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0 110─Allegratto
실기 시험 당일.
학생들은 아침을 먹고, 페르젠의 인솔 아래에 뤼펠트 숲 앞으로 도착했다.
그곳에서 페르젠은 호위를 위해 차출된, 기사와 마법사에게 뤼펠트 숲의 지도를 나누어 주고.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하여, 날카로운 부분이 손질된 도자기의 파편을 숲의 전역으로 뿌려버렸다.
“뭐하시는 겁니까?”
“뿌린 파편은, 1층에 서식하는 괴이인 엿보기 구멍을 통해 내 아공간 안에 있는 거울과 연결되어 있다.”
“아……”
“다각도에서 숲 내부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지. 먼저 내가 숲의 중앙으로 도착해 신호를 줄 테니, 그 때 자네들은 학생들을 출발시키고 본 업무를 시작해주게.”
“알겠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일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현장 대응은 자네들만 가능해. 그러니 잘 부탁하지.”
“예! 맡겨주십시오!”
호위로 차출된 이들에게 당부를 전하고, 페르젠은 총 세 개의 조로 나뉘어진 학생들에게로 다가갔다.
“이번 실기의 내용은 어려울 게 없다. 신호와 동시에 내가 위치해 있는 뤼펠트 숲의 중앙으로 도착하는 것.”
“……사실상 자율통제를 받는 시신들이 저희를 호위하는 격이군요. 그것이 전부입니까?”
“그래. 하지만 도착을 목적으로 생각하지 마라. 평가 항목은 누누이 말했듯, 오직 자율통제의 수준이니까. 상종 외의 위기 때는 저들이 도움을 줄 테니 걱정할 것 없다.”
힐끔, 말을 마치고 페르젠을 리지를 쳐다보았다.
오늘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있지 않았다.
평소 휠체어를 밀어주던 시신의 품에 안겨 어깨를 짚고 있을 뿐.
아무래도 숲 내부는 휠체어로 이동이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때문에 넌지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보았지만, 단호히 거절당했다.
“그러면 좋은 점수를 받길 바라지.”
페르젠이 등을 돌리고, 그 뒤를 이사벨의 시신이 따랐다.
그리고 그러한 페르젠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리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속한 조의 학생들을 가볍게 훑었다.
이번에도 재차 말했듯, 페르젠은 자율통제의 수준만을 평가하겠다고 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얼마나 원활한 전투를 펼치는지를 평가할거라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으리라.
그도 그럴 게 지급된 시신은 전부 생전에 베테랑 용병들이었으니까.
때문에 틀림없이, 못해도 6 ~ 7할 정도는 꼼수를 부리는 쪽으로 피드백을 받았을 터.
무슨 차이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전자와 후자는 아주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후자의 경우 의도적으로 나쁜 습관을 비롯해 성격의 결함 등을 피드백 받지 않으면, 쓸만한 전투인형으로 둔갑시키는 게 가능했으니까.
예컨대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거세시키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마력의 전도율은 손해를 보겠지만, 원활한 전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시신 한구만을 사역한다는 가정 하에──아주 효율적이었다.
다만, 그런 식으로 평가를 할 것이었다면.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었겠지.
분명 시험 도중 의도된 위기는 찾아올 것이고.
그 위기 때, 자율통제를 받고 있는 시신들이 피드백 받은 생전의 기억을 토대로 얼마나 내면을 잘 드러내느냐.
그것이, 고득점의 갈림길이리라.
‘……포기할, 생각은 없어. 당신이 내민 당근이라도, 무기로 다룰 수만 있다면.’
리지는 기꺼이, 최선을 다해 쟁취할 생각이었다.
“교수님!”
그렇게 시험의 시작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마음을 안정화시키던 리지는 놀란 기사들의 목소리에 좌측을 바라보았다.
털썩!
뤼펠트 숲, 그곳의 초입으로 들어선 페르젠이 힘없이 쓰러진다.
“아……”
호위를 위해 차출된 기사들과 마법사는 적잖게 놀랐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다가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페르젠의 뒤를 따르던 이사벨의 시신 또한 통제가 풀려 제자리에 쓰러졌기에.
그것은 페르젠이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는 걸 뜻했다.
그리고 물리적, 마법적 피해 없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건 오직 명계에 서식하고 있는 괴이뿐.
“……세파르인가.”
황실 소속 기사단이나 마도병단에 속하게 되었을 때, 극비로 다루어지는 제 3층의 괴이를 제외하고.
제 1층 ~ 제 2층에 서식하는 괴이들의 능력에 관해서는 필수 이행 교육 과정을 거친다.
때문에 펼쳐진 능력의 형태가 결계.
안으로 들어선 자가 외부에서도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비추어,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짧은 시간 내에 해당 괴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유추해냈다.
