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EP.145
미묘한,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탄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던 이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바닥에 새겨진 희미한 검은색 발자국만이 그들이 있었다는 걸 마지막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손 끝이 작게 떨려오는 군……’
향에 뒤섞인 독은 마비독의 일종이었을까.
그렇다면 해독제를 통해 중화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그리 생각을 마치고, 페르젠은 자신의 곁에 서있는 이사벨을 통제하여 또각 또각 걸음을 내딛게 만들었다.
그러자 이사벨의 관 근처에 서있던 귀족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난다.
“……”
스스로 관을 열고, 두 손을 가지런히 배에 모은 채 곤히 눕는 그녀의 자태는 시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고혹적이었으나.
조금 전의 광경이 가져다 준 충격이 너무컸기 때문인지, 귀족들은 어째서 그녀가 에르네스 제국 역사상 가장 악랄한 마녀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전하. 수습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사벨이 누운 관을 아공간으로 회수하며, 페르젠은 굳어 있는 제 2 황자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지……”
“불편하십니까.”
“사람으로서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비록 저들이 모략에 넘어간 힘없는 장기말이라 해도, 품었던 동기를 감히 우리가 반박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
“……”
“하지만 황실의 적자로서는 다르다.”
“그렇습니까.”
“그래……”
타국에서 악명이 쌓인다고 한들.
자신의 나라를, 그리고 자신의 백성들을 위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에게 폭군으로 불릴 준비가 되었다네.”
“……”
“그러니 그대도 너무 신경쓰지 말게나.”
페르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제 2 황자──레이몬드가 웃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그대는 그 날의 행동을 자신의 과오로 삼고 있는 듯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달갑게 여기고 있어.”
“……”
“황실은 그간 브뤼테인에게 너무나도 많은 빚을 져왔고, 조금이라고는 하나 그것을 갚을 수 있게 되어 영광이야.”
자신이 황실 전체를 대변(代辯)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페르젠 또한 저 말에 일말의 가식도 담겨 있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자. 그러면 의원을 불러……”
“전하!”
우지끈!
몸을 돌리며 뒷수습을 하기 위해 제 2 황자가 나서려던 찰나 건물의 천장이 무너져 내린다.
처음에는 건물 자체가 붕괴의 조짐을 보이는 줄 알았으나, 너머에서 느껴지는 다수의 인기척을 감지하고는 함께 머무르고 있던 기사들이 가장 빠른 반응에 나섰다.
그래, 습격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자 효율적인 방식은 적들이 안심 하고 있을 때를 노리는 것.
촤악!
다만, 그것도 체격 차이가 나지 않을 때 성립하는 공식이었다.
자고 있는 사자를 토끼 무리가 습격한다고 해서 꿈쩍이나 하겠는가?
그렇기에 페르젠도 자신의 앞에 착지한 적을 보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인인 엘리자베스 황녀 조차 유유히 부채를 꺼내들어 자신의 얼굴에 튀려는 피를 막아내고 있을 뿐인데, 어찌 자신이 호들갑을 떨 수 있겠나?
오히려 페르젠은 자신과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로에르를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코 앞에서 적이 진득한 살기를 머금고 검을 뽑아들고 있음에도.
‘망설이고 있는가. 로에르.’
이미 이사벨의 시신이 담긴 관을 아공간으로 회수한 시점이기에, 다시금 그녀를 꺼내들어 적을 죽이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사역할 수 있는 시신이 곁에 있지 않는 한, 흑마법사 본연의 무력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것.
솔직히 치명상을 피할 자신은 있었기에, 페르젠은 과연 로에르가 어떠한 심정과 각오로 여기에 있는지를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페미아는 이러한 행동 방식을 결코 원하지 않겠지.
그렇기에 페르젠은 눈앞에서 검을 내지르는 적의 공격을 최소한의 동작으로 피한 뒤, 무릎으로 적의 팔꿈치를 걷어 차올렸다.
“컥!”
그에 짧은 비명을 토해내며 검을 놓치는 적.
