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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71화 (171/260)

“……”

알프레드에게 어떤 벌이 내려질지는, 여기에 있는 모두가 어렴풋한 짐작을 하고 있었으리라.

가벼운 쪽이라면 세금을 올리는 쪽이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알프레드가 주름 잡고 있는 암흑가를 들쑤셔 약간의 가중 처벌을 하는 수준이었겠지.

그래, 그것은 오히려 콜레오네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을 터.

그런데 스스로의 손으로 손녀를 죽이고, 그 목을 이 자리에 전시하는 건 무슨 의도란 말인가.

잠시나마 자신의 사위였던, 로에르를 향한 순장(殉葬)?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이것은 엄연히 과장된 고해(告解).

……그리고 그것에 숨겨진 진의가 있다면, 틀림없이.

꽈악!

페르젠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입가를 두 손으로 가린 채 떨고 있는 유리엘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긴다.

로에르 폴 비스타인 클로디아.

그가 저지른 반역에 얽혀 있는 것은, 엄연히 브뤼테인.

정확히 따지자면, 페르젠──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콜레오네는 저 과장된 고해를 통해 음흉히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네 놈의 첩이자, 아내이자, 반려가 된 유리엘의 언니는.

다름 아닌 브뤼테인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 것이라고.

그런 식으로 혈육을 죽여버린 죄책감을 심어, 유리엘을 향한 결속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싶은 속셈일 터.

하지만 분명 눈에 보이는 의도를 읽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페르젠은 자신의 등 뒤에서 덜덜 떨고 있는 유리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드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콜레오네 웨인 바레타 알프레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에게 가장 친숙하고 오랜 벗이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죽음이리라.

하지만 그는 과거, 현재,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광기를 자신의 오랜 벗으로 삼아 곁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페르젠은 처음으로, 저 노괴에게 집어 삼켜지는 자신의 존재감을 선명히 느꼈다.

“저희 알프레드 가문의 결백을, 부디 믿어 의심치 마소서……!”

쿠웅!

바닥에 세차게 머리를 찍는 콜레오네가 남모르게 웃는다.

아.

광기.

친숙하고, 아름답고, 앞으로도 영원할.

나의 오랜 벗이여.

* * * * *

반역자, 로에르 폴 비스타인 클로디아의 기나긴 피드백이 4시간에 걸쳐 종료된다.

익히 엘리자베스 황녀가 말을 했듯.

로에르의 조력자는 오베른 왕국이었고.

……반역에 얽힌 클로디아 가문이, 일말의 감형이라도 받을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가문을 제물 삼아, 마지막 복수의 불꽃을 피운 것이다.

어찌보면 멍청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행동에, 이미 죽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유를 묻고 싶은 페르젠이었으나.

자신이 그것을 묻고자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리라.

‘내가 살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충분한 복수의 동기가 되는 것일 테니.

“오베른 왕국으로 비밀리에 사절단을 보내도록 하라.”

“예. 폐하!”

오베른 왕국이 엘마르크 제국의 지시를 받고 벌인 일이라면 전쟁이 터질 것이고.

그러지 않은 거라면, 오베른 왕국은 엘마르크 제국이 개입하기 전에 자신들의 죄를 깔끔히 시인할 터.

하지만 후자로 일이 마무리 될 것이라면, 어찌하여 엘리자베스 황녀의 길흉을 점치는 예언은…… 흉을 가리켰는가.

“콜레오네 웨인 바레타 알프레드.”

“예. 하명하십시오. 폐하.”

“……그대 손녀의 수급은, 가지고 돌아가도 좋네.”

이미 그가 벌인 행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과한 속죄였기에.

깔끔한 결백이 증명된 시점에서, 반역을 저지른 로에르의 수급과 함께 효수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굽어진 허리를 뻣뻣이 들어 올려 황제를 마주한 콜레오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을 내뱉었다.

“괜찮사옵니다. 서로의 인생을 품고 나누는 반려가 되어, 남편이 저지르는 반역을 몰랐다는 것 또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중죄.”

“……”

“이승에 묻힐 길이 없도록, 반역자와 함께 까마귀가 살점을 파먹도록 효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지요.”

뻣뻣이 피고 있는 허리가 자연스레 굽어지지 않도록, 콜레오네는 지팡이를 뻗어 자신의 몸을 지탱했다.

그것은 내뱉은 의견을 결코 철회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방이기도 했기에.

권좌에 앉아 있던 황제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대의 충성이 그러하다면, 받아들이도록 하겠네.”

“소인. 감복할 따름이옵니다. 폐하.”

