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대상이 황족이라면.
역천(逆天)을 범해서라도, 브뤼테인은 그 순리를 거슬러야만 했다.
그리고 페르젠의 그러한 각오서린 기백에 전부 압도당한 젊은 의원들은 자연스레 그에게 길을 터주었고.
……페르젠은, 훨씬 더 짙어진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수술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피비린내가 가득 풍기는 수술방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엘리자베스 황녀의 복부는 말끔히 닫혀 있었고.
새하얀 나신은 깔끔하게 닦여,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만 같은 공주를 연상케하고 있었다.
“소인을…… 엄벌하러 오셨습니까……”
“그러지 않다네.”
아마도 그는, 조용히 엘리자베스 황녀가 숨을 거두고.
그 시간을 확인한 뒤, 사망선고를 내리기 위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20시간이 다되어가는 기나긴 여정의 수술.
눈앞의 노인, 그리니치는 틀림없이 엘리자베스 황녀가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몇번이고 붙잡았으리라.
그렇기에 페르젠은 감히,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눈앞의 명의를 나무랄 수가 없었다.
애당초 그럴 자격도 존재하지 않았고.
“……대략적인 시간은, 얼마나 남았나.”
“10분 남짓…… 일 것입니다.”
10분 남짓.
적은 시간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을 마친 페르젠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미 개복되었던 복부는 말끔히 닫혀 있었기에, 외부에서 들어온 자신으로 인해 그녀가 감염될 우려는 없겠지.
“인간은…… 매번 잠을 자는데, 어찌하여 영원한 잠이라 불리우는 죽음은…… 이토록 두려운 것인지 아십니까……”
조금 해탈한 기색이 어렴풋하게 서려있는 노인의 한 마디에 페르젠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죽음이라는 영면에 빠져든 인간은, 더이상 꿈을 꿀 수 없으니 그러하겠지.”
“그렇군요……”
대답을 마친 페르젠이 손을 뻗어 주사기를 쥐어들고, 능숙하게 약물을 뽑아낸다.
“지금…… 무얼 하시는……?”
그 모습을 보며 엘리자베스 황녀 곁에서 그녀의 임종을 기다리던 노인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페르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투르게 자신의 혈관을 찾아 그대로 약물을 주입한다.
“……”
현재 그의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약물의 정체는 바로 각성제.
“그리니치 의원.”
몽롱한듯 하면서도 강제로 맑게 게이는 정신에 페르젠은 걸음을 비틀거렸다.
“눈을 감게.”
“……”
“나는…… 그대가 이 광경을 온전히 목도하게 된다면, 그대를 죽일 수 밖에 없어.”
혹은.
“말할 수 없게 그대의 목소리를 빼앗고, 글로 전할 수 없게 손을 잘라야 하겠지……”
여전히 눈앞의 사내, 페르젠에게 묻고 싶은 의문이 있는 노인이었으나.
가까이 다가온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니, 노인은 차마 그 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 눈을 감았다.
인간의 호기심이 가장 많은 발전을 야기한 건 틀림없이 의술일 터.
그렇기에 노인은 몇번이고 자신의 감은 눈을 뜨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한 번 감은 눈은 스스로의 자의로 뜰 수가 없었다.
이것은 감히, 자신 따위가 바라봐도 되는 광경이 아니라는 뜻일까.
이내 페르젠은 마치 박제당한 짐승처럼 제자리에서 숨을 죽인 채 눈을 감은 노인을 힐끔 바라 본 뒤, 옆에 놓인 첨인도(尖刃刀) 형태의 메스를 쥐어들었다.
……미풍이 불어오는 듯한 따스한 낮 뒤에, 싸늘하고 차디찬 밤이 찾아오는 건 당연한 이치이겠지.
필시 인간의 탄생과 죽음도 다르지 않을 터.
이름은 언젠가 잊혀질것이고.
