이제는…… 불퉁스런 표정을 숨기지도 않는 것이냐.”
자신에게 투정을 부리는 티를 팍팍내는 유리엘 보고서, 페르젠은 손을 뻗어 그녀의 좁혀진 미간을 살살 문질러주었다.
그러자 살포시 찌푸려진 표정이 풀릴랑 말랑 하는 줄다리기를 하는 게 어찌 그리도 귀여운지.
쪽.
그에 옅은 분홍빛이 맴도는 입술에 키스를 해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하는 페르젠이었지만……
삐걱!
두 손으로 자신의 팔을 붙잡아 침대로 쓰러트리는 유리엘이 순식간에 위로 올라타 자신을 내려다본다.
“아침은…… 당신 생각보다 길어.”
“……”
“오래 걸리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
쏟아지는 머리카락이 자신의 뺨에 닿아 살살 간지럽히고.
자신감 있는 듯 하면서도, 색기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유리엘은 단단히 발기한 자신의 성기를 움켜쥔 채 슬그머니 허리를 내려 질벽을 꾸욱 조여주었다.
움찔!
자궁 근처의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올 만큼, 하복부가 거세게 압박되는 느낌이라 무척이나 버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그것을 티내지 않으며 굽혔던 상체를 반듯하게 피는 유리엘은, 탐스러운 자신의 가슴을 천박하게 선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래뵈도…… 기마(騎馬)에는, 상당히 재능이 있는 편이었어.”
길들이지 못했던 말은 한 마리도 없었다고.
그리 말을 덧붙이는 유리엘이 서툴게 허리를 움직인다.
“그러니까…… 다, 당신…… 자, 자지 정도는…… 그, 금방……”
이것은 또 무슨 도발인가 싶어 페르젠은 버겁게 허리를 튕기는 유리엘을 가만히 올려다보다 작게 웃었다.
“히끅……!”
살짝 허리를 쳐올리기만 해도, 두 다리를 벌벌 떨며 움직임을 멈추는데.
기마에는 무슨 재능이 있다는 것인지.
이윽고 손을 뻗은 페르젠이 그녀의 얇은 허리를 감싸 쥐고는 곧바로 체위를 바꾸어 버린다.
“하윽……! 으…… 흐끅!”
그러자 순식간에 기승했던 유리엘이 낙마하여 페르젠의 탄탄한 몸 밑에 내려 깔리고.
자신의 커다란 가슴을 볼품없이 뭉게며, 어느때처럼 음탕하고 천박한 한 마리의 암컷으로 돌아간다.
애당초 그녀가 기승했던 것은 말이 아니라 늑대였으니, 어찌 길들이는 게 가능했으랴.
그리고 그 자만심에 대한 대가를 치루듯, 억지로 엉덩이를 치켜들게 된 유리엘은 반쯤 벌어진 채 뻐끔거리는 자신의 항문을 페르젠에게 온전히 선보여야만 했다.
일부러 힘을 주어 최대한 오므리려 노력을 해보았지만, 탐스럽게 살집이 오른 자신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좌우로 벌리는 커다란 손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삐걱!
“끅……! 아…… 아앙!”
그에 억지로 상체를 일으켜 보려 했던 유리엘이었으나, 침대를 짚는 두 손을 낚아챈 그가 뒤쪽으로 두 팔을 잡아 당겨버리는 탓에 무용지물로 돌아가버렸다.
꾸욱.
꾸욱!
“끄…… 끄흐윽!”
마치 말의 고삐를 붙잡아 당기듯, 그의 손에 두 팔의 자유를 빼앗기니.
보다 깊게 파고들어 자궁을 학대하듯 쑤셔 대는 그의 흉물이 전해주는 압박감에 유리엘은 짐승처럼 헐떡이는 신음을 내뱉었다.
특히나 페르젠이 허리를 튕길 때 마다 천박하게 흔들리는 가슴은, 지금 이 순간 누가 누구에게 길들여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아윽! 흐아아앙!”
그렇게 시달리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삐처럼 잡아 당겨지는 두팔 덕에 애처롭게 휘어진 허리가 커다란 굴곡을 선보이며 통증을 자아내지만……
철퍽!
