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8 108─Andante
오후 9시.
뤼펠트 숲을 인근에 두고 있는 도시, 라미아에 도착한 페르젠은 가장 먼저 근처의 호화로운 식당에 들려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마부들을 제외하면 총 인원은 21명.
적지 않은 수였지만, 라미아는 유동 인구가 적은 편이라 빈자리는 넘쳐났다.
애초에 이곳은 의원 지망생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었으니까.
늦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야광석으로 붉을 밝힌 건물은 대부분, 퇴직한 의원들이 차린 학원 같은 것이라 보면 되었다.
“먼저 먹고 있지. 나는 잠시 용병 협회에 갔다 올 테니.”
“알겠습니다.”
조용한 거리를 내딛어 라미아의 용병 협회 앞으로 도착한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곳에는 오직 현직 의원들만이 의뢰를 넣을수 있었으니까.
끼익.
그렇게 문을 열고 용병 협회에 들어선 페르젠은, 최근 1년 동안 뤼펠트 숲에 투입된 사체의 종류와 사망자 명단을 넘겨받았다.
이것을 통해 학생들이 시험을 칠 때 마주할 숙주들의 종류, 또 위험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고생하게.”
“예! 안녕히 가십시오. 백작님.”
식당으로 돌아가는 길.
페르젠은 대략적인 눈대중으로 서류를 훑었다.
‘딱히, 주의를 기울일 특이 사항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 군.’
물론,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읽어 봐야겠지만 이 정도라면 별다른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엘마르크 제국이나 황실의 권력이 커지길 원치 않는 귀족들이, 공식적인 서류에 흔적을 남기면서 일을 진행하지는 않겠지.
그러지 않아도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하늘은 언제나 무방비 상태였고.
마음만 먹으면 우회해서 뤼펠트 숲으로 침입하는 것쯤이야 가능했으니까.
그런 점을 고려해서 시험 장소의 발표는 최근으로 하고, 기사단과 마도병단에서 무려 6명의 인원을 차출 받았지만……
‘너무 사서 걱정을 하는 건가.’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가 한 명.
오러나이트의 길을 걷는 기사가 세 명.
황실 소속 마도병단에 들어갈 만큼 실력이 출중한 원소 마법사가 세 명.
이만한 전력을 뚫고,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상당한 고급 인력을 여러 명 소모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학생들 또한, 14명 전원이 케테르 등급의 흑마법사.
외려 저번에 아카데미가 테러를 당했던 일이 아주 예외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지.
가사 상태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몰랐을 테니까.
그렇게 식당으로 돌아온 페르젠은 서류를 품안으로 집어넣고, 조용히 식사를 마친 뒤 학생들을 미리 예약해둔 여관으로 인솔했다.
“그러면 편히 주무십시오.”
“아침에 뵙겠습니다. 교수님.”
“불침번은 나도 설 것이다.”
“예?”
“불침번은 나도 서겠다고 했다. 어차피 학생들 다음으로 제일 고생할 이들이 자네들인데, 수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두는 게 좋겠지.”
“……”
“왜 그러지.”
명백한 배려에 기뻐하기는커녕,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아닙니다.”
“내가 배려를 모르는 인간일 것 같았나.”
“아닙니다!”
“목소리가 크다.”
“죄, 죄송합니다……”
“첫 번째 순번은 자네들이 가져가도록 하고, 나는 두 번째 순번으로 하겠네. 이 정도 욕심은 부려도 불만이 없겠지?”
“배,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가볍게 손을 저으며 인사를 받아준 뒤, 배정된 방으로 들어선 페르젠은 용병 협회에서 받았던 서류를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1층의 욕실에 들려 말끔히 샤워를 할까도 싶었지만, 어차피 지금쯤이면 학생들이 한참 쓰고 있을 거란 생각에 불침번을 끝내고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음.’
눈대중으로 내용을 훑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크게 거슬리는 점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나마 신경 써야 할 대목이 있다면, 일주일 전 현직 의원의 의뢰를 받고 패러사이트를 생포하러 들어간 베테랑 용병 한 명이 사망했다는 것인데.
옆에 체크 표시가 되어 있는 걸 보니, 패러사이트에게 숙주로 삼아졌다는 걸 확인한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사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밀수를 꾀하는 이들이 있으니, 정확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터.
그렇게 느릿느릿, 시간은 더욱 깊게 흘러만 갔다.
* * * * *
“아……”
내부가 편하기는 했어도, 꽤 장시간 마차로 이동한 피로가 쌓여 있는 몸인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아마 시험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자신처럼 긴장을 하고 있지 않을까.
