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8 098─일상
오후 강의를 마치고, 이제는 자신의 보금자리가 된 페르젠의 저택으로 돌아온 유리엘은 곧장 욕실로 향했다.
현재 시각은 오후 3시 20분.
첨벙!
“두 사람은, 지금 뭐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 따라온 시녀를 보며 유리엘은 슬그머니 물었다.
“마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시고, 주인님은 곁에서 책을 읽고 계십니다.”
“……자고, 있다고.”
시녀의 말을 듣자마자, 유리엘은 지금이 적기다 싶어 얼른 목욕을 끝내고 욕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유페미아의 침실, 그 앞에 서서 따라온 시녀를 물린 뒤 조심스레 문을 연다.
쪽.
“……”
그러나 문 너머로 제일 먼저 들어오는 건, 잠들어 있는 유페미아의 머릿결을 정리해주며 새하얀 이마에 키스를 해주는 페르젠이었다.
“노크는 하지 그러나.”
입술을 떼어내며, 자신을 나무라듯 인상을 찌푸리는 그가 한마디를 내뱉는다.
“……나와.”
그에 유리엘은 삐죽 나오려는 입술을 억지로 집어 넣고, 날이 선 목소리로 페르젠을 불렀다.
“……”
그 당당한 요구에 페르젠은 힐끔 유페미아를 내려다보았다.
눈을 떴을 때, 곁에 있어 주겠다고 했는데.
‘일단……’
상당히 깊게 잠든 것 같으니, 잠깐 자리를 비우는 건 상관 없으리라.
그리 판단을 마치고, 삐걱거리는 소리 조차 나지 않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페르젠은 문 밖의 유리엘에게 다가갔다.
타악.
그러자 곧바로 문을 닫아 버린 유리엘은, 은은한 질투심이 베어든 목소리로 페르젠에게 말했다.
“나도……”
“……”
“나도, 방금 그거…… 해줘……”
이 때쓰는 모습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묘하게 사랑스러워 페르젠은 너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우, 웃지 마……!”
그러자 유리엘은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읏……”
하지만 곧바로 손을 뻗은 페르젠이 자신의 촉촉한 흑발을 정리해주며, 이마에 애정어린 키스를 건네주자……
일순간 생겼던 앙금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사르륵 녹는 걸 깨달았다.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는, 원래 남자에게 이토록 약한걸까.
“내, 내 침실로 가……”
“그건……”
“아침도, 점심도 나 혼자 먹었거든…… 차별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그래…… 가지.”
자신의 넥타이를 붙잡고, 눈을 부라리는 유리엘을 보고 있자하니 거절했다가는 울기라도 할 것 같았기에 페르젠은 그녀의 침실로 함께 이동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침실에 페르젠과 단 둘이 들어서니 유리엘을 무얼 해야할지 몰랐다.
“뭐, 뭐 했어.”
“대답하기에는 범위가 좀 넓은 것 같은데.”
“그, 그 여자하고…… 뭐했냐고.”
“아무 일도 없었다.”
유페미아를 우선 하되, 차별은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지만……
페르젠은 그것을 조금 비틀 생각이었다.
각자에게 A를 쥐어주는 게 아니라, A 와 B를 따로 쥐어주는 것이다.
이 또한 어느 면에서 공평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
“하고 싶은 걸 말해라. 당장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주마.”
“……”
“지금 내 시간을, 온전히 네게 일임하겠다.”
너무나도 유순하게 나오는 그의 모습에 유리엘은 적잖게 당황했다.
돈을 쓸 줄 모르는 평민에게 금화 다발을 안겨주고 하루만에 전부 사용 하라고 하면 이런 느낌일까.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침대를 보며 유리엘은 그곳으로 페르젠을 밀었다.
“누, 누워봐……”
“그러지.”
별 다른 저항 없이, 고분고분 그녀의 말을 들은 페르젠은 침대에 베개를 베고 누웠다.
