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6 106─Andante
6월의 마지막 주.
방학이 시작되기 전임과 동시에, 아카데미에서는 기말고사를 시작했다.
아카데미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단순히 사교의 연장선으로 여기는 이들을 제외하면.
사뭇 감도는 분위기는 제법 진중했으며, 또 치열했다.
특히 5일 째, 이론을 제외하고 실기가 몰려 있는 구간──그 중에서도 유리엘을 포함한 여타 다른 원소 마도학의 교수들이 관장하는 실기 시험은 볼거리의 면목 또한 보였다.
‘……우수하네.’
유리엘 웨인 데이나 루에르그.
그녀는 이론 또한 지식이 풍부했던, 라우라의 자태를 보며 속으로 감탄을 토해냈다.
원소 마도학의 실기 시험에서 가장 중점은 두는 건, 임기응변의 속도다.
점.
선.
면.
입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마법의 구성식을 파악할 수 있게 된 만큼, 그것을 역산하여 무력화 시키는 속도 또한 빨라졌다.
때문에 단순히 서로의 마력양으로 겨루는 게 아닌, 효율적인 전투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법에 맞추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자연 현상을 이끌어내느냐다.
예컨대 적이 불을 기반으로 마법을 사용한다면, 물로 응대하여 고온의 수증기를 만들어 피해를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마력이 변환된 불과 물은 마법의 영역에 속하여 구성식을 파악해서 무력화 시킬 수 있으나, 두 마법의 부딪침으로 발생한 수증기는 그럴 수 없었기에.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라우라의 대응 속도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병약하고.
말이나 더듬는 연약한 소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특유의 테크닉과 센스는, 가히 천부적인 재능이라 할 수 있었으며.
또, 무수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원소 마법사의 시신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야…… 저건, 구현율과 연관성이 없는 순수한 재능.’
그을린 고온의 수증기로 밀도가 높아진 대기에 간섭하여, 신기루를 만들어 내서 시야를 흐리고 허점을 찌른다.
변환에 영역에 속하지 않고, 간섭의 영역에 속하는 대기와 대지는 무력화 또한 불가했기에.
그것을 부가적인 자연현상과 뒤섞어 전투를 하는 방식은, 원소 마도학의 가장 아름다운 교태였다.
그리고 유리엘은 그 모습을 보며, 여지없는 만점의 축하를.
라우라의 명단 옆에 기입했다.
* * * * *
“하……”
원소 마도학의 두 번째 실기를 마치고,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온 라우라는 목욕부터 시작했다.
그간 여러 교양 수업의 시험, 전공의 시험도 대부분 끝마쳤기에.
남은 것은 오직 하나, 페르젠의 흑마도학 실기.
‘이동에 반나절 정도가 걸린다고 했었지.’
현재 시각은 아직 오후 1시.
출발은 4시였기에, 충분한 여유가 남아 있었다.
아무튼 해당 흑마도학 실기를 기점으로 기말고사는 종료.
방학이 찾아올 것이고, 자신은 페르젠을 따라 북부의 루에르그로 올라가야 하리라.
부모님의 얼굴을 못 본지 오래 되었기에, 고향인 로젠베르크를 향한 향수심이 깊게 올라오기는 했지만.
만월의 괴벽에 대한 사실을 알릴 수도, 또 부모님들의 손에 통제를 맡길 수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페르젠의 곁에서 잘 억제되고 있기에 큰 불안감은 없으나,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 보려고 할 때면……
‘그려지지가 않아……’
미래의 자신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괴벽을 극복하는데 성공하고, 평범히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페르젠의 곁에서 의존을 하고 있을까.
사실 최근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지만, 페르젠의 첩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는 했다.
이미 휘하에 아내가 둘이나 있으니, 굳이 자신의 배를 빌려 후손을 남기려 하지도 않을 테지.
제노바 백작가의 피가 흐르지 않는 이 몸뚱이에 어째서 괴벽이 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리 된 이상, 자신의 자식은 높은 확률로 이 괴벽을 이어 받을 수 있지도 않겠는가.
혼에 새겨진 채로 따라온 이 저주가, 오직 자신만 적용되는 특수한 경우라 가정한다고 해도.
라우라는 잔인한 도박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전생의 이사벨일 때 보다 더더욱, 임신에 극도의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봐도 되리라.
물론, 아직은 젊고.
또, 어렸기에.
전생에는 해보지 못했던, 다른 방안을 추가적으로 물색해보기야 하겠지만.
그 끝에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스스로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건 지치고 신물이 났기에.
얌전히 타인의 손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선택을 할 것 같았다.