주인을 잃은 검이 튕겨지듯 솟아올라 빙그르르 공중을 배회하나, 페르젠은 그것을 여유롭게 역수로 낚아챈 뒤 단숨에 수직으로 내리 찍었다.
푸욱!
“끄, 꺼억……!”
투둑!
목덜미 쪽으로 깊숙이 틀어 박히는 서슬퍼런 칼날.
지저분하게 튀는 피가 페르젠의 손과 목, 얼굴을 순식간에 붉게 물들인다.
특히나 손잡이를 타고서 전해지는, 죽어가는 인간의 절규스런 꿈틀거림은 그다지 좋은 감각이 아니었다.
게다가 거의 동일한 순간에 곁으로 도달한 로에르가 적의 몸뚱이를 깔끔히 베어넘겼기에, 고급스런 정장은 비릿한 피냄새를 가득 머금게 되었다.
‘정말……’
칭찬을 해주고 싶을 만큼, 절묘한 타이밍.
이 몸뚱이가 흑마도를 제외한 것에 소질이 없었다면.
로에르가 곁으로 도달한 이 시점에서, 자신은 높은 확률로 적의 검에 꿰뚫리지 않았을까.
그래, 로에르의 도달 시점은 그만큼이나 오묘함 그 자체를 머금고 있었다.
끝까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의문만을 남기는.
하기야 어찌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걷는 자가, 이정도 재롱조차 부리지 못하겠는가.
“괜찮으십니까……”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의 목소리가, 가식적인 친절을 덮어쓰고 자신의 안부를 묻는다.
그에 페르젠은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어낸 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무덤덤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 걱정하지 말게.”
“……”
“검술은, 귀족으로서의 기본 소양이니.”
몇 마디를 주고 받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난잡했던 소란스러움은 가라앉았고.
페르젠은 시신의 처리를 위해 다시 한 번 아공간에서 관을 꺼내어 이사벨을 일으켰다.
“……”
그리고 시신 특유의, 무표정한 그 얼굴이.
어찌 금방 잠이든 사람을 또 깨우는 것이냐고 꾸짖는 것 같아, 페르젠은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도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 * * * *
오늘 죽어나간 이들을 추모하듯, 하늘이 울어주기라도 하는 건지.
거칠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우산을 든 페르젠은 조용히 거리를 거닐었다.
쏴아아아!
드문드문 옷자락에 닿는 비가, 스며든 피를 머금고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수도에 모든 기점이 집중되어 있는 만큼, 로벨리움 왕국의 거리는 에르네스 제국과 많은 차이점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페르젠은 낯섦을 느끼지 못했다.
해당 거리의 풍경은, 이서진이 살던 현대와 어느정도 비슷한 면이 있었기에.
‘조잡한 세계라도, 문명의 발전 과정은 흡사하다는 뜻인가……’
자그마한 땅덩어리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서 고층의 형태로 이루어진 건축물들.
그 때문인지 오히려 저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는 왕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황자 전하는…… 돌아가면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을 거라 했지.’
유페미아, 유리엘, 라우라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반가운 얼굴들이라 한다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브뤼테인 가문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리라.
쿵!
“앗……!”
좌측으로 길을 꺾는,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오는 어린 소녀가 자신의 발에 치여 엉덩방아를 찍는다.
꽃을 파는 소녀인건지, 엎질러진 바구니에서는 국화처럼 새하얀 꽃송이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죄, 죄, 죄송합니다……!”
몸을 일으킬 생각보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허겁지겁 꽃을 주워 담는 소녀.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페르젠은 슬그머니 품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 꽃은…… 내가 전부 사도록하마.”
“네, 네……?”
“거스름 돈은 필요 없다.”
“아, 그……! 자, 잘못 주신……”
자그마하고 투박한,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금색의 동전을 보며 소녀가 기겁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페르젠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그대로 소녀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그에 소녀는 잠시 멍때리고 있던 표정을 풀고서 다시 한 번 페르젠을 불러 세웠다.
“꼬, 꽃을 두고 가셨어요……!”
작고, 여린 목소리지만.