삐걱!
그러자 그 옆으로 슬며시 누운 유리엘은, 꼼지락 거리며 페르젠의 품안으로 안겨 들었다.
“아, 안아줘……”
스륵.
커다란 그의 손이 등을 쓸어내리며, 자신을 품안으로 끌어 당긴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그의 체취에, 유리엘은 페르젠의 가슴팍에 자신의 얼굴을 슬며시 문질렀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체향이 그의 몸에 깊게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오, 옷 벗겨줘……”
엉큼한 명령을 뱉었다.
“……”
“다, 당신 시간을…… 내게 일임 해준다면서……”
“아무 말도 안했다.”
괜히 제발을 저리는 유리엘을 보며, 속으로 옅게 웃은 페르젠은 손을 뻗어 그녀의 옷──원피스의 어깨끈을 붙잡아 내렸다.
그러자 달콤한 특유의 체향이 화악 퍼지며, 유페미아 보다 풍만한 가슴이 드러난다.
그에 유리엘은 자신의 얼굴 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를 페르젠의 몸에 가까이 밀착하고는 음란하게 문질러댔다.
아마도 지나가던 고양이나 강아지가 이 모습을 봤다면, 발정기가 찾아온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이, 있잖아……”
“그래.”
“그…… 다, 당신은…… 세, 섹스 판타지가…… 뭐, 뭐야……”
“……”
“이, 있는 거 알아…… 나, 남자들은 그런 거 있잖아……”
본인이 먼저 말을 해놓고, 유리엘은 무척이나 당황하며 페르젠을 꼬옥 끌어안았다.
“나, 나는 그거…… 다, 들어줄 수 있어…… 어, 어차피 그 여자…… 섹스, 못하잖아……”
섹스를 못한다.
여기에는 유리엘 나름,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말 그대로, 임신 중이라 섹스를 못한다는 것.
또, 수수한 모습 답게 고지식한 섹스나 할 게 분명하다는 것.
어릴 적 창기에게 남성들의 심리에 관해서 교육을 받았던 유리엘은, 성관계가 부부 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초, 초야 때…… 하, 항문 계속…… 건드리던데……”
“……”
“거, 거기로 하고 싶은 거면…… 그래도, 괜찮아…… 마, 말해주면…… 과, 관장 하고…… 올 테니까……”
말을 이어 갈수록, 유리엘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 들었다.
“왜, 왜 말이 없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으니, 말이 없지 않겠나.”
“내, 내가 먼저 이렇게 나와주는데…… 끄, 끝까지 고상한 척 하지마……”
“고상한 척이 아니라…… 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그만 말하지.”
“아, 안들어 갈거 같아서 그러는 거야……?”
“……”
“드, 듣기로는…… 귀, 귀두 부분만 어떻게 넣으면…… 쏘, 쏙 들어 간다던데……”
“유리엘.”
“계, 계속…… 나만……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마……”
“그게 아니라, 나는 정말로 말 못할 만큼 특이한 성적 취향 같은 게 없다.”
나름 짧은 자아 성찰을 하고, 페르젠은 진중히 대답했다.
솔직히 그런 게 있었다면……
제대로 약점을 잡은, 또 만월이 될 때 마다 이성을 상실하는 라우라에게 잔뜩 풀어 냈겠지.
일이 틀어 지더라도, 제노바 백작가와 연관된 사실을 밝혀 멸문을 시켜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굳이 꼽자면……”
은근히 가학적인 성향이 있다는 거리라.
“다, 당신…… 은근하지는 않던데……”
“……”
“아, 아니면 말고……”
꼼지락, 페르젠의 품 안에서 몸을 움직이며 유리엘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한참을 단란히 누워 있다, 자신의 체향에 반응해 꼿꼿이 발기한 페르젠의 성기가 배를 쿡쿡 찌르자……
“……”
유리엘은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어, 페르젠과 눈을 맞추었다.
“하지 않을 거다.”
