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4 114─D.C
주륵.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그녀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뿐만이 아니라 귀를 비롯한 입가에서도 선홍빛 핏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그가 떠오른 단편적인 기억들만으로 구현해낸 괴이는, 오직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리지의 정신력을 무참히 갉아 먹는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는, 아니 애초에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는.
그 압도적인 벽 앞에서 리지는 가녀린 두 손을 조용히 들어 올렸다.
──그 분의 얼굴을 보았구나.
──그러하다면 스스로 두 눈을 뽑아 바치거라.
분명,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귓가로 들려오는 남성인듯 하면서도, 여성인 듯한 중성적인 목소리는 그녀의 정신을 간단히 옭아맸다.
때문에 듣고서 판단을 하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리지는 한 치의 의심과 망설임도 없이, 들어 올린 두 손을 뻗어 자신의 보랏빛 눈동자를 끄집어냈다.
아니, 끄집어 낼 뻔했다.
틀림없이 지척으로 도달한 페르젠이 저지하지 않았다면, 리지는 스스로 두 눈을 적출했으리라.
“아……”
그리고 페르젠의 손길이 닿는 순간, 리지는 뿌옇게 흐려져 있던 정신이 맑게 게이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눈앞의 광경을 맨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다른 의미로 고문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아…… 흐……! 읏……! 콜록!”
그녀가 했던 각오는 사실, 이리도 간단히 무너져 내릴 만큼 무딘 것이 아니었다.
페르젠이 악마라 한다면, 그를 죽이기 위해 악마가 될 자신이 있었으며.
괴물이라고 해도, 똑같이 그를 죽이기 위해 괴물이 될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를 죽이기 위해 자신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
양의 탈을 벗어 던진 늑대는 잔혹하게도.
그 늑대의 모습 또한, 하나의 가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늑대의 가면 뒤, 어렴풋하게 보이는 형용할 수조차 없는 두려움을 리지는 마주하여 알아낼 자신이 없었다.
“리지.”
이윽고 특유의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그가 입을 연다.
분명 더 할 나위 없이 상냥하고, 다정한 손길이지만.
그의 표정은 무서웠으며,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공포스러운 기색을 머금고 있었다.
“너는…… 나를 구하러 왔느냐.”
그게 아니라면.
“나를……”
뒷말은 생략되었지만, 그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 리지는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었다.
때문에 사시나무처럼 온 몸을 덜덜 떨었다.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깨어나고 싶다고 해서 깨어날 수 있는, 단순한 악몽 따위가 아니었다.
이내 침묵이 길어지자, 페르젠의 주위를 맴돌던 괴이들은 자신들의 신체 일부를 뻗어 그녀의 사지를 붙들어 올렸다.
“아, 아……”
괴기하고, 소름이 돋는 감촉.
상처는 나지 않았으나, 마치 벌레가 살점을 갉아 먹으며 기어 다니는 것 같았고.
또, 피부 안쪽으로 무수한 지렁이들이 꿈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접촉의 범위가 두 팔과 두 다리를 넘어 옷 안쪽으로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자, 리지는 피어오르는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쯧.
그러한 모습에 페르젠이 짧게 혀를 차니, 그녀를 속박하고 있던 괴이들은 허겁지겁 리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사실 현재 구현된 괴이들 입장에서 단순한 접촉의 시도는 무척이나 신사적인 행동이었지만.
인간의 배려가 개미들에게는 재앙이 되듯, 리지로써는 도저히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 읏…… 흐…… 흐윽……!”
이내 살아있는 생명처럼 박동하는 대지 위로 철푸덕 떨어진 리지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무릎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것은 현재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기제.
접촉한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정신은 더욱 피폐해졌고.
뒤집어쓰고 있던 타인의 겉모습 또한 풀려버렸기에, 어느 의미로 현재 그녀의 내면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그녀의 앞에서 친절히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인 페르젠은 리지의 턱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아…… 아……”
“나는, 언제까지 네 대답을 기다려야 하느냐.”
