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EP.140
저택 안으로 크게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
하지만 문앞에 대기 중이던 시녀들은 익숙하다는 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리지의 몸을 닦아 주었다.
“하아…… 하아……”
자신의 첫째 오빠, 로에르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클로디아 영지로 돌아온지 몇 주가 되었을까.
페르젠의 손에 자신의 오빠들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악몽이 끊이지 않고 맴돈다.
어쩌면 이것은 품고 있는 죄책감이 꿈으로나마 구현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로에르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날, 리지는 이 복수를 그만두자고 차마 언급을 하지 못했기에.
“옆으로 잠시 누워주세요. 아가씨.”
“……”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자신을 향해 더 이상 위로의 말은 건네 주지 않고, 형식적인 일만을 해나가는 시녀들.
그것은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고 끊임 없이 거짓말을 하며 사람들을 속인 양치기 소년의 신세를 투영하고 있는 것 같아 리지는 이불보를 꾸욱 움켜 쥐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는 것이 두렵다.
그 흘러가는 시간 너머에 기다리는 건, 현실이 되어버린 꿈일것만 같아서.
‘오, 빠……’
사실 자신의 오빠들이라면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문득 그러한 생각을 품었기에 리지는 그 날 입을 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비겁하게 가족들의 등을 방패 삼아 귀를 닫고, 눈을 가리는 겁쟁이 같은 행동.
분명 자리 잡은 이성과 본능은 암초만이 가득한 대해가 가까워지고 있으니 얼른 배를 돌리라 하고 있으나……
리지는 여전히 조타석을 붙잡을 용기가 없었다.
정확히는 생겨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내면에 드리운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늑대, 아니 늑대의 탈을 쓰고 있는 괴물이 시시각각 그러한 감정을 파먹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하는 건, 지독히도 아련한 자기 합리화였다.
적어도 나쁜 아이가 아닌, 착한 아이인 채로 있는 다면.
꿈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드리웠을 때.
그 괴물의 발을 정성스레 핥고.
흉악스런 물건에 무참히 범해지면서 가족들의 목숨을 구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겠나.
“하, 하…… 아하하……”
단지, 그 순간을 잠깐 뇌리에 새기는 것만으로도.
리지의 몸은 다시금 식은땀을 가득 쏟아내며, 어린 아이처럼 이불보를 적셔나갈 뿐이다.
* * * * *
저택 안의 자그마한 연무장.
그곳에서 검을 휘두르며 로에르는 차오르는 더위로 인해 땀을 뻘뻘 흘렸다.
가족이라는 배에 누구 하나가 명확한 선장이라 할 수는 없으니, 함께 항해를 하자고 했던 그 심지 굳은 동생이……
처절하게 망가져 울음을 토해내던 모습은,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로에르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팠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로에르는 더더욱 거세게 검을 휘둘러 복수라는 불길에 장작을 쑤셔 넣었다.
“땀내가 지독하구나. 로에르.”
“……”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선 존재는 동아줄이 되지 못한 썩은 줄이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곧 로벨리움 왕국으로 향할 테니, 함께 데려 가라고 추린 인원들을 소개 해주러 왔다만…… 그리 기쁜 기색이 아니구나.”
끌끌.
알프레드의 노괴, 콜레오네 바레타 웨인 알프레드.
그가 지팡이를 짚고 비릿하게 웃는다.
얼굴에 자욱한 주름은 여전히 수많은 뱀이 기어 다니는 듯한 모종의 꺼림찍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충분히 기쁩니다. 단지…… 표현해야 할 방식을 몰라 서툴렀을 뿐이지요.”
“말솜씨가 늘었구나. 근래 처음보는 친우가 생긴 것 같던데, 그놈 덕분이더냐.”
“……”
별거 아닌 어투로, 무척이나 자연스레 날카로운 한 마디를 내뱉는 콜레오네를 보며 로에르는 검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제게 관심이 느셨군요. 최근 들어 무감각 하시더니.”
“허허…… 내 딸의 남편에게 어찌 무감각 할 수가 있을꼬.”
주제를 돌리는 것으로 보아 딱히 언급하고 싶지 않은, 그러한 비밀이 가려져 있다는 뜻이리라.
단지, 이 이상 억지로 캐내기에는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어차피 소득을 건질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기에, 콜레오네는 로에르를 보러 온것이 무척이나 싱거우리만큼 얌전히 걸음을 돌렸다.
“네 손발이 되어줄 사람들이니, 부디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신뢰 관계를 쌓아 놓게.”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저 노괴가 자신에게 붙여주는 사람들, 이 모두가 자신의 행동을 감시할 이들이라는 걸 로에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쳐낼 여력이 없었기에, 로에르는 얌전히 그의 말에 수긍하는 척 따를 뿐이다.
