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EP.144
밤이 서서히 저물어 오나, 정작 노을은 차츰차츰 하늘을 물들인 먹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습기가 가득 베어든 불쾌한 선선함이 피부를 간지럽히고, 먼저 시중을 보내 예약을 해두었던 식당 안으로 들어선 제 2 황자와 페르젠은 따르는 귀족들을 대동한 채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독 눈썰미가 좋은 페르젠은 1층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이들을 스윽 훑으며 모종의 위화감을 느꼈다.
‘어찌……’
저들은 하나 같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있는가.
간격을 짧게 두고 손님이 연달아 들어왔다고 한들,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 음식을 받는 시점은 모두가 다를 텐데.
더군다나 이곳은 외관만큼이나 가격이 비싼 곳이다.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난 곳이라 해도, 1층에 빈자리 하나 없이 사람이 빼곡 들어차 있는 건 참으로 의아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심증만 있을 뿐이었기에, 페르젠은 얌전히 2층에 놓인 자리에 착석하여 자신의 소매를 반듯하게 걷어 올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건지, 바깥에서 추적추적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온다.
가지런히 놓인 은으로 만들어진 식기들과, 테이블 가운데서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향을 태우며 피어오르는 촛불.
그리고 그 촛불이 퍼트리는 향을 맡으며 페르젠은 또 한 번 위화감을 느꼈다.
‘이러한 향들은…… 음식의 냄새와 뒤섞여 조화를 이루지 못할 텐데.’
물론, 이것이 이 가게가 귀중한 손님들을 상대로 내세우는 특색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오랜 시간 노출된 냄새를 서서히 무취로 받아들이는 편이니까.
하지만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진실이고, 눈앞의 이 향이 모종의 독을 머금고 있다면.
“……”
너무 지나치고, 과장된 가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페르젠은 자신의 눈썰미와 직감이 전해주는 이 강렬한 위화감의 연속을 얌전히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요건은 증명인데……’
한참 고민을 하다, 눈앞에 놓인 은으로 만들어진 나이프를 들어올리며 페르젠은 슬그머니 자신의 반대쪽 손을 내려다보았다.
은(Ag).
이서진이 살던 과거에는 마귀를 쫓는 신비한 힘을 가진 금속으로 전해졌고, 음식이나 술잔에 담겨 있는 독을 찾아주는 용도로 귀족이나 왕들의 식기로 자주 쓰였던 것.
하지만 그러한 은에는 명백한 허점이 있었다.
바로 모든 독과 반응을 하지는 않는 것이다.
정확히 은이 반응하는 건 극소수의 독이었고, 그 독은 보통 은과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질소나 황 같은 것이 첨부되어 있을 때 뿐.
다만, 이곳은 현실이기는 해도 명확히 한 작가의 설정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세계다.
실제로 작가의 설정이 개입하지 않은 부분은 이서진이 살던 현대의 지식과 모든 것이 일치하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에는 독자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서진이 살던 현대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이곳에는 존재하는 여러 광물들……
‘아니지.’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마법이라는 존재 자체가 증명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만약에 이 세계를 기반하고 있는, 악착같이 살아남는다라는 소설을 집필할 때 기입한 은(Ag)의 설정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동일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채로 적용 되었다면?
‘단순히 은은 독과 반응을 한다는 것이 되겠지.’
물론, 은과 반응을 하지 않는 독이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은과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요소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은으로 검출할 수 없는 독이라는 설정을 넣었기 때문일 터.
그러나 최신화의 내용까지 은으로 만들어진 식기에 관한 구체적은 언급은 있었어도, 그러한 은과 반응을 하지 않는 독이 등장한 적은 없었다.
소설의 설정과 세계관을 따로 풀어쓴 공지사항에도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리라.
어지간히 꼼꼼하고 설정에 미친듯한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은과 반응을 하지 않는 독에 관한 종류를 모두 기입해두고 글을 쓰겠는가.
