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28화 (128/260)

< 128화 > EP.128

밝아오는 아침 햇살.

열린 발코니의 창문 너머로 농후했던 어젯밤의 열기와 야릇한 살내음이 빠져나간다.

“……”

그리고 적나라한 나신을 이불 하나로 가리고 있던 유리엘은 침대 끝자락에 걸터 앉아 있는 페르젠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 무릎을 베고서 편히 누웠다.

그에 아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유리엘을 내려다보며, 손을 뻗은 페르젠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려주었다.

“……조금더 자다가 일어나거라.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어제부터 집무실에 틀어 박혀 있더니, 아직도 안 끝난 거야?”

“그래.”

“……내가 좀, 도와줄까?”

“괜찮다.”

실상은 아무런 일도 없었으니, 페르젠은 고개를 저으며 유리엘의 배려를 상냥하게 거절했다.

유리엘 또한 그가 받아들일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기에, 조용히 입을 닫고 두 눈을 끔뻑인다.

그러다……

“당신, 단추 잘못 잠갔어.”

“……”

“하나씩 올려 잠갔네.”

어젯밤의 그 짐승 같은 한 마리의 수컷은 어디로 가고.

아침이 밝자 단정한 차림새의 남자가 앉아 있어 내심 실망을 했는데.

옷차림에 있어서 그가 실수한 모습을 보니 유리엘은 넌지시 웃음을 흘렸다.

분명 어젯밤의 열락이 가져다주는 여운에 잠겨 실수를 한 것이리라.

“내가 해줄게.”

엉덩이 부근부터 이어지는 허리가 쿡쿡 쑤시듯 아프기는 했으나, 상체를 일으킨 유리엘은 두 손을 뻗어 페르젠의 옷차림을 올바르게 정돈해주었다.

“어차피 씻고 갈아입을 거면서, 이런 점에 있어서는 이상하게 강박적이야. 당신은.”

움찔!

예상치도 못하게 그녀의 입에서 강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일순간 몸을 움찔한 페르젠은 괜히 죄없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아침은 따로 먹을게. 내 방으로 가져오라고 시녀들에게 말해줘.”

“그래. 북부로 올라가는 건 아마 내일이 될 테니…… 휴식이라 생각하고 편히 쉬어라.”

“응.”

곧이어 페르젠이 문을 닫고 나간다.

그 직후, 유리엘은 침대에 편히 드러 누워 이불을 옆으로 젖혔다.

“……”

그러자 침대 시트에 눅눅히 스며들어 있는 수컷의 냄새가 강렬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일어나서 걸었다간 얼마 가지 않아 진득히 흘러나오는 그의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흐르겠지.

하지만 그러한 감상보다, 유리엘은 어젯밤 페르젠이 자신의 항문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것이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그에 다리를 살짝 벌린 뒤, 더듬더듬 손을 내려 자신의 좁디좁은 구멍을 조심스레 매만져본다.

어젯밤 이곳에 들어와 내벽을 긁어냈던 건 그의 손가락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틀림없이……

‘그, 그것도…… 너, 넣고 싶어 하겠지.’

상상만으로도 희미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아 유리엘은 황급히 두 다리를 꼬옥 오므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정도 크기나 되는 것을 아무런 고통도 없이 뒤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가학적인 성향이 있는 페르젠이라면, 자신이 아파하고 우는 모습에 더욱 흥분을 해줄까.

‘……’

이리저리 고민이 되었으나, 역시 유리엘은 그가 뒤쪽으로 삽입을 하고 싶어할 때는…… 나름의 배려를 받고 싶었다.

크기를 조금 줄여서 흐물흐물한 상태일 때 넣은 뒤, 천천히 발기를 시킨다면 덜 아프지 않겠나.

똑똑.

그렇게 응큼하면서도 은근히 모자란 구석이 있는 생각을 이어나가던 찰나, 유리엘은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들어와.”

이 시각, 이 시점이라면 어차피 시녀들이리라.

“앗……!”

“어머나……!”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고 들어선 시녀들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적나라한 나신을 그대로 선보이고 있는 유리엘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시녀들이기에 수치심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어차피 저 여인들이 놀란 것 또한 자신이 알몸으로 있는 것 보다는, 이 몸과 침대에 새겨진 지독한 수컷의 흔적 때문이리라.

그에 유리엘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자고로 시녀라는 존재는 부인들의 손과 발.

그러니 너희들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 어젯밤 나를 이렇게나 격렬히 안았다는 증거를 보여주며 적잖은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비록 공식적인 위치는 첩에 불과할지라도, 이 정도면 누구를 모시고 따라야 하는지 충분히 뇌리에 각인이 되었을 터.

