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57화 (157/260)

< 157화 > EP.157

“……그대들은, 내게 얼마나 잔인한 요구를 하는 건지 알고 있습니까.”

단정한 차림새의 푸른 머리의 남성, 로벨리움 왕국의 제 1 왕자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레이몬드 황자의 말은 어디까지나 부탁의 어조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것을 듣는 제 1 왕자 입장에서는 강압적인 요구나 다름이 없는 것.

“제 동생은…… 상상이상으로 많은 짐을 끌어 안고 있군요.”

파리한 안색, 파르르 떨리는 입가.

초췌한 표정을 지으며 제 1 왕자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따르지 않는다 하여도 상관은 없다.”

“……그러면 엘마르크 제국에서 제 동생에게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겠지요. 이번 지진은 당신들이 일으킨 것이라고.”

“그렇지.”

“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제 1 왕자는 말끝을 흐렸다.

어떻게 나올건지는, 이미 그들이 보여주었으니까.

“시간이 필요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상관은 없다. 어차피……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이나스 왕자가 먼저 연설에 나선다면, 그것은 우리의 제의를 거부했다는 것이니까.”

“외간에서는 멍청이라 불리어도…… 제 동생은 똑똑한 아이입니다. 섣부르게 행동하지는 않을 테니, 정확히 3일의 유예 기간을 주십시오.”

제 1 왕자의 말에, 레이몬드 황자는 뒤편에 앉아 있는 자신의 가신들을 돌아보았다.

그에 여러 귀족들은 서로 눈짓으로 의견을 주고 받다,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3일 정도의 유예 기간은 줘도 상관 없다는 의사를 내보였다.

“……그리하지.”

허락을 건넨 레이몬드 황자가 몸을 일으킨다.

숨을 죽이고 있는 무거운 분위기와 다르게, 예상보다 빨리 끝이난 제 1 왕자와의 만남 때문인지 김이 빠지는 듯한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여러 보였다.

그리고 페르젠은 정말 로벨리움 왕국에 당도하여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이 나자 홀로 거리를 거닐며 유페미아와 유리엘이 있을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글쎄. 안 파는 게 아니라 거스름돈이 없는 거라니까!”

몇몇 상가에서 울려 퍼지는 상당한 크기의 고성.

그에 걸음을 멈추어 서고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페르젠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적혀 있는 시간을 볼 수 없는 시한 폭탄을 눈앞에 두고, 러시안 룰렛이라도 하듯 그것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황이 솔직히 편하지는 않았다.

……과연, 마지막에 그것을 품안에 안아들고 폭발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건 어느 쪽일까.

덤덤하게 걸음을 내딛는 페르젠은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 보았다.

적어도 오늘은, 그것을 신경 써야 할 때가 아니겠지.

왜냐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곳의 시한 폭탄과 다르게.

오늘 밤,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에.

확실히 터지는 폭탄이 자신의 거처에 있었으니까.

* * * * *

“끙……”

좀처럼 거동이 어려워 얌전히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던 유리엘은 간단한 보고서를 읽고는 옆에 내려 두었다.

로에르의 옆에 있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붙인 가문의 수족들은.

이렇게 몰래 자신에게 로에르에 관해서 보고를 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솔직히 그것을 읽고 있는 유리엘의 마음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적어도 그가 클로디아 가문에게 저지른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죄였으니까.

‘……적어도 지금처럼 살아가는 게, 어쩌면 서로에게 좋을 텐데.’

복수의 고리라는 건 그리 간단히 끊어지지 않는다는 걸 유리엘은 알고 있었기에.

절대로 복수할 상황이 나오지 않게끔 두터운 성벽을 쌓아 올리는 게, 오히려 클로디아 가문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읏……!”

잠깐 몸을 뒤척였을 뿐인데, 그 순간 허리에 들어간 힘 때문인지 찌르르하는 통증이 옅게 올라온다.

그럴 때 마다 뇌리는 그의 커다란 물건이 자신의 뒤를 거침없이 쑤셔댔던 기억과, 천박하게 실금을 했던 기억 등을 되짚어 주었기에 유리엘은 자연스레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개인적인 선호도 측면에서, 유리엘은 다시는 뒤로 그와 관계를 가지고 싶지 않았으나.