물론, 그 이름 또한 진명은 아니었다.
제 1층에 서식하는 괴이들에게 특정 별명을 붙여 부르듯.
제 2층부터는 제 1층과 혼동 되지 않도록 임의의 이름을 붙일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명명된, 명계의 제 2층에 서식하는 세파르의 능력은 환몽.
결계에 들어선 이들의 정신체를 꿈속으로 구현하고, 한없이 현실과 흡사한 광경을 펼쳐준다.
무서운 점은, 환몽 속에서 정신체가 사망했을 때.
현실의 육체는 식물인간이 된다는 점.
파훼법은 환몽 속에서 꿈이라고 인지한 뒤, 해당 괴이의 능력을 빌리거나 강림시킨 흑마법사의 정신체를 죽이는 거지만……
현실과 아주 흡사한 광경을 펼쳐주고, 감각 또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기에.
꿈이라는 걸 인지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외부에서 꿈이라는 자각을 하고 들어가도, 내부에서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기억을 왜곡시켜버리니까.
“……일단, 정신을 잃은 교수님을 이리 데려오지.”
기사의 말에, 곁에 있던 원소 마법사는 대기에 간섭하여 페르젠과 이사벨의 시신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 뒤 바깥으로 끌어냈다.
외부에서 괴이의 능력을 파훼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실현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상위 괴이의 능력을 빌리거나.
오러 나이트의 극의에 올라, 육신 바깥으로 흐르는 마력이 결계의 간섭을 막아주는 동안 흑마법사의 본체를 찾아 죽이는 것이니까.
물론, 시신에는 이성이랄 게 없기에.
흑마법사가 사역하는 시신으로 탐색을 나가도 되지만.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통제가 끊어지는 터라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이렇게 되면 광범위 포화뿐인가.”
대기하고 있는, 마도 병단 소속──세 명의 원소 마법사.
이들이 외부에서 광역 포화를 퍼부어 운 좋게 본체가 죽길 바라는 것이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해법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 정도 대응책 정도야 미리 준비를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고.
뤼펠트 숲을 날려 먹는 건 손해가 상당히 막심했지만, 브뤼테인의 혈통이 적에게 피해를 받아 식물인간이 된다?
그 여파는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끔찍했다.
“저……”
하지만 그 때, 리지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꿀꺽, 침이 목구멍 뒤로 넘어간다.
그녀는 일종의 희열과, 또 소름 돋는 전율을 느꼈다.
어쩌면 이것은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몰랐기에.
“제게…… 병행할 방법이 하나 있어요.”
“어떤 겁니까?”
“그건……”
세파르의 환몽 결계는, 외부에서 진입할 때.
저 안이 일종의 꿈속이라는 걸 곧바로 눈치 챌 수 있는, 사전의 기억은 전부 왜곡시켜버린다.
하지만 리지는 자신이 있었다.
명계의 2층에 서식하는 괴이──세파르의 환몽 결계는.
어디까지나 의식적인 부분까지만 간섭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에 관해서 자신의 계획을 상세히 언급한 리지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좋습니다. 하지만 괜찮겠습니까? 저희는 둘째 치더라도, 로에르는 당신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데.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괜찮아요.”
“……”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세 명의 기사들은 짙은 한숨을 머금었다.
그나마 죄책감을 조금 들어주는 건, 리지가 정치적 이익을 생각해서 이렇게 나섰을 거라는 점.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 안에서 꿈이라는 걸 눈치 채는 순간, 저희들의 정신체에게도 곧바로 언질을 주셔야 합니다."
“네.”
떨어진 허락에, 리지는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세파르의 환몽 결계는 일종의 꿈인 만큼,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자신이 아는 지식 내에서, 얼마든지 망상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가 사역하는 페르젠의 시신 이사벨은, 생전에 아폴리온 등급의 원소 마법사였기에 상당히 위협적인 전력이지만……
그가 꿈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 승산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정신체를 죽이고.
기사들을 일깨워 단합한다면, 이 결계를 펼친 장본인의 정신체도 몰아낼 수 있겠지.
애초에 반드시 100% 확률로 실현가능하다고 믿는 작전은 아니었기에.
돌아올 문책도 없을 터.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는 것이니, 피드백을 통한 사건의 전말 유추도 불가능 할 것이다.
잘 풀리기만 한다면, 그야 말로 완벽한 범죄가 되겠지.
아니, 애초에 이걸 범죄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지었던 잔혹한 업보를 고스란히 돌려받는 것뿐일 텐데.
더군다나 굳이 자신이 손을 쓰지 않아도, 이 일을 벌인 장본인이 페르젠의 정신체를 성공적으로 죽일 수도 있겠지만.
리지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에 일말의 불확실성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리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오늘, 어린 양은.
처음으로 울타리를 벗어나.
늑대를 사냥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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