“어서 치우고, 목욕 시중을 들 준비를 하렴.”

때문에 유리엘은 무척이나 여유로운 목소리로, 시녀들을 지휘했다.

* * * * *

“……”

페르젠이 유페미아와 아침을 먹고, 유리엘은 혼자 따로 식사를 한다고 했기에.

자연스레 라우라 또한 배정 받은 침실에서 깨작깨작 아침을 먹고 있었다.

오늘은 주기대로 보름달이 뜨는 날.

가능하면 신경쓰지 않고 태연히 지내고 싶어도, 괜스레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탁.

그래서인지 입맛도 별로 없었기에, 대충 식사를 마친 라우라는 수저와 나이프를 내려두고 탁자에 놓인 종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들이 들어와 그릇과 식기를 가지런히 치워서 나간다.

어느덧 시간은 아침 9시를 넘어가고 있는 상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 따라 왜이리 시간이 빨리가는 느낌이 드는 건지.

삐걱.

좀처럼 정돈되지 않고 어수선해지는 머리가 짜증이 났기에, 라우라는 발코니 쪽으로 나아가 따스한 햇살을 맞이했다.

아직까지는 햇볕이 강하지 않아서 그런지, 적당히 포근해지는 느낌이 어느정도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그에 한참을 아무런 말없이 서있던 라우라는 걸음을 돌려 침대에 편히 누운 뒤, 자신의 제단인 로사리오를 쓰다듬어 아공간을 열어서 읽을만한 책을 한권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널브러진 토끼 인형을 자신의 곁에 앉힌 채, 얌전히 독서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 * * *

오후 6시 30분.

붉게 물든 하늘의 노을이 곧이어 밤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라우라는 저녁조차 거른 채 페르젠의 집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유리엘에게는 몸이 아파 일찍 잠을 자겠다고 말을 해두었고, 침실의 문도 안에서 걸어 잠갔으니 도중에 누군가와 마주하지만 않는다면 들킬 염려는 없으리라.

저택에는 황실의 기사단과 마법사들도 머무르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제대로 된 경계 근무를 시작하는 건 오후 7시.

그러니 움직이는 데 있어서 지금만한 적기는 없을 터.

딸칵.

곧이어 페르젠의 집무실 앞으로 도착한 라우라는 노크조차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페르젠 또한 이 시간에 아무런 노크도 없이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으리라는 걸 알았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 안녕…… 하, 하세요……”

“그래.”

어색하기 그지없는 짧은 대화를 뒤로 미루고, 라우라는 주섬주섬 자신의 아공간에서 갈아 입을 옷들을 꺼내 바닥에 내려 놓았다.

얼마든지 더럽혀져도 상관 없는 싸구려 옷가지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토끼 인형.

그 모습이 퍽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라우라는 천천히 옷을 벗어 내렸다.

사락사락.

은밀하다 싶을 만큼 조용히 울려 퍼지는 야릇한 소리.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겨두고 있는 자신의 팬티를 붙잡고 허리를 살짝 숙였을 때, 라우라는 고개를 뒤로 돌려 힐끔 페르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묵묵히 시선을 밑으로 내린 채 서류를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온다.

“곁눈질로 네 미숙한 몸을 훔쳐 볼 생각은 없으니 얼른 갈아입기나 하거라.”

“네……”

미숙하다는 그 말에서 느껴지는 자그마한 괴리감.

그도 그럴 게 전생의 자신은 완연한 여인의 몸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으리라.

그렇게 팬티마저 벗어내려 완연한 알몸이 된 라우라는 자신의 나신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미숙하다는 그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비루한 몸뚱이.

남성의 욕정을 받아냈다가는 단숨에 부서지지 않을 만큼 여리기 그지 없었다.

‘차라리 잘 되었지.’

다리를 벌려 페르젠을 유혹할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상태가 오히려 적당하다고 생각하며 입고 있던 옷을 아공간으로 집어 넣은 라우라는 갈아 입을 옷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아니, 정확히는 허리를 숙이려다 조심스레 주저 앉아 싸구려 옷가지들을 주워 든다.

……어차피 저 남자는 자신을 여인으로 보고 있지도 않은데.

어째서 자신만 유독 그를 사내로 인식해서 은연중에 조신함을 머금는 건지.

괜히 차오르는 불쾌함에 입술을 꾸욱 깨무는 라우라지만……

똑똑.

“!”

순간 문밖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쭈그려 앉은 채로 전신이 굳어 버렸다.

──들어가도 돼?

