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가 상당히 떠들썩하다.
로벨리움 왕국 내에서 있었던 일도 한몫을 했겠으나.
요점은 반역을 저지른 종자들이 드디어 이송 되어, 그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전쟁의 전조.
부모는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묻고 싶지 않아 했고.
자식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불효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했다.
그렇기에 그 분노는 고스란히, 반역을 저지른 그 가문의 혈통들에게로 향한다.
“……”
그리고 먼저 수도에 올라와 있었던 유리엘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잠시 입술을 질끈 깨물다 걸음을 돌렸다.
페르젠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라 했으나, 유리엘은 차마 그 기다림을 인내할 자신이 없었다.
또각.
하지만 저택을 나가기 전, 유리엘은 유페미아의 방문을 노크도 없이 열고는 안으로 한걸음을 내딛었다.
같이 가지 않겠냐고 말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너무나도 평온히 부풀어 오른 자신의 배를 끌어안고 잠이든 유페미아를 보고 있자하니……
옅은 실소가 입가를 타고 흘러나올 뿐이다.
그녀는 감히 어떤 짐이 페르젠의 어깨에 얹혀 있는지 알기는 할까.
‘그래……’
아마 하나도 모르겠지.
왜냐하면 그이가, 페르젠이 말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온실 속의 화초처럼 페르젠의 품에 감싸안겨 그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유페미아.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입히고.
좋은 것만 나누어 주는 페르젠이 밉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지금도 유리엘은 자신보다 한업이 보잘것 없는 저 여인이, 어찌하여 페르젠에게 그리도 예쁨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유를 찾고 싶지 않았다.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
‘너는…… 그렇게 그이의 애용품으로 살아가.’
깊은 잠이든 그녀가 깨지 않도록 문을 닫은 유리엘이 저택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부부는 같은 방향을 보고 함께 걸어 간다 하였으니.
설령, 그것이 아무리 추악한 것이라 해도.
유리엘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의 반려(伴侶)였으니까.
‘나는…… 그이의 애용품 따위가 아니라……’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그의 아내였다.
* * * * *
“히끅……!”
천막이 거두어진 마차의 짐칸.
천천히 황실로 향하는 마차는 철장에 갇힌 반역자들의 모습을 백성들 앞에 말끔히 드러내고 있었다.
팅!
팅……!
“아……! 아윽!”
전쟁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 전조를 마련한 반역자들의 대한 증오심.
그것이 한데 모여, 백성들의 손끝을 타고 돌이 되어 리지와 세자르에게 날아온다.
대부분은 창살을 맞고 튕겨져 나갔으나, 그 사이로 들어온 돌은 리지의 창백해진 피부에 생채기를 냈으며.
이마를 찢어 윤기를 잃은 붉은 머리카락을 염색하듯 선홍색의 피를 흘려 보냈다.
하늘이.
세상이.
자신들을 죄인이라 칭하는 이 광경에, 리지는 그저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며 아이처럼 울음을 토해낼 뿐이었다.
……자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그리도 잘못을 한 걸까.
노력없는 부를 탐하지도 않았고.
양심없는 쾌락을 취하지도 않았으며.
인격없는 지식을 탐구하지도 않았고.
도덕성 없는 사업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래.
웅크린 양은 고백할 죄가 없었다.
행복하고 싶었으나 행복할 수 없었고.
그 행복을 앗아간 이에게 대가를 묻게 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죄인의 낙인은 자신들이 찍혀 버렸다.
신이시여……
저희들의 항해가 그리도 잘못된 것이었나요……
어찌하여 이상향을 찾아 떠나는 배를 나무라시고.
그 배를 침몰시키는 암초에게는 한없는 편애를 주시는 겁니까.
설령 그것이 잘못이라 하여, 저희들이 죄를 범했다 하여도.
이것이 올바른 삶의 수순 인가요.
죄에 빠지는 존재가 인간이옵고.
그 죄를 슬퍼하는 자가 성자라 한다면.
