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EP.161
구석진 외곽.
낡고 추레한 3층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틀림없이 경계를 해야함이 마땅한, 수상함이 물씬 풍기는 외진 곳이었으나.
페르젠은 조용히 삐걱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자욱한 먼지와 함께 창가 근처에 늘어진 거미줄이 얼마나 오랜 시간 방치된 건물인지 어림짐작하게 해준다.
또각.
또각……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계단을 타고, 종이에 적혀져 있던 3층으로 올라오니.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건, 추레한 의자에 앉아 있는 로벨리움 왕국의 제 2 왕자──이나스 덴 프로이센 로벨리움.
“왔는가.”
“……독대는, 그날 이후로 오랜만이군요.”
맞은 편에 자리 잡힌, 허름한 의자에 앉아 이나스 왕자는 마주한 페르젠은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백작.”
“예.”
“선택의 연속을, 사람들은 삶이라고 부르네.”
“……그렇지요.”
“그렇다면 역시,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했을 때. 그 선택지가 많을 수록 그 사람은 유능한 사람이 되는 거겠지.”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면 반대로, 그 선택지가 좁은 사람은, 필시 무능한 사람일 터.”
“……”
“포부는 좋았으나, 그 포부가 주제에 걸맞지 않았기 때문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나 자신의 무능함에 비통함이 차오르네.”
“자책은 자존감만 떨어트리니……”
“자책이 아닐세.”
초췌해진 얼굴로 이나스 왕자가 자조섞인 미소를 짓는다.
“이런 속마음조차 편히 내보일 신하가 곁에 없어…… 타국의 귀족인 그대에게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
“참으로 웃긴 일이지.”
그래, 웃기다면 분명 웃긴 일이리라.
에르네스 제국은 오랜 세월 로벨리움 왕국을 속국으로 삼아왔으니까.
이번에 그에게 억지로 제시한 선택지 또한……
전쟁의 불씨가 되겠느냐.
그러지 않으면, 얌전히 에르네스 제국의 속국으로써 살아가겠느냐이니.
“어제…… 형님과 함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네.”
“……”
“나는, 그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어.”
“……”
“감사하다는 말 정도는…… 들어도 괜찮지 않겠나……?”
“훌륭한 선택을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하…… 훌륭한 선택이 아니라는 건 그대도 알고 있을 텐데 너무하는 군.”
허름한 탁자 위에 놓인, 고급스런 잔에 와인을 따라 마시는 이나스 왕자.
자신이 오기전에도, 상당히 마셨는지 은은한 취기가 그의 안색에 드리운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라 하였으니.”
“……”
“틀림없이 인생 최고의 날도……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라 믿네.”
“……”
“다 허물어진 국가 위에 세워질 것이 무엇이 있겠나. 그래서 나는 최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최악을 피해 차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무능한 짓을 한 게야.”
짊어진 짐을 나눌 수 없는 왕.
그것이 얼마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지 눈앞의 이나스 왕자는 자신에게 선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브뤼테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작금의 황실도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백작……”
“예.”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
“우리 왕국은 번성할 것이네.”
“……”
“그대 제국의 지배에서도 벗어날 것이고. 오히려 우호 관계를 쌓고 싶어서 안달이난…… 그러한 나라가 될 걸세.”
“……”
“어쩌면 또 하나의 제국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지!”
울음기가 묻어 나오는 그의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게, 눈가는 웃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나스 왕자의 모습은 더욱 비참해보였다.
엘리자베스 황녀가 말해주었던,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울었다는 소리가 거짓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만큼 그의 모습은 위태로워보였고, 조금만 툭 밀치면 벼랑 끝으로 힘없이 떨어질 것 같았다.
“어찌…… 내가 과분한 꿈을 꾸는 것 같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페르젠은 고개를 저었다.
“꿈을 꾼다는 것은…… 당장 길이 없는 목적지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고 오는 것이니.”
그 발자취는, 언젠가 길을 잃은 미아가 된다하더라도.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줄 터.
그러므로 꿈이란, 배가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본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해주는 원초적인 동력이었다.