“……”
“어제 초야 때문에, 허리가 상당히 아프지 않나.”
“그건……”
맞는 말이었다.
‘의외로……’
그가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알고 있다는 점이 기쁘다.
하지만 역시, 몸을 섞고는 싶었다.
가임기에, 제대로 그의 씨를 받아 아이를 품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들이 아니라 딸이면 좋을 것 같았다.
아들을 낳게 되면, 자신과 페르젠이 키우지 못하고…… 알프레드 가(家)로 보내야 했으니까.
“괜찮아…… 하고 싶어……”
“무리하지 마라.”
“무리하는 거 아니야…… 거절 하지 마. 당신 시간은 지금, 내꺼잖아……”
삐걱!
페르젠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자신의 다리 사이로 내보내는 유리엘.
그러자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그가 자신을 내려다본다.
그에 유리엘은 슬며시 발을 뻗어, 페르젠의 고간을 어루만졌다.
‘가, 가학적인 성향이 있다고 했으니까……’
꼴깍, 침을 삼키며 유리엘은 입을 열었다.
“나…… 배려, 안해도 돼…… 그, 당신 자, 자지…… 이제 작게 느껴지거든……”
“……”
페르젠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마 도중에 섞여든 천박한 단어 때문이리라.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말없이 옷을 벗는 그가 세차게 껄떡이는 성기를 드러내며 자신의 다리를 거칠게 벌려온다.
움찔!
은근히 피학적인 성향이 있기는 했던 걸까.
유리엘은 그의 커다란 손에 단단히 붙들린 자신의 발목으로부터 야릇한 감각이 전해져 몸을 옅게 떨었다.
“유리엘.”
“으, 응……”
“후회하지 마라.”
“아, 안하는데……”
“그러길 바라지.”
비웃기라도 하듯, 입꼬리를 말아 올린 그가 몸을 겹쳐 온다.
언제나 그랬듯, 흑마법사 답지 않게 다부진 체격.
그 체격으로부터 전해지는 무거운 체중이 자신의 가녀리고 부드러운 몸을 찍어 누르자, 유리엘은 일순간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그래서 페르젠의 어깨를 짚고, 조심스레 밀어 내려 했지만……
숨돌릴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듯, 어느새 손을 밑으로 내린 그가 적당히 젖어든 자신의 음부를 확인하고 팬티를 옆으로 살짝 밀어 젖힌다.
“아……”
페르젠의 탄탄한 몸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유리엘은 그의 흉물스런 성기가, 굴안에 도망친 먹이를 잡아 먹으려는 뱀처럼…… 자신의 음부 앞에서 세차게 껄떡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쯔붑……!
곧이어 그의 귀두가 조심스레 자신의 속살을 벌리며 파고들자, 마음에 준비라도 하듯 숨을 가득 들이키려 했던 유리엘이지만……
찔꺽──!
“끄힉!”
엇박자로, 서로의 치골이 맞닿을 만큼 단숨에 삽입을 해버리는 페르젠 때문에 천박한 교성을 내지르며 두 다리를 높게 치켜들고는 바들바들 떨었다.
강간이 아님에도, 섹스가 폭력이 될 수 있다면 이러할까.
순식간에 뱀에게 사로 잡힌 먹잇감처럼, 자신의 자궁구를 꾸욱 꾸욱 짓누르는 페르젠의 귀두에 유리엘은 눈물을 훌쩍였다.
하지만 몸부림치거나, 그를 밀어내려 하지는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유페미아가 일어나기 전 까지.
단 둘이 몸을 섞는 이 시간을 독점하고 싶었기에.
그래서인지, 그녀의 자궁구는 거칠게 파고든 페르젠의 성기라도……
키스라도 하듯 쪼옥 달라 붙어, 그의 씨를 갈구했다.
삐걱──!
천박한 교성에 묻히지 않을 만큼, 침대가 요란스레 흔들리는 시간이 오래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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