“저, 저, 저는……”
다시는 불합리함에 굴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미 한 번 머리를 조아렸던 대상에게 다시금 굴복하는 건.
놀라우리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교, 교수님을…… 구, 구하러…… 와, 왔어요……”
단 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지가 페르젠을 부르는 호칭이 「 당신 」 이 아니라 「 교수 」.
그것은 교수와 학생의 관계를 들이밀며, 당신은 나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애처로운 발버둥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페르젠이 모를 리가 없었지만.
더불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도 알았지만.
타이밍이 어긋나버렸기에, 속으로 아쉬움을 삼켰다.
조금만 더 빠르게 그녀가 도착을 했다면.
보잘 것 없는 송곳니를 드러내 자신의 목덜미를 물려고 했다면.
아무 탈 없이, 클로디아 가문을 몰락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래.”
아쉬워도,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니 어쩔 수가 없으리라.
하지만 그건 그거고.
해당 아쉬움과 별개로, 페르젠은 리지가 자신의 목덜미를 무려는 행동을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많이 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틀림없는 극복의 징조.
어쭙잖은 속죄의 길은 진작 포기했기에, 그녀가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일은 존재해선 안됐다.
자신이라는 역경을 극복하는 순간, 그녀는 틀림없이 압도적인 경지의 흑마법사가 될 테니까.
그래도 눈치를 채서 다행이었다.
눈치를 챘으니, 남은 일은.
느슨해진 목줄을 다시금 조여 주는 것.
“나를 구하러 왔다라…… 너는, 착한 아이였구나.”
흠칫!
넌지시 흘러나오는 페르젠의 한 마디에, 리지는 본능적으로 몸을 떨며 가녀린 다리를 꼬옥 오므렸다.
그러한 리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페르젠은 자그마한 그녀의 몸을 품안으로 끌어안았다.
미약한 거부반응이 일어났지만, 이미 페르젠의 손길을 떨쳐낼 기력 따위는 없었기에.
리지는 얌전히 안겨, 자신의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페르젠의 읊조림을 전해 들었다.
“착한 아이라서 그런지…… 거짓말이 서툴러.”
“아……”
언성을 높이지 않고.
윽박 지르지도 않고.
어찌 이리도 나근나근, 조용한 목소리로.
대상의 숨통을 조여 올 수가 있을까.
이내 정말 숨도 쉬지 못하고 굳어버린 리지는, “끅…… 끅……” 거리는 애처로운 흐느낌만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러한 리지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등을 받친 페르젠은 잔혹한 웃음을 띤 채 말했다.
“농담이다.”
라고.
물론, 농담 일리가 없었다.
그걸 리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이유로 이곳에 들어왔는지 꿰뚫고 있었으며.
그저, 운이 좋게 덫에 걸리지 않은 자신을 보고 아쉬워하고 있을 뿐이리라.
그에 리지는 처량하고, 또 꼴사나웠지만.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속으로 느끼고 말았다.
그 순간 피어올랐던, 꺼지기 직전의 찬란한 불꽃이.
그녀의 마음 한편에서 사그라들었다.
남은 잿더미에는, 불씨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모종의 공허함과 깊은 좌절감에 빠져든 리지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페르젠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적의 정신체가 붕괴되기 전 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보인다.
그러하다면 이 시간을 조금 더 소중하게 이용을 해야겠지.
“신발은 어디로 가고, 맨발이구나.”
“……”
무슨 의도인걸까.
아름다운 구두를 구현해낸 그가, 자신의 발을 붙잡고 조용히 신겨준다.
그에 리지는 저항조차 하지 않고, 마치 실 풀린 인형처럼 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이윽고 구두를 올바르게 신겨준 페르젠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가느다란 왼발을 커다란 손으로 붙잡았다.
힘을 주면 당장이라도 뚝 하고 부러질 것만 같은 가녀린 다리.
