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EP.164
불꽃을 짓밟으며 내딛는 걸음.
하지만 몇 걸음 나아가기 무섭게, 로에르는 자신의 몸이 보내오는 본능적인 위험 신호를 알아차렸다.
“……”
분명, 아무런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는데.
검을 쥐어들고 있는 자신의 오른 손, 그곳의 살가죽이 깔끔히 벗겨져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살짝 힘을 주어 오른손을 앞당기니, 흉측하게 드러난 근육과 혈관들이 마저 당겨지며 뼈로부터 분리되려는 조짐을 선명히 보인다.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겠지.”
“……”
“후회는 하지 않느냐. 로에르.”
천지를 실로 이어 자신의 둥지로 삼는, 명계의 3층에 서식하고 있는 거미와 흡사한 괴이의 실자락은.
물질과 물질이 아닌, 공간과 공간에 자신의 실을 연결한다.
때문에 로에르가 저기서 억지로 걸음을 내딛었다가는, 근육과 혈관만이 아니라.
내부의 장기들까지 연결된 실이 팽팽히 당겨져 도축된 짐승의 신세가 되리라.
더불어 거기에 통증 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날으는 새조차 자신의 살가죽과 장기들이 실에 붙잡혀 적출 당했다는 것을 모르고, 앙상한 뼈만 남은 채 날개짓을 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후회라……”
“……”
“페르젠. 어릴 적의 나도, 세상이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인간의 목숨은 평등하지 않고.
동일한 원인을 제공해도, 결과는 각자 다르게 얻는 세상.
지독하리만큼 구역질이 나오는 불합리함이 지천에 깔려 있었으나.
모두가 그것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로에르 폴 비스타인 클로디아.
그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나는…… 네 놈에게 주어지는 그 편애적인 합리를 용납할 수가 없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타인의 행복을 짓밟고 살아가는 것이 어쨌단 말인가.
설사 페르젠이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부수어 버렸다 해도 로에르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족을, 자신의 가문을 망가트리고서는 유유히 행복을 거머쥐려 하고 있지 않나.
이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분노이겠지.
아니, 이기적인 분노이기에 페르젠이라는 사내에게 검끝을 겨누는 자가 자신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러면.
그렇다면.
아니, 그렇기에!
“내가──!”
빠득!
“네놈의 불합리함이 되어주겠다!!!”
공간 속으로 파고들어 로에르의 온 몸 곳곳에 이어져 있던 실자락이 끊어진다.
이것은 단순히 그가 어떠한 수단을 이용해 명계의 3층에 서식하는 괴이에게 저항한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편법이라 해야겠지.
‘오러 나이트인 그의 머리에서 나온 수법 같지는 않군.’
로에르의 몸을 조금씩 집어 삼키는, 꾸물거리는 액체와도 같은 무언가는 틀림없이 명계에 서식하는 괴이일 터.
그리고 로에르는 저 괴이에게 자신의 몸뚱이를 대가로 바쳤으리라.
자신이 불러 온, 명계의 3층에 서식하는 괴이가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로에르라는 인물 자체의 소유가 저 괴이에게 넘어 갔기 때문이다.
아무리 높은 층수에 서식하는 괴이라 한들, 명계에 소속된 존재.
그러니 명계의 법도 아래에 성사된 거래를 망칠 수는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페르젠은, 로에르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선보이는 그 발악에도.
어째서인지 지나치리만큼 잔잔한 감정을 유지했다.
새벽부터 이어진, 날카롭게 날이 서있던 예리함은 자취를 감추고.
그의 곁에 맴도는 것은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이가 느끼는 것만 같은 평온함.
‘전부 부질 없는 짓을. 네놈은 나름대로 최선의 수라고 꺼내든 것이냐.’
자신의 몸뚱이를 내어주고, 의식만이 간절히 남은 그가 달려든다.
하지만 로에르의 검은 페르젠에게 닿지 못했다.
공간과 공간 속에 이어지는, 페르젠이 불러 온 괴이의 실자락은.
당연히 그것을 잡아 당겨 억지로 공간을 왜곡시키는 것도 가능했으니까.
때문에 마치 팔면체처럼, 로에르 주위에 왜곡시킨 공간을 감옥처럼 투영하자 내지르는 그의 검은 엉뚱하게도 천장에서 치솟아 올랐다.
또는, 전혀 페르젠에게 닿지 못할 위치에서 날이 튀어나오며 허공을 가로 지른다.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그의 몸뚱이는 분명 직진했을지언데, 뜬금없이 구석진 곳에서 튀어나와 바닥에 발을 헛딛고 쓰러진다.
