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륵.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 내리며, 유리엘은 시계를 힐끔 바라보았다.
조금 전을 기준으로, 어느새 밤 11시를 넘겨버린 시간.
‘보나 마나……’
그 여자가 페르젠을 붙잡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오늘 새벽 때 자신과 몸을 섞었으니 공평하게 그 여자와도 정을 나누고 있는 걸까.
‘공평하지 않잖아……’
도대체 몇 시간이나 흐른 건지.
자신과 욕실에서 몸을 섞었던 건, 고작 두 시간 정도가 아니었나.
설마, 그 볼품 없는 여자의 몸이 그리도 기분이 좋은 걸까.
유페미아가 예상했던 대로, 타들어 가는 속을 삭이며 침대에 앉아 있는 유리엘은 울적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딸칵!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
“……”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숨을 내쉬며 어둠 속에서 시선을 교환하는 페르젠과 유리엘.
옷차림은 여느 때처럼 단정했으나, 흘러내린 땀에 의해 눌어붙은 머리카락은 그가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왔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섰을 때, 지독하리만큼 선명히 풍겨오는 그 여자의 살내음은……
꾸욱!
자연스레 이불보를 거칠게 움켜쥐게 만든다.
“늦었어……”
먼저 욕심을 부린 건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질투 나고,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유리엘은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페르젠에게 서러움을 토로했다.
“유페미아가 알고 있었으니…… 공평해야만 했다. 유리엘.”
“아……”
하지만 돌아오는 페르젠의 대답에 유리엘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여자가 새벽에 자신과 페르젠이 몸을 섞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는 했으나,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라……
그 여자가 알고 있었으니 공평해야만 했다는 대목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거라는 게 아닌가.
“그, 그러면 어쩔 수 없었겠네.”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고 싶은데,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지려는 걸 유리엘은 좀처럼 참을 수가 없었다.
방금 대답의 뉘앙스는 그 누가 봐도, 볼품없는 그 여자보다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겠나.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무려 이 남자가 자신의 입으로 공평하게 대해줄 거라 말을 내뱉었는데, 은연중에 그것을 어기려 했던 꼴이다.
‘……’
그리고 선명히 피어오르는 유리엘의 미소를 보고 있는 페르젠은, 속으로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라면 방금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그리 했던 건.
오랜 시간 그녀를 방치해둔 것에 대한 죄책감이라 할 수 있을 터.
생각해보면 아침에도 유페미아에게 그러한 감정을 느껴 남아의 이름을 같이 궁리했었지.
마치 돌려막는 듯한 느낌으로 이러한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면, 필시 균형이 무너지게 될 테고.
서로가 품속에 감추어두고 있는 비수를 앞으로 드러내 추잡한 치정극을 펼치게끔 유도하는 꼴이 되리라.
‘그러니……’
유리엘이 얼른 자신의 아이를 품었으면 하는데.
북부의 일을 마치고 로벨리움 왕국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몸을 섞을 시간조차 없을 터.
“서, 서 있지만 말고…… 이리와.”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듯한 손길로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유리엘이 화사하게 웃는다.
입고 있는 건 야릇하기 그지없는 검은색 네글리제.
가슴 가리개는 하고 있지 않은 터라, 내리비추는 달빛 너머로 그녀의 분홍색 유륜과 유두가 애태우듯 모습을 드러낸다.
네글리제에 새겨진 고급스런 꽃의 문양이 왜 이리도 거슬리는 건지.
“마, 만지고 싶으면…… 얼마든지 만져도 되는데……”
내려꽂히는 시선을 읽었는지, 수줍게 가슴을 앞으로 내미는 유리엘.
거기서 끝나지 않고 슬그머니 밑으로 손을 내려 자신의 허벅지를 더듬어 오는 손길은 생각보다 엉큼하고 적극적이었다.
“응……”
만족할 만큼 유페미아에게 한 번 사정을 해서 그런지, 좀처럼 음심이 동하지는 않았으나.
코끝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복숭아 향기는 그 잔잔한 물결 위로 조금씩 파동을 일으켰다.
그에 두 손을 앞으로 뻗은 페르젠은 밑동부터 부드럽게 움켜쥐다, 제법 거센 힘을 주어 유리엘의 가슴 형태를 일그러트렸다.
“하읏……!”
유페미아의 가슴도 분명 작은 건 아니지만, 좀처럼 한 손으로 쥐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유리엘의 가슴은…… 파고드는 손가락을 따라 일그러지는 모양새가 너무나도 음탕했다.
그렇게 조금씩 유리엘의 신체를 희롱해나가던 페르젠은, 문득 자신의 단추를 풀어헤치기 위해 손을 뻗어오는 유리엘을 보며 여린 손목을 붙잡아 부드럽게 내렸다.
“왜……?”
“……”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어오는 유리엘에게, 페르젠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나름의 대답이라 할 수 있는 건, 손목을 붙잡고 있는 손을 얌전히 내리는 것.