“아……”
무서운 건지, 옅은 불안감을 머금은 그녀가 덜덜 떨며 자신을 바라본다.
그 처연하게 떨려오는 보랏빛 눈동자에, 페르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찌. 두 다리로 걷게 된 기분이 생소하지는 않느냐.”
“……”
정말, 뻔뻔하기 그지 없는 질문.
순간 화가 치솟았지만, 그 보다도 가장 먼저 터져 나오는 건 애처로운 울음이었다.
이 사람.
이 남자.
페르젠은 어째서, 자신에게 이리도 잔혹하게 구는 걸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까지 몰아붙이는 걸까.
이유가 있다면 리지는 알고 싶었다.
아니, 그 마음도 금방 식었다.
이제 와서 무슨 이유가 있다 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
여기까지 그어진 평행선은, 다시금 좁혀질 수 없었다.
그리고 뺨을 타고 서럽게 흘러내리는 리지의 눈물을, 페르젠은 손을 뻗어 닦아주었다.
“그걸 아느냐.”
“……”
“여인에게 신발을 선물해주는 건, 춤을 한곡 춰달라는 의미지.”
“……”
“성적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제 3층의 괴이를 대리 소환해달라는 권리는 네게 넘어갈 터.”
운이 좋으면, 신체의 결손을 수복시켜주는 괴이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미리 예행연습을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싫다는 한 마디 조차 내뱉지 못하는 리지를 보며.
아니, 작금의 리지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페르젠은 배려를 가장한, 일방적인 잔혹함을 흩뿌렸다.
풀려서 흘러내리는 그녀의 실 자락을 자신이 쥐어들었다.
그리고 체념에 가까운 포기를 머금고 있는 그녀는, 얼른 적의 정신체가 붕괴하기를 바랐다.
하다못해 현재의 이상 현상을 보고서 이곳이 환몽 결계 내부라는 걸 눈치 챈 기사들이 달려와 주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손을 얹혀야 하지 않겠느냐.”
“……”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전 까지, 그의 곁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
때문에 리지는 내밀고 있는 페르젠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혔다.
춤을 추는 법도 잊어버린 자신의 꼴을 보고, 마음껏 비웃고 싶은 것이리라.
그러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생각하며, 리지는 자신을 리드하는 페르젠을 따라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페르젠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잔인한 사내였다.
“아……”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생기는 소음이었고.
그녀가 내딛고 있던 땅은 어느 새, 타일이 깔려 있는 깔끔한 바닥으로 변모했다.
어둡던 하늘은 어디로 가고, 야광석이 빛나는 샹들리에가 반겼으며.
고개를 돌리자 어린 나이 대의 소녀 소년들이 서로 짝을 지어 자신과 페르젠처럼 춤을 추려는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래, 이곳은 연회장.
“하…… 으…… 아……”
그리고 자신의 바로 옆에는.
황송하다는 듯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불편함을 가득 머금고 있는 어린 시절의 페르젠이 서있었다.
이윽고……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거라.”
라는, 페르젠의 한마디와 함께.
♩……
잔잔한 전주를 머금고 흘러나오는 축복의 밤이라는 곡을 따라.
24살의 페르젠과 18살의 리지.
16살의 페르젠과 10살의 리지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 * *
잊을 수 없는 곡은.
그녀의 기억 너머에서, 간신히 춤의 동작을 이끌어낸다.
이것이 그저 구현한 망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어린 시절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보며 결코 실수 하지 않기를 바라듯.
리지는 필사적이고 악착같이 페르젠을 따라 춤을 추어나갔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흘러가 정해진 것.
다시금 개변 될 수 없다는 걸 알려주듯이.
곡의 중반부, 어린 시절의 자신은 페르젠의 발등을 밟고 몸의 균형을 잃은 채 다리를 접질렸다.
그에 리지는 얼마 남지 않은 정신력으로 그 상황을 바꾸어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 망상을 구현한 페르젠의 정신력은, 지푸라기와도 같은 자신의 정신력으로 뒤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내 연회장을 나서는 어린 시절의 자신.
