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 101─가면 무도회
깊어져 가는 밤.
황궁 주위로는 수많은 마차들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 수많은 마차들 모두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페르젠 또한, 그 속에 섞여 들어 마차가 정차했을 때……
벌컥.
얌전히 문을 열고 내린 뒤, 밝은 불빛들이 어우러지는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
북적거린다.
그래도 저 마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불편함은 비교적 적게 느껴졌다.
끼릭.
휠체어에 앉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리고 눈썰미가 좋은 페르젠의 경우, 성별 자체를 위장한 이들의 어설픈 걸음걸이가 드문드문 눈에 들어왔다.
자신처럼 어린 아이로 겉모습을 바꾼 이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제 1 황자와 제 2 황자 주변.
“……”
주변을 스윽 훑으며, 와인이 따라진 잔 하나를 집어든 페르젠은 느긋이 걸음을 옮겼다.
‘어디에 있을까……’
잔에 담긴 와인으로 목을 축인 뒤, 페르젠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성별을 바꾸는 위장과 비교를 하자면, 좀처럼 어색한 점을 찾기 힘들었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행동의 괴리감만으로 누군가의 정체를 특정할 수는 없으니, 당사자들 또한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편이고.
덕분에 부자연스러운 점이 오랜 관찰을 통해 선명히 드러났지만, 이것만으로 범위를 좁히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탁.
빈 잔을 내려두고, 걸음을 돌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페르젠은 리지가 여기에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을 했다.
참석을 한다 해도, 그녀의 오라비인 로에르가 할 터.
‘그래도……’
자그마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녀를 확인할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은 따로 있었다.
또각.
내딛던 페르젠의 걸음이 멈추어 선다.
그 앞에 있는 건, 연회의 흥을 돋기 위해 우아한 연주를 하고 있는 황실 소속의 악단들.
현재의 곡은 머지않아 끝날 시점이었기에, 페르젠은 얌전히 지휘자 뒤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끝에 곡이 끝나자, 짧은 공백기 사이로 파고들어 앳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듣고 싶은 곡이 있는데, 요청을 해도 괜찮겠나?”
“아…… 물론 입니다.”
“그러면, 축복의 밤을 부탁하지.”
“꽤나 오래전의 곡이군요.”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잠시 호흡을 고른 뒤, 지휘자가 손을 움직인다.
축복의 밤은 음악가라면 악보 없이 연주가 가능해야 하는 기본적인 소양의 곡.
곧이어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날의 음악이 화려하게 펼쳐지자 페르젠은 고개를 돌렸다.
오랜 관찰을 통해 좁혀진 인원은 세 명.
먼저……
쨍그랑──!
“……”
화려한 음악 속에서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
굳이, 한 명 한 명의 반응을 지켜 볼 필요도 없이.
페르젠은 저 너머, 제 1 황자 근처에서 덜덜 떨고 있는 푸른 머리의 여인을 보고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늑대의 가면을 쓰고 있는 그녀가 황실 소속의 악단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과정에서 아주 잠깐 시선이 마주쳤지만, 찰나의 순간은 아무런 일도 없이 자연스레 지나갔다.
그래, 어린 양의 탈을 쓰고 있는 늑대는 자신의 먹잇감을 알아보았지만.
늑대의 탈을 쓰고 있는 어린 양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맹수를 인지하지 못했다.
‘리지. 그것을 아느냐.’
공포와 두려움은, 극복하지 않는 한.
‘언제나 곁을 맴돌며 따라다니지.’
이내, 페르젠이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사근사근.
눈 위를 걷듯.
고요하게.
* * * * *
“하…… 흑……”
심장이 쪼그라는 듯한 고통에 리지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테라스로 도망쳤다.
휠체어를 밀어주던 시녀가 걱정스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지만, 리지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을 새도 없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테라스로 나와도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축복의 밤은 많은 인기와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곡이지만, 기본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 유행이 변하는 만큼 최근 연회장에서 축복의 밤은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낡아 빠진 곡에 불과했으니까.
“아가씨……”
“괜, 찮아…… 가서, 냉수 한잔만 가져다줄래……”
“알겠습니다.”
파르르 떨리는 몸의 경련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리지는 심호흡을 반복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곡이 끝나자, 발작하던 몸은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는다.
그 평온함에 리지는 손끝을 파르르 떨며, 턱 끝에 고인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 내렸다.
끼익.
그 때 들려오는, 문이 열리는 소리.
“리벨라……”
시녀의 이름을 부르며, 이마를 짚은 리지는 손을 내밀었다.
차디찬 냉수가 담긴 잔을 건네달라는 의미였지만……
쪽.
“……!”
돌아온 것은,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
화들짝 놀란 리지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새하얀 정장에, 어린 양의 가면을 쓰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실례가 되었습니까.”
“아, 니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리지는 슬며시 손을 뒤로 내뺐다.
“아름다운 손이군요.”
그러나 그는, 아니 그 소년은 자신의 반대쪽 손을 조심스레 붙잡더니 한 번 더 고개를 숙이며 입맞춤을 선사했다.
“……양의 가면을 쓰고 있는데, 하는 행동은 늑대처럼 엉큼하네요.”
리지는 실소를 지었다.
사실 이 가면 무도회가, 자신들의 정적을 깎아 내리고.
지지하는 황자들에게 적나라한 불만을 쏟아내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극히 일부는 자신들의 은밀한 욕망을 채우려 들기도 했다.
“홀로 테라스에 있는 제가, 그리도 잡아먹기 쉬워 보였나요.”
“오해입니다. 단지, 낡아 빠진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잠깐 나왔을 뿐.”
어린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
애늙은이라는 말이 딱 이럴 때 쓰이는 걸까.
