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12화 (112/260)

EP.112 112─Presto

역으로 사냥을 당하는 상황은.

아무래도 페르젠으로써는 제법 낯설었다.

하지만 언제나 사냥하는 위치에 있어 보았기에, 어느 순간이 목덜미를 물어뜯기 좋은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일부러 위치를 옮긴 곳에서 한적함을 즐기듯 의자를 꺼내 앉은 페르젠은 책을 읽어 나갔다.

아니, 읽어 나가는 척 경계 수준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주변 상황은, 어느 각도에서든 기습을 하기에 최적화된 환경.

하지만 책에 시선을 고정한 페르젠은, 아까부터 드문드문 뇌리에 떠오르는 어떤 기억에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어딘지 모를, 무저갱(無底坑)이라 할 수 있는 곳의 풍경을 머금고 스치듯 지나가는 편린.

그것은 벌레가 뇌리를 타고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듯한 아주 불쾌한 감각을 선사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올곧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 기억의 파편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익숙함 덕분이었다.

“……”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페르젠은 문득, 자신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극도의 중증 대칭 강박 장애를 앓고 있는 자신이, 거리낌 없이 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일 텐데.

‘설마……’

혹시나 해서 읽고 있는 책자락의 일부를 꾸깃꾸깃 접어, 옆장과 대칭이 어긋나게 만들어 본다.

그리고는 집중을 시작하니, 놀랍게도 느긋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

어째서일까.

이곳이 정신체로만 머무를 수 있는, 실존하지 않는 세계여서 그런 걸까.

의혹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지만, 페르젠은 곧이어 그러한 상념을 전부 떨쳐버렸다.

어쭙잖게 고급스런 음식은 세세히 음미를 하며 평가를 하려 들지만.

그러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정말 진미에 가까운 음식은 무아에 빠트려 오직 식탐만을 충족하려 들게 할 뿐이다.

때문에 페르젠은 유페미아와 하늘이 아닌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이 극도의 평온한 해방감을 진심을 다해 즐겼다.

최소한의 경계조차 무른 채, 이 시간을 만끽해나갔다.

제대로 된 사고조차 할 수 없던 유아 시절을 제외하면, 무려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자신을 옭아매어 왔던 강박적 사고다.

그 사슬에서 풀려난 느낌은, 감히 시엘 미드포드를 죽였을 때 느꼈던 안도감과 견줄 만 했다.

마약을 혈관 안으로 주사를 한다면, 이런 쾌감일까 싶을 정도.

사락.

꾸깃.

사락.

꾸깃.

사락……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내용.

심지어 이미 한 번 완독을 끝낸 책이지만, 페르젠은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책장을 꾸기며 아주 정성스레 글자 하나하나를 눈가에 새겨 담았다.

파직!

그러나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

그녀의 시신을 사역하여 주변에 흩뿌려두었던, 나선처럼 흐르는 전류의 흐름이 적의 침입을 알려왔기에.

“……”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젠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대칭이 어긋난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선처럼 흐르는 전류의 흐름을 돌파한 적의 속도는, 이미 자신이 반응을 해보았자 늦은 시점.

아마도 오러 나이트의 극의를 망상하여 자신의 신체에 구현을 시켰으리라.

어차피 각도상, 목숨을 잃는 정도는 아니다.

때문에 페르젠은 조금이라도 더, 이 평온한 순간을 즐기자고 했다.

촤악!

그 대가는, 책을 들고 있지 않은 왼팔이 무참히 잘려 피분수를 뿌리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

움찔!

실체가 아닌 곳이라 한들.

가공할 격통이 페르젠의 뇌리를 울린다.

하지만 그것을 꿋꿋이 참으며, 페르젠은 잠시 흐트러진 시선을 도로 책에 고정시켰다.

“……”

하지만 대칭이 어긋난 책에서, 더 이상의 평온함은 느낄 수가 없었다.

흙이 가라앉아 맑아진 물을 휘저어, 다시금 흙탕물로 만들어버린 듯한 혼란스러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뚜욱.

뚝.

깔끔하게 잘려진 왼팔의 절단면에서, 처연하게 흘러나오는 붉은 핏물이 바닥을 물들였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의 신체 불균형이 가져오는 그 어긋남을.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그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

그에 다시 한 번, 일말의 틈도 주지 않고 파고 드려 했던 적은.

강제적인 제동이 걸리듯, 주저 없이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하여 스스로 남은 오른팔을 잘라내는 페르젠의 모습은, 충분히 가공할 경악을 머금게 만들었기에.

툭!

책을 쥐고 있던 페르젠의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양손을 잃은 그는 차오르는 고통보다도 좌우대칭이 완벽해진 자신의 신체에 평온함을 느꼈으며.

또, 조금 전에 만끽했던──20년 이상을 옭아매온 사슬로부터 풀려난 해방감의 덧없음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리고 있었다.

‘아……’

정말이지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또, 황홀한 꿈이었다.

일장춘몽.

호접지몽.

그저 일순간의 달콤함이었을지라도.

결코, 뇌리에서 잊을 수가 없으리라.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정장 재킷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페르젠 앞에 서있는 적은, 피부 마디마디에 스며드는 모종의 한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모든 것을 초탈한 듯한 특유의 붉은 눈.

그것이 자신을 응시할 때면,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고 싶은 어떤 굴복의 욕망이 일었다.

물컹!

그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을 물러섰던 사내는, 이 단단한 대지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이질적인 감각에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

그러자 분명 흙더미와 풀자락들로 이루어졌던 땅은 어디로 가고.

