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21화 (121/260)

EP.121 121─막간

늦게 잠들었다면 마땅히 늦게 일어나야 정상일 텐데.

유리엘은 상당히 이른 시간에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힐끔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가고 있었다.

‘3시간 정도 잔건가……’

눈가에는 여전히 졸음이 내려앉아 있어 다시금 눕고 싶었으나, 페르젠은 오늘도 아카데미로 나가봐야 했기에 그때까지만 깨어 있기로 했다.

스륵.

잠들어 있는 라우라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침대 끝자락에 걸터앉은 유리엘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어젯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구매를 한 건지 모를 조잡한 싸구려 팔찌가 눈에 들어온다.

‘미신일 게 분명한데……’

이런 미신에 기대야 할 만큼, 페르젠의 아이를 품고 있는 유페미아가 부러운 걸까.

“하아……”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대충 귀 뒤로 넘기고, 몸을 일으킨 유리엘은 복도로 걸어 나왔다.

일단은 욕실로 향해 수마를 쫓아낼 겸 목욕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정원을 산책하며 간단히 시간이라도 때워야지.

또각.

하지만 어슴푸레한 여명이 스며드는 복도를 걷던 유리엘은, 페르젠과 유페미아가 함께 잠들어 있을 방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억지로 시선조차 주지 않았는데.

마치 덫에 걸린 사슴처럼, 그녀의 두 다리는 단 한걸음을 나아갈 수 없었다.

“……”

이 안에서 그 여자는 페르젠의 품에 안겨 있겠지.

틀림없이 그의 온기를 온 몸으로 전해 받고 있으리라.

살짝 문을 열어 안을 엿보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올랐지만, 유리엘은 간신히 인내했다.

왜냐하면 페르젠이 피곤해 보이기는 했어도, 혹여나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면……

틀림없이 그의 체취에 뒤섞인, 그 여자의 추잡한 살내음이 문의 틈새로 새어 나올 테니까.

‘굳이……’

그걸 직시할 필요는 없으리라.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몸을 섞은 후의 흔적을 확인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때문에 유리엘은 두 눈을 한 번 질끈 감고서, 마치 바위가 얹힌 듯한 두 다리를 애써 내뻗었다.

딸칵.

아니, 내뻗으려는 순간이었다.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지는,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

“……!”

놀라 몸을 움찔한 유리엘은 뻣뻣해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벌컥.

“아……”

그러자 피로함이 가득 서린 얼굴로, 인상을 찌푸린 채 걸어 나오는 페르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리엘……?”

이제 새벽 4시가 넘어 가고 있는 이른 시각일 텐데.

혹시 잠결에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코끝으로 스며드는 이 달콤한 복숭아 향기까지 잘못 맡을 수는 없겠다 싶어 페르젠은 힐끔 고개를 돌렸다.

조심하기는 했는데, 자신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는 유페미아가 보인다.

그래서 깨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닫고, 다시금 유리엘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 구나.”

“으응……”

부드러운 뺨을 어루만지자,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얌전히 받아들이는 유리엘.

은근슬쩍 거리를 벌릴 때면, 해당 손의 온기를 쫓아 자신의 뺨을 들이밀며 수줍게 애정을 갈구해온다.

그 모습이 어찌 이리도 사랑스러울까 싶어, 페르젠은 유리엘을 벽 쪽으로 부드럽게 밀어붙인 뒤 그녀의 그윽한 체향을 대놓고 들이켰다.

“아, 안 씻었는데……”

“피곤한 이유는,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냐.”

“……조금.”

“그런가.”

밤잠을 설친 이유는, 굳이 추측을 할 필요도 없이.

복귀한 자신이 유페미아와의 동침을 선택했기 때문이리라.

“짜증나고, 서글픈 건 사실이지만…… 괜찮아.”

“……”

“그 여자를 우선하라고 말했던 건, 나였으니까. 당신이…… 내 눈치 보지 않아도 돼.”

말을 이어 나가는 유리엘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페르젠의 시선을 피해 달아난다.

사실은 본심은 그러지 않았고, 이런 자신을 그가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기를 원했으니 어쩌겠는가.

다만, 그걸 이실직고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닐까 싶어……

아니, 이기적인 걸 떠나 그가 자신을 귀찮은 여자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 유리엘은 착한 여인을 연기했다.

“유리엘.”

“아……”

더듬더듬 내려간 페르젠의 손이, 자신의 엉덩이를 야릇하게 어루만진다.

“욕심 부려도 괜찮다. 고작 두 여인에게 절제를 강요할 만큼, 무른 몸뚱이는 아니니.”

지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파렴치하다고 할 수 있는 손길을 뻗어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걸까.

두근두근.

심장의 박동이 점차 올라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굴었다.

“지, 지금……”

“……”

“모, 목욕하러 가는 길인데……”

그러니.

