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46화 (146/260)

< 146화 > EP.146

“……도련님!”

이제는 상당히 낯설어진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는 이들이 저 멀리서 걸어온다.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반가운 얼굴들이란 브뤼테인 가문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었고, 그들을 마주한 페르젠은 옅은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잘 지냈는가.”

“저희들이야…… 그 전에, 상당한 피냄새군요.”

“시원찮은 소동이 있었네. 이곳에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나.”

“예. 그보다 다치시진 않으셨습니까? 피가……”

“이건 내 피가 아닐세. 그나마 상처가 있다면 양손의 손가락에 새겨진 자상 정도겠지.”

둘 다 자신이 자해 아닌 자해를 한 것이나, 그 점까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페르젠은 그녀들이 머무르고 있을 건물을 한 번 올려다 보았다.

“들어가시지요. 겉으로만 봐도 피로가 상당히 쌓이신 듯 합니다. 저희가 이곳에 있으니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하시길.”

황실을 제외했을 때, 브뤼테인 가문의 기사단과 마도병단은 명문으로 칭해도 손색이 없을 곳이다.

그러니 그들이 경비를 서는 이곳만큼 든든한 장소는 없겠으나, 페르젠은 고개를 저으며 왼손에 끼고 있는 반지──자신의 제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도련님?”

“그대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닐세.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이 더욱 안전해졌으면 해.”

쿠웅!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페르젠의 뒤로 명계의 문이 나타난다.

상단에서 고정 되는 명계의 층수는 3층.

그것을 본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너나 할 것없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도, 도련님……! 어마어마한 재화를 소비하게 될 것 입니다!”

“내가 그것을 모르겠나.”

“저희들이 미덥지 못하신겁니까……”

“사전에 말을 했을 텐데. 그대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과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상황은 적잖이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점을 모르지 않는 페르젠이었기에, 천천히 열리는 명계의 문을 힐끔 보고서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그대들이 자랑스럽고…… 변치 않는 충성심에 매번 감사함을 가지고 있어.”

“……”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무르게 만드는 요소가 되지는 않아.”

이 세계에서 인간의 평균 수명은 80년이다.

그 80년을 살아가면서 사람 한 명이 겪는 타인의 죽음은 얼마나 될까.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비롯한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축복은, 눈앞으로 닥치지 않는 죽음에 대해 공포를 지니지 않는 것이리라.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저주일 것이다.

괜히 잃고 나서야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는 말이 있을까.

허나 그 때도 말을 했듯,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의 죽음을 겪는 만큼,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더더욱 선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에 매번 고압적이고 위압적이며, 지독한 아집 덩어리에 굽힐 줄 모르는 독불장군이더라도.

페르젠은 자신과 소중한 사람이 겪는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겁쟁이가 되는 걸 선택하기로 했다.

“더불어…… 나는 감당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부하들의 무능을 탓하고 싶지 않네.”

“……”

“그것이야 말로 현명하지 못하고 그릇된 주인이지 않겠나?”

“도련님……”

“그러니까 부디, 부하들의 무능함을 탓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우치지 못하는 이로 만들지 말아주게.”

“알겠습니다.”

페르젠의 말에, 모든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반성이라도 하듯 격식을 차리며 고개를 숙인다.

모시는 주군으로부터 책임이라는 짐을 빼앗아가려는 부하만큼 간신인 건 없을 테니까.

그리고 별다른 말없이 자신의 의견을 수용해주는 그들을 보며, 페르젠은 완전하게 열린 명계의 문을 등진 채 입을 열었다.

“거래 방식은 즉납, 기한은 두 달……”

거래 형태는 능력을 빌리는 것이 아닌, 본체의 강림.

……이윽고 대가를 지불할 준비를 마친 페르젠을 따라, 명계의 문에 걸려 있는 명패가 시시각각 다양한 변화를 머금기 시작한다.

그에 몇몇 기사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흑마법사가 명계와 하는 거래, 심지어 그것이 3층의 괴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어찌 사람으로 태어나 그 호기심을 억누를 수 있겠나.

“……!”

하지만 명계의 명패가 고정되며, 페르젠과의 거래를 받아들인 3층의 괴이가 주선 되었을 때.

그 너머를 엿보고 있던 몇몇 기사들은 일제히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 저 자그마한 문 너머를 가득 채웠던 수십쌍의 눈동자는 그들로 하여금 원초적인 두려움을 머금게 만들었고.