기어코 아랫배에서 찌르르한 느낌까지 올라오자, 리지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조용히 앉아 있는 시신을 사역하여 휠체어를 가까이 가져오게 만든 뒤 힘겹게 착석했다.
그리고는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니, 램프들의 불빛이 내리깔린 어둠을 살랑살랑 몰아내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몽환적이라기보다는, 은근히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화장실이 더욱 급했기에 리지는 시신을 통제하여 휠체어를 밀었다.
끼릭!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리지는 특유의 보랏빛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순간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는, 아주 선명히 들려왔다.
‘어째서……’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그가 마치 문지기처럼, 복도 가운데 앉아 책을 읽고 있는가.
“흑……!”
세차게 숨을 들이키며, 리지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로비에 앉아 있는 여관 주인이 눈에 들어오자, 어릴 적부터 새겨진 트라우마가 이 자리에서 발작하는 일은 없었다.
“……”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춘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본다.
어둠 속, 주홍빛 불빛으로 넘실거리는 광경 아래.
특유의 붉은색 눈동자가 자신을 꿰뚫자, 리지는 섬뜩한 느낌이 들어 한층 더 아려오는 하복부의 감각에 다리를 꼬옥 오므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휠체어를 밀어 지나쳐가고 싶은데, 시신을 사역하고 있는 리지의 마력은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사락.
이윽고 여전히 말이 없는 페르젠이, 다시금 책장을 넘기며 시선을 내리자……
끼릭.
그제야 리지는 휠체어를 밀어 천천히 그를 지나칠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는 바보 같은 짓 따위는 하지 않고,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하여 불규칙한 숨을 규칙적으로 다듬는다.
여름이라 그런 걸까.
더웠다.
식은땀이 흘러 옷을 적시고, 불쾌할 만큼 머리카락이 달라붙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화장실 내부, 닫힌 문을 열어 칸 안으로 들어서니……
“……”
좌변기가 아닌, 쪼그려 앉아야만 하는 화변기가 놓여 있었다.
대번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리지는 휠체어를 붙들고 있는 시신을 옮겨 자신의 겨드랑이를 끌어안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속옷을 내린 뒤, 바들바들 떨리는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간신히 쪼그려 앉는다.
하지만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지나치게 긴장한 몸이 뻣뻣이 굳어, 느슨히 근육을 풀어줄 수 없었다.
아릿한 감각은 여전한데, 억지로 소변을 참는 사람처럼.
리지의 고간 근처에 위치한 근육들과 신경들은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부드럽게 숨을 내쉬어봐도, 좀처럼 풀리지가 않는다.
휘이이잉!
그 때, 화장실 내부──환기를 위해 열려 있는 창문 너머로.
제법 거센 바람이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자, 특유의 높다란 소음이 선명히 울려 퍼졌다.
움찔!
그리고 그것이, 그날 밤.
가면 무도회장의 테라스에서, 페르젠이 자신의 귓가에 속삭였던 읊조림을 되새기는 것 같아 리지는 몸을 떨었다.
의식을 돌릴 틈도 없이.
그녀의 뇌리는 잔혹하게도, 그 순간을 조목조목 되짚어주었다.
양의 탈을 쓰고 있던 늑대가,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목을 움켜쥔 채,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던……
「 쉬…… 」
“아, 아……”
파리해진 안색.
그 너머로.
쪼르륵.
모든 근육과 신경의 긴장이 풀려버린 리지의 몸이, 급박했던 생리현상을 해결해 나간다.
* * * * *
끼릭.
비참한 기색으로, 리지는 화장실을 나왔다.
고개를 들어 복도를 바라보았다.
페르젠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기사 한 명이 그 자리에 굳건히 앉아 있었다.
그에 리지는 자신도 모르게, 다행이라는 안도를 속으로 품어버렸다.
“수고, 하세요……”
“예. 내일 시험을 위해, 푹 주무시길.”
“감사합니다.”
불침번을 서는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자, 겉치레일지라도 응원을 전해 받은 리지는 작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게 천천히 자신의 객실로 돌아가는데……
도중, 복도에 은은히 남은.
그의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의 잔향이 코끝으로 스며들어오자 리지는 처연한 실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 맡지도 못할 만큼 옅은 상태인데.
이것을 알아챈 자신의 모습이, 마치 천적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진화한 초식동물 같아 스스로가 꼴사납게만 느껴진다.
그래.
아무리 각오를 하고 결의를 해도.
양은 여전히.
늑대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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