“그러면…… 그대들은 나를 따라오게.”
“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걸음을 돌린 로에르는 고개를 들었다.
오늘 따라 유난히 뜨거운 햇볕.
그 빛을 머금은 칼날은 무척이나 밝게 빛나며 자신이 얼마나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지를 선명하게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눈에 담은 로에르는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동작으로 자신의 검을 칼집에 넣었다.
동시에 검의 손잡이 부분만을 꽈악! 움켜쥔 채, 부러지지 않을 결의를 새긴다.
‘……내 검을 따라 함께 납검 되는 것은 적을 향한 두려움과 망설임이요.’
또.
내 검을 따라 발검 되는 것은 적을 향한 분노와 반드시 베어넘기겠다는 불굴의 의지이리라.
‘이 칼날은……’
나의 목숨과.
‘페르젠……’
네 놈의 피로 연단 될 것이다.
직후, 멈추었던 걸음을 내딛는 로에르의 눈동자는 서슬퍼런 기색을 머금고 푸르게 빛났다.
* * * * *
“어르신. 신경 쓰이십니까. 그래봤자 클로디아 가문인데…… 감추고 있는 것이라 해봤자 별 볼일 없는 것일 겁니다.”
“끌끌. 너는 내 곁에서 더러움을 상당히 묻힌 주제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헛 배웠구나.”
“예?”
따악.
지팡이를 짚으며 콜레오네는 주변으로 손을 뻗었다.
“보거라. 당당하고, 멋드러지고, 우아한 것들은 자신을 감추려 들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감추고 싶어도 감추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을 감추려 드는 건 모두 추레하고 추악한 것들이지.”
그래, 그 간단한 이치의 연장으로 볼 때.
비밀이란, 하나 같이 전부 추악한 것.
특히나 추악한 인간 보다, 추악함을 품은 인간이 더욱 무서운 법이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되었고, 사오라 했던 물건은 구해왔느냐.”
“예! 물론입니다!”
콜레오네의 말에 곁의 사내는 황급히 품속에서 자그마한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열리는 그 상자 안의 물건은……
쓸데없이 고풍스럽게 제작된 아기의 쪽쪽이였다.
“구매 가격은…… 엇!”
상세한 설명을 하려던 찰나, 순간 발을 헛디뎌 자세를 바로 잡는 사내가 재빨리 쪽쪽이가 담긴 상자를 품안으로 끌어 안아보지만……
툭! 하고 먼지가 자욱한 바닥으로 처량하게 떨어진다.
“……”
그 광경을 느릿하게 지켜보던 사내는, 차라리 저 쪽쪽이 대신 자신의 심장이 대신 떨어졌으면 하고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결과는 냉혹하리만큼 달라진 게 없었기에, 찌르르하고 올라오는 오금 저린 감각을 무시하고 황급히 쪽쪽이를 주워 들어 손수건으로 윤기나게 닦아낸다.
“되었다. 이미 먼지 투성으로 더럽혀진 걸 어찌 물리겠느냐.”
“죄,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너무 떨지 말거라. 이 정도 실수로 나를 오랜시간 보필해온 그대를 내치진 않을 테니.”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아까운 것은 아까운 거니, 그대가 쓰도록 하게.”
“예! 자식을 낳게 되면 반드시……”
“음. 무슨 소리를 하는가? 나는 분명 그대가 쓰라고 했는데.”
“……”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사내는 주제도 망각한 채 콜레오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뒤늦게 결례를 깨닫고 고개를 숙인다.
“제가…… 말씀이십니까……”
“이번에도 말을 하면, 같은 말을 세번하는 것이 되는데. 괜찮겠느냐?”
“아, 아닙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 콜레오네가 얼마나 싫어하는 지 알고 있었기에.
사내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부하들을 한 번 보고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쪽쪽이를 입에다 물었다.
쪽!
쫍!
쪽!
……크흐흡!
더러운 일을 많이하고, 손에 피를 묻히다 보면 인간은 자연스레 감정이 무뎌진다.
그래, 그런식으로 감정이 무뎌진 이들 조차.
자신들의 상관이 쪽쪽이를 입에다 물고 저러는 모습을 보고 있자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에 사내의 얼굴은 새빨간 사과못지 않게 달아 올랐고.
콜레오네 또한 오랜만에 소리를 내어 껄껄 웃었다.
“그 놈 소리 한번 우렁차구나. 어찌, 사용 소감은 만족스럽더냐?”
“예…… 비싼 값어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나면 한 번더 제작을 맡기고 구매해오거라.”
“알겠습니다. 어르신……”
일생일대, 더할 나위 없는 흑역사를 새긴 사내가 푹 고개를 숙였다.
* * * * *
“정말…… 정말 오지 않는 구려……”
더위를 먹은 듯, 축 늘어진 로젠베르크 자작은 자신의 아내를 보며 한탄하듯 중얼 거렸다.