끼익.
느슨하게 긴장이 풀렸을 때, 시녀가 들어온다.
그녀에게 차디찬 냉수가 담긴 잔을 건네받은 리지는, 곁이 아니라 문 앞에 서있어달라고 넌지시 명을 내렸다.
그에 페르젠은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입을 열었다.
“그레모리 엘딘 이슈타르 엘마르크입니까.”
“……”
페르젠의 말에 리지는 몸을 움찔했다.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자주 듣는 말입니다. 엘마르크 제국의 여제로 겉모습을 덮어쓰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건 나름의 풍자적 요소이겠죠. 재미있습니다.”
소년, 페르젠의 말에 리지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실 풍자적 요소 같은 건 의도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봐왔던 가장 강인한 여인의 인물상이…… 엘마르크 제국의 여제였을 뿐이니까.
그래, 리지는 그저 단단한 껍질을 원했을 뿐이다.
혹여나 이 연회장에 페르젠이 있다면, 원래의 모습으로 마주 할 자신이 없었기에.
“……”
“……”
곧이어 맴도는 침묵.
페르젠은 물끄러미 리지를 올려다보다, 아름다운 밤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불편한 침묵입니다.”
“……”
“여인을 상대로,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 나갈 자신이 없으니 화두를 던져주지 않겠습니까.”
“낡아 빠진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잠깐 나왔을 뿐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이는 원래 변덕이 심한 법이죠.”
앳된 목소리로 자신에게 작업을 거는 페르젠을 내려다보며, 리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요. 그러면…… 현재의 정세에 관해서 당신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정세라.
꽤나 까다로운 요구다.
왜냐하면 페르젠의 경우, 제 2 황자에게 따로 들은 사실을 기반으로 정세를 해석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제외하고, 다시금 재구성하여 내뱉는 건 어렵지 않았기에 페르젠은 발성을 조절한 뒤 입을 열었다.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느냐 한다면, 역시 제 2 황자 쪽이겠죠.”
“이유…… 는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암암리에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
“……”
“그래요. 하지만 브뤼테인의 지원이 곁들여지는 만큼, 다른 이들이 활약할 자리가 없어지지 않나요? 때문에 적의 적과 동침할 가능성이……”
리지의 말에 페르젠은 웃었다.
그리고 그의 웃음에 리지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도중에 끊어버렸다.
“당신의 견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충견인지 증명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그럴 자리가 없다면 억지로 만들어 내려고 하니까.”
“……”
“다만, 그 자리를 꿰찬 사람 앞에 보상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요.”
“……”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로벨리움 왕국에서 브뤼테인의 지원을 받는 루에르그가 무슨 일을 하든, 황실은 그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을 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애초에 브뤼테인의 핏줄은 그런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더불어, 이번에는 오욕을 참회하기 위한 합당한 명분도 마련되어져 있었다.
때문에 그러한 사실이 다른 충견들에게 불안함 보다는, 편안함과 강력한 결집력을 선사한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제 2 황자가, 제 1 황자와 비교했을 때 한 걸음 앞서게 된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루에르그 백작은…… 이번에 알프레드의 여인과 결혼을 했어요. 브뤼테인의 핏줄로 태어나 알프레드의 여인을 취했는데, 이건 그의 탐욕스런 야심을 나타내는 시발점이 아닐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페르젠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해석이 되도 무리는 아니었으니.
다만……
“그가 정말 야심이 있었다면, 고작 변방의 루에르그의 백작위를 탐하지 않았겠죠.”
“……”
“모래성 위에 벽돌을 얹히면 가라앉습니다. 의아하기는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의문을 품지 않는 이유죠.”
“정말, 그래서 일까요……”
“……”
“그저, 브뤼테인의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성립된 선입견을 믿는 게 아닐까요.”
팔걸이에 손을 얹힌 리지가 주먹을 거세게 말아 쥔다.
그 모습을 보며 페르젠은 입을 열었다.
“그게 잘못 되었습니까.”
“……”
“어쩌면 탐욕적이고 추악한 내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겉으로 드러난 외면 만을 믿는 게 아니냐는 말은…… 합리적인 듯 하면서도 그러지 않습니다.”
“어디가요.”
“나신으로 길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
“모두가 옷을 입고 돌아다니죠. 또, 비싼 돈을 지불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싶어 합니다.”
“……”
“이것은 인간의 천성이죠. 그것을 부정하고 싶다면 감히 묻겠습니다. 당신의 내면은 외면을 덮어 쓰고 있지 않습니까?”
어린 양의 탈을 쓰고 있는 페르젠의 한 마디에, 리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만 해도 자신은…… 여제의 겉모습을 덮어쓰고.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기 자신을 갈망하고 있었기에.
“제게 호의를 얻으려고 했던 게 아니었나요.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듣기 싫은 말만 내뱉고……”
쓰고 있는 늑대의 탈을 살짝 고쳐 쓴 뒤, 리지는 고개를 숙여 페르젠과의 시선을 마주했다.
“정말…… 잡아먹고 싶은 어린 양이네요.”
가녀린 손끝이 뺨을 스친다.
보드라운 양 털 뒤에 숨겨진, 늑대의 본모습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녀가 어찌 이리도 어리숙하게 느껴질까.
하기야 내리 깔린 밤의 어둠이 짙다.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썩어 문드러진 물이라고 한들 달콤하게 마실 수 있는데.
‘리지.’
사람의 눈은 생각보다 우매하고, 우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단다.
속으로 전해지지 않을 충고와 함께 조소를 머금으며, 페르젠은 그녀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체취를 조용히 들이켰다.
늑대에게 어울리지 않는, 양의 냄새가 풍겨온다.
무척이나 달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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