“하하…… 근래 들어본 말 중에, 가장 뇌리에 깊숙이 틀어 박히는 군……”
자신의 비극을 희극으로 표현하듯.
조금더 큰 목소리로 웃는 이나스 왕자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백작…… 아니,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이여.”
“예.”
“내가 만약…… 정말로 만약……”
“……”
“그대 황실의 황제 였어도, 그대들은 내게 지금의 역사와도 같은 충성심을 보내왔을까……?”
덜덜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잠겨든 슬픔을 읽은 페르젠은, 잠시 침묵을 머금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예. 저는, 브뤼테인은. 지금의 당신이 에르네스 제국의 황제 였어도, 변치 않는 충성심을 선보였을 겁니다.”
“……”
“이나스 덴 프로이센 로벨리움. 세간에서는 망나니라 불리우는 힘없는 속국의 왕자이시여.”
“……”
“제 짧은 소견이나마 위로가 되실지 모르겠으나, 당신은 결코 무능하지 않습니다.”
“……”
“당신은 분명…… 유능한 왕자입니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난파되기 직전인 배가 아니라.
암초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배와, 폭풍에도 굴하지 않고 항해를 함께 할 선원들이 곁에 있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지금의 왕국을 더욱 찬란하게 빛냈으리라.
그리고 자신의 이말에 울음으로 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서, 페르젠은 등을 돌렸다.
누추하고 허름한 건물을 나와 거리에 발을 내딛는다.
더 이상 그의 곁에 자신이 있을 필요는 없어 보였으니까.
물론, 몇 마디 말을 더 건네줄 수는 있었으나.
인생이란 본디, 승자가 패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는 법이므로.
페르젠은 산뜻하게 내려비추는 하늘의 햇살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비통한 한 왕자의 울음 소리가 장식한다.
* * * * *
거점으로 돌아왔을 땐, 오전 회의를 끝마치고 간단히 점심 식사 자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페르젠은 레이몬드 황자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자연스레 착석을 하였다.
“왔는가.”
“예.”
“백작.”
“……”
“그는 동이 트는 여명이 좋다고 하던가, 그게 아니라면 해가 저무는 황혼이 좋다고 하던가.”
상당히 은유적인 황자의 말이었으나, 그가 자신에게 무얼 묻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페르젠은 어리석지 않았다.
“노을 지는 하늘을…… 참으로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황자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흔히들 잿더미 위에는 그 무엇도 세워질 수 없다고 하나.
유일하게 잿더미 위에 세워질 수 있는 게 있다고 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평화이겠지.
누군가의 불행을 다리로 삼지 않는 한, 결코 평화에는 도달할 수가 없을 테니.
그래.
대가 없는 평온은 있을지라도.
대가 없는 평화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다.
인간이란 동물은 그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자연스레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불행이 뒤따른다.
요지는 그 불행의 주체가 자신이 되느냐, 아니면 타인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
“……음식이 식겠군. 들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잔잔한 침묵 속에서, 식사가 이어진다.
* * * * *
푸르스름한 기운이 맴도는 새벽.
침대 옆의 탁자가 가리키는 시계의 시각은 오전 3시.
이나스 왕자와의 만남이 있었던 이후로 이틀 뒤인 오늘.
자신들의 요구대로 제 1 왕자가 왕성에서 백성들에게 연설을 하는 날이다.
……그리고 계획대로, 이 연설을 이나스 왕자가 수긍해주기만 한다면.
로벨리움 왕국 내에서의 일은 일단락 되리라.
그러나 페르젠은 좀처럼 일이 너무나도 잘 풀려 나가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냐하면 미래의 길흉을 점지하는 엘리자베스 황녀의, 지혜의 신에게 내림받은 축복이 가리킨 것은 흉이었기에.
물론, 그 흉의 형태가 반드시 로벨리움 왕국이 엘마르크 제국의 속국이 된다는 걸 뜻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점지한 흉의 형태가 구체적이었다면, 이리도 긴장을 머금고 새벽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터.
‘술기운을 빌려 다시 잠들기에도……’
애매하기 그지 없는 시각.
