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EP.162
예리하게 날이 서있는 듯한 아침 식사 자리.
하지만 유페미아와 라우라 또한, 어째서 페르젠이 저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지 모르지는 않았기에.
이 살이 아려오는 듯한 분위기를 인내하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페르젠은 나름대로 지금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갈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나.
오히려 그로 인한 냉랭한 기색이, 주변을 단단히 사로 잡고 있었다.
‘글렀군……’
콜록!
식사를 하다 사레가 들린 라우라가 자신의 눈치를 수차례 살핀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의 시작으로 뒤숭숭한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는데.
그것은 오착이었나 싶어 옅은 실소가 지어진다.
“유리엘.”
“응……”
“오늘은 날이 날이니, 조금 일찍 가도록 하는 게 좋겠구나.”
“알았어…… 밖에 먼저 나가 있을게.”
굳이 로에르가 아니더라도.
엘마르크 제국 입장에서는, 빠르게 선수를 치지 않는 이나스 왕자가 답답할테기에.
다된 밥에 재를 뿌리려 할지도 모른다.
엘마르크 제국이 전쟁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려, 내통하는 자들이 거리를 두게끔 만들기는 했어도.
그것을 단순한 연막으로 치부하고 꾸준히 내통을 이어오고 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때문에 정보가 새어 나갔다면……
“……”
어느덧 생각을 마치고 나니, 페르젠은 유페미아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문밖에 서있다는 걸 깨달았다.
확실히 시엘 미드포드를 죽이기 위한 일의 연장선으로, 이 그림을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나.
그 끝이 보이니, 스스로가 놀랄 만큼 예민해져 있는 모습에 페르젠은 낯섦을 느꼈다.
사실 생각해보면 엘리자베스 황녀와 레이몬드 황자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게끔 바람을 넣을 게 아니라.
지루한 시간 끌기에 불과할지라도, 형님인 제레미아에게 부탁하여 순수한 자금력의 싸움으로 한 번 밀어붙여 보아도 좋았을 텐데.
어째서 자신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꺼려한 걸까.
‘그렇군.’
자문(自問)에 대한 자답(自答)은, 의외로 느리지 않게 도출되었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이 악당의 몸뚱이는, 무의식적으로.
로에르라는 눈엣가시를 치우기 위해, 족쇄를 억지로 벗어 던지고 이빨을 드러낼 틈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궁지에 내 몰린 쥐새끼가 자신을 물어, 합법적인 사냥을 할 수 밖에 없게끔.
그러하다면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긴장감은……
일이 어떤 식으로 해결될지 모른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이전에.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짐승의 본능 같은 것이리라.
또각.
이내 작게 심호흡을 마친 페르젠이,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유리엘과 함께 로벨리움 왕국의 왕성으로 향한다.
* * * * *
왕성의 첨탑, 그 꼭대기에 놓인 종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울려 퍼진다.
시각은 오전 12시.
그리고 왕성 아래에 보이는 광장에는, 수도에 머무르고 있는 대부분의 백성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백작님.”
“왜 그러지.”
북부에서 부터 자신을 따라온, 젊은 귀족의 부름에 페르젠은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저리 모여 있게 된다면…… 엘마르크 제국에서 잔혹한 수를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지는 않을 걸세. 혁명에 물들어 자신들을 대신하여 우리들을 적극적으로 몰아내줘야 할 장기말을, 그들이 스스로 죽이겠나.”
“……”
“오히려 정보가 새어나갔다면, 이 연설 자체를 무마 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으니. 왕국 내를 꼼꼼히 순찰하도록 하게.”
“예.”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는 많이 들려오나, 서로가 말을 섞는 소음은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기에.
도리어 무겁고 정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덜컥!
그 끝에 커다란 문이 열리며, 로벨리움 왕국의 제 1 왕자가 들어서자 페르젠을 비롯한 귀족들은 얌전히 그가 나아갈 길을 터주었다.
“……”
그리고 1 왕자는 그들의 엄숙한 기색을 느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광장에 모인 백성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
미래가 창창한 젊은 사내와 여인들.
부모의 품에 안기어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들.
저 모든 백성들이 나약한 자신의 왕국에 태어나 두 제국의 힘겨루기에 처절히 고통 받는 상황이 마음을 옥죄여온다.
그러나 제 1 왕자 모리스는, 그 무엇보다.
광장의 저 뒤편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피를 나눈 동생──이나스를 확인하고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오늘 하게 될 자신의 연설을, 차후 이나스가 수긍하게 된다면.
그는 망나니 왕자라는 오명 뿐만이 아니라.
엘마르크 제국이라는 거대한 악을 왕국으로 친히 끌어들인 천하의 대역죄인이 되겠지.
실상은 이 왕국을 위해, 그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끌어안고 희생을 하고 있는 아이인데.
그것을 이 세상은 알아주지 못한다.
……그리고 저 아이의 형인 자신 또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 두 손으로, 여린 등을 절벽 아래로 밀치려 하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둘이 함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던 며칠 전.
원하는 것이 없느냐는 자신의 말에.