심지어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은 유리엘.

자신 뿐만이 아니라 페르젠도 당황한건지 드물게 특유의 붉은색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한 그는 얼른 이쪽으로 오라고 자신을 향해 조용히 손짓 한다.

그에 라우라는 바닥에 앉아 있는 토끼 인형과 곁에 놓여 있는 재갈, 허리에 묶을 밧줄 따위를 챙겨 발소리가 나지 않게끔 까치발을 세우고 페르젠의 책상 뒤로 후다닥 이동했다.

──내 목소리 잘 안들려?

똑똑.

대답이 없자 재차 들려오는 노크 소리.

이내 책상 뒤에 라우라가 완전히 가려진것을 확인한 페르젠은 입을 열어 유리엘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딸칵.

그리고 문고리가 돌아가는 그 때, 페르젠은 갑작스레 움직여 자신의 책상 밑으로 들어오려는 라우라를 보고서 눈살을 거칠게 찌푸렸다.

그러나 그의 무서운 표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그마한 손가락을 내뻗어 뒤쪽을 가리키는 라우라.

슬그머니 고개를 뒤로 돌리니, 노을이 거의 저물이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창문 너머로 라우라의 모습이 반투명하게 비추어진다.

“……바빴어?”

“조금 집중을 하고 있는 터라 대답을 못했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차렸기에, 페르젠은 자세를 고치는 척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라우라의 자그마한 몸을 책상 밑 구석으로 꾹꾹 밀어 넣었다.

‘읏……!’

하지만 아무리 체구가 아담하더라도 책상 밑의 공간은 그리 넓지가 않았기에, 라우라는 숨이 턱 막혀오는 답답함을 느껴야했다.

특히나 자신의 쇄골을 짓누르는 페르젠의 무릎이 어찌나 아픈지.

입밖으로 신음이 흘러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내고서 두 손을 조심스레 올려 페르젠의 다리를 좌우로 벌린다.

‘하……’

그제야 편히 앉지도 못할 감옥 같은 공간에 여유로운 틈이 생기자 라우라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다만, 어느정도 여유를 찾으니 눈에 들어오는 건 적나라하다 싶을 정도로 코앞의 거리에 머무르고 있는 페르젠의 고간.

당황스러워 고개라도 돌리고 싶었지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곳이라 라우라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코로 숨을 들이킬 때 마다 함꼐 스며드는 꿉꿉한 냄새는, 어째서 쓸데없는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지.

이건 분명,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수컷의 냄새일 터.

“……”

더군다나 앉아 있는 상태이기에 페르젠이 입고 있는 정장의 바지는 상당히 타이트하게 조여져 있었기에.

희미한 윤곽이기는 했지만, 불룩 튀어나온 고간 부근의 형태는 틀림없이 그의……

‘아……’

안 그래도 가까운 거리인데.

자신도 모르게 그 얼마 되지 않는 거리마져 좁혔던 라우라는, 자그마한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이마를 꾸욱 밀어내는 페르젠의 커다란 손길에 의해 억지로 밀려났다.

그제야 무슨 추태를 부린 걸까 싶었으나, 다행히 수치심을 느낄 이성조차 남아 있지 않도록 바깥의 거리는 노을이 저물고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구름 한점없이 맑은 날씨라 그런지, 선명히 빛나는 보름달은 오늘따라 유독 아름답게 비추어진다.

타악.

그리고 그 시점에서 문밖을 나가는 유리엘을 보며 긴장했던 몸에 잠깐의 휴식을 주려했던 페르젠이었지만……

“큭!”

대뜸 손가락을 거칠게 깨물어오는 라우라의 행동에 짧은 신음을 흘리며 의자를 뒤로 쭈욱 뺐다.

그러자 아래로 시선을 내렸을 때 눈에 들어오는 건, 이성이 본능에 잡아먹힌 채로 책상 밑에서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암고양이 한 마리.

할짝.

입가에 묻은 자신의 피를 핥아먹는 모습은 얄미운 여유로움과 함께 색기어린 요염함을 풍긴다.

그에 페르젠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녀를 향해 우악스런 힘이 담긴 두 손을 뻗었다.

“익……!”

바둥바둥거리며 저항을 해오지만, 페르젠은 그 모든것을 힘으로 찍어누르며 그녀의 제단인 로사리오를 탈취하고 책상 위에 뒤집어 눕힌 뒤 뒷목을 붙잡아 꾸욱 눌렀다.

그리고는 근처에 널브러진 재갈과 밧줄을 집어들고 피식 웃는다.

“오늘도…… 적잖이 피곤한 밤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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