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9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페르젠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잠깐의 불쾌함도 잠시, 코로 스며들어오는 달콤한 체향과 여인의 살냄새에 페르젠은 몸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아기처럼 자신의 옆구리에 안겨들어 새근새근 숨을 내뱉고 있는 유리엘.
잠결에 어수선하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 얼굴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스륵.
커다란 손을 뻗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페르젠은 마주보는 자세로 몸을 돌려 그녀의 머리맡에 고개를 숙였다.
“으응……”
그것이 조금 불편했던걸까.
몸을 뒤척이는 유리엘이 자신에게 등을 보이며 반대로 눕자, 페르젠은 슬그머니 허리춤으로 손을 올려 그녀의 부드럽고 풍만한 가슴을 주물럭 거렸다.
커다란 가슴이 자신의 손아귀에 짓눌려 형태를 일그러트릴 때 마다, 풍겨오는 체향이 서서히 짙어져 페르젠은 조금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
그러자 아침이기에 성욕과 무관하게 단단히 발기한 성기가 유리엘의 엉덩이 골을 타고서 미끄러지듯 파고 들어가, 매혹적인 허벅지 사이로 자리를 잡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세차게 껄떡이며 수컷의 냄새를 진하게 풍긴다.
“아……”
기어코 페르젠이 선사하는 자극에 어렴풋하게 눈을 뜬 유리엘은, 잠깐 동안 시체처럼 멍을 때리다 화들짝 상체를 일으켰다.
“끄힉……!”
하지만 허리의 힘을 이용해 몸을 일으킨 그 순간, 찌르르하게 타고 올라오는 통증에 유리엘은 아픔을 호소하며 페르젠의 몸 위로 철퍼덕 엎어졌다.
“아, 아파……”
“얌전히 누워 있도록 하거라. 허리가 상당히 아플 것이다. 어젯밤 그리도 혹사를 당했으니, 몸이 비명을 내지르지 않는 게 이상하겠지.”
수차례, 과할 정도로 휘어진 자세를 유지했던 유리엘을 기억하고 있는 페르젠이기에.
그녀의 허리 부근을 마사지라도 해주듯 꾸욱꾸욱 지압해주며 자신의 옆에 부드럽게 눕혔다.
그러나 유리엘은 이러한 자상함조차 제대로 즐길 여유도 없이, 뇌리에 어젯밤의 기억이 스쳐지나가자 얼굴을 잔뜩 붉히며 눈을 감았다.
어쩌다 잠이 들었는지 제대로 된 기억은 없었지만.
그와 몸을 섞던 도중 실금을 했던 건 너무나도 선명히 떠올라 솔직히 말하자면 수치심에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다 큰 여자가, 결혼까지 해서.
심지어 남편 앞에서 그러한 실례를……
“유리엘.”
“응……”
“신경쓰지 않는다. 네 칠칠치 못한 모습이 나름 신선하기도 했고.”
관계를 끝마치고, 시녀들이 이불보를 치울 때가 되어서야 페르젠도 눈치를 챈 것이기는 하나.
그다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아 유리엘의 허리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해주었다.
“그, 그냥…… 아무말도 하지 마……”
페르젠 앞에서는 얼마든지 천박해질 수 있었으나, 그것과 별개로 실금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조금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해야 할까.
“누워 있어라. 물을 받아두마. 데워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
유리엘의 등을 토닥여주고서 몸을 일으키는 페르젠이 욕실로 향하며 자신의 제단을 쓰다듬는다.
고작 물을 데우는데 전대 가주들을 사역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언젠가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여인이 아닌가.
후손의 핏줄을 잇게 해줄 여인을 위함이라고, 이미 죽어버려 시신이 된 전대 가주를 향해 나름대로 억지 명분을 들먹이는 페르젠은 그렇게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
직후, 페르젠이 방 안에 딸려 있는 욕실로 들어서자.
유리엘은 더듬더듬, 손을 내려 자신의 항문을 건드려보았다.
말도 안되는, 분명 그 정도 크기의 흉물이 거침없이 안쪽을 헤집으며 수십차례 쑤셔 댔는데.
찢어지지 않은 건 어찌보면 천만 다행이 아닐까.
‘정말……’
여기에 어떻게 들어간 거지.
쿡쿡, 자신의 항문 근처를 손으로 더듬으며 유리엘은 다른 의미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
그 때, 작기는 하지만 계속적으로 자극을 받은 항문 뒤로 찔끔찔끔 배안에 머물러 있던 페르젠의 정액이 새어나오자……
“흐힉……”
유리엘은 꼬옥 힘을 줘 항문을 닫아버렸다.
무언가 음부 너머로 그의 정액이 흘러나오는 느낌과, 항문 너머로 그의 정액이 흘러나오는 느낌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조금 경박하게 표현을 하자면, 싸지른다는 느낌이 들어 별로 달갑지가 않았다.
“유리엘.”
“아…… 응……!”
물을 충분히 데운 건지, 욕실 밖으로 나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페르젠을 보고서 무의식적으로 침대 밑으로 발을 내린 유리엘은 몸을 일으켰다.
“끄으……!”
그러나 순식간에 올라오는 통증과, 자신의 몸을 제대로 지탱할 수도 없을 만큼 힘없이 풀려 버리는 다리 때문에 엉덩방아를 찍으며 바닥에 주저 앉는 유리엘.
충격으로 인해 찌르르하는, 꼬리뼈를 자극하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순간적으로 풀려버린 근육의 힘 때문에 굳게 다물고 있던 항문 너머로 그의 정액이 새어져 나오자 유리엘은 울먹이며 다리를 오므렸다.
