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엉킨 얼음덩쿨의 실타래가 갑작스레 저택을 감싸안자, 자신의 방──침대에 앉아 있던 리지는 화들짝 놀라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해당 마법의 구성식을 파악할 수 없다는 건.
엄연히 자신보다 높은 등급의 마법사가 행한 소행이라는 뜻.
콰앙!
“힉……!”
그리고 작금의 상황에 대한 의문을 제대로 해소할 시간도 없이.
리지는 자신의 방문을 거세게 박차며 들어선 기사들의 모습을 보고는 몸을 움찔했다.
열린 문 너머에서 풍겨오는 건 비릿한 피냄새.
더불어 기사들의 갑옷에 새겨진 천칭의 문양을 확인한 리지는, 기어코 온 몸을 덜덜 떨며 뒤로 물러났다.
“왜, 왜, 왜…… 아악!”
더듬더듬, 자신의 손과 발을 움직여 뒤로 물러나는 것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애처로운 여인이었으나.
브뤼테인은 천칭은, 제국에 반기를 든 자에 한해서 그 균형을 유지하지 않는다.
때문에 리지에게 다가선 기사들은 그녀의 가녀린 팔을 거칠게 붙잡아 침대에서 끌어내리고.
간단히 꺾여버릴 것만 같은 뒷목을 움켜쥐어 바닥으로 처박은 뒤, 흑마법사로서 지정한 그녀의 제단을 억지로 탈취했다.
“아흑! 아…… 아악!”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힘을 억제하고는 있어도, 손속이 거칠다 보니.
리지의 가냘픈 팔과 다리에는 선명한 멍자국이 새겨지며, 보랏빛 눈동자에서는 애처로운 눈물이 쏟아졌다.
“끄흑……!”
그러나 그 울음을 들어줄 여유도 없다는 듯.
포박을 끝낸 기사들이 강제로 리지를 일으킨다.
왼쪽 다리가 망가져 제대로 걷지 조차 못하는 리지였기에, 붙잡아 당기는 힘에 이끌려 억지로 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마치 갓 태어난 송아지와도 같았다.
“아, 아아……”
이내 자신의 방문, 그 문턱을 넘어서자.
리지는 자신들 가문, 자신들 저택에서 일을 하던 시녀들이.
옅은 저항의 흔적을 머금은 채, 피를 흘리며 싸늘히 죽어버린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깔끔히 양단 되었기에 오히려 더욱 잔혹한, 그 살육의 현장을 목도한 리지는 기어코 수차례 헛구역질을 하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러자 아직 식지 않은, 따스한 시녀들의 피가 그녀의 치맛단을 타고 스며들고.
곧이어 물보다 진하지만, 피보다 옅은 액체가 시녀들의 피와 뒤섞이며 옅은 지린내를 풍기기 시작한다.
“……”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연민을 머금게 된 기사들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무심한 손길을 뻗어 리지의 팔뚝을 붙잡은 채, 붉게 얼룩진 복도를 나아갔다.
죄인의 울음, 그리고 그 눈물로는.
결코 순수를 증명할 수 없는 법이었기에.
* * * * *
저택의 집무실, 그곳에 조용히 앉아 있는 클로디아 가문의 차남이자 현 가주인 세자르는 눈앞의 페르젠을 보며 피식 웃었다.
“기분은 어떠하십니까.”
“……”
“그 날과 똑같이, 무언가를 망가트린다는 희열을 느끼고 계십니까?”
“이유 없이 꽃을 꺾는 취미는 없다.”
단지, 그 이유가.
클로디아 가문을 설득하기에는 터무늬가 없을 뿐.
“하하…… 저희 가문은 이미 예전에 당신이 그 손으로 꺾었습니다.”
“자멸 또한 내 탓으로 돌리는가.”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체념어린 낮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세자르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꽃병을 쥐어들었다.
거기에는 오직 한 송이의 장미가, 완전히 시들어 죽어버린 진홍색의 꽃잎을 떨어트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꺾은 꽃을 물병에 담아봤자…… 본디 자신의 수명대로 살 수는 없는 법입니다.”
“……”
“그러할진데 직접 꺾어 물병에 꽂아 넣으신 당신이, 그 물병을 벗어 난 것을 감히 자멸이라 칭하십니까.”
더 이상 페르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들어만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넋두리를.
“사람이 꽃을 꺾는 것에는, 탐스러운 욕망과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런 원초적인 이유 조차 없었지요.”
“……”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이었던 우리를, 당신은 꺾어서 물병에 박제시켰습니다.”
“……”
“한낱 소설에 등장하는 악당들 조차 각자의 이유가 있는 법인데.”
