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EP.129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동이 떠오른다.
그것은 일말의 이성도 존재하지 않는, 오직 본능만을 내쫓아 달리는 짐승의 사육이 끝났다는 걸 알려오는 감미로운 종소리.
“……”
피로한 얼굴로 페르젠은 라우라를 내려다보았다.
자그마하게 생기는 그림자 속으로 도망가는 추악하고 질척한 살육의 본능을 마저 끄집어내 바닥에 패대기 치고 싶었지만, 형체가 없는 것을 어찌 죽일 수가 있으랴.
“아, 아으……”
이윽고 이성과 본능이 완전히 역전되어 정상적인 사고를 되찾은 라우라는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전신에서 호소하는 근육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제자리에 주저 앉았다.
허리에 묶여져 있는 밧줄을 따라 느껴지는 아픔은 자신이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고.
축축하고 눅눅해진 팬티는 털 하나 없는 매끈한 음부에 꼬옥 달라붙으며 자신이 페르젠을 얼마나 죽음으로 몰고가려 했는지를 선명히 가르쳐주었다.
“읏……! 흐프……”
다크서클이 옅게 새겨진 눈동자.
자신의 앞에 쭈그려 앉는 그가 커다란 손을 뻗어 입가의 재갈을 풀어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양손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은 그의 상태.
“죄, 죄송……”
“사과할 필요 없다. 앞으로도 항상 이럴 텐데. 그 때 마다 너는 매번 사과를 해올 것이냐. 일일이 받아줘야만 하는 나도 피곤하니 그러지 말도록 해라.”
“……”
페르젠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고 내뱉은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라우라는 앞으로도 항상 이럴 거라는 그의 말이 적잖게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그러나 당장은 그것에 반박할 여지가 없다는 비참한 현실이 그녀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는다.
이내 자신의 제단인 로사리오를 돌려주는 페르젠을 보며, 라우라는 익숙하게 아공간을 열어 상처를 치료할 약품들을 꺼내들었다.
딱!
뚜껑을 여니 약제 특유의 쓰디쓴 냄새가 퍼져 나간다.
이내 페르젠의 상처 부위에 상냥하게 약을 발라준 라우라는 붕대를 잘라 손가락의 움직임이 불편하지 않을 선에서 돌돌 감아준 뒤, 넌지시 페르젠을 올려다보았다.
“다, 다른 곳은……”
“없다. 너를 한 두번 통제하는 것도 아닌데, 매번 몸 구석구석에 상처를 입을 것 같으냐.”
눈높이를 맞추어 주었던 몸을 일으키며, 페르젠은 흐트러진 옷을 단정하게 정돈했다.
그리고는 아주 잠깐, 지나간 밤과 새벽의 시간을 회상한다.
이성이 없는 그녀를 무언가에 비유하자면, 굶주린 늑대 정도가 맞겠으나.
……이번만큼은, 늑대라고 하기 보다는 암사마귀에 가까워 보였다.
단순히 자신을 잡아 먹으려는 것 이전에, 한 마리의 수컷을 잡아 먹으려 들었던 그녀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올바른 비유라 할 수 있을 터.
“하, 하실…… 마, 말씀이라도……?”
내려다보는 자신의 시선에 몸을 움찔하며 더듬더듬 입을 여는 라우라.
“없다.”
욕구불만인 것은 아니냐고 묻는 건 선을 넘는 질문일테기에, 페르젠은 걸음을 돌려 방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 전에, 창문을 열어 내부를 환기시켜두도록.”
“네, 네……”
그렇게 무심하게 걸음을 내딛어 페르젠이 방을 나서자, 라우라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쇄골 부근에 끈적하게 달라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조금 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가급적 유리엘이 일어나기 전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게 이로울 터.
때문에 주섬주섬 주저 앉은 몸을 일으킨 라우라는 입고 있는 싸구려 옷을 벗어 내리기 시작했다.
“하……”
그러다 도중, 자신의 허리와 갈비뼈 부근에 선명히 새겨진 커다란 손자국을 보고는 고운 미간을 슬며시 찌푸렸다.
‘정말……’
무식하기 그지 없는 힘으로 자신을 다루었구나 싶은 흔적.
어디 부러진 곳이 없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툭.
이내 짧은 감상을 마치고 겉옷을 모두 벗은 라우라는 입고 있는 팬티 자락에 손을 가져다대어 천천히 내렸다.
찌덕……
야릇하고 엉큼한 애액이 내려가는 팬티를 따라 길게 늘어진다.
울려 퍼지는 소리는 어찌나 그리 민망스러울 수가 있는 건지.
간신히 인내하고서 팬티를 벗자, 들고 있는 왼손이 순식간에 축축해진다.
특히 거기서 풍겨오는 음란한 암컷의 냄새는 뒤늦게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괴벽의 잔재를 느끼게 해주었다.
“흐, 읏……”
빈약한 가슴 위로 무척이나 애가 탄다는 듯 빳빳이 발기하여 떨고 있는 분홍빛 유두.