그리고 그것을 뒤쫓아 가는 어린 시절의 페르젠을 보며.
“그만……”
“……”
“그만…… 그만…… 해주세요……”
억지로 춤을 이어나가던 리지는, 눈물을 흘리며 페르젠에게 애원했다.
동시에 흔들리는 그녀의 몸이, 다음 동작을 이어 나가는 페르젠을 따라가지 못하고.
꾸욱.
그의 발등을 즈려 밟는다.
“아……”
그 순간, 후반부로 접어드는 곡의 소리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 커진 음량 사이로, 리지는 페르젠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또. 실수를 범했구나.”
“흐, 아……”
털썩!
꼴사납게, 리지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과 다리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페르젠 곁을 달아났다.
툭!
그러나 어느 새 바뀐 주변의 풍경은 연회장 밖을 비추었고.
나무 뒤에 등이 가로 막혀 멈추어선 리지는, 처참하게 널브러져 비명 섞인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힉…… 히익……!”
이내 자신의 바로 앞에 그가 도착하자, 리지는 두 손을 들어 어설픈 방어 자세를 취한 채 경련하듯 온 몸을 떨었다.
“리지.”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 아이는, 어떤 아이 같으냐.”
한쪽 발만 짓밟힌 상태에서 발작하는 강박증이 페르젠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때문에 리지의 오른발을 살포시 움켜쥔 채, 자신의 반대쪽 발등을 짓밟게 만들며.
페르젠은 한 번 더 물었다.
“저 아이는, 어떤 아이 같으냐.”
“아, 아……”
리지의 치맛단이 흥건히 물들더니.
주저앉아 있는 근처의 흙더미들이 눅진해지기 시작했다.
“저 아이는, 어떤 아이 같지.”
그가 원하는 대답은 아마 하나이리라.
그리고 하나 만큼은, 극한까지 내몰린 리지로써도 좀처럼 내뱉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턱을 붙잡아 들어 올린 뒤, 어린 시절의 자신을 똑똑히 비추어주자.
“나, 나쁜…… 아이…… 에요……”
라는 한 마디를, 살기 위해 억지로 내뱉었다.
그에 페르젠은 웃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듯이.
과거를 부정하는 인간에게도 미래는 찾아올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페르젠은 리지의 마음속에.
자신이라는 트라우마의 뿌리를, 더 이상 끊어내고 떨쳐낼 수 없도록 강렬히 쑤셔 박았다.
너무 가혹하고 잔인한 처사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악당이 살아가는 법이, 악당 같은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잿빛으로 칠해진 도화지에, 하얀색을 덮어줄 용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용사의 존재는, 이미 페르젠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악당의 죽음을 위해, 올바르게 돌아가야 할 운명의 톱니바퀴들은.
그것들이 맞물리게 만들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은 터라, 차례대로 부수어져 나갔다.
그리고 저 너머, 처연히 쓰러져 울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리지는.
이토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무엇인가가 산산이 부수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운명은,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 라는 말이 있던가.
아마 그 말을 한 사람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리라.
대부분의 사람은, 그 만한 운명의 파도에 휩쓸려버린다면 죽어버린다는 것을.
이윽고 조용히 자신의 몸을 해체해 나가던 적이, 스스로의 심장을 적출하여 페르젠을 향해 들어 올리더니 힘없이 쓰러진다.
드디어 정신체가 붕괴되어버린 것이다.
그에 따라, 세파르.
아니, 크로셀의 환몽 결계가 무너져 내린다.
주변 풍경도 사라지고.
그토록 두려웠던 페르젠도 자취를 감춘 채.
오직 남아 있는 건, 스스로의 모습조차 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어둠.
그리고 그 속에서 알 수 있는 건……
미약하게 들려오는 자신의 울음소리와, 옅은 지린내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간 있었던 일은 공지사항으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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