그저 오랜만에 왕성에서 마시는 차와 쿠키가 맛있다고 아이처럼 웃던 동생의 미소가 뇌리를 스친다.
그래, 이나스 덴 프로이센 로벨리움.
그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
고작 그 초라한 다과를 대가로 받았을 뿐인 것이다.
그러니……
“들으시오!”
사랑하는 나의 동생아.
“나! 모리스 덴 프로이아 로벨리움은! 지금 이 자리에 에르네스 제국의 대리인으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만약, 다음 생에도 우리가 다시 형제로 태어나게 된다면.
“그대들이 살아가는 왕국의 왕자로서,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서있소──!”
아무런 걱정 없이 식사를 하며.
또, 아무런 근심 없이 뛰어놀도록 하자꾸나.
* * * * *
‘형님……’
머나먼 거리이지만.
잠깐 이나마 선명히 마주쳤던 시선에, 이나스는 쓰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동생은……’
당신의 상상만큼 나약하지 않습니다.
「 192명의 사상자를 불러 일으킨, 그날 밤에 있었던 지진은……! 다름 아닌 엘마르크 제국의 소행이었소! 」
「 나의 백성들이여……! 그대들이 에르네스 제국을 향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더 이상 휘둘리지 마시오…… 」
「 그대들의 삶은, 온전히 그대들의 몫이라는 걸 어찌 잊었소! 」
「 남이 가져다 준 불행조차 스스로의 것이라 생각하게 된 나의 백성들이여…… 」
울어도 스스로 울으시오.
웃어도 스스로 웃으시오.
더는 타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휘둘리지 말고.
「 스스로의 판단 아래에 분노 하시오. 」
「 스스로의 판단 아래에……! 그 분노의 끝을 겨냥 하시오…… 」
「 힘없는 왕국에 태어난, 사랑하는 나의 백성들이여. 」
「 부디, 주체적인 삶을 살아 주시오. 」
이것이, 못난 그대들의 왕자가.
마지막으로 전할 수 있는, 간절한 호소이니.
부디 귀담아 들어 주시오.
“……”
“……”
“……”
광장에서 맴도는 침묵은 고요함을 만들어낸다.
부모의 품에 안긴 아이조차 눈물을 터트리지 않고,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모리스 왕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연설은 에르네스 제국의 의견을 수렴한 점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쏟아낸 부분도 있었기에.
와닿는 그 진정심은, 충분히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저 위에 서있는, 자신의 형에게 향해 있는 이들이 시선이.
차후 뒤를 돌아 볼 때면, 얼마나 적대적인 기색을 머금고 있을지 상상이 가서 일까.
이나스 왕자는 살포시 두 눈을 감았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이것이 오랜 세월, 힘없는 왕국을 향해 원망을 쏟아냈던 백성들의 보복이라 생각한다면.
이나스 왕자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후작.”
“……”
“가지. 이들의 분노가 끝으로 치밀었을 때, 도리어 내가 그것을 부정한다면. 화살의 시위는 저들이 당겼어도, 그 촉은 반대로 저들의 목을 꿰뚫을 것이네.”
시작을 했다면, 그 끝까지 완벽함을 유지해야 할 테기에.
이나스 왕자는 곁에 서있는 프리기아 후작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수월히 뱉어냈다.
“후작?”
그러나 이나스 왕자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특히, 저들의 행태에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고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는 프리기아 후작의 모습에 강렬한 괴리감을 느꼈다.
“되었습니다.”
“뭐……?”
“왕자. 나는 말이지요.”
“……”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을 싫어 합니다.”
비릿하게 입꼬리를 말아올리는 프리기아 후작이 이나스 왕자를 내려다본다.
“그런 족속들은 워낙 다루기가 까다롭지 않습니까? 반면 사는대로 생각하는 사람처럼 장기말로 써먹기 좋은 건 없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쓸데없이 평민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에르네스 제국의 멍청한 계몽적 형태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리 미개한 벌레들을 가르친다는 것에 봉사한다는 보람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네 놈……!”
“결국 당신과의 소꿉놀이는, 짤막한 여흥조차 되지 못하는 군요.”
피식, 한번더 비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과 함께.
쿠우웅──!
땅이 자그마하게 흔들린다.
콰아앙──!
그 뒤를 이어, 로벨리움 왕성 내에 위치한 창고가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거센 불길에 휩싸이자……
꺄아아악!
광장에 모여 있던 백성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매캐한 탄내를 풍기며 자신들 왕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왕성이 타들어가니, 그들로서도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할 만큼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마치 그들의 비명소리에 이끌리는 것처럼.
로벨리움 왕국의 수도 곳곳에서는, 수천 마리의 검은 나비떼가 왕성을 향해 아름다운 날개짓을 선보였다.
* * * * *
“일단 나가는 게 급선무다! 마법사들은 화마를 물리치고 기사들은 귀족들을 안아들어 대피시켜라!”
바깥 못지 않게, 혼란한 왕선 내부에서도 피난길이 이어졌다.
작금의 불길은 마법으로 인한 소행이 아니기에, 그 구조식을 역산하여 마력으로 되돌리는 것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불길을 잠재우자니, 내부에 있는 이들로서는 발화점이 어디인지를 찾지 못했기에.