“같이…… 가, 가줘.”

애써 말을 해놓고도 유리엘은 잠시 후회를 머금었다.

“그러지.”

하지만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긍을 해주는 페르젠의 대답이 들려오자, 유리엘은 멀뚱멀뚱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 가임기, 끝났어……”

“알고 있다.”

“흣……!”

약간 싸늘해진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그가 자신의 목덜미를 잘근잘근 물어온다.

화가 난 걸까.

살짝 까치발을 든 유리엘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페르젠의 등을 끌어 안았다.

“내가 그 동안…… 너를 씨받이 취급을 했던 것 같나.”

“미, 미안해요……”

“쓸데없이 어림짐작 하지 마라. 나는 너를 탐하고 싶으니 탐하는 것이다. 유리엘.”

“흐응……!”

“내 아내로서, 곁에 두고 있는 것이야.”

고개를 떼어내는 그가 자신을 내려다본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붉게 빛나는 눈동자.

유리엘은 그것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마치, 페르젠에게 철저히 예속 되는 듯한 느낌.

“이 조악한 팔찌는 무엇이냐.”

“아……”

걷어 올렸던 소매를 내리지 않았기에.

뒤늦게 자신이 어젯밤 몰래 구매했던 싸구려 팔찌를 확인한 그가 팔을 들어 올리며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냥…… 사봤어요.”

“……”

돈의 씀씀이에 스스로 제약을 두고 있었던 걸까.

물건을 보는 안목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기에, 페르젠은 어렴풋하게 그 팔찌가 얼마나 조잡한 것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돈 쓰는 것에 눈치를 보지 마라.”

“으, 응……”

스륵.

자연스레 팔찌를 거두어가는 그의 손길에 유리엘은 내심 아쉬움을 머금었다.

그러나 그 팔찌를 거두어간 페르젠은, 곧바로 자신의 제단을 쓰다듬어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끄집어내는 건 아름다운 보석함.

생각해보니 아내가 된 그녀에게 그 어떠한 선물도 해준 적이 없었던 것 같아, 페르젠은 한 쌍의 팔찌를 손에 쥐어들었다.

“잘 어울리는 구나.”

“아……”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채워지는, 하늘이 비친 바다를 새겨 넣은 듯한 팔찌.

이 남자가, 아니 자신의 남편이 된 페르젠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해주는 선물에 유리엘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마음에 들지 않나.”

도리도리.

유리엘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자신의 목에 목줄을 걸어주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 같은데.

이리도 아름다운 팔찌를 선물로 해주니 너무나도 기뻤다.

매번 볼 수 있었던, 유페미아가 차고 있던 목걸이.

그것은 결코 루에르그의 재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분명 페르젠이 선물을 해주었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이제는 자신도……

“가, 가요.”

소중하게 한 쌍의 팔찌를 어루만지다, 유리엘은 페르젠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제법 힘이 실려 있었던지라 저항하지 않는 페르젠은 그녀에게 이끌리듯 걸음을 내딛어야 했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온 유리엘은, 아주 정성스러운 손길로 페르젠의 옷을 벗겨주었다.

그러자 뿌렸던 향수가 밤 동안 옅어져, 적나라하게 새어 나오는 자신의 체취를 머금고 단단히 발기한 페르젠의 성기가 드러난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솔직히 그 흉물스러움에 유리엘은 조금 겁을 먹었다.

분명 저것이 몇 차례 자신의 안을 파고들었던 걸 알고 있음에도, 몸의 기억이 희미해진 터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첨벙!

욕조 내의 물결이 출렁인다.

몸을 담군 유리엘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페르젠을 힐끔 쳐다보았다.

수면 위에서 수면 내부를 바라보는 그 반사각에 의해 흔들리는 페르젠의 성기가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핏줄이 흉측하게 도드라지고, 아주 조금이었지만 더 부풀어 오르고 있었으니……

흠칫!

페르젠의 손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그리고 가까이 끌어당기며 가녀린 발목을 붙들자, 유리엘은 본능적으로 그의 팔뚝을 붙잡았다.

“……많이 참았다. 유리엘.”

그러자 마치 으르렁 거리듯, 위협을 가해오는 페르젠의 목소리.

거기에 스며든 자신을 향한 끈적한 욕망은, 얼마나 그를 애태우게 만들었나 싶어 자연스레 두터운 팔뚝을 붙잡고 있던 손을 내리게 만들었다.

“흣……!”

이윽고 저항이 사라지자 지체할 시간도 없다는 것처럼.

붙잡고 있던 발목을 단숨에 끌어당겨 자신을 앞으로 당도시킨 그가 허리를 안아 든다.

그 손길을 따라 엉거주춤 일어난 유리엘은 페르젠의 넓은 어깨를 짚었다.

풍만하고 커다란 가슴이 페르젠의 눈앞에서 무척이나 유혹적으로 출렁인다.