음탕한 소리를 가득 울리며, 수차례 둔부와 치골이 부딪치는 아찔한 쾌락이 순식간에 묻어버린다.
그리고 피어 오르는 열기로 인해 송골송골 땀을 흘리던 페르젠은, 슬금슬금 차오르는 사정감을 느끼고 붙들고 있는 유리엘의 팔을 고스란히 놓아 주었다.
“아……”
그러자 한참을 시달렸던 유리엘이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지나, 페르젠은 그런 그녀의 몸을 두터운 팔로 조심스레 안아주었다.
스륵.
풍만한 가슴부터 시작해, 약간의 애교살이 있는 배꼽 주변을 더듬거리는 이 촉감이 어찌 그리도 좋은지.
특히나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일 때 마다 볼록 솟아오르는 아랫배를 매만질 때면, 말로 형용하기 힘든 정복감이 느껴졌다.
꾸욱!
“흐, 으읏……”
곧이어 자신의 둔부에 치골을 빈틈없이 밀착한 페르젠이 움직임을 멈추자, 유리엘은 따뜻하고 끈적거리는 정액이 한가득 자신의 배안에 쏟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궁이 있는 아랫배 근처를 그의 커다란 손이 꾸욱 꾸욱 내리 누르고 있어서 인지, 어제보다 더더욱 선명하게 그의 씨가 들어차는 것이 느껴진다.
“하앗……! 아응……!”
그러나 자신의 아랫배를 꾸욱 꾸욱 누르는 손길에 약간의 힘이 가미 될 때면 상당히 아파왔기에, 유리엘은 간헐적으로 몸을 움찔하며 신음을 흘렸다.
꿀럭꿀럭, 자신의 자궁 안으로 본인의 씨가 들어차고 있다는 감각을 그리도 느끼고 싶은 걸까.
‘정말……’
유치한 수컷의 호기심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여기는…… 오직, 당신의 씨만을 받아내는 곳이야……”
자신의 아랫배를 더듬거리는 페르젠의 손등 위로 가녀린 손을 겹치는 유리엘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한다.
“빈틈없이 아주 가득 내 자궁을 당신의 씨가 채워주고 있으니…… 너무 아프게 누르지 마……”
“……”
“이러다가 오히려 당신의 씨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겠어……”
“하하……”
정말, 자그마한 앙탈조차도 어찌 이리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는 사랑스러운 암컷인지.
꽈악!
“아응……”
힘없이 자신의 손에 매달리듯 안겨 꾸역꾸역 쏟아지는 정액을 받아내는 유리엘을 거칠게 끌어안으며, 페르젠은 그녀의 뒷목에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었다.
복수를 하려는 자는 그 순간부터 원수와 동등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걸 증명해보였으니.
이제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거짓이라는 걸 증명할 일만 남았다.
* * * * *
“콜록……!”
아침 식사를 하다 사레가 들린 라우라가 귀엽게 기침을 한다.
곧바로 고개를 돌린 뒤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렸으나, 어찌 이리도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유페미아의 눈치가 보이는지.
‘……그냥, 같이 따라 갔으면 되는 게 아닌가.’
은근히 불편하게 만드는, 평온해 보이는 유페미아의 잔잔한 분위기는 다른 의미로 라우라의 숨통을 옥죄였다.
분노와 짜증을 한가득 감춘 채, 그것을 미소로 덮고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본의 아니게 페르젠과 몸을 섞어서 인지, 라우라는 유페미아의 앞에 있을 때면 본능적으로 제발이 저려왔다.
그녀의 배경이 미약하고 천한 것은 둘째 치고.
자신과 몸을 섞은 사내가, 저 여인을 얼마나 편애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
무언가 암컷의 본능 대로 보이지 않는 그 서열에 압도 되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라우라가 그러한 생각을 하던 말던.
유페미아는 자신의 태내에 있을 아이를 위해 천천히 식사를 이어 나갔다.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라던 페르젠의 말을 어기고, 마치 선수를 치듯 황궁으로 가버린 유리엘이 괘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럼에도 유페미아는 굳이 유리엘을 뒤따라 페르젠에게 향하지 않았다.