기억 상, 자신을 안을 때 페르젠이 가장 거친 모습을 보여 준 순간이었기에.

……다른 의미로, 적잖은 망설임을 머금게 된다.

언제나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사람이 아닌 한 마리의 짐승처럼 자신과 교미를 하려 드는 모습을 볼 때면.

그것이 어찌나 정신적인 충족감을 채워 주는지.

누군가를 자신의 색으로 서서히 물들여간다는 건, 마약 못지 않은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섹스를 할 때는 이성 보다 본능이 앞지르는 법이었기에.

언젠가 유페미아는 그와 잠자리를 가질 때면 크나큰 위화감을 느끼리라.

낮에는 자신이 페르젠을 빌리는 입장이 된다 하여도.

밤에는 도리어 유페미아가 자신에게서 페르젠을 빌리는 입장이 될 것이다.

분명 평소처럼 페르젠과 몸을 섞는데, 거기서 낮섦을 느끼게 된다면……

유페미아는 어떠한 반응을 보여줄까.

그 상상이 적잖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기에, 유리엘은 작게 웃었다.

* * * * *

“으, 응……”

상당히 이른 시간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페르젠의 손에 유즙을 짜내어진 유페미아는 흐트러진 옷가지를 정돈하며 페르젠을 돌아보았다.

“아……”

손 끝에 희미하게 묻은 자신의 유즙을 닦지 않고 혀로 핥는 페르젠.

“여, 여기……!”

그 모습을 보자마자 어찌나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몰려오는지.

근처의 수건을 쥐어들고 황급히 페르젠 앞으로 내민 유페미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옅은 웃음을 머금은 페르젠은 그것을 한쪽으로 살포시 치워두더니, 그대로 그녀의 허리 뒤에 손을 받친 뒤 고개를 숙인다.

“흐앙……!”

당혹감에 제대로 정돈되지 못했던 옷가지 너머, 밖으로 나온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는 그가 빳빳하게 일어난 유두를 입안에 넣고 이빨로 살짝 깨문다.

그러자 유페미아는 자연스레 자신의 분홍빛 유두 끝에서 흘러 나오는 희멀건 유즙이 그의 입가를 적셔 나가는 걸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움찔.

움찔.

자신의 젖을 거리낌 없이 약탈해나가는 강압적인 희롱인데.

그녀는 별다른 저항조차 내보이지 않고, 자신의 아이를 위한 젖을 페르젠에게 얌전히 내주었다.

“하으…… 으, 으응……”

분명 더 이상 그가 자신에게서 가져 갈 것이라고는 없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 흐…… 응……”

그렇게 얼마나 되는 시간이 흘렀을까.

자신의 가슴을 베어물던 페르젠이 입가를 떼어내자, 유페미아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두 손으로 가슴을 슬며시 가렸다.

천박하게 발기한 분홍빛 유두 끝에 새겨진 그의 적나라한 이빨 자국.

어찌나 희롱을 당했는지 조금은 팅팅 부은 것 같았고, 움찔움찔 떨리며 흘러나오는 희멀건 유즙은 애처로운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듯 했다.

스륵.

내려간 옷자락을 깔끔하게 끌어 올렸을 땐, 발기한 유두가 옷의 표면 위로 그대로 드러났기에 유페미아는 얼굴을 잔뜩 붉혔다.

“마, 맛 없다면서……”

“글쎄. 더는 밋밋하지가 않구나.”

배 안의 아이가 조금씩 자라듯.

그녀의 몸 또한, 어머니가 되어갈 준비를 시작하며 밋밋하던 유즙을 조금씩 달콤한 모유로 바꾸고 있었다.

그 선명한 변화를 곁에서 느끼던 페르젠은, 자신의 입가에 맴도는 달콤한 모유의 냄새를 음미하며 유페미아를 침대에 부드럽게 눕혔다.

“……오래, 걸려요?”

“그렇겠지. 어쩌면 밤을 샐지도 모르겠구나.”

일이 있다고.

오늘 밤은 함께 잘 수 없다고 말을 했던 페르젠.

어젯밤 시끄러울 만큼 침대가 들썩 거리던 소리가 밑에까지 울려 퍼졌기에.