“보, 보지마……”
항문으로 정액을 싸지르는 광경을 남편 앞에서 보이는 순간이란 더할 나위 없이 수치스러워 유리엘은 이대로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페르젠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근처에 널브러진 수건을 쥐어들고서는 유리엘의 다리를 좌우로 벌린 뒤, 새어나오는 자신의 정액을 꼼꼼히 닦아주고서 탄탄한 품안으로 상냥하게 안아 들었다.
이후, 욕실로 들어섰을 때.
페르젠은 바닥에 따뜻한 물을 한 번 뿌린 뒤 그녀를 천천히 내려주었다.
“요, 욕조로 들어가고 싶은데……”
“장내의 정액을 깔끔히 긁어내지 않으면, 나중에 조금 힘이 들 것이다.”
“뭐……?”
“허리가 아파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화장실에 눌러 앉을 상황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자, 잠깐만……!”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뒤로 물러나는 유리엘이지만……
“흐악……!”
자신의 발목을 붙잡아 코앞으로 끌어 당기는 페르젠이, 억지로 몸을 뒤집어 눕히자 애처롭게 바둥거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내가! 내가…… 내가 할게……!”
“유리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커다란 손이 강아지처럼 자세를 취하도록 강요하고, 결국 연분홍빛 항문을 그에게 선보인 유리엘은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얼마나 깊이 씨를 뿌렸는지는…… 나보다 네가 더 잘알고 있지 않나.”
“히끅……!”
그의 손가락이 별다른 저항감도 없이 자신의 뒤를 파고든다.
입구 근처에 머물러 있던 정액으로 인해 찔꺽이는 음탕한 소리가 욕실을 가득 메우고.
장벽을 부드럽게 긁으며 끈적거리는 정액을 살살 끄집어내는 그의 손길에, 유리엘은 결국 고개를 숙인채 얌전히 그의 씨를 꿀렁꿀렁 토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 * * * *
아침.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창밖의 햇살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킨 로에르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나오는 복도.
바깥을 확인할 수 있는 창문 너머.
그 모든 곳에서, 빌어먹을 알프레드의 노괴──콜레오네가 동행시킨 인원들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 느껴진다.
불쾌하고.
역겨웠고.
화가 났으나.
로에르는 그것을 티 내지 않으며 얌전히 방안에 놓인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이 살벌한 감시 속에서 외부의 조력자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으나, 때로는 그러한 선입견을 이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윽고 물건의 위치를 바꾸어 놓은 로에르는, 뒤편의 놓인 거울이 이 풍경을 온전히 담을 수 있도록 몸을 비켜주었고.
“가지.”
가식을 떨듯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알프레드 가문의 수족들을 대동하며 걸음을 내딛었다.
* * * * *
페르젠은 굳이 마차를 이용하지 않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어젯밤 내려 앉은 건물은 총 4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비산한 파편들로 인해 손상이 간 건물들의 수는 결코 적지 않겠지.
또각.
향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었으나, 일부러 이른 시각에 나온 페르젠은 참사가 일어났던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비참한 현장의 몰골이 보다 선명히 드러난다.
상당히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는 비명섞인 울음.
잔해에 뒤섞인 시신과, 말라 버린 선명한 피의 흔적.
“……”
그리고 그 잔해 속에서 페르젠의 눈동자는, 처참하게 금이간 아이를 위한 용품들을 한참 바라보다 조용히 등을 돌렸다.
가시에 찔린듯 따끔하게, 가슴 부근을 옥죄여 오는 건 아마도 죄책감일까.
꽃이 수분과 햇살을 양분으로 삼아 살아간다고 한다면.
악당은 틀림없이 누군가의 비극을 양분삼아 살아가는 존재이겠지.
그렇기에 페르젠은 타인의 비극을 오히려 희극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걸음 떨어져 그들의 삶을 바라본다면.
울부짖는 울음 소리는 웃음 소리로 들려오는 법이고.
눈물로 일그러진 입가는 미소로 보이는 법일 테니까.
그리 참사의 현장에서 걸음을 돌린 페르젠은 자연스레 원래의 목적지였던 로벨리움 왕국의 왕성으로 향했다.
엘리자베스 황녀가 말끔히 일을 처리했다면, 제 1 왕자를 시켜 이나스 왕자에게 선택을 강요했을 때.
어느 방향이던 이곳에서의 갈림길은 하나로 좁혀지게 되리라.
저벅.
그렇게 왕성 밑의 계단을 천천히 타고 오르다,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다수의 인기척에 페르젠은 고개를 돌렸다.
“……”
상당히 살벌한 기색을 억지로 감추고서 자신을 무덤덤하게 올려다보고 있는 로에르.
머리를 지탱하는 목이 어찌 그리도 뻣뻣한지, 뒤편에 서있는 알프레드 가문의 수족들이 먼저 고개를 숙여온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에 마지못해 미묘한 신경전을 끝내고 인사를 전해오나, 부릅쥐고 있는 주먹은 조금전의 기싸움을 이어가고 싶다는듯 거세게 꿈틀 거리고 있었다.
“그래. 좋은 아침이군. 로에르 경.”
허나 페르젠은 그것을 못본 척, 무덤덤한 어투로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마도 악당으로서의 자신이, 타인의 비극을 양분 삼아 완전히 만개를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 성장에 마침표를 찍는 건, 틀림없이 로에르의 클로디아 가문이 몰락하게 되는 날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