그에 유리엘은 특유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를 가만히 깜빡였다.
이건…… 스스로 선택을 하라는 걸까.
도대체 이 옷자락 너머에 무엇을 감추고 있기에, 자신의 손길을 막아섰던 건지.
설령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유리엘은 반드시 확인을 하고 싶어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손을 뻗었다.
툭.
투욱.
예쁘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조심스레 페르젠의 단추를 풀어헤치며, 안쪽에 가려진 비밀을 더듬어나간다.
이윽고 모든 단추를 풀고서 천천히 셔츠를 젖히자……
“……”
유리엘은 급속도로 표정을 굳혔다.
붉고 화려하게 새겨진 수많은 흔적.
이 남자는 오직 자신의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한, 볼품없는 그 여자의 추잡하고 질척한 집념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사실 거기까지는 상관이 없었으나, 유리엘은 페르젠이 이러한 행위를 허용했다는 것 자체가 좀처럼 믿기지가 않았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했다면 소유를 했지.
이런 식으로 소유 당하는 행위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텐데.
‘한심하고 멍청한 여자…… 이건 마지막 발악이니.’
유리엘은 속으로 조소를 머금었다.
물론, 불쾌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마주 보는 자세로 몸을 섞는 걸 가장 좋아하는 편인데, 이런 식으로 그 여자의 흔적이 잔뜩 새겨져 있으면……
볼 때마다 페르젠과 몸을 섞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남자와 몸을 섞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니까.
하지만 그 정도 불쾌감 정도야 참으면 그만이다.
자신은 절대로, 페르젠이 싫어하는 방향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을 테니.
그 끝에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레 페르젠은 그 여자보다 자신을 더욱 편애하게 되겠지.
“앗……”
가슴 부근에서 손을 내린 그가 자신의 허리춤을 끌어안고 침대 위로 쓰러트린다.
그리고 덧대어오는 탄탄한 수컷의 육체는, 자신의 부드러운 몸을 짓누르며 달아오른 사내의 열기를 적나라하게 전달해주었다.
“흣, 으응……”
조금 숨이 막혀 편한 자세를 찾아 움직이고 싶지만, 꼼짝달싹도 못 하게끔 만들어버리는 욕망 어린 몸짓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한낱 암컷에 불과하다는 자각을 심어준다.
“앙……!”
살며시 귓불을 깨무는 그가 아랫배를 더듬어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 넣더니, 앙증맞게 부풀어 오른 음핵 주변을 손가락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으, 학…… 아앙!”
저릿저릿한 쾌감에 자연스레 다리를 오므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유리엘은 천박하게 헐떡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찔꺽!
“힉……!”
단숨에 두 개의 손가락이 질 안으로 파고들어 온다.
그 갑작스런 침입에 유리엘은 놀라 아랫배에 힘을 꾸욱 주어 페르젠의 손가락을 거세게 조였다.
무언가 평소와 다르게 거친 느낌이 드는 전희.
다만, 아프게 하려는 목적보다는…… 마치 자신을 쾌락에 허덕이게 만들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그 여자가 가득 새긴 흔적을 보고, 나쁜 마음을 품게 될 거라 생각하는 걸까.
이럴 때는 또 어찌나 속마음이 잘 읽히는지.
“앗……! 흐앙!”
오돌토돌한 부근을 지그시 누르며 거칠게 긁어오는 그의 손길에 유리엘은 허리를 거칠게 튕기며 묽고 투명한 애액을 소변처럼 흘렸다.
알프레드 가문의 여인이라 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만큼 추잡하고 천박한 모습.
하지만 그것에 수치심을 느끼기보다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뻗어 페르젠의 목덜미를 상냥하게 끌어안는다.
“나, 나쁜 생각…… 안 품어요……”
“……”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는 못하겠지만…… 치정극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
안심이 되는듯한 나근나근한 목소리.
그리 말을 마치고 페르젠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손을 풀어낸 유리엘은, 문득 눈을 감은 그가 키스를 건네오자 기뻐 어찌할 줄 몰랐다.
유독 섹스를 할 때만큼은, 키스를 잘해주지 않는 그였는데.
움찔!
서로의 설육이 얽히고 얽힐 때마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유리엘의 몸.
이미 입고 있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젖어 든 팬티는 뻐끔거리는 음부의 도톰한 살에 파묻혀 조금씩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아래 어렴풋하게 비추어지는 분홍빛 항문은 얼마나 경박하게 벌름거리고 있는지.
“하, 후으……”
아쉬움이 남을 만큼 짧은 입맞춤 끝에 고개를 떼어내는 페르젠.
야릇하게 이어진 실자락은 조금만 더 키스를 하고 싶었다는 유리엘의 마음을 대변하듯 좀처럼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졌다.
동시에 그것은 오늘밤이 무척이나 오래갈 것이라는 은밀한 암시를 주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