그 때 그 때, 위기를 주는 용도로 독을 차용해야겠다 싶으면 즉석에서 만들어내 설정에 추가를 하겠지.
“전하.”
“음. 왜 그러는가? 백작.”
“……계란의 노른자 때문에 은이 변색된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그건 처음 듣는 소리군.”
“그렇지요.”
“농담을 한 번 해볼 생각이었는가? 그렇다면 미안하게 되었네. 원체 웃음기가 별로 없는 편이라……”
“아닙니다.”
계란은 부(富)를 막론하고, 모든 이의 요리에 기초적으로 가미 되는 것.
그리고 계란의 노른자에는 은과 반응을 하는 황이 들어있다.
하지만 페르젠의 기억에 그런 경험은 없었고, 심지어 제 2 황자 또한 그러한 적이 없었다고 하니 가설은 더더욱 힘을 받는다.
다만, 마지막으로 의문인 점은 은(Ag)이 해당 설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어째서 공기중으로 퍼지고 있는 독과는 반응을 하지 않는가였다.
단순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독이 아닌 건지……
‘되었다.’
어차피 이서진 또한, 여러 매체에서 은식기에 관한 내용을 보고 그 사실을 검색을 통해 대충 습득했을 뿐이다.
그 이상의 상세한 화학적 내용을 알지는 못했기에, 남은 건 직접적인 실천을 통해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밖에 없으리라.
‘헛다리를 짚은 걸 수도 있으니……’
괜한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손을 밑으로 내린 페르젠은 자신의 손가락 끝으로 나이프를 가까이 가져다댔다.
‘이 향을 통해 스며든 독이 혈관을 타고 내달리고 있다면……’
필시, 자신의 피와 선명한 반응을 일으킬 터.
겉으로 직접적인 효과를 드러낼 만큼 농축되기 전에, 페르젠은 주저없이 손가락 끝을 나이프로 베었다.
움찔!
그러자 송골송골 솟아오르는 피가, 은으로 만들어진 나이프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린다.
아니, 단순히 타고 흘러내리는 것 뿐만이 아니라.
여름이 가을에 물들어 가듯, 서서히 은의 색을 변질시키고 있었다.
이것은 현재 자신의 몸이 중독되었다는 선명한 증거였지만……
“하……”
어째서인지 페르젠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백작?”
뒤늦게 페르젠의 상태에 의아함을 느낀 레이몬드가 운을 트나, 페르젠은 대답없이 손을 들어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물이 담겨 있는 잔에 떨구었다.
뚝.
뚝……!
떨어지는 선홍색의 피가 물과 아름답게 뒤섞이고, 곧이어 은으로 만들어진 나이프가 투명한 잔에 담기자……
“!”
순식간에 변색되는 나이프를 보며 제 2 황자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페르젠은 무척이나 태연하리만큼, 품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자신의 상처를 지혈해나갔다.
‘아……’
본디 등장인물은 작가의 지능적 한계를, 세계관과 설정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한계를 반영한다지만……
이 얼마나 조잡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란 말인가.
마치 쓰다버린 헝겊을 억지로 기워 놓은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넝마 같은 현실이,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하나이자 전부인 세계였다.
* * * * *
고요함이 맴도는 1층.
어쩌면 모두가 최후의 만찬이 될 수도 있는 식사를 마치고, 와인으로 목을 축인 뒤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로비에서 기도를 하듯 두손을 모으고 있던 중년의 사내는, 가게의 문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가 안쪽에서 자물쇠를 채웠다.
그 즉시, 1층에 있던 모든 인원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어 쥐고서는 2층으로 향하는 두개의 계단으로 나뉘어 짙은 숨을 천천히 몰아 내쉬었다.
짊어진 각오가 무색하리만큼 좀처럼 두다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틀림없이 두려움이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일 터.