기이한 살점들로 뒤덮인 바닥이, 살아 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리며 요동을 치고 있었다.

사람의 배를 가르고.

활동하는 장기들 위에 맨발을 얹히면 이런 감각일까.

“설마……”

브뤼테인의 적자──페르젠은 처음부터, 이 환몽 결계 내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나?

그러지 않고서야, 의도하지 않았던 변화가 발생할리가 없었다.

흠칫!

적잖은 당혹감을 머금고 고개를 들어 올린 사내는, 이윽고 세차게 두 눈을 떨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했던 하늘에, 그윽한 어둠이 칠해진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떠있는 태양은, 내리쬐는 햇살 마다 줄기가 돋아나듯 기이한 촉수를 꿈틀 거렸고.

바라보는 게 어려울 만큼 밝은 중심부 사이로는, 거대한 눈이 떠지며 대지를 굽어다 내려 보았다.

동시에 흘러내리는 검은색 눈물이 땅을 물들이자, 기이한 연기와 함께 꿈틀 거리는 벌레 나무가 자라났다.

이것은,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이자.

브뤼테인의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명계의 3층에 서식하는 괴이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구현한 그의 망상일까.

‘설령……’

그렇다고 한들, 오러 나이트의 극의를 망상하여 구현한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자신감을 머금고, 전의를 불태우던 사내는 입꼬리를 말아 올린 뒤 검의 손잡이를 세차게 말아 쥐었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검 끝이 향하는 건, 페르젠이 아니었다.

촤악!

“흐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두 다리를 잘라내고 철푸덕 주저앉은 사내가 웃는다.

그리고는 바닥에 나뒹구는 자신의 두 다리를 붙잡고, 검의 날을 가져다 대어 마치 도축이라도 하듯 깔끔히 해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근처의 일대는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괴이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성단(星團)이 머무르는 가죽을 뒤집어쓰고 몸을 일으키는, 용과 거미의 몸통이 뒤섞인 듯한 무언가.

수많은 눈이 박혀져 있는 문 사이로, 하나의 열쇠가 꼽혀져 있는 거대한 생명의 부유성.

모래 알갱이들과 비슷하지만, 결코 그러지 않은 녹색의 빛더미를 뒤집어쓰고 문어의 다리와도 같은 것으로 대지를 걸어 다니는 괴물.

기어코 스스로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끄집어낸 그가 손님에게 진미라도 차려주듯 추가적인 손질을 시작한다.

더불어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페르젠 곁으로는, 누더기들을 덧붙여 만든 듯한 괴기한 봉제인형이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겉모습은 그저 소름이 끼칠 뿐인 허름한 인형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괴이가 바로 현실에서 가장 유명하게 알려진, 명계의 3층에 서식하는──신체의 결손과 훼손을 수복하고 치료시켜주는 괴이.

툭!

이내 해당 괴이는 뱀이 휘감고 있는 특이한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두더니, 손끝에서 무수한 실선을 뿜어 양팔이 절단된 페르젠의 상처 부위를 치료해 나갔다.

아니, 그것은 엄밀히 따지자면 치료를 한다는 범주에 속할 수 없었다.

마치 선녀가 베틀로 아름다운 천을 직조하는 듯한 천외천의 기교.

얽히고 얽혀드는 실선은 뼈를 만들었고.

신경을 창조했으며, 새살을 돋아나게 했다.

심지어 팔과 함께 잘려져 나간 정장 부위 또한 말끔히 복원을 했기에, 어느 누구도 바닥에 떨어진 두 팔이 페르젠의 것이라고 짐작할 수 없으리라.

“……”

그 완치, 아니 수복의 시간은 채 3초가 걸리지 않았으며.

말끔해진 자신의 두 팔을 확인한 페르젠은, 정신체가 붕괴하기 직전의 상태에 빠진 사내의 얼굴을 스윽 훑어보았다.

눈, 코, 입.

모든 곳에서 피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환희에 가득찬 웃음을 짓고 있는 그는 어떠한 광기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광기가 채 가리지 못한, 스며들어 있는 자그마한 의문은 페르젠에게 이렇게 묻는 듯 했다.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냐고.

“글쎄……”

세파르의 환몽 결계 내에서 망상으로 구현이 가능한 건,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주.

그리고 그 의문에 페르젠은 대답해줄 생각이 없다는 듯,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현재 이 풍경은, 그저 뇌리에 떠올랐던 알 수 없는 기억의 편린을 가져다 옮겨 놓았을 뿐이다.

때문에 저 괴이들의 진명 또한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다.

아니,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지만.

더욱 편하게, 저 모든 괴이들을 아울러 부르는 익숙한 총칭(總稱)의 형태는 틀림없이……

「 잡것들. 」 이었다.

파삭!

잡념을 지우는 옅은 소음.

페르젠은 두 눈을 뜨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털썩!

멀지 않은 거리에 누군가가 두려움에 떨며 주저앉은 모습이 보인다.

여인이었다.

보랏빛 머리카락에 성숙한 몸매를 가진.

하지만 페르젠은 어렵지 않게, 저것이 같잖은 장난질을 부린 결과임을 알아차렸다.

허실 속에 감추어둔 실체가, 껍질 속에 가려진 속내가.

그의 두 눈에는 명백히 비추어 지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여인이 아닌 소녀였고.

또, 주제를 망각한 채 울타리를 벗어난 발칙한 어린 양이었다.

“리지.”

“아, 아……”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이윽고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그가 어린 양의 풀 네임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이 일대의 모든 기괴함과 일그러짐이, 그녀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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