저곳에서 자신의 죄를 자랑하는 자는, 감히 악마라 칭할 수 있지 아니 한가요.
“끄흑……! 아악……! 흐아아앙……!”
애처롭게 울어대는 양의 비명은 백성들에게 들리지 않았고.
신의 부재를 원망하는 소녀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한 채 먼지처럼 흩어졌다.
* * * * *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황명을 받들어 반역을 저지른 죄인들을 데려왔사옵니다.”
“고생하였네.”
“……아닙니다.”
황제 폐하의 어전.
그 앞에서 페르젠은 무릎을 꿇으며 보고를 마친 뒤, 짧은 목례를 취한 채 그대로 대전을 나섰다.
클로디아 가문의 종자들을 잡아 들였으니.
남은 일은 로에르의 수급을 통해 완전한 피드백을 받고.
저택에서 닥치는 대로 가져온 자료를 살펴 혹여나 연관된 자가 더 없는지를 살펴보는 일만 남게 되겠지.
그 과정이 모두 끝이나게 된다면, 처형이 개시 될 테고.
자신이 맺었던 과거의 악연은, 모조리 끊어지고 태워지게 되리라.
그러나 후련해야만 했을 걸음은, 오히려 무겁기만 했다.
“백작.”
“……황녀 전하.”
내려쬐는 햇살을 등진 채, 자신의 백금발을 화사하게 휘날리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앞을 가로 막는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어도 있어야만 하는 얼굴을 한 채, 어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냐.”
“……”
“따라오도록 하여라. 뒤편의 화단에 괜찮은 자리를 마련 해놓았니라.”
자신의 의사는 필요 없다는 듯.
우아하게 몸을 돌리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구두소리를 내며 고풍스럽게 걸어간다.
그에 그 뒷모습을 얌전히 지켜보던 페르젠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얌전히 뒤를 따랐다.
그러자 겨울이 찾아 오기 전, 가장 아름다운 화단의 풍경이 눈으로 들어오자 페르젠은 잠시 동안 시선을 빼앗겼다.
“아름답지 않느냐.”
“그렇군요……”
낙화하는 나무의 단풍이, 자신의 걸음에 바스락 즈려 밟히며 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그리고 화단의 중심, 그곳에 마련된 소소한 티타임에 페르젠은 엘리자베스 황녀를 마주보며 의자에 앉았다.
“그대가 좋아하는 차라고 한다면, 홍차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니라.”
“예…… 실제로 그러합니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홍차의 향을 맡으며, 차를 한모금 마신 페르젠은 찻잔을 내려두고서 엘리자베스 황녀를 바라보았다.
그에 엘리자베스 황녀 또한, 찻잔을 우아하게 내려두고는 페르젠의 붉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백작.”
“……”
“양심이 호소하는 아픔에 괴로워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지 않은가.”
황실은 자신이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이유를 알지는 못해도.
클로디아 가문 사이에 얽힌 사건의 전말을 알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이다지도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오는 걸까.
“그다지 그대를 위로하는 건 아니리라.”
“……”
“이유가 있다 한들, 그것을 자백하여 뒤엉킨 실을 풀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대는 악인으로 남는 걸 선택한 것이 아닌가.”
“……”
“여기서 어쭙잖게 그대를 위로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이고 기만이겠지.”
작게 웃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자신의 백금발을 귀 뒤로 쓸어넘긴다.
“그 날, 그대들의 요구에 침묵한 우리도 엄연한 공범일 터.”
“그것은……”
“그래. 그대들이 자신의 입지를 이용하여 압력은 넣은 것이긴 하지.”
“……”
“그러나 그대도 알고 있지 않나. 그 정도 핑계로 죄를 가리기에는 가당찮다는 걸.’
백작.
“다른 사람의 죄를 세아려본들, 스스로가 성자가 되는 건 아니리라.”
호흡을 고르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조금 목소리를 높여 웃는다.