「 하늘을 떠도는 새들은 자신만의 둥지고 있고, 숲을 방랑하는 짐승들은 자신만의 굴이 있거늘. 어찌 그대들은 그대들의 나라에 똬리를 틀지 못하고 있소. 」
하지만 그러한 이들의 등을 떠미는 건, 오래전 들었던 어떠한 사내의 한 마디였다.
불투명한 실루엣에 가려져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 사내가 프리기아 후작이라는 것쯤은 이들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이들이 시신이 되어 피드백을 받아도 연관 지을 고리가 없도록 하기 위함.
저벅.
이내 걸음을 내딛는 이들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나, 그 끝에서 자신들을 반기는 건 너무나도 짙고 어두운 암흑이었다.
아니,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빛이나는 건 아름다운 은발을 길게 늘어트린 여인과 소름이 끼칠만큼 붉은 눈동자로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는 한 명의 사내였다.
……하아, 하아.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무언가 크게 어긋났음을 직감하고 공포와 절망이 뒤섞인 숨소리가 침묵을 몰아낸다.
“호흡을 흐트리지마라.”
하지만 페르젠은 도리어 그들을 야단치듯, 특유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쥐고 있는 무기를 더욱 단단히 붙들어라.”
“……”
“뒤로 물러날 퇴로가 막혔다면, 앞으로 나아가 길을 뚫으면 되지 않는가.”
접어 올렸던 소매를 내리며, 페르젠은 어둠 속에서 그들을 훑어 보았다.
혁명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 아마도 프리기아 후작이 설계한 모략일 터.
생각해보면 참으로 웃기기는 했다.
봉건제로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민초들이 자신들의 왕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다니.
오히려 무능한 자신들의 왕을 욕하며 울분을 토해내야 할 텐데.
실제로 로벨리움 왕국 내에 있는, 에르네스 제국의 세력은 암암리에 그런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들이, 설령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 갔다고 한들.
죽음을 각오하고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현재의 로벨리움을 다스리는 왕이 그만큼 좋은 왕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어찌 무능한 왕이 좋은 왕이 될 수 있겠는가?
“검과 창은 바닥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
“올바르게 들어, 눈앞에 있는 적의 심장을 겨누어라.”
움찔!
자신들, 에르네스 제국 전체를 이들의 적으로 칭하는 페르젠의 말에 몇몇 이들이 불편함을 머금는다.
당연한 반응이리라.
사람이란 본디 자신이 악역이라는 역할을 배정받는데 있어서 거부감을 느끼는 생물이었으니까.
하지만 페르젠은 그러지 않았다.
본디 태생부터가, 주어진 삶의 굴레부터가 악당이라는 역할에 배정 되어 있는 인물.
때문에 느슨해진 넥타이를 올바르게 매며, 페르젠은 말을 이었다.
“가다듬어진 호흡이 목에 응어리를 쌓을 때…… 그것을 토해내며 일제히 덤벼들어라.”
삐걱!
식은땀을 흘리며, 무기를 쥐어든 이들이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심장의 고동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마치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북처럼 자신들의 등을 떠밀기 시작했을 때……
흐아아아악──!
그들은 품고 있는 결의를 담은 함성을 토해내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울려 퍼질 비명은 다른 이들의 멀어 있는 귀를 깨워 줄것이오.
……흘러 내린 피는 다른 이들이 길을 헤메지 않도록 바로 잡아줄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그리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려진 시신은, 다른 이들이 올라갈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해줄 계단이 되리라.
그래, 본디 혁명이란 그런 식으로 씨를 심고 싹을 틔우고 개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페르젠은 그것을 처절히 짓밟을 생각이었다.
저들은 비명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할 것이오.
저들의 피는 어디에도 흐르지 못할 것이며.
저들의 시신은 그 어디에도 눕지 못하리라.
쏴아아아아아!
창밖에서 쏟아지는 빗줄기가 거세진다.
쿠궁!
곧이어 굉음을 토해내며 천둥이 울려 퍼졌고.
파지지직!
지독한 어둠이 내려앉은, 한 식당의 건물 또한……
번쩍!
그것에 호응하듯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