“아, 앙……!”

그에 페르젠은 단숨에 그녀의 가슴을 한 움큼 베어 물었다.

제법 거친 행위였지만, 반대로 손길은 휘어진 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엉덩이를 내려앉힌다.

“흐, 흑……!”

애써 인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허리가 점점 내려갈 때 마다 세차게 껄떡이는 그의 성기가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려왔다.

그것은 마치 뱀이 타고 기어오르는 듯한 소름끼치는 감각을 선사했기에, 유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음부를 꼬옥 오므렸다.

꾸욱!

하지만 맞닿은 페르젠의 성기는, 그 정도 저항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살금살금 입구를 찾고서……

찔꺽!

“힉……!”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리엘은 전신의 모든 신경이 순식간에 하복부로 쏠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고작 끄트머리 정도가 삽입되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묵직하게 올라오는 거북함.

“흐…… 아, 으응!”

버거움에 바동거리는 유리엘이나, 그런 그녀의 몸을 으스러지듯 끌어안은 페르젠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계속해서 유리엘의 연분홍빛 속살을 강제로 벌리며 흉물스런 성기를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마치 뱀이 자신의 허벅지를 타고 기어 올라와 음부 안으로 똬리를 틀려는 것 같다는 유리엘의 비유가, 아주 틀리다고만은 할 수가 없으리라.

첨벙!

“끄흑……!”

이윽고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페르젠은 그녀의 허리를 짓누르던 손길에 더욱 힘을 주어 단숨에 뿌리 끝까지 틀어박았다.

“하……”

그 순간 페르젠은 말로 이룰 수 없는, 일종의 포만감을 느꼈고.

유리엘은 빈틈없이 가득 들어찬 자신의 질내에 거북함을 느끼면서도, 모종의 충족감을 느꼈다.

“흐…… 응…… 읏!”

꾸물꾸물.

얼마나 욕심이 많은 건지.

똬리를 튼 뱀이 탐스럽게 자신의 자궁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씨를 받아내고, 착상한 아이가 소중하게 자라나야 할 곳인데.

“마, 마음대로…… 해요……”

유리엘은 기꺼이 잡아먹으라는 듯, 온 몸의 힘을 풀며 페르젠에게 기대듯 안기었다.

……사실은 도저히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그렇게 잔잔하게 출렁이는 물결 속, 솟아오른 그녀의 새하얀 엉덩이는.

힘이 풀려 벌름거리는 앙증맞은 분홍빛 항문을, 수면 위로 음탕하게 비추었다.

* * * * *

나쁜 년.

지독한 년.

추잡한 년.

속으로 그리 악담을 퍼부으며, 유페미아는 잡았던 문고리에서 손을 내렸다.

페르젠이 침대에서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눈을 뜬 그녀는, 희미하게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곧장 일어나 나가려 했으나……

들려오는 유리엘의 목소리에 문고리를 붙잡은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선명히 들려오는 대화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다른 건 다 괜찮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프레드 가문의 차녀가 일부러 싸구려 팔찌를, 그것도 갑자기 차고 있었다는 건……

그 속내가 훤히 보여 조금 화가 났다.

굳이 빙빙 돌아 추측할 것도 없이 페르젠에게 동정을 끌어내기 위함이리라.

그래, 그녀는 페르젠에게 동정을 얻어내기 위해 자신으로부터 볼품없는 가난마저 빼앗아 간 것이다.

없는 자가 가진 자에게 무언가를 강탈하기란 어려웠고.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무언가를 강탈하기란 얼마나 쉬운지를.

유페미아는 이 순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

허탈했다.

그녀는 이리도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자신은 마치 적나라한 알몸으로 맞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유페미아는 아이를 품고 있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남은 건 오직 태내에 머무르고 있는 페르젠의 아이 뿐.

그런 생각이 오늘 따라 강하게 들어서일까.

유페미아는 진심으로, 유리엘이 페르젠의 아이를 가지지 못하길 바랐다.

그에게 자식을 안겨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만이었으면 했다.

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추악한 독점의 욕망.

"아……"

그리고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유페미아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일순간 자식을 수단으로 삼아버린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더할 나위 없이 추잡해 보였으니까.

"미안해…… 미안해……"

그 어느 때 보다도 상냥한 손길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유페미아는 애달픈 울음을 토해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막간은 다음화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상 보다 길어지네요.

* * * * *

노벨티콘 추가 안내사항 입니다.

제가 20종 규격인지를 몰랐거든요……

그래서 11종을 추가 제작 해야 합니다.

창고님과 일정 조율 결과 빠르면 7일 늦어도 14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건 순애가 아니야 > 순애를 돌려줘……!

순애를 더럽히지 마! > 정수기 아니야!

로 패치합니다.

* * * * *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다음화 보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