그를 붙잡아 두고, 해당 소음의 기억을 덮어쓰고 싶었는데……

“응……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유페미아는 욕심을 내지 않고, 얌전히 페르젠을 보내주기로 했다.

어차피 그가 자신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브뤼테인의 저택에서 홀로 생활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래…… 곧 해가 질테니, 밖으로 나가려 하지는 말고. 조용히 자고 있거라. 아침에 보러 오도록 하마.”

“응……”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던 그가 걸터앉아 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 문이 타악하고 닫히자, 유페미아는 조금씩 어둠이 내려 앉으려고 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배 위로 손을 얹혔다.

* * * * *

유페미아의 바로 옆방에서 괴벽이 발현되면, 틀림없이 소음이 번져 나갈 테기에.

라우라는 방을 옮긴 채 옷을 갈아 입은 뒤 얌전히 페르젠을 기다렸다.

이 망할 괴벽이 아니었다면, 로벨리움 왕국으로 와서 지루한 하루를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특히나 최근 들어, 그 지루함을 책을 읽으며 보내거나 마법의 탐구를 하며 보내는 시간 보다.

수음을 통해 보내는 시간이 더욱 길어져 라우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제노바 백작가의 사람들이 대대로 불감증을 앓게 되는 건, 타고난 천성이 음란하다는 점을 상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라우라는 최근 자신의 모습에 적잖은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분명, 인내심은 상당하다고 생각 되는데.

스스로가 성욕에 관하여 절제를 하지 못하는 모습은, 다른 의미로 충격이 컸다.

‘……이런 성향이, 있었나.’

드높은 자신의 프라이드를, 스스로가 깎아 내리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질척한 배덕감.

사실 육체적인 쾌락보다, 그로 인한 정신적인 쾌락이 계속해서 수음을 유도하게끔 만드는 원인이었다.

딸칵.

방문이 열린다.

“아, 아, 안녕…… 하, 하세요……”

“인사는 되었으니, 준비부터 하지. 곧 달이 떠오를 테니.”

“네……”

무미건조한 페르젠의 목소리에, 라우라는 자신의 입가에 스스로 재갈을 물렸다.

“흑……!”

그러자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페르젠이 밧줄을 자신의 허리춤에 묶고, 그것을 침상의 다리 부근에 연결하여 더할 나위 없는 개목줄을 완성 시킨다.

“동일하게 제단은 아침까지 압수하도록 하마.”

“네. 읏……”

자신의 뒷머리를 들추며 쇄골 쪽으로 파고 들어오는 사내의 커다란 손이 걸려 있는 로사리오를 건드린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쇄골을 더듬거리는 그의 손가락에 라우라는 몸을 움찔하며 상당히 더운 숨을 내쉬었다.

……외간 여자의 몸을 만지는 것에 이리도 거리낌이 없는 그가 어처구니가 없긴 했으나.

어차피 페르젠은 자신을 여자보다는, 로젠베르크를 옭아맬 수 있는 노예 정도로 보고 있을 테니 당연한 게 아닐까 싶었다.

오히려 이 반응은 자신이 그를 사내로 인식하기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

“머리가 상당히 길었군.”

“아…… 네…… 부, 북부로 출발하는 시, 시점에서…… 하, 한 번도 과, 관리를…… 모, 못받았으니……”

엉덩이 윗 부근까지 내려오던 백발은 어느새 허벅지 부근까지 자라 정말로 폭포수가 흐르는 듯한 광경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내일은 솜씨 좋은 사람을 붙여주도록 할 테니, 그에게 손질을 맡기거라.”

“가, 감사합니다……”

“감사 할 필요는 없다.”

본디 이 시대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그다지 선호 받지 못하는, 흔치 않은 일인데.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 들이는 라우라의 모습을 보고 있자하니, 파보면 파볼수록 세세한 부분에서 정말 고증이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어 페르젠은 속으로 가벼운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조용히 그녀의 곁에서 떨어져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페르젠은, 조금씩 저무는 노을 너머로 어둠을 동반한 찬란한 보름달이 아름답게 떠오르자……

삐걱!

침대 위에서 내려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라우라를 보며,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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