시엘 미드포드가 죽고, 자신의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된 시점에서부터.
페르젠은 자신에게 더 이상 정보의 통제 같은 걸 해오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알려주었고.
굳이 캐묻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알려주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그러한 그가, 자신이 돌아오기 전 까지 찾아 오지 말라고 했던 것을 보아하면.
이번 일과 연관된, 자신에게 보여주기 싫은 추잡하고 추악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뜻이리라.
유리엘은 필시 그것조차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내로서의 도리라고 생각을 했겠지.
……하지만 유페미아는 그 관점이 조금 달랐다.
비밀이 없는 부부 사이라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그림일 것이다.
서로의 추악함을 보듬어주는 관계가 어찌 나쁘다고 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 추악함을 감추고, 오직 좋은 모습만 보여주겠다는 바람 또한 유페미아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
아니다.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유리엘을 따라 지금이라도 황궁으로 향하고 싶었다.
페르젠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있음에도 실행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자신의 성을 공유하고 있는, 사랑스러운 남편이.
본인의 추악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그가 이상적인 남편의 형태로 자신의 곁에 있기를 원하는데, 아내로서 어찌 그 바람을 짓밟을 수가 있을까.
애초에 조급해하지 않아도, 자신의 태내에 품고 있는 이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는 숨기고 있던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했으니, 욕심을 부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유페미아는 슬그머니 비웃음을 머금었다.
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그녀는 필시 비밀이 없는 부부 사이라는 이상적인 형태를 핑계로,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고 싶었던 것이리라.
배경이 번지르르하면 무얼 한단 말인가.
태생이 도둑 고양이 같은 여자 답게, 인내심이 그리도 없는 것을.
“잘 먹었어요.”
이내 식사를 마친 유페미아가 냅킨으로 입가를 살포시 닦고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조용히 아이를 위한 태교를 하려 했으나……
움찔!
문밖으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마차 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계단을 타고 오르던 걸음을 멈추었다.
잘못들었을 가능성도 적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계단에서 내려와 문앞으로 다가가 다소곤히 섰다.
딸칵!
“아……”
이내 자신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듯.
열리는 문 너머로 페르젠의 모습이 나타나자,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손을 내밀어 페르젠을 끌어 안았다.
“……”
설마 문을 여는 즉시, 그 앞에 유페미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페르젠이기에.
일순간 얼을 타며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으나, 그것도 잠시.
희미한 모유 냄새를 풍기는 그녀의 체취를 맡으며, 페르젠은 유페미아의 몸을 부드럽게 마주 안아주었다.
“……다녀왔다.”
“응…… 어서와요.”
아이처럼 페르젠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는 유페미아가, 고개를 치켜들고서는 배시시 웃는다.
“……”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리엘은, 마치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 유페미아의 행태에.
무척이나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억지로 감추었다.
바람이 차가운데 언제까지 바깥에 우리를 세워 둘 것이냐고 한 마디를 내뱉어 볼까도 싶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유치한 질투가 아닐까 싶어, 차마 자존심이 허락하지가 않는다.
스륵.
“……”
그러나 페르젠의 품안에서 머리를 쓰다듬 받던 유페미아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더니,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하……’
기어코 유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한가득 찌푸리고 말았다.
자신이 무슨 수를 써서든 앞지르려 노력을 해도, 첩은 첩에 불과하다고 말을 하는 것인지.
“피곤하죠? 얼른 들어가요.”
“그래.”
유페미아의 손에 붙잡힌 페르젠이 자신의 곁을 떠나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그에 유리엘 또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으나, 이상하리만치 불쾌한 이 기분은 왜 이리도 가시지가 않는 건지.
특히나 희미하게 남아 있는 유페미아의 모유 냄새가 그녀의 신경을 바늘로 쿡쿡 쑤시듯 자극을 한다.
그래, 그녀는 이 달짝지근한듯한 유페미아의 모유 냄새가…… 너무나도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