* * * * *
“슬슬 하나 둘 오겠군.”
오후 3시 30분.
아카데미의 정문 쪽에 정차한 마차 앞에서 페르젠은 높다란 시계탑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에 근처에 있던 여러 마부들과, 안전을 위해 동원된 세 명의 기사들을 비롯한 마법사들의 표정이 잠시 환해졌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교수님은 어째서 실기 시험의 장소를 뤼펠트 숲으로 선택하신 겁니까?”
단순히 자율통제의 성과를 알고 싶은 거라면, 기사단이나 마도병단에 협조를 할 필요도 없이.
일반적인 병사들을 차출하여 전투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면 된다.
하지만 페르젠은 굳이 그러지 않고, 반나절 거리에 떨어져 있는 뤼펠트 숲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대는 무얼 착각하고 있군.”
“예?”
“나는 자율통제를 통해 얼마나 훌륭한 전투를 선보이는 가를 보고 싶은 게 아니다.”
“……?”
“말 그대로, 얼마나 자율통제의 수준이 높은지를 보는 것이지.”
자신이 생각하는 자율통제와,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가 생각하는 자율통제는 다른 점이 있는 걸까.
질문을 던졌으나 오히려 늘어나는 의문에 기사는 당황을 머금었다.
“……학생들도, 전부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러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겠지.”
“……”
순순히 시험의 채점을, 전투 여부에 둔다고 가정한다면.
학생들은 모종의 꼼수를 부릴 수가 있었다.
전투 경험에 관련된 생전의 기억만을 피드백 받고, 그 외에는 피드백을 받지 않는 쪽으로.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왔다면, 대다수는 이번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자신은 어디까지나 자율통제의 수준만을 보겠다고 그간 꾸준히 언급을 해왔으니까.
‘의도를 혼자 착각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도……’
엄연히 본인의 실책이라 할 수 있으리라.
“오는 군.”
저 멀리서 하나둘 익숙한 얼굴의 학생들이 다가온다.
그에 페르젠은 명단을 꺼내들고, 일일이 체크를 시작했다.
* * * * *
끼릭.
휠체어를 밀며, 다수의 인원을 이동시키기 편한 두 대의 상선 마차가 있는 쪽으로 리지는 다가갔다.
하지만 페르젠과 가까워질수록, 휠체어의 속도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 당시 가면 무도회에서 자신의 나약했던 속마음을 전부 들키고 말았기에, 좀처럼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지가 않았다.
또, 그의 손아귀에 마음대로 휘둘려 테라스에서 소변을 지렸던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웠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겠지만,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쩌면 곁으로 가자마자, 비웃음을 지으며 내려다볼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야……’
휘둘리지 말자.
적한테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고.
무시를 받지 않을 만큼 대등하게 보이고 싶다는 것도 우스웠다.
그 만큼 경계를 할 테니.
오히려 얼마든지 깔봐도 좋을, 방심을 품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마치고, 리지는 페르젠 앞으로 당도했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도착했습니다.”
“그래. 탑승하도록.”
“네.”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감정을 갈무리하며 휠체어를 이끈다.
하지만 옆을 지나가는 자신에게, 페르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스치듯이 한 마디를 읊조렸을 때……
끼릭!
리지는 일순간 집중이 끊어져, 시신의 통제권을 상실했다.
「 향수 냄새가 많이 짙구나. 」
라는, 귓가에 스며드는 조금 전의 목소리.
별거 아닌 말이다.
그래,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리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것이 마치, 그 날의 지린내를 감추려는 의도냐고 페르젠이 묻는 듯 했기에.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이 강제로 떠오르자, 리지는 얼굴을 잔뜩 붉히고서는 홧김에 고개를 뒤로 거칠게 돌렸다.
하지만 페르젠은,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음 학생의 인사를 받아주며 명단에 체크를 하고 있었다.
“……”
자신들은, 그 어떠한 발버둥을 쳐도 눈썹 하나 꿈틀하게 하는 것도 버거운데.
그는, 가벼운 말 한 마디 만으로도 쿡쿡 쑤시는 듯한 아픔을 아무렇지도 않게 선사한다.
사람이 개미를 바라보는 시각과, 개미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아마도 이러 할까.
지독하고.
잔혹하고.
또, 여전히 최악인 남자.
아주 가끔은, 이 세계가 동화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리지는 품었다.
그랬다면 틀림없이, 마왕인 그의 심장을 꿰뚫어줄 용사가 존재하고 있었을 테니.
물론, 의미 없는 망상이라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감히 동화에 빗대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도 잔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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