고작 편지 한장만을 남기고 홀랑 페르젠을 따라 간 딸이 어찌 이리도 미울 수가 있는 건지.
“부인…… 아무래도 내 딸은 루에르그 백작을 연모하고 있는 게 틀림없소……”
“혼기가 들어 찰 나이이기도 한데, 스스로 남편감을 찾는 건 칭찬 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그 상대가 이미 아내가 둘이나 있으니 문제가 아니겠소……?”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알프레드의 여식이다.
가문 간의 싸움으로 뒤를 봐주고 싶어도 덩치가 딸리니 로젠베르크 자작은 속으로 눈물을 머금었다.
만약, 알프레드의 여식이 딸을 낳고.
라우라가 아들을 낳게 된다면.
얼마나 수많은 견제와 핍박을 받을까.
그 여린 아이가 버텨낼 수 있을리가 없을 것이다.
“생각을 해보니 루에르그 백작도 어딘가 이상하오. 양심이 있다면 알아서 거절을 해야 할텐데 넙죽 받아드는 것을 보면…… 호색한이 틀림 없을 것 같은……!”
“여보.”
“……”
라우라의 어머니이자, 로젠베르크 자작의 아내인 그녀는 라우라가 페르젠을 좋아하는 방향 보다.
페르젠이 라우라를 좋아하는 방향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남편의 말을 순식간에 잘라냈다.
“아, 아니…… 당신은 당신 배 아파서 낳은 딸이 아니오?”
“너무 과보호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과보호가 아니라…… 하…… 차라리 말도 더듬고, 몸도 병약하여 아이를 낳기도 힘들 테니 우리 쪽에서 염치가 없다고 거절을 하는 건 어떻겠소.”
“그 점을 모두 끌어 안고 라우라를 데려 간다면 오히려 좋게 봐야하는 거 아닌가요.”
“……”
생각해보면 그러기는 했다.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머리로는 페르젠을 향한 평판이 많이 바뀌나, 역시 감정이라는 게 매번 이성을 따라가는가.
똑똑.
그 때, 침실의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에 축 늘어진 몸을 억지로 일으킨 로젠베르크 자작은 안으로 들어올것을 허했다.
“주인님. 브뤼테인에서 서신 한장이 도착하였습니다.”
“……브뤼테인에서?”
멀뚱멀뚱, 로젠베르크 자작은 자신의 아내와 짧게 시선을 교환한 끝에 도착한 서신을 뜯었다.
“……”
“……”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초대장의 가치가 어떠 한지를 깨닫고 한 번 더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이거……”
“그래도 딸을 훔쳐가는 체면을 살려주네요.”
“……? 체면 문제가 아니라, 이 정도로 이득을 챙겨주는 것이라면 그 만큼 라우라에게 몹쓸짓을 했다는 게 아니오!”
“……”
“설마, 설마…… 설마 벌써 아이를 품은 게……!”
“여보!”
움찔!
목청을 높이는 아내의 목소리에 로젠베르크 자작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지만, 역시 속으로는 불안한 가정이 떠나가지 않는다.
‘만약……’
페르젠이 라우라를 데리고 함께 인사를 왔을 때.
라우라의 배가 불러 와있는 상태라면……
로젠베르크 자작은 주저없이 페르젠의 목을 따버리겠다고 결의했다.
하지만 그 결의는 차마 3초도 가지 않아 처절히 흔들렸다.
그리 되면 라우라는 과부가 되고, 자식은 아버지 없이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이 모든 게…… 결국은 딸을 낳아서요……”
“어머. 웃겨. 당신 미쳤어요? 딸을 낳고 싶다고 딸을 낳을 수 있는 게 여자인 줄 아나. 그리 따지자면 당신 씨가 잘못한거죠.”
“뭣……!”
“팔불출도 적당히 해야지. 라우라와 관련해서 당신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마다 홧병이 뻗쳐요. 당분간 합방할 생각 말아요.”
“아, 아니…… 여보……”
주저없이 침실을 나가버리는 자신의 아내를 보며 로젠베르크 자작은 헐레벌떡 일어나 비굴하게 쫄래쫄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남편을 철저히 외면한 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로젠베르크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았다.
브뤼테인으로부터 세공술의 일인 자리 까지 빼앗아올 만큼 최고의 전성기는 이루고 있는, 문화와 예술의 영지.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하는 만큼, 그 수명은 그리 길지가 않다.
미인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던 자신의 얼굴 조차, 더이상 화장으로 감출 수 없는 추레한 주름이 몰려오고 있지 않나.
그러한 점에서 라우라가 얽혀 있는 현 상황은, 로젠베르크에게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게 해줄 열쇠가 되어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