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5 115─D.C
정신을 차린 페르젠의 눈에 들어오는 건 따스한 햇살과, 온전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처절하게 박살난 뤼펠트 숲이었다.
마도 병단에 소속된 세 명의 원소 마법사들이, 리지를 포함한 세 명의 기사가 진입을 시도 했을 때 마력을 아끼지 않고 마법을 퍼부어 일대를 초토화 시켜버린 탓이다.
그것은 대인 화력 측면에서 원소 마법사가 가지는 살상력을 절실히 보여주었고.
페르젠이 잘못되었을 때 뒤따라 올 제관의 분노를 결코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 또한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교, 교수…… 님……”
마력 탈진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 명의 원소 마법사들이, 넋 나간 채로 주저앉아 있는 용병 협회 소속의 직원들과 함께 자신을 바라본다.
단 시간 사이에 인간이 저리도 초췌해지고 폭삭 늙을 수가 있을까.
어린 아이에게 현재 이들의 몰골을 보여준다면, 틀림없이 측은지심 정도는 어렵지 않게 깨우칠 수 있으리라.
“쉬도록 해라.”
“적의 본체가 죽어서…… 깨어나신 겁니까……?”
“정신체를 붕괴 시켰다. 숲 일대를 날려버렸음에도 찾지 못했다면 상당히 깊은 곳의 지하에 틀어 박혀 있다는 뜻이겠지.”
미약한 현기증이 들지만, 페르젠은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며 고개를 돌렸다.
세 명의 기사들은 슬슬 깨어나고 있으나, 곁에 누워 있는 리지는 아직도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어느 의미로 가장 정신적 충격을 많이 받았을 테니, 환몽 결계가 붕괴되었다고 한들 곧장 눈을 뜰 여력은 없을 터.
“마무리는 내가 하도록 하마.”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페르젠은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하여 일으켰다.
그러자 저 멀리, 소란스러움을 자아내며 대기하고 있는 학생들 무리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새하얀 머리의 소녀, 라우라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걸 페르젠은 깨달았다.
‘이미 죽어버린 시신이라도……’
제노바 가문의 혈통에 대한, 오묘한 동질감이라도 느끼는 걸까.
시선이 마주치니 들고 있는 양산을 앞으로 내려버린다.
상당히 매너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귀여운 반항으로 보고서 페르젠은 이사벨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마력을 소모하여, 이사벨을 통해 대지에 간섭했다.
적의 본체가 이 숲의 일대, 그 아득한 지하에 숨어 있다고 한다면.
꺼내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갈아엎는 것뿐이었으니까.
쿠그극!
‘과연……’
아폴리온 등급의 원소 마법사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의 표면이 잔잔한 물결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페르젠의 마력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간섭의 범위가 깊고 넓은 만큼, 혹여나 건드린 단층이 서로 맞물려 도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 여파를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간섭의 영역에 속하는 대지와 대기는 소모하는 마력에 위력이 반드시 비례하지도 않고, 아군에게도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했으나.
간섭이라는 부분에 속하는 만큼 무력화를 시킬 수 없다는 압도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쿠웅!
이내 물결처럼 흔들리던 바닥이, 커다란 소음과 함께 짧은 시간 동안 잠잠해진다.
그것은 꾸깃꾸깃 구겨진 종이를 양쪽에서 잡아 당겨 올바르게 피는 것과 같았다.
다만, 그 상태에서 계속 양쪽으로 잡아당긴다면 결국에는 처절히 찢어지듯이……
콰앙!
순식간에 일어나는 수많은 균열 사이로, 지하에 있던 흙과 붕괴된 단층의 파편들이 일제히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화산이 분화하여 마그마가 튀어오르는 것 같았고.
운 좋게 파고 들어간 땅에서 온천수가 범람하는 것과 같았다.
뤼펠트 숲의 넓은 일대, 그 모든 곳에서.
갈아엎어진 땅이 지하의 내용물들을 밖으로 거침없이 토해낸다.
“어, 어……”
그리고 그 흙더미의 파도 속으로.
높이는 족히 3m, 길이는 7m 가량 되는──성체로 성장한 웜의 사체가 머리부터 시작해 몸통을 서서히 드러냈다.
‘저걸 잘도 구했군.’
웜의 사체는 입수하는 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아니, 매물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는 희귀한 축에 속했다.
왜냐하면 성체로 성장한 웜의 수명은 한 달이 채 되지 않고, 생긴 모습과 다르게 온화한 편이라 주로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질 않으니까.
언젠가 이곳도 문명이 발전하여 석유를 자원으로 쓰게 된다면.
틀림없이 그 석유를 생성하는데 기여한 일등 공신은 틀림없이 웜들의 사체일 것이다.
툭.
투두둑!
몸통의 절반 정도가 밖으로 빠져나온 시점에서, 페르젠은 마력의 소모를 멈추었다.
그러자 사방팔방으로 흙더미와 돌조각들을 토해내던 땅이, 폭풍이 몰아친 후 맑은 개이는 하늘처럼 점차 고요해졌고.
저벅.
그 난장판을 즈려 밟으며 나아간 페르젠은……
쩌억!
웜의 몸통 일부를 잘라내어 커다란 입구를 만든 뒤, 천천히 안으로 진입했다.
굳이 이러지 않고 웜의 사체를 사역하여 내부에 있을 적을 밖으로 배출시켜도 되지만.
정신체가 붕괴하여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쯤이야 틀림없이 대비를 해놓았을 테니.