아무도 행적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한 사람의 생애는 구름의 자취처럼 사라지고, 안개처럼 흩어지리라.
허나, 그 대상이 오랜 세월 자신들이 모셔왔던 황실의 황족이라면.
영원토록 해가 저물지 않는 백야(白夜)를 드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며드는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면.
자신들이 밤이 되어, 그들을 어둠속에서도 찬란히 빛날 수 있는 별들로 만들어주리라.
촤악!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그의 양손 동맥이 끊겨, 상상이상의 출혈이 일어나 수술방의 바닥을 적셔나간다.
찾아오는 현기증에 기어코 무릎을 꿇은 페르젠이지만, 각성제 덕분에 그의 정신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간신히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한낱 인간의 시계가 멈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고장난 시계를 가진 이들이 명계를 찾아가는 것은 세상의 순리일진데.
쿠웅!
명계는 결코 그의 시계가 멈추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초침을 움직이고.
분침을 움직이고.
시침을 움직여, 멈추려는 그의 시간을 억지로 흐르게 만든다.
이윽고 흐릿해진 초점 너머, 페르젠의 눈앞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람조차 불지 않는 방에서 페이지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기이한 형태의 책.
두 개의 제국, 세 개의 왕국.
그 어느곳에서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문자들이 어지럽게 배열되어 있으나.
페르젠은 그것들을 익숙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마침내 그의 의지를 따라 넘어가는 책의 페이지가 멈추고, 유독 밝게 빛나는 하나의 이름을 읊조리자……
끼익!
열리는 명계의 문 너머로 칠흑보다 어두운 쇠사슬이 파고들어 무언가를 거칠게 붙잡아 끌고 나온다.
분명 상호간의 대등한 거래를 통해, 흑마법사는 괴이와 공존하는 존재일진데.
열린 명계의 문 너머에서 억지로 끌려나오는 괴이의 모습은, 서로가 결코 대등한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의지를 대변하는 듯한 쇠사슬에 붙잡힌, 여러 천을 억지로 꿰메어 놓은 듯한 헝겊 인형은 파르르 떨며 바닥에 곧장 머리를 조아렸다.
툭.
투둑.
그러자 몸 곳곳에 엉성하게 튀어나와있는 솜이, 페르젠의 피를 머금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페르젠은 눈앞의 괴이에게 이딴 대접이나 받자고 죽음에 도달하는 자해를 한 것이 아니었기에.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질려버린 팔을 들어 올려, 간신히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엘리자베스 황녀를 가리킨다.
그에 고개를 조아렸던 헝겊 인형은 덜덜 떠는 몸을 일으켜, 자신의 몸을 꼬매고 있는 수많은 실타래를 풀어 헤쳤다.
명계의 3층, 그곳에 서식하는.
신체의 결손과 상처를 수복시켜주고 치료해주는 괴이의 실.
정확히는 해당 괴이의 직조(織造) 능력은, 감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시키는 것.
이내 페르젠의 손목을 감싸안는 실타래가 끊어진 그의 동맥을 잇고.
부족한 혈액을 실로 엮어 외부에서 주입한다.
그래, 실을 엮어 피를 만들어내는 행위부터 감히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천외천의 영역.
이윽고 고개를 돌린 괴이가 반듯하게 누워 있는 엘리자베스 황녀의 복부를 다시금 개복하고.
잘려나간 결장을 실로 이은 뒤에.
망가진 자궁을 밖으로 드러내고서는, 새로이 실로 직조하여 만들어낸다.
서로가 사랑을 품고, 그것이 결실을 맺어 또 하나의 생명을 잉태해내는.
인간이 유일하게 신의 발자취를 일부 담고 있는 곳을 창조해낸다는 건, 틀림없는 역천(逆天)의 금기라 할 수 있겠지.
……허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괴이는 불에 그을린 그녀의 아름다운 백금발을 새로이 엮어 냈으며.