팬티를 벗어 내리니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투명한 애액.
게다가 어째서인지 뇌리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책상 밑에서 맡았던 페르젠의──수컷의 냄새.
“응……!”
오른손으로 넌지시 애달프게 떨고 있는 유두를 톡 건드리니 입가를 비집고 달콤한 교성이 새어나온다.
찌걱.
“아앙……”
거기서 한 걸음더 나아가, 자신도 모르게 자그마한 손가락을 밑으로 내려 음탕하게 여물어 있는 음부를 건드린 라우라는 두 다리를 배배꼬며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아, 하하……”
그러다 제정신을 차리고,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입술을 거칠게 깨문다.
그가 나간 집무실에서 혼자 수음을 시도하는 모습은…… 말그대로 발정난 암캐 같지 않은가.
오랜 시간 스스로가 쌓아온 프라이드에 흠집이 나는 것만 같아 라우라는 오싹오싹한 쾌감이 연이어 올라오는 몸을 무시하며 갈아 입을 자신의 옷가지들을 꺼내 들었다.
“……”
그러는 도중, 홀로 바닥에 앉아 자신의 이 모든 추태를 지켜보고 있던 토끼 인형을 발견하고서는 가까이 다가가 앙증맞은 발을 뻗는다.
꾸국!
시무룩하게 뭉개지는, 죄없는 토끼 인형의 작은 얼굴.
하지만 짓밟고 있는 다리의 아름다운 각선미를 따라 흘러내리는 투명한 애액이, 그 억울한 심정을 대변해주듯 끊임없이 눈물을 흘려주었다.
* * * * *
시녀들의 시중을 받아 이른 아침 목욕을 마친 페르젠은 걸음을 옮겨 유페미아의 침실로 들어섰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이 참으로 아름답다.
요즘은 일찍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잠이 부족한 경우가 많던데, 지금은 상당히 깊은 잠에 빠진 것만 같아 천천히 옆에 누운 페르젠은 유페미아의 부드러운 몸을 품안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새하얀 목덜미에 뜨거운 숨결을 연이어 뱉으며, 특유의 풍만한 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눈을 감는다.
……정오 쯤에 눈을 떠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북부로 출발을 하면 되겠지.
그렇게 스스로의 몸에 일어날 시간을 되새기고, 유페미아의 몸을 이불 삼아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긴 페르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단잠에 빠져 들었다.
* * * * *
오전 8시 쯤.
문밖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유페미아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이렇게 푹 자본게 얼마만이더라.
임신을 하고는 매번 배뇨감에 밤잠을 설쳤었는데.
오늘은 어쩐일인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등 뒤로 느껴지는 따스한 감각.
“아……”
언제 온 건지도 모를, 페르젠이 조용히 숨소리를 내뱉으며 잠들어 있다.
특히 자신의 옷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커다란 손은 은근히 아이 같은 면모가 느껴져 희미한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든다.
스륵.
그래도 이 상태로 사람을 마주할 수는 없었기에, 유페미아는 조심조심 페르젠의 커다란 손을 떼어내고 상체를 일으켰다.
“들어오세요.”
딸칵.
내뱉은 한 마디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시녀들.
“마님. 아침은…… 어떻게 할까요?”
금방 일어나서 그런지 입맛은 별로 없었으나,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유페미아는 간단히 차려 방으로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시녀들이 문을 닫고 방을 나서자, 유페미아는 페르젠의 앞머리를 조심조심 쓸어내렸다.
“아……”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손가락의 얕은 붕대를 보고서 유페미아는 그의 커다란 손을 감싸 쥐었다.
생각해보면…… 꼭 한달에 한 번씩은 다친 모습을 봤던 것 같은데.
의외로 부주의한 면이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약간 쓰라린 마음을 추스르며 페르젠의 곁에 누운 유페미아는 그의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이제 자신의 곁에, 자신의 세계에는 그 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조금쯤은 자신의 몸을 더욱 소중히 여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치민다.
“……?”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체감상 10분?
페르젠의 체온과 풍겨오는 고급스런 향수 냄새를 킁킁 맡던 유페미아는 순간 가슴 부근이 축축해지는 느낌에 몸을 떼어냈다.
움찔!
상체를 일으키니 네글리제의 가슴 부근이 젖어들어 조금 커다래진 분홍빛 유륜과 유두를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특히 솔솔 올라오는 달짝지근한 냄새는 모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저, 적어도…… 6개월 차는 되어야 이런다고 들었는데?’
나름 배우고, 주워들은 지식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관찰한 유페미아는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혹시나 잘못된 건 아닐까하고.
벌컥.
때마침 간단히 차린 아침을 가지고 들어오는 시녀들.
“어머……!”
당연히 작금의 유페미아의 모습을 보고는 입가를 가린 채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끔뻑인다.
자신보다 먼저 임신을 하고 아이도 낳아보았을 그녀들일텐데.
보여주는 반응이 긍정적인건지 부정적인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유페미아는 짐짓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바, 바로 의원을 불러 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