……그가 어떠한 각오를 했든, 어떠한 대가를 치렀든.
결코 좁혀질 수 없는 불합리한 격차라는 것이 이미 거대한 간극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만약 관객이 있었다면, 그들은 로에르의 모습을 보며 우스꽝스러운 희극이라고 깔깔 웃어댔을까.
“로에르.”
네 놈은 이것이 일종의 종막극이라 하였느냐.
곧 완전히 무너지려고 하는 창고의 내부를 바라보며, 페르젠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짐승처럼 울부짖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종막극이 내려진지는 한참이 지났거늘……”
네 놈은 도대체 어떠한 극의 종막을 내린단 말인가.
완성조차 되지 못한 미완성의 이야기.
또, 그것을 이끌어 나가야 할 주연은 진작 죽어버린 상황.
맞물려 돌아가야 할 톱니바퀴는 멈추어 버렸고.
영원히 해가 저물지 않는 세계처럼.
영원히 결말이 나지 않는 한 편의 영화처럼.
‘네 놈이 그렇게도 바라는……’
이 악당의 몸뚱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은, 진작 폐지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진 시나리오인 것이다.
“흐으아아아아악!!!”
희미하게 울음이 뒤섞인 그의 처절한 비명이 창고 내부를 울리고.
간절하게, 악착같이 내딛는 그의 걸음은 출구가 없는 길을 맴돈다.
사실 이제 와서 악당인 자신에게 권선징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것도 웃긴 일이지 않겠나.
시엘 미드포드──이야기의 주인공이 죽어버린 그 시점에서.
이 세계는 더 이상 소설의 골자 따위가 아니었고.
자신은 악당의 역할을 부여 받은 등장인물 따위가 아닌.
스스로 악당의 삶을 살아가게 된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그래, 역할은 어디 타의에 속하여 자신이 항거 할 수 없다 해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내딛는 자의이기에.
동화속의 이야기처럼.
악당인 자신이 대척점에 서있는 존재에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스스로가 선택을 하지 않는 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촌극은 이만 하면 되었다.”
박수갈채조차 아까운 그의 발악을 차갑게 바라보며, 페르젠은 사역하고 있는 이사벨을 앞으로 한 걸음 내딛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토록 무능한 자신의 처지에 분노라도 하듯, 결국 쥐어든 검을 직선으로 내던져 버리는 로에르.
훅!
당연히 그 검은 올곧은 경로를 통해 페르젠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와 바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순간, 로에르는 자신의 검집을 쥐어 들었다.
머리만을 제외하고, 보잘것 없는 몸뚱이를 전부 바친 대가로 손에 넣은 힘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기회의 순간에, 낮을지라도 선명한 가능성을 부여한다.
……푸르게 전신을 타고 퍼져나가는 마력의 흐름.
이것은 그의 몸이 한층 담금질 되어 한단계 높은 경지로 탈바꿈 되는, 죽음을 앞둔 회광반조의 각성이 아니라.
타인에게 소환되어 그와 거래를 맺은 괴이가.
몸뚱이를 부수어트리고.
그 잔재를 모두 쥐어 짜내어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 뿐이었다.
그 끝에, 일그러진 한점을 파고드는 마력이 특정 공간의 왜곡을 정상화 시키고.
드러난 틈새로 자신의 검집을 집어더진 로에르는……
챙!
정확히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와 바닥으로 향하던 검의 궤도를 순식간에 틀었다.
그러자 페르젠의 붉은 눈동자가 일순간 크게 떠진다.
원소 마법사와 다르게, 흑마법사가 마법을 시전하려면 자신의 시신에게 의식을 분할시켜야 하는 과정이 하나 더 추가 되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발빠른 대처를 하는 것이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픽!
하지만 날아드는 그의 검은 페르젠의 목덜미를 살짝 베고서 뒤쪽의 벽에 틀어 박혀, 솟아오르는 화마에 허망히 집어 삼켜진다.
주륵.
베인 살점을 통해 흘러나오는 선명한 피.
목의 동맥은 불과 피부로부터 5 ~ 7cm 안팍에 위치한 낮은 곳에 있는 만큼.
조금만 더 그의 계산이 정확했더라면, 페르젠은 틀림없이 치명상을 입었으리라.
스륵.
손바닥을 조심히 가져다대니, 팔목을 타고흐르는 피가 걷어 올렸던 소매를 천천히 적셔 나간다.
뒤이어 올라오는 것은 화끈한 통증과 따가움.
그에 페르젠은 이사벨을 사역하여 자신의 상처 부근을 조심히 얼렸다.