이미 높은 확률로 자살을 끝마쳤을 적의 시체에 괜히 더 손상이 가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 또한 피드백을 받지 못하게 뇌 부분을 손상시켜버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자그마한 희망을 선입견 때문에 떨쳐버리기도 애매하지 않은가.
“……”
그렇게 마치 동굴과도 같은 웜의 내부를 거닐어 도착한 끝──그곳에서.
페르젠은 두개골과 함께 뇌 부분이 완전히 녹아내린 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친 새끼.’
그에 페르젠은 속으로 어울리지 않는 욕을 읊조리며, 곧장 손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틀어막은 뒤 위쪽으로 구멍을 뚫어 내부를 환기시켰다.
저 정도로 강력한 산성 물질이라면, 반응을 하는 과정에서 대기로 스며든 성분이 기관지나 폐에 손상을 입힐 터.
저벅.
임시적인 채비를 마치고,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는다.
어차피 피드백을 받을 수 없는 상태이니, 자신의 능력이라도 시험해보고자 함이다.
“……”
하지만 역시, 어렴풋하게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꼬리가 길면 한 번쯤은 밟힐 법도 한데.’
짐승이 아니라 도마뱀 새끼인건지.
밟으려 할 때 마다 족족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 버린다.
그것이 적잖이 불쾌해 미간을 찌푸린 페르젠은, 적의 얼굴을 자세히 눈에 담았다.
“아……”
그리고 페르젠은 그 행동을 후회했다.
왜냐하면 환몽 결계 내부에서 봤던 적의 얼굴과, 여기 누워 있는 적의 얼굴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아니, 다르다 못해 다른 사람이라 봐도 좋았다.
아는 범주 내에서 망상을 구현시킬 수 있는 공간이니, 당연히 겉모습쯤이야 바꾸고 접근을 했을 테지만.
‘이건……’
뭉크의 절규가 사실은 이 적의 초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얼굴의 형태가 괴기하게 뒤틀려 있었다.
직설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결코 낳고 싶어 하지 않는 어미의 발버둥을 거스르고 꾸역꾸역 앞을 가로막는 질입구를 필사적으로 헤쳐 나왔다고 해야 할까.
“……”
아이가 한참을 가지고 놀던 찰흙 덩어리를 주워다 목 위로 얹혀 놓으면 이러지 않을까 싶을 만큼 거슬리는 비대칭에.
페르젠은 스스로 인지를 하지도 못한 사이, 본능적으로 아공간에서 새하얀 장갑을 꺼내 끼고 있었다.
움찔.
뒤늦게 그것을 인지하고 슬며시 제동을 걸어보지만……
퍽──!
멈추어 선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에는 주먹을 뻗어,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적의 콧대와 광대뼈를 무참히 함몰시켜나갔다.
왼손으로 6대.
오른손으로 6대.
리듬감 있는, 규칙적인 12번의 타격이 고요히 울려 퍼진다.
* * * * *
저벅.
일을 마치고, 웜의 내부에서 적의 사체를 끌고 나온 페르젠은 피곤한 얼굴로 정신을 차린 기사들에게 시신을 양도했다.
장갑을 벗은 두 손에 상처는 없었으나, 붉게 부어올라 화끈화끈 거리는 감각이 이 더운 날씨와 맞물려 괜스레 짜증을 복돋는다.
‘아마도……’
자신이 죽고 난 뒤, 시신이 되었을 때.
가장 높은 구현율을 구사할 수 있는 흑마법사는, 피타고라스 정도 되는 수학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끈.
미약하게 올라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페르젠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교수님.”
“가능하면 뒷수습은 맡기고 싶은데. 급한 게 아니라면 다음에 했으면 좋겠군.”
“그런 게 아니라……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저기 쓰러져 있는 아이가 교수님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알고 있다. 안에서 만났으니까.”
무심한 페르젠의 말에, 곁의 기사는 환하게 웃었다.
어느 정도 정치적 계산이 들어갔을 행동일지라도.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희생은, 나름대로 보답을 받았으면 하는 자그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사의 순진무구한 마음을 읽었기 때문일까.
페르젠은 보기 좋은 미소를 머금고,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리지 곁에 앉아 특유의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너머, 아기처럼 보드라운 뺨이 매만져진다.
“정말, 용기 있는 아이였습니다.”
“아무렴. 그대가 그리 강조 하지 않아도. 착한 아이는……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움찔!
죽은 듯, 잔잔한 숨을 몰아 내쉬던 리지가 몸을 떨며 고운 미간을 찌푸린다.
그 모습을 보며 페르젠은 친절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올곧게 정돈해주었다.
‘지금 너는……’
어떤 꿈과 마주하고 있을까.
곁에 있는 기사는 너를 용기 있는 아이라고 했다.
자고로 용기란, 신념을 가지기 위해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
고통과 실망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들을 일컫는다.
그 모든 것들을 정녕 네가 품고 있었다고 한다면.
‘정신을 차렸을 때, 과연 너는……’
곁에 있는 이 기사가 말하는 대로.
여전히 용기 있는 아이일지.
아니면, 용기 있었던 아이가 될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구나.’
세파르, 아니 크로셀의 환몽 결계는 일종의 꿈의 영역에 가깝다.
그러니.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더.
같은 꿈을 꾸도록 하자꾸나.
* * * * *
어린 양의 심처를 파고드는 잔혹한 늑대의 자장가가, 거침없이 그녀의 몽상을 더럽혀나간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은, 악몽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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