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한점 들어오지 않는 황실의 지하 감옥은 어두웠다.
차디찬 바닥은 얼마 남지 않은 몸의 체온 조차 무자비하게 약탈해나갔고.
수면조차 취할 수 없는 늪의 절망은, 깨어있는 채로 느낄 수 있는 악몽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주겠다는 듯 처참하게 정신을 무너트린다.
그러는 와중에도 잠시나마 안도를 느낄 수 있는 건……
어딘지 모를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둘째 오라버니인 세자르의 숨소리.
“……”
그러나 그 미약한 숨결에 기대어있을 수록, 리지는 반대로 입을 열어 묻고 싶었다.
어째서 이러한 반역죄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냐고.
반역죄를 일으키는 것이 도대체 페르젠을 몰락시키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하지만 리지는 그 의문 속에서도 로에르가 결코 우발적으로 반역이라는 중죄를 저지를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현재 제국에 맴돌고 있는 것은 전쟁의 전조.
그리고 이 전쟁이 페르젠을 몰락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면, 뇌리를 스치고 가는 것은 오직 하나.
그래, 리지는 똑똑했기에.
로에르가 클로디아 가문을 제물로 전쟁을 일으켜.
그레모리 엘딘 이슈타르 엘마르크라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그 괴물에게.
페르젠의 목을 물어 뜯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준 것이라는 걸 어렴풋하게 알아차렸다.
자신의 오라버니인 로에르가 최후로 선택한 것은 차도살인(借刀殺人).
……복수의 끝이 이러할거라면, 차라리 굽히고 사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끄……! 흐…… 윽……!”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었지만, 리지는 입술을 거세게 깨물며 입가를 비집고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억눌렀다.
지금 처해 있는 상황과 함께 스스로에게 드는 환멸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것이다.
가족이라는 배가 함께 나아가는 항해.
거기서 먼저 고개를 돌려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자신 일텐데.
이제와서 어찌 자신의 오라버니인 로에르에게 투정섞인 원망을 부릴 수 있겠는가.
시작부터 목적지를 정해두고 나아간 항해였고.
충분히 조타석을 억지로 붙잡아 돌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은 자신이었다.
분명 넘을 수 없는 파도가 저 앞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비겁하게 겁쟁이처럼.
자신의 오라버니들이라면 본래의 목적지로 배를 도달할 수 있게 해주리라는, 비열한 희망을 머금은 죄.
2920일을 되감는, 8년전의 그날.
자신들의 비극에 침묵하는 주위를 보며 원망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2920일이 지난, 8년후의 현재.
자신은 가족들을 향하여 침묵을 하였는가.
결국 넘을 수 없는 파도에 부딪친 배가 수장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테니, 자신은 그것에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으리라.
“아…… 흐…… 흐아아앙!”
그러나 리지는 결국 입가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울음을 주워 담지 못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녀의 눈물은 누구를 위한 눈물이고.
침묵을 깨트리는 소녀의 울음은, 과연 누구를 위한 울음인가.
* * * * *
밤 9시.
상당히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황실은 분주했다.
무려 알프레드 가문의 노괴인 콜레오네와, 브뤼테인의 가주인 제레미아가 마차를 타고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거참, 오랜만에 보는 얼굴일세.”
비록 서류상.
알프레드는 루에르그와 이어진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상이 그러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었기에.
콜레오네의 자글자글한 주름은 어울리지 않는 반가움과 상냥함을 표현하며 제레미아에게 친분을 표시해왔다.
그리고 제레미아는 콜레오네의 그 모습에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짧게 “예.” 라는 대답을 하고는 차갑게 걸음을 내딛었다.
“끌끌.”
예의 없는, 매정한 반응이라고 욕할 수도 있었으나.
콜레오네는 저리도 자신을 멸시하는 브뤼테인과 차차 피가 뒤섞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마다 아릿한 흥분을 느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 늙어빠진 몸뚱이를 가진 시점에서부터.
얼마만에 느껴보는 정복감이란 말인가.
“받게.”
“……”
“한 동안 로에르의 행태를 감시하며 보고 받은 것을 깔끔하게 정리한 서류이네.”
“……이것을 왜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건네는 호의조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제레미아의 모습에 콜레오네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받아서 손해 볼 것이라도 있는가? 폐하는 나보다는 그대에게 받는 것을 더욱 좋아하시겠지.”
“……”
“그리고 이 늙은이가 건네줘봤자, 객관성이 떨어지지 않나.”
콜레오네의 첫째 손녀이자, 유리엘의 언니는 로에르와 결혼을 하였기에.
그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였지만, 제레미아는 그것을 곧이 고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실상을 자세히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더라도.