콜레오네의 대답을 끝으로, 권좌에서 일어나는 황제가 피로한 얼굴로 주변을 스윽 훑고는 대전에서의 퇴실을 명한다.

이제 클로디아 가문에서 닥치는 대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모든 조사가 끝이나면.

세자르와 리지의 처형일이 결정되겠지.

……그 결과에, 자신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으므로.

페르젠은 다시금 붉은 천에 쌓여지기 시작하는 로에르의 머리를 조용히 바라보다, 유리엘의 손을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 * * * *

“좋은 바람이군.”

상당히 쌀쌀한 밤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에도, 콜레오네는 끌끌 웃으며 자신의 시중을 대동한 채 마차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

그러나 자신보다 한발 빠르게, 황궁의 주차장에 서있는 의외의 손님을 보자 그는 아이처럼 미소 지었다.

“어찌, 이 늙은 노인이 돌아가는 길을 배웅이라도 하러 온 겐가?”

고작 서있기만 할 뿐인데도.

반듯하게 자세를 유지한 채, 내려 깔린 어둠 속에서 자신을 직시하는 탐스러운 붉은 눈.

페르젠.

그를 보며 콜레오네는 들뜬 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물에 풀린 흙이 뒤섞이지 못하고 가라앉을까봐 두려웠나. 콜레오네.”

“흐음……”

“다시는 이리 불쾌하고 역겨운 방법으로 휘젓지마라.”

“불쾌하고, 역겨운 방법이라……”

앞머리를 살살 간지럽히던 밤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며 두사람의 옷자락을 펄럭이게 만든다.

과연, 옅은 분노가 서려있는 페르젠의 저 한 마디는.

얼른 브뤼테인과 알프레드의 피가 뒤섞인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충동질을 하지 말라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순수하게 자신의 아내이자 반려가 된 유리엘을 슬프게 만드는 방향으로 수작질을 부리지 말라는 걸까.

툭.

저벅.

투욱.

저벅.

말끝을 흐린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콜레오네가 지팡이를 뻗으며 페르젠 가까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는 닿을 듯 말듯한, 바로 코앞의 거리에서 풍겨오는 그의 체취에 뒤섞인 자신의 손녀──유리엘의 체향을 맡은 콜레오네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후…… 흐, 흐흐흐……”

“……”

본디 인간은 자신이란 존재의 영역에 굉장히 민감하고 경계어린 생물이다.

그렇기에 자신이라는 존재의 영역에, 다른 누군가의 발자취를 허용하는 것 만큼.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있으랴.

때문에 콜레오네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페르젠이 결코 두 가문의 피가 뒤섞이는 과정을 부추기는 탓에, 그 반발작용으로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걱정하지 말게.”

“……”

“혈육을 잃은 슬픔은, 그 행복으로 채워주면 되는 것이 아니겠나?”

높다란 키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페르젠과의 시선을 마주하며 콜레오네는 입꼬리를 비릿하게 끌어 올렸다.

“여인, 계집이란…… 아이를 품으면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생물일세.”

심지어 원치 않은 방향으로 얻게된 아이라도, 결국에는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게 되는 법인데.

언니가 죽은 슬픔 정도야, 사랑하는 사내의 아이를 품게 된다면 금방 잊게 되겠지.

“그러지 아니한가?”

끌끌.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고 얌전히 서있는 페르젠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콜레오네는 시중이 열어주는 마차 안으로 천천히 올라탔다.

그리고는 출발 하기 전, 창문을 살짝 열어 스치듯 말을 한다.

“혹여나 전쟁이 터지고…… 그대가 죽게 된다면……”

별로 원치 않은 일이나.

정말로 그러게 된다면.

“네 아이를 가지지 못한 나의 마지막 손녀는…… 영영 쓸모가 없어지게 되겠어.”

“……”

다그닥.

말밥굽 소리와 함께 나아가는 마차가 페르젠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진다.

그에 페르젠은 쥐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어라 한 마디라도 내뱉어 보고는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상대방이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 되기에 끝끝내 침묵으로 응수를 하였다.

굳이 자신이 대놓고 유리엘을 감싸고 도는 행동을 보여주었다가는, 그가 얼마나 귀찮은 판을 벌려올지 상상이 갔으니까.

반대로, 이것은 그만큼 유리엘이라는 여인이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존재가 되어.

행동 하나하나에 제약을 거는, 일종의 족쇄가 되었다는 증거.

‘……씹어처먹을 노친네.’

만에하나 전쟁이 터지더라도.

그가 징병되지 못할 나이라는 것이, 페르젠에게는 극도의 짜증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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