어찌 이 폭우속에서도 묻히지 않고 자신의 귀에 또박또박 틀어 박히는 건지.
결국, 걸음을 멈춰선 페르젠은 소녀를 돌아다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라. 어차피 그 꽃을 받을 이들은 이곳에 없으니까.”
“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페르젠의 말에 소녀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페르젠은 그 의문을 해결해주지 않은 채 거리를 떠나갔고.
잠시 뒤, 널브러진 꽃송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 소녀만이……
“아……”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는 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 *
“후작!”
늦은 시간, 제 2 왕자 이나스는 분노한 표정으로 프리기아 후작이 머물고 있는 침실의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프리기아 후작은 마치 그가 자신을 찾아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단정한 차림새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백성들을! 단순한 장기말로 여기지 않겠다 맹세하지 않았소!”
“그렇지요. 실제로 저는 그들을 단순한 소모품으로 사용한적은 없습니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조금전 자신에게 올라왔던, 긴급한 보고서를 바닥에 패대기치며 이나스 왕자는 주먹을 거세게 말아 쥐었다.
그간의 그림은 단순하게 에르네스 제국을 향하여 적개심을 품게 만드려는 의도임을 알았기에, 이나스 또한 침묵으로 묵인을 하였다.
하지만 고작 한시간 전, 시신조차 남기지 않고 바스러진 서른명의 백성들의 목숨은……!
도대체 무얼 위한 희생이란 말인가?
짐승 또한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법인데.
그들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한줌의 먼지가 되어 바스라졌다.
물론, 피가 흐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면, 한 줌의 의미라도 부여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이나스 왕자…… 당신은, 참으로 기형적인 이상을 품고 있군요.”
“뭐……?”
“드넓은 평야에서 아군과 적군이 서로 처절히 창칼을 건네 받을 때도, 누가 무엇을 하였고. 누가 죽었는지. 대다수의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
“한명 한명이 모두 자신의 행동과 죽음에 의미를 품을 수 있었다면, 애당초 군대에서 계급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말문이 틀어 막힌 이나스 왕자를 보며, 프리기아 후작은 몸을 일으켜 분위기를 조금 부드럽게 풀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당신 왕국의 백성들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나 혁명을 치를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며, 부패하고 타락한 애국심을 내세우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
“결과가 이리 되었던 건, 그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욱 값진 노력이 필요 하기 때문입니다.”
싱긋, 미소를 머금는 프리기아 후작이 옆에 놓인 우산을 쥐어든다.
“그러면 저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흙내음을 맡고 돌아오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툭툭.
자신의 어깨를 치고 방을 나가버리는 프리기아 후작을 이나스 왕자는 감히 붙잡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의 팔을 붙잡고, 정말 자신들의 왕국을 당신네들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돌아올 대답이 자신의 예상과는 반대일 것 같아, 이나스 왕자는 차마 그 행동을 실현하지 못했다.
필요로 했던 건 자리를 잡은 늑대를 몰아내기 위한 다른 늑대의 이빨이었을 뿐인데.
어찌 주어진 건 여우의 꾀란 말인가……
털썩, 의자에 주저 앉으며 이나스 왕자는 먼치에 놓인 체스판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체스를 전쟁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나스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왕을 잡으면 끝나는 룰이, 어찌 전쟁과 같을 수 있겠나.
병사들이 모두 죽고, 홀로 폐허 위에 앉은 왕은 정말로 그 승리에 심취할 수 있을까.
꾸깃.
허리를 숙여 바닥에 패대기 쳤던 보고서를 쥐어든다.
거기에는 죽어나간 서른명의 백성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나는 죽을지언정……’
희대의 망나니로 역사 속에 기록 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들을 기억해줄 이들은 아무도 없으리라.
그렇기에 이나스 왕자는 아무런 말없이, 한동안 제자리에서 그들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점점 무거워지는 어깨에, 이나스 왕자는 하찮은 변명이라도 내세워 이 중압감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세상천하(世上天下), 유일하게 그 어떠한 변명조차 허락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자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