클로디아 가문과 브뤼테인 가문 사이에 어떠한 마찰이 있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을 테니, 피부로 와닿는 진의는 오히려 반어(反語)에 가까운 것.
“매번 손에 드는 것은 지팡이 뿐이라, 늙은이를 이리도 오래 기다리게 하면 팔이 아프다네.”
거절하고 싶은 호의였다.
하지만 이 호의는 틀림없이 자신의 동생, 페르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제레미아는 억지로 주먹을 쥐고 있는 손을 피어 두꺼운 서류 뭉치를 쥐어들었다.
“자. 그럼 가도록 하지. 폐하를 보는 것도 무척이나 오랜만이라 떨리는 군.”
어느 의미로, 클로디아 가문 다음으로 알프레드는 가장 심장을 졸이고 있어야 할 텐데.
콜레오네는 가볍게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 * * * *
“콜레오네 바레타 웨인 알프레드, 그리고 제레미아 폰 베르엠 브뤼테인 후작 각하께서 입궁을 하셨나이다……!”
금색의 실로 자수되어진 붉은색 카펫 너머.
권좌에 앉아 있는 에르네스 제국의 황제가 너머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옆에는 페르젠이 유리엘과 함께 서있었고.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은, 붉은 천이 풀린 상태로 공개 되어진 죄인──로에르의 수급.
“콜레오네 바레타 웨인 알프레드가,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제레미아 폰 베르엠 브뤼테인이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제국의 음지와, 제국의 양지가 한데 모여 있는 광경은 대전 안에서 충분히 황제라는 존재의 기백을 빠르게 지워나갔다.
저들이 자신을 태양이라 치켜세워 주워도.
제국에 존재하는 태양과 달이 누구인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자신의 육안으로 선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
“고개를 들게.”
그러나 그들의 존재감에 억눌리지 않고, 황제는 자신만의 위엄을 선보이며 입을 열었다.
“먼저…… 이 자리에서 죄인 로에르의 피드백을 거치는 과정을 하기 이전에, 콜레오네 바레타 웨인 알프레드.”
“예.”
“짐에게 할말이 있는가.”
문책이라도 하는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와 다르게, 내뱉은 황제의 말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어투를 머금고 있었다.
애당초 이 사건의 발단이 어딘지를 상세히 알고 있었고.
이미 엘리자베스 황녀를 통해 로에르의 속내까지 자세히 전해들은 시점이기에, 알프레드 가문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에르의 시신을 통한 피드백으로 알프레드 가문은 죄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고 한들.
로에르를 품은 것은 어디까지나 알프레드 가문이기에,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문책을 한 뒤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려주어야 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무지(無知)또한 엄연히 죄라고 할 수 있었으니, 당연한 연좌(連坐)라고 할 수 있는 것.
물론, 일반적으로는 알고서도 묵인 했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었기에.
반역이라는 중죄에 연관된 것 치고는, 가볍게 넘어가는 거라고도 볼 수 있었다.
“소인…… 감히 반역을 저지른 죄인을 곁에 두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무지한 죄가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그렇기에……!”
“……”
황제의 말을 끊는 것은 엄연한 불경이다.
그에 황제는 자연스레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이어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드는 콜레오네가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자……
오싹!
자신도 모르게, 전신에 오소소 퍼져나가는 소름을 느낄 수 있었다.
“소인은…… 저희 알프레드 가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이자리에 찾아 왔사옵니다.”
저벅.
콜레오네의 뒤편에 서있던 시중이 앞으로 다가와 꾸벅 허리를 숙인 뒤, 무언가를 감싸고 있는 천을 바닥에 내려 놓는다.
“흐윽!”
그리고 그 천이 풀려, 안쪽에 숨겨져 있던 내용물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페르젠의 곁에 서있던 유리엘은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입가를 틀어 막고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집어 삼켰다.
“허……!”
웅성웅성.
대전에 모여 있던 다른 신하들조차 기겁을 하며 몇걸음 뒤로 물러난다.
경악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은 비단 황제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심지어 페르젠과 제레미아 또한 두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쳐다보았다.
“가족을 제외했을 때, 가장 오랜 시간 곁에 있었던 것은 감히 결혼을 했던 제 손녀이겠지요. 그러니 제 손녀의 시신을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피드백 한다면, 틀림없이 저희 알프레드 가문이 결백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콜레오네 바레타 웨인 알프레드.
그는 반역을 저지르고 죽어버린 로에르의 아내이자, 유리엘의 언니이며, 자신의 손녀라 할 수 있는……
엘리스 웨인 크레타 알프레드를 스스로의 손으로 죽인 뒤, 직접 그 수급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