화상을 입은 피부 또한, 본래의 고운 색을 되찾게 만들어주었다.
단순히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존재를, 이승으로 끌고오는 것이 아닌.
시간을 역행시켜 과거를 현재에 박제해버리는 듯한 광경.
움찔!
그래서인지.
엘리자베스 황녀는, 정말로 기나긴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는 사람처럼.
온 몸을 가늘게 떤 뒤에, 자신의 눈가를 고운 손으로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
그러자 고풍스런 백금발이 화사하게 흐트러지며, 그녀의 적나라한 나신을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가린다.
하지만 페르젠은 거기서 한치의 음욕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몽롱한 눈빛으로 몸을 돌려 내려오려는 그녀의 작고 새하얀 발을 커다란 손으로 조심스레 쥐어든다.
“아……”
그제야 몸을 움찔하며, 엘리자베스 황녀는 수술대 밑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페르젠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좀처럼 제대로 된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그에게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질문을 던지고 싶은 엘리자베스 황녀였지만……
“브뤼테인은…… 단 한번도, 황실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없습니다.”
“……”
“그러니 저희 충성을, 부디 갚아야 할 빚이라 여기지 마소서……”
따스한 봄바람처럼.
나근나근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흐릿한 그녀의 정신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제 욕심으로 빚어진 불충을…… 감히, 용서해주소서……”
고개를 숙이는 그가 자신의 발등에 부드럽게 입술을 맞춘다.
무척이나 간지러운 그 감각에 엘리자베스 황녀는 자신도 모르게 발가락을 꼬옥 오므렸지만, 발끝에서부터 전해지는 그의 온기에 마음은 무척이나 평온해졌다.
‘그런 것이었느냐……’
조용히.
이 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페르젠의 뒤편에 열려있는 명계의 문은, 처음과 똑같이.
여러 쇠사슬이 괴이를 강제로 붙잡은 채,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송환한다.
명계의 3층, 그 중에서도 신체의 결손과 상처를 치료해주고 수복시켜주는 괴이의 생김새는.
익히 알려져 있는 것이었기에, 엘리자베스 황녀는 이곳에서 대략적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 났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질척……
이내 입술을 떼어내는 그를 보고서, 수술대 위에서 내려온 엘리자베스 황녀는 바닥에 흩뿌려진 끈적한 피를 조심스레 즈려 밟았다.
차디찬 방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뜨거운 피의 온도.
이 피웅덩이는 틀림없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눈앞의 사내──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의 것이겠지.
그래.
‘이번에도, 우리는……’
그대들의 피를 밟고 서게 되는 구나.
그러한데 갚아야 할 빚이 없다고 말해주는 그의 한 마디는.
황실이 짊어지고 있는 짐의 일부를 너무나도 많이 덜어주는 듯 했다.
어쩌면…… 클로디아 가문에서 시작된, 브뤼테인의 어긋남도.
자신들이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일까.
눈치를 보지 않고 처음부터 바로 잡으려 들었다면.
그들의 충성이 한순간이나마 더럽혀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구나.”
“……”
“그대들에게 미움 받을 용기를, 오히려 그대들이 건네주다니……”
쓰게 웃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고운 손을 뻗어 페르젠의 머리를 쓸어내린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예……”
“이 군신의 관계가, 언제나 변치 않고. 계약이 아닌 인연을 맺어나가는 것이었으면 좋겠구나……”
귓가로 스며드는 엘리자베스 황녀의 목소리에.
페르젠은 조금더 고개를 깊숙이 숙인 뒤 입을 열었다.
“틀림없이…… 그러할 것 입니다.”
소설에서 흐르는 건 주인공의 시간이다.
그의 시간 흐름에 맞추어, 모든 인물들의 시간이 흘러가고 사건이 전개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각자의 시계가 각자의 흐름을, 각자의 사건을 전개시킨다.
그래.
여기에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그의 시계가, 그의 인생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