일단은 밖으로 나가서 발화점을 찾은 뒤 그곳의 불길을 잠재우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물론, 대피 자체는 곧장 밖으로 향할 수 있는.
제 1 왕자가 연설을 했던 발코니가 있었으나.
도리어 그곳으로 탈출을 감행하는 건, 적이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기에 이들은 노련하게 방향을 틀었다.
뒤쪽에서 엄습하는 불길과 매캐한 연기, 그리고 곧장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
여기서 본능적으로 꺼림칙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바보라 할 수 있겠지.
“유리엘……!”
“다, 당신 뒤에 있어……! 걱정하지마!”
진작 이사벨의 시신을 꺼내들어 달리던 페르젠은, 자신의 모든 신경을 유리엘 쪽으로 쏟아 부었다.
작금의 이 소행은 아무리 봐도 로에르의 짓은 아닌 것 같았으니, 누가 타깃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를 챙기는 건 당연한 이치이리라.
‘……제 1 왕자는 내가 데리고 있으니, 황자 전하와 황녀 전하만 무사히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되는가.’
불길보다, 이쪽을 귀찮게 만드는 건 자욱하게 덮쳐오는 매캐한 연기였기에.
페르젠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틀어 막은 뒤 근처의 기사에게 물었다.
“황녀 전하와 황자 전하는?”
“콜록! 황자 전하는 누가 보필 중인지 모르겠으나! 황녀 전하는 로에르 경이 안아들고 대피를 시키는 중일 겁니다!”
“그런가……”
찝찝하기는 했어도, 이것이 로에르의 짓이라면 득될 건 없어 보였기에 페르젠은 일단 관심을 껐다.
하지만 웃기게도, 이것이 엘마르크 제국의 소행이라 한다면.
그 또한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 짓이었다.
오히려 반발심을 키웠으면 키웠지, 줄이지는 못할 행동일테니.
오랜 세월 에르네스 제국의 속국으로 물들어 변화한 수도에서, 유일하게 과거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오직 이 왕성 뿐.
그 만큼 적지 않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왕성을 태우려 한다는 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그들 입장에서 이득 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발화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곳만 아니라면.
건물의 재질상 불길이 달라 붙지는 못해 외관만 조금 타들어가고 형태는 멀쩡하게 유지 할 텐데.
“저기……! 앞서 나간 자들이 먼저 탈출한 창문입니다!”
화마 속에서 변화하는 기압 때문에, 깨져버린 창문 쪽으로 내부의 연기가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안아든 귀족들과 함께 밑으로 뛰어 내리는 기사들을 뒤로하고, 얼음으로 길을 만들어 유리엘을 내려 보낸 다음 뒤 따르려던 페르젠은……
“……”
저 너머, 왕성으로 날아드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나비떼를 목격하고 몸을 멈칫했다.
그래, 불길이 치솟는 이쪽으로 날아드는 저것들은 결코 나방 따위가 아니었다.
날개의 끝 표면에 금색의 줄무늬가 그려진 검은색 나비──명칭은 프로베누스.
다른 이름으로는 재를 쫓는 나비라 하여, 흑사접(黑死蝶)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화륵!
파삭!
매캐한 탄내와 함께, 그을린 건물의 표면에 재를 쫓아 내려 앉는 나비들이 좀처럼 달라 붙지 못하는 불길에 타들어 간다.
그리고 흑사접들이 타들어갈 때 마다, 건물의 표면에 달라 붙지 못했던 불길은 선명히 옮겨 붙어 거센 화마를 뽐내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저 나비떼에서 느껴지는 이 냄새는, 틀림없이 기름이겠지.
“페르젠……!”
아래에서 유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페르젠은 내려갈 수 없었다.
아니, 내려가지 않았다.
재를 쫓는 나비, 흑사접을 이용한 건물의 방화는……
유명한 추리 소설, 로젠메리의 소실의 마지막 권을 장식하는 피날레였으니까.
“하하……”
화륵!
옮겨 붙은 불길이 바람에 휘날리며 페르젠의 앞머리를 작게 태운다.
그에 페르젠은 얌전히 뒤로 떨어져 몸을 돌렸다.
이것이 단순히, 그 추리 소설에 영감을 받은 누군가가 모방 범죄를 일으켰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심지어 한 왕국의 왕성을 무대로 하여 말이다.
때문에 페르젠은 이것을, 명확히 자신을 겨냥한 초대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악착같이 모았던 이라면.
자신이 로젠메리의 소실이라는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테니.
‘그래……’
그러하다면, 이것이.
네가 만든 무대 이느냐.
“로에르 폴 비스타인 클로디아.”
수천 마리의 흑사접이 내려앉은 왕성이 일순간 검게 물들고.
그 나비들을 태우며 옮겨 붙은 불길이, 마치 저무는 꽃봉오리처럼 왕성을 감싸안은 채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페르젠은……
뚜둑!
터엉!
불똥이 내려 앉는 왕성 내부를 거닐며,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자신을 초대한, 로에르의 부름에 응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