결국 페르젠이 선택한 건, 잠이든 유리엘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일어나 창가에 앉는 것이었다.
불이 꺼져 어둑한 왕국 내의 거리 풍경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적막하여 묘한 소름이 돋게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고요함과 적막함이, 뒤숭숭한 페르젠의 마음을 조금씩 안정시켜나갔다.
“잠이 오지…… 않아……?”
“……깨웠느냐.”
“……아니, 나도 깊게 잠이든 건 아니었어.”
머뭇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난 유리엘이 자신 곁으로 다가와, 조심히 안겨든다.
“당신도…… 긴장이라는 걸 하는 구나.”
“내가 엎지른 일이다. 긴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겠지.”
“이거……”
“로에르에 관한 것이냐.”
움찔!
“알고…… 있었어……?”
“애초에 그의 곁에 붙어 있는 게 전부 알프레드 가문의 수족들인데. 그들의 보고가 멀리 떨어진 알프레드 가문으로 향할 것이 아니라면 네게 전달되겠지.”
“일단…… 별다른 이상은 없었어.”
“안다. 관찰했을 때 수상한 징조가 보였다면, 네가 진작 말을 했을 테니.”
“……”
“나는 오히려, 그가 너무나도 잠잠하기에 의아함을 느낄 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발목에 족쇄를 달아두고 열쇠를 없애버린다고 해서, 그 족쇄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건 아니지.”
“……”
“뼈가 깎이고, 살점이 뭉텅이로 찢겨져 나가는 고통을 감수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
그리고 로에르는 충분히 그러할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너무……”
지나치게 로에르를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애당초 과거의 그 일로 이리도 신경을 쓸거라면.
어째서 페르젠은 리지의 발을 그리도 무참히 망가트렸을까.
의문이 피어 올랐으나, 이 점을 깊게 파고 든다면 틀림없이 그의 역린을 건드릴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기에 유리엘은 좀처럼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솔직히 알고 싶었다.
페르젠이 숨기고 있는 이면을.
구석구석, 모든 것을 그에게 내어주는 만큼.
유리엘 또한 페르젠의 전부를 숨김없이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과 상충 되게도, 유리엘은 페르젠이 싫어하는 일을 바랄 수 없었기에.
그 자그마한 염원을 고히 묻어 둘 뿐이었다.
“유리엘.”
“으응……”
“궁금하느냐.”
“응?”
“이리도 신경을 쓰고 살아갈 주제에, 어째서 리지의 발을 처참히 망가트렸는지.”
“……”
품에 안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가 손을 멈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에 유리엘은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방안에 맴도는 침묵은, 바깥의 고요함과 맞물려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정적임을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유리엘은 페르젠의 심장소리를 무척이나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는 그의 박동.
이것은 여지없이 그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
‘치사, 해……’
드물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페르젠이었기에.
유리엘은 자신의 욕심을 억누르고, 느릿하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준비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
“그 준비가 끝이나면, 너에게 말을 해주도록 하마.”
페르젠은 일부러 ‘너에게도’ 라고 하지 않고, ‘너에게’ 라고 말을 하였다.
전자를 택했다면, 유페미아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었기에.
굳이 쓸데없이 그녀의 질투심을 유발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페르젠은 다시금 자신의 품에 안긴 유리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려주었다.
그리고 유리엘은 정확한 기약은 없었으나, 페르젠이 자신의 입으로 숨기고 있는 무언가를 알려주겠다는 확답을 주자……
좀처럼 기쁜 감색을 감추기 힘든, 아련한 행복이 차올랐다.
비밀은 자신 외의 누군가와 공유를 하는 시점부터,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될 리스크를 짊어지는 법인데.
페르젠은 자신을 믿고, 그것을 말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아내로서, 평생을 함께 할 반려로서.
그가 확실히 인정을 했다는 증표가 아닐까.
……그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내어준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싶어.
유리엘은 배시시 웃으며 페르젠의 가슴팍에 뺨을 비볐다.
그렇게 적막한 거리의 고요함을 배경삼아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머지 않아 어둠을 몰아내며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름다운 여명을 지켜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