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7 107─Andante
뤼펠트 숲.
에르네스 제국의 대표적인 접근 제한 구역 중 하나.
보통은 위험성에 기반하여 설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뤼펠트 숲의 경우에는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의 가치 때문에 접근 제한 구역으로 설정이 되었다.
명명은 패러사이트.
단일 개체의 능력은 5 ~ 6살의 어린 아이가 날카로운 송곳을 쥐고 있다면 이길 수 있는 수준이다.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숙주를 삼지 못한 패러사이트의 전투 능력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숙주를 삼았다고 한들 패러사이트의 전투 능력이 극도로 높아지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숙주로 삼은 육체의 근력과 신체적 특성만을 다룰 수 있는 게 전부였으니까.
여기까지만 보자면 단순한 기생형 몬스터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패러사이트의 경우, 숙주로 삼을 대상의 생사여부를 가리지 않는다.
이미 죽어버린 시신이라도 숙주로 삼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었고, 그런 식으로 기생을 완료한 패러사이트는 육신에 있는 피를 밖으로 전부 배출한 뒤 자신의 체액을 순환시켜 죽어버린 신경을 되살리고 장기들을 다시금 활동하게 만들어 완벽한 동화를 이루어낸다.
그래, 시대적 배경에 걸맞지 않게 의학이 많이 발전해있는 이유.
특히, 외과적인 부분에서 그러할 수 있었던 건 이 패러사이트 덕분이었다.
손상이 적은 시신에 의도적으로 패러사이트를 기생시켜 반쯤 살아 있는 몸을 수십 수백 번을 쨀 수 있었으니 진보하지 않은 게 이상할 터.
때문에 의원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의뢰를 했을 때만, 해당 의뢰서를 들고 뤼펠트 숲으로 들어가 생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 경우, 사망률이 적을 것 같지만 또 그러지는 않았다.
기생하지 못한 개체의 전투 능력이 너무 형편없어서 조류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잡아먹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맹수의 시체를 주기적으로 투입해주고는 하니까.
아무튼 위험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적고.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구역인 만큼, 외부에서 실기를 치르기에는 가장 합당한 장소였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나아갔을 때, 잠시 말들의 휴식을 위해 마차가 정차하자 페르젠은 밖으로 내려 뻐근히 굳어진 몸을 풀어주었다.
시각은 오후 6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는 터라, 출발할 때만큼 햇살이 뜨겁지는 않았다.
툭!
“……”
뻐근해진 몸을 푸는 과정에서 잠시 찾아오는 기분 좋은 현기증.
그것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발밑에 떨어지는 모자를 보고서 페르젠은 고개를 돌렸다.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그녀가 여전히 더워보이는 옷차림으로 쫄래쫄래 걸어온다.
스륵.
그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먼지를 털어내고,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페르젠은 조용히 씌어주었다.
“가, 감사…… 하, 합니다……”
그러자 모자 끝부분을 잡고, 허리를 꾸벅 숙여온다.
잠시 드러나는 뒷목의 선이 무척이나 유려하고 아름답다.
예쁜 꽃을 보면 꺾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처럼, 그녀의 새하얀 목이 정확히 그러했다.
“라우라.”
“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로젠베르크가 중립에서 탈피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더구나.”
“아……”
처음에는 시엘 미드포드를 죽이기 위해 해당 계획을 벌일 때, 브뤼테인과 절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엎지른 물을 닦기 위해 로젠베르크를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형님은 오히려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으니, 굳이 정치에 욕심이 있다는 스탠스를 취할 필요는 없겠지.
제 2 황자가 황위 계승을 확실시하기 위해서는 로벨리움 왕국만 신경을 써야 할 게 아니었지만, 그 외에까지 자신이 도와줄 필요는 없을 터.
“그, 그 말씀은……”
물끄러미, 라우라가 자신을 올려다본다.
특유의 다홍색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이대로 자신을 놓아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엎지른 물을 닦기 위해 쓰지 않아도 충분하니, 아껴서 개인적인 패로 굴릴 뿐인데.
애초에 이만한 수단을 굳이 포기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페르젠은 그것을 곧이 고대로 말하기 보다는, 조금은 돌려서 말을 하고 싶었다.
아니, 돌려서 말하는 것도 어폐가 있으리라.
자신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로젠베르크를 옭아매려 한다는 그림 자체도, 이제 와서는 모순이었으니까.
“라우라.”
“네……”
“너를 놓아준다고 했을 때, 통제를 맡길 사람은 있느냐.”
“……”
“그래. 어쩌면 맡길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은 많겠지.”