살짝 찌푸려 진듯한 그녀의 미간이, 칠칠지 못하게 이런 것에 당하고 있느냐고 나무라는 듯 하다.
하지만 촌극이라 해도, 극의 구성에 반전은 항시 들어가는 요소가 아니던가.
저벅.
비틀……
자신의 몸에서 강제로 쏟아낸 마력들로 왜곡된 공간을 넘어, 바싹 말라버린 듯한 몸으로 로에르가 다가온다.
마력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곳부터 시작해,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망쳐버린 그에게 더이상 자신을 위협할 요소 따위는 없을 것이다.
삶이 아닌, 이야기에 빗대어 본다면.
로에르의 위치는 아마도 조연이겠지.
아니, 어쩌면 그 조차도 과분한 역할일까.
그런 그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움직여 본다 한들, 멈추어버린 전개가 시작되는 일은 없으리라.
초침이 돌아 분침이 돌고, 분침이 돌아 시침이 돌듯.
가장 중요한 초석인 초침이 망가진 시점에서.
시계는 그 날 멈춘 그 시간을 영원히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크……! 끄흐흑……!”
손을 뻗는 그가 자신에게 닿지 조차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철푸덕 쓰러진다.
뒤이어 열리는 명계의 문과, 그의 몸에 달라 붙은 괴이가 꿈틀 거리는 것을 보아하면.
이제 대가를 넘겨 받기 위해, 목만 남긴 채 그의 몸뚱이를 가지고 저편으로 퇴장하려는 것이리라.
일부러 머리를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를 대가로 바친 건, 반역죄를 통해 교수형에 처해지는 것을 고려한 걸까 싶었다.
그는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걷는 자이나, 저토록 신체가 망가진 이상.
황실도 굳이 그의 시신을 보관하려 들지는 않겠지.
“로에르 폴 비스타인 클로디아. 너는 간악하고…… 참으로 겁쟁이구나.”
원한과 복수심을 대의로 포장하여 쏟아내고.
정작 그는 이후 가문과 가족들이 받게 될 업화는 죽음으로 외면하려 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살점을 조금씩 조각내며, 머리를 몸뚱이와 떼어내려는 괴이의 움직임을 느낀 채.
로에르는 아득바득 고개를 치켜들어 페르젠을 쏘아다 보았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진흙담에는 덧칠 할 수가 없다……”
“……”
언젠가 자신의 추악한 이면이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암시.
그러나 페르젠은 그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귀족이라고. 문학적 소양을 멀리 하지는 않았구나.”
그것이 네 마지막 유언이라면.
필히 이 가슴속에 새겨두도록 하마.
콰득!
잔혹한 살육음과 함께, 로에르의 머리가 몸뚱이로부터 떨어지고.
열리는 명계의 문 너머로 그에게 달라 붙어 있던 괴이가 기어 나간다.
얼추 너머로 보이는 그곳의 풍경이 왜 이리도 익숙하고 그리운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걸음을 내딛어 안쪽으로 향하려 했던 페르젠은, 제정신을 차리고 엘리자베스 황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출혈은 컸지만, 미세하게 숨이 붙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과연, 이곳의 의원들이 황녀를 살릴 수는 있을까.
로벨리움 왕국 내에서의 일에 관해 흉이라 점지를 해주었던 엘리자베스 황녀의 말이 뇌리를 스쳐, 페르젠은 잠시 멈칫했으나.
상념을 접고 그녀를 품안으로 안아들었다.
그리고 페르젠의 의지를 따라 사역당하고 있던 이사벨이 로에르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마치 그것을 등불 삼아 아름다운 얼음을 펼친 채 지독한 화마를 헤쳐나간다.
“엘리자베스!”
“화, 황녀 전하……!”
“백작님!”
“페르젠!”
안절부절.
바깥에서는 불길을 잡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유리엘과 레이몬드 황자, 그리고 여타 귀족들이 빠르게 달려온다.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한 뒤 의원을 부르고, 로에르의 수급을 보자기에 싸기 시작하는 이들.
동시에 클로디아 가문을 향한 적나라한 비난과 함께, 자신을 칭송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을 귀담아 들으며, 페르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보고 있느냐. 로에르.’
썩은 나무로 조각한 수려한 조각상과, 화려하게 덧칠 되어 빗물에도 무너지지 않을 진흙담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위험한 독을 품었을 수록 외관이 아름다운 독버섯처럼.
따르는 이들은 존경과 경의를.
충성을 받는 자는 신뢰와 안도를 느끼게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정의를 뒤집어쓴 악의 꽃이 지금 이곳에서 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