자연스레 이성이 반응을 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오랜 시간의 훈련으로 각인된 본능만이 그들의 손을 움직여 강제적인 발검(拔劍)을 유도했다.

물론, 그 중에는 자세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덜덜 떠는 이들 또한 여러 있었다.

아직 잠재력을 온전히 개화하지 못한, 실전 경험이 적은 젊은 기사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쥐고 있는 검을 끝까지 놓치지 않은 건, 틀림없이 그들이 훌륭한 기사라는 증표일 터.

이내 곤충, 아니.

절지 동물인 거미와 흡사한 수많은 다리가 자그마한 명계의 문 너머에서 튀어 나오자……

너머를 엿보지 않은 이들 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최대한 숨을 죽였다.

그것은 내뱉는 숨소리와 거칠게 뛰는 자신들의 심장 소리가 쏟아지는 폭우에 제발 가려지기를 바라는 듯한 애절한 발버둥.

곧이어 해당 괴이가 온전히 밖으로 나서자, 자연스레 페르젠의 뒤에서 명계의 문은 자취를 감추었고.

외부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끔 주변 풍경 속으로 투명히 스며든 괴이는, 어느새 내뻗은 실가닥을 타고서 하늘 위로 기어 올랐다.

물론, 아직은 주변 풍경과 완전한 동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왜곡되어 보이는 어렴풋한 괴이의 형태를 보고,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페르젠은 어느때처럼, 불규칙하게 떠오르는 뇌리의 기억을 더듬으며 혼잣말을 하듯 입술을 중얼거렸다.

“천지를 실로 이어……”

자신의 둥지로 삼는 잡 것.

“……”

이 이상은 더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이 존재하지 않아, 페르젠은 자연스레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 알지도 못하는 명계의 정보들이 뇌리에 떠오르는지, 의문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으나.

당장 이 의문을 풀어낼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는 쓸데없이 머리를 쓰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왼손의 반지인 자신의 제단──거기에 새겨진 아공간의 내부를 확인한다.

“많이도 가져갔군.”

거의 텅텅 비어버리다 시피한 아공간의 내부.

사라진 물품들을 금화로 환산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가격이 나올지 페르젠 본인 조차 짐작 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그리고 그러한 페르젠의 읊조림을 선명히 들었던 괴이는, 자신의 실가닥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던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

당연히 페르젠의 눈에는 해당 괴이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기에, 그는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기죽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조아리며……

툭.

지불했던 물품들 중 일부를 소심하게 돌려주는, 결코 전례가 없을 특이하고도 귀여운 광경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 * * *

우산을 접고 내부로 들어오니 피냄새가 더욱 짙게 나는 게 느껴져 페르젠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로벨리움의 수도는 그 특성상 커다란 저택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페르젠이 자리 잡은 거점은 일종의 고급진 여관──호텔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서진의 기억을 통해 떠오르는 호텔과 비교하자면 많이 초라하기 그지 없었으나.

발전된 문명의 차이를 생각 한다면, 초라함 보다는 호화스럽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맞을 것이다.

‘다행히 옷까지 가져 가지는 않았나.’

아공간 내부에 있던, 페르젠의 옷 또한 적잖은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으나.

다행히 그것들은 대가의 비용으로써 지불 되지 않았기에, 페르젠은 마음 편히 방 내부에 딸려 있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온수 따위는 바라는 것이 사치인 구조라, 차디찬 냉수로 전신을 덮으며 페르젠은 눈을 감았다.

체온이 식어가는 만큼, 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그녀들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진다.

지금쯤 모두가 잠이 들었을까.

저녁은 제대로 먹었을지.

“……”

밖에서는 몇십 명의 목숨을 가볍게 빼앗고.

안에서는 두 여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 웃겨 실소가 흘러 나오나, 페르젠은 무심하게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마……’

이러한 일상과 행복은 틀림없이 그들도 영위하고 있었겠지.

그러나 동정심이나 연민 따위를 느끼며, 어쭙잖은 죄책감에 사로 잡히려 들지는 않았다.

반대로 자신의 손에 죽어나간 이들을 통해, 이러한 순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더욱 선명히 깨닫게 될 뿐이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유페미아와 유리엘.

또,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보고서.

복수를 복수를 낳을 뿐이라거나, 나는 네 놈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며 복수를 포기하는…… 그런 성인군자 같은 적은 자신의 앞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그는 언제나처럼 묵묵히 악당의 굴레를 이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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