다만, 자신보다 훨씬 노골적인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녀가 품고 있는 비밀은 누군가에게 발설하는 순간부터, 철저한 을의 입장으로 전락을 시키니까.
그것이 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가 에르네스 제국의 역사에 새기고 간 반역의 흔적이었다.
마음대로 다뤄도 좋을, 거기에 도덕적 선을 지킬 필요도 없는 존재에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겠지.
그리고 여기까지 말을 했다면, 그녀도 어렵지 않게 이해를 했으리라.
“……”
그에, 라우라는 잠시 침묵을 머금었다.
한 마디로 페르젠은, 스스로 숙이고 들어오길 원하는 것이다.
자신이 약점을 잡고 강제했다는, 그런 그림을 더 이상 유지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하기야 그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이 옳았다.
만월의 괴벽이 전생을 넘어 현생으로 쫓아온 이상.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은, 라우라는 반드시 자신의 괴벽을 억제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했으니까.
전생의 이사벨일 때는 제노바 가문 자체가 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생인 지금, 제노바 가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멸족시켰기에.
그러한 상황에서 이미 수차례의 괴벽을 겪으면서 검증된 페르젠은, 솔직히 말하자면 더 할 나위 없는 억제제였다.
그의 말대로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기에는, 위험도가 높았으니까.
다만, 굳이 이러지 않아도.
발버둥 친 끝에, 전생과 변하는 게 없다면 모든 걸 내려놓고 알아서 기어들어 갈 텐데.
‘……’
그래, 어차피 결과가 전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
차라리 그가 마음 편한 쪽으로 미리 과정을 바꾸어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페르젠이 만월의 괴벽을 빌미 삼아, 로젠베르크라는 목줄을 쥐어들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라우라 자신이, 로젠베르크라는 목줄을 내밀어 페르젠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주인을 고르는 노예 같은 상황에 속으로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고른다는 능동적인 동사 선택에 어울리지 않게, 실상은 피동적인 상황이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파앗!
양산을 피고, 그것을 들어 혹여나 바라볼 이들의 시야를 가린다.
또각.
라우라는 가까이 다가갔다.
화답하듯 페르젠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에 라우라는 슬쩍 페르젠을 올려다보고서 고개를 숙였다.
쪽.
그의 손바닥에 부드러운 입술을 가져다댄다.
손바닥에 하는 키스가 가지는 의미는, 애원.
“아, 앞으로도…… 제…… 보, 보호자가…… 되, 되어 주세요……”
라우라는 나름대로 프라이드가 높다.
그래서 그녀가 타협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의 선택은 보호자가 최선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비웃듯 페르젠은 자신의 손가락을 내밀어 라우라의 입술을 지분거렸다.
“……”
이 행동이 무얼 요구하는지 알았기에, 라우라는 자연스레 얼굴이 붉어졌지만……
쪼옵.
얌전히, 그의 손가락을 입 안에 넣고 어눌하게 빨아댔다.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는 그의 표정이 보인다.
움찔!
시선이 마주치자 라우라는 다홍색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러한 반응조차 즐기는 것 같았다.
‘이 애송이는……’
아니, 이 사내는.
틀림없이 사디스트 일 것이다.
어째선지 오래전, 그에게 맞았던 볼기짝이 아려온다.
동시에 괴벽을 극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은 더 간절해졌다.
참으로 비참한 동기부여가 아닐 수 없었다.
* * * * *
기존과 다르게, 강제성이 없는 주종계약의 성립 후.
페르젠은 양산을 들고 조용히 서있는 라우라를 불렀다.
“라우라.”
“네……”
“제노바의 혈통은, 반드시 낭중지추라 하여 어떤 한 분야에서는 무조건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
“……”
“순전히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너의 재능은 무엇이냐.”
“모, 몰라요…… 아, 알아보려고…… 노, 노력은 했는데……”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라우라 본인이 제일 답답했다.
“그런가.”
그리고 그 대답에, 페르젠은 별다른 말없이 얌전히 수긍을 하며 입을 닫았다.
곧이어 마부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한 말들을 데려오자, 페르젠은 마차 내부로 돌아갔다.
차분히 착석을 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핥았던 손끝이 아직까지도 간질간질하여, 괜스레 검지와 엄지를 비벼 그 감각을 털어낸다.
‘일부러……’
자신을 당황시키려고, 반항심에 그리했던 걸까.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펼쳐진 양산 안.
자신의 손가락을 조심스레 우물우물 핥던 라우라의 모습은, 아직 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풋풋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야릇한, 색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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