“……”
“당신은 그러한 소설에도 등장하기가 아까운, 그야말로 악당이라 칭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비루한 시정잡배입니다.”
크나큰 차이점이 있다면.
그의 가문과 혈통, 그리고 재능일 뿐이리라.
때문에 세자르는 저러한 인간을 편애하는 이 세계가 미웠고.
저리 비루한 악(惡)조차 물리쳐 줄 용사가 없는 현실이 증오스러웠다.
“정말…… 원통하군요.”
마지막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세자르는 완전히 체념을 한 듯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페르젠은 끝끝내 어떠한 한 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이유가 있는 악당이라.’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이 몸뚱이에도 분명 사연은 있었다.
하지만 페르젠은 그것을 호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적법한 동기로 이해받기에도 어려울뿐더러.
이미 이유라 불리에게도 힘들만큼,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애당초 악당이 자신의 사연을 호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최후의, 그 마지막에 가서.
주인공이자 용사의 마음에 동정을 호소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선택지이기 때문일 터.
그래, 자신의 생명을 자신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악당은 비로소 사연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엎드려 사는 것을, 자신 또한 분명 하나의 선택지로 쥐어들고 있었는데.
거부한 것은 클로디아 가문이었지 않나.
결단코 엎드려 죽을 생각 따위는 없었기에.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그는 자신의 두발로 서서, 이들의 마지막을 인도하고 있었다.
벌컥!
이윽고 집무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기사들의 손에 사로 잡힌 리지가 안으로 끌려온다.
그리고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던 세자르와 함께, 페르젠 앞에 처참히 무릎이 꿇려지고.
그들을 특유의 붉은 눈동자로 무심히 내려다보던 페르젠은, 황실의 인장이 찍힌 증서를 펼쳐 앞으로 내밀었다.
“현 시간부로 클로디아 가문에 내려진 작위와, 그 성을 박탈하고.”
“아, 흐…… 으, 아……”
“종자인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와 세자르 폴 드미안 클로디아에게…… 황실의 혈통을 시해하려 한 반역죄를 묻겠다.”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던 세자르와 다르게.
리지는 반역죄라는 그 한 단어에,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당장 이라도 숨이 넘어갈것처럼 끅끅 거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페르젠의 말에서 느낄 수 있는 모종의 위화감.
그것을 인지한 리지는 페르젠을 올려다 보았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질문의 형태로 그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는 없었으나.
리지의 두 눈동자와 표정에 서린 속내를 페르젠은 어렵지 않게 읽어낸터라……
스륵.
증서를 거두어 자신의 품안으로 넣은 뒤, 매정하게 등을 돌리며 한 마디를 툭 내던진다.
“죽었다.”
움찔!
“수도에 올라가게 되면, 그의 수급을 확인할 수 있겠지.”
페르젠의 그 말을, 리지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마음보다 빠르게.
그녀의 몸이 먼저 슬픔을 표현한다.
변화없는 표정 사이로 흘러내리는, 울음 없는 눈물이 어찌 그리 애처로울 수 있는 건지.
또각.
그러나 페르젠은 그것을 바라보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기사들에게 지시했다.
“죄인들을 붙잡아 옮기도록.”
“예!”
집무실의 방을 나서는 페르젠이, 이사벨과 함께 복도에 흩뿌려진 혈흔을 짓밟으며 나아간다.
창밖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단풍이 물들어 있는 나무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저 잎이 모두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내기 시작하면.
……자연은, 봄의 태동을 기다리며 기나긴 겨울잠에 빠져들겠지.
그러나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는 저 잎보다 붉은 단풍을 피운 클로디아 가문은.
결코 다음 번 봄을 맞이할 수 없으리라.
* * * * *
덜커덕!
나아가던 두 대의 마차가 멈추어 선다.
그 마차의 커다란 짐칸에 구비된 철장에는 반역을 저지른 죄인들이 갇혀 있었고.
중간 중간 다른 영지에 들려 묵을 여유 조차 없었던 페르젠은, 드물게 야영을 준비하며 걸음을 옮겼다.
“……먹도록 해라. 오늘 분의 식사다.”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짐칸의 내부.
그리고 거기에 놓인 철장에 짐승처럼 갇혀 있는 리지를 쳐다보며, 페르젠은 물 한컵과 빵 하나를 내려두었다.
스스로 걷지 조차 못하는 여인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와, 검 한 자루 조차 쥐어들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손에 채워진 쇠사슬은……
현 상황에 놓인 그녀의 처지가 얼마나 밑바닥인지를 절실히 알려준다.
더군다나 슬며시 물러난 여름의 빈자리를 가을이 채워가고 있었기에.
태양이 떠있지 않은 밤의 공기는 상당히 쌀쌀하여, 짐칸의 내부는 무척이나 추웠다.