“피묻은 손으로 우리는 이 권좌에 앉아 있으니…… 씌어지는 제관또한, 핏자국이 묻어 있다 한들 어떠할까.”
“……”
“자신을 제외한 모든이가 비정상이라면, 오히려 정상인이라 할 수 있는 그 한 명이 비정상이 되는 게 인간의 사회.”
그러하다면.
“모두가 악인이 되면 되는 것이지.”
페르젠도.
그의 가문도.
황실도.
나아가 제국의 모든 백성이.
클로디아 가문을 사형대 위로 올리려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제국의 모두가 죄를 품은 악인이 되는 것일 터.
“그러니 이제와서 양심에 흔들리지 말거라. 오히려 그것이 더욱 추하지 않느냐.”
인생이란 이미 나아간 길을 뒤로 되짚어 갈 수 없는 것.
그걸 알고 있음에도 여기까지 걸어왔다면.
그것이 본인이 선택한 후회없는 길일 터.
다만……
“언젠가 죽어서 명계로 가게 된다면……”
“……”
“그대는, 본녀와…… 아니 우리들과 기꺼이 지옥으로 함께 걸어가주겠느냐.”
떨어지는 낙엽이 불어오는 바람에 이끌리다, 조용히 페르젠의 찻잔 안으로 토옥 떨어진다.
그에 페르젠은 엘리자베스 황녀를 향해 떨림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예. 저,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반드시 이승을 떠나서도…… 황실을 보필하겠습니다.”
“그래. 그 말을 듣자하니…… 저승도 그리 외로운 곳은 아니게 되겠구나.’
은은하게 웃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아름다운 미소를 선보이며 차를 홀짝인다.
“으음?”
그리고 그 때, 조용히 곁으로 다가온 시녀가 허리를 숙여 엘리자베스 황녀의 귓가에 무어라 한 마디를 전달하자……
엘리자베스 황녀는 쓰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본녀가 괜한짓을 했는지도 모르겠어.”
“……?”
자신의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페르젠을 보고서 엘리자베스 황녀는 조금 그를 나무라는 듯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충(忠)과 효(孝), 그리고 애(愛)는 본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연장선 이니라.”
“……”
“좋은 반려를 두었는데. 한번쯤은 기대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터.”
걸음을 돌리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마지막 한 마디를 투욱 읊조린다.
“그런 것을 보고 나약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으니…… 그녀에게 너무 매정하지 굴지 말도록 하여라. 백작.”
낙화하는 단풍이 엘리자베스 황녀의 뒷모습을 화려하게 가리고.
이후, 바람이 천천히 가라앉아 잔잔해진 화단 너머의 풍경으로는……
“페르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유리엘이 애틋한 표정을 지은 채 서있었다.
분명, 자신이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 까지는 굳이 걸음을 옮기지 말라고 하였는데.
어느새 보다 가까이 다가온 유리엘은 떨리는 손을 뻗어 자신을 끌어 안아온다.
“배려하지 않아도 괜찮아……”
“……”
“당신이 어떤 추악한 짓을 저질렀든. 또 추악한 짓을 저지르든…… 나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당신 곁에 있을 거야.”
페르젠.
나의 남편.
만약, 당신이 악(惡)이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당신의 반려이자, 아내로서.
당신에게 어울리는 악녀(惡女)가 되어 곁에 서있을게.
“……”
말로 전부 전달하지 않아도.
그녀의 몸짓과, 자신을 끌어안은 손에서 느껴지는 떨림으로부터 의사가 전해져 오는 건.
이미 서로가 확연한 부부라는 증거이겠지.
그에 페르젠은 조용히 유리엘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그녀의 따스한 몸을 꽈악 끌어 안았다.
……생애 태어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조율되어 자라온 여인.
그러하다면, 틀림없이.
그녀 또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된 악의 꽃이리라.
그래, 여기 이곳에.
한 쌍의 악의 꽃이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낙화하는 잎들을 즈려 밟은 채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