“5분 내로 먹지 않으면 치우겠다.”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공허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보랏빛 눈동자에.
페르젠은 무심하게 시계를 확인하며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째깍.
……그리하여, 정확히 지정했던 5분이 흐르게 되었을 때.
스륵.
페르젠은 자리에서 일어나 빵 하나와 물 한컵이 놓인 접시를 들어 올렸다.
찰그락.
그러나 그 순간, 페르젠이 떠나가려는 모습을 보이자.
죽은 사람처럼 공허히 앉아 있던 리지가 뒤늦게 엉금엉금 기어와 철장을 두 손으로 붙든다.
윤기를 잃어가는 붉은 머리카락.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얼굴.
코끝으로 희미하게 풍겨오는 지린내.
아름다웠던 여인의 모습은 어디로가고, 추레하고 비루한 죄인이 눈 앞에 있었다.
“아, 으……”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짐승처럼.
리지가 수차례 옹알이를 내뱉으며, 말라 붙은 자국 위로 새로운 눈물을 쏟아낸다.
페르젠에게 무어라 한 마디라도 하고 싶었으나.
과연,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수차례 끅끅 거리던 리지는, 간신히 쉬어버린 목소리로 한 마디를 완성시켰다.
“저, 희를…… 사, 사…… 살려…… 주세요……”
“……”
브뤼테인이라면 반역이라는 중죄도 충분히 가릴 수 있으리라.
하지만 자신의 이 부탁을 페르젠이 들어줄리가 없다는 것 또한, 리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창살을 붙잡고, 간신히 오른발에 의존해 몸을 일으킨 리지는 온 몸을 파르르 떨며 페르젠에게 말을 이었다.
“저…… 아, 아직…… 거, 걸을 수 있어요……”
“……”
“두, 두 손도…… 머, 멀쩡해요……”
아직, 당신이 가지고 놀다 망가트릴 곳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
재미난 장난감이 이대로 없어지는 꼴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리지는 그렇게, 페르젠에게 비참한 호소를 해왔다.
물론, 거기서 끝나지 않고.
리지는 스스로 앞섶을 끌어내려 약간의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신의 가슴을 드러냈으며.
치맛단을 붙잡아 올린 뒤, 속옷 안쪽에 숨겨져 있던 도톰하게 살이 오른 매끈한 음부를 선보였다.
“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못할.
타인을 망가트리며 쾌락을 취하는, 추악한 이면을 숨기고 있지 않나요……
그 추악한 이면을 배설할 쓰레기통으로 분명 자신만한 것이 없을 거라며.
리지는 어딘가 엇나간듯한, 망가지고 비틀린 눈물진 웃음을 선보였다.
“재미없는 촌극이구나.”
그러나 페르젠은 그러한 리지의 추태를 싸늘한 눈길로 훑은 뒤, 고개를 돌려 버렸다.
실제로 자신이 그런 욕망을 이면에 숨기고 있었다면.
지금 그녀의 모습처럼, 꽃이라 할 수도 없는 추한 것을 꺾으려 들까.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
“반역자에게 주어지는 면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반역죄.
적합한 형벌은 사형(死刑).
그 형목은 참수(斬首).
“그 날, 끝까지 내 목을 물어 뜯을 거라면 너희 가족의 무덤과 나의 무덤을 미리 준비해두라고 했었지.”
어찌.
정말, 준비를 했다면.
“쓸데없는 일을 했겠구나.”
죽어서도 이승에 묻힐 곳이 없도록.
그 시신을 까마귀들이 파먹게 효수하는 것이.
죽어버린 반역자에게 주어지는 최후였기에.
이사벨 론 이에르 제노바처럼 압도적인 가치가 있지 않고서야, 예외는 없었다.
“아, 흐아……”
무너지듯 주저앉는 리지가 오열하며 힘없는 울음을 토해낸다.
그리고 그런 리지를 뒤로한 페르젠은 조용히 걸음을 내딛어 마차를 빠져 나왔고.
어느새 기사들이 준비한 모닥불 앞에 앉아, 일렁이는 불꽃을 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로에르 폴 비스타인 클로디아.
세자르 폴 드미안 클로디아.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너희들이 준비한 자신들의 무덤에, 너희들이 묻힐 일은 없게 되겠지만.
혹여나 정말, 나의 무덤도 함께 준비를 해두었다면.
언젠가 이 몸뚱이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날이 찾아 왔을 때.
‘기꺼이 너희들이 마련해둔, 나의 무덤에 묻혀 영면에 들도록 하마.’
툭.
장작을 던지는 페르젠이, 타닥! 불씨를 휘날리며 화려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고는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