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2 082─흐릿한 만월
6월 5일.
새벽 5시.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미약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페르젠과 라우라가 앉아 있는 침대 위는 붉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셔츠가 풀어 헤쳐진 페르젠의 몸은 피딱지가 그윽이 앉아 있었고.
군데군데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도 보였다.
그 형태의 조합들은 대칭을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질서했기에 페르젠은 날밤을 센 피로함을 제외하면, 다행히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아……”
그리고 심장을 향해 살점을 파지 못하게끔 꾸준히 제지당했던 라우라는 스스로의 손을 꺾어 자해 섞인 협박을 하려던 순간에……
마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이후의 사람처럼.
제정신을 차리고, 온 몸을 덜덜 떨며 페르젠의 상체를 쳐다보았다.
“이제 머리가 좀 제대로 돌아가느냐.”
“그……”
정면에서 또렷이 쳐다보는 페르젠의 붉은 적안에 라우라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괴벽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말로 이루지 못할 쾌락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었던 터라 그녀의 두 다리는 힘이 풀려 좀처럼 뇌의 통제를 듣지 않았다.
“이성이 공존하고 있어서 그런지, 생각은 나는 모양이구나.”
손을 뻗은 페르젠이 라우라의 입술을 엄지로 스윽 닦아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술에 묻어 있던 페르젠의 피가, 마치 립스틱처럼 번져 나가며 야릇한 얼룩을 새긴다.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네, 네……”
“제단을 돌려주마.”
피로 얼룩진 자신의 손 위로 얹히는 로사리오.
“물을 엎질렀으면 닦아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 페르젠이 자신에게 무얼 원하는지, 라우라는 어렵지 않게 눈치를 챘기에 아공간을 열어 소독약과 여러 약제품을 뭉텅이로 끄집어냈다.
일단은 보유하고 있는 원소 마법사의 시신으로, 상처를 가리고 있는 핏자국부터 씻어 내리는 게 우선이었지만……
그런 순차적인 사고조차 하지 못할 만큼 라우라는 당황하고 있었기에 다짜고짜 소독약의 병을 열었다.
그러자 알코올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나가더니, 방안을 가득 메꾸고 있는 비릿한 피냄새를 보다 선명히 맡게 해주었다.
“죄, 죄, 죄송…… 해, 해, 해요……”
기어코 헛구역질을 하며 울상을 지은 라우라는 페르젠을 향해 사과했다.
물론, 이런 한 마디만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알았기에.
그녀는 거의 찢어 내리듯 옷을 벗고는 페르젠 앞으로 다가갔다.
“교, 교수님도…… 제, 제게…… 또, 똑같이……”
“되었다.”
작고, 여리고, 가느다란 여체.
봉긋한 가슴 한 가운데, 쾌락의 여파로 수줍게 서있는 분홍빛 유두가 땀방울을 이슬처럼 머금고 있다.
어쩌면 덜 여물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가득 흘러내린 땀 냄새 가운데로 섞여 드는 고간의 야릇한 암컷의 냄새는 그녀가 명실상부 소녀가 아니라 여인임을 자각시켜준다.
“그대로 돌려주었다가는, 네 몸이 버틸 수나 있을까.”
페르젠은 웃으며, 라우라의 가느다란 허리를 붙들었다.
“봐라.”
“읏……!”
“조금만 힘을 주어도, 꽃처럼 꺾이지 않느냐. 그리고……”
“아, 아파……!”
“여기서 더 세게 힘을 주면, 그것만으로도 네 피부에는 붉은 손자국이 남지. 그런 연약한 피부를 이빨로 깨물고 손톱으로 자상을 남겼다가는 아마 영원히 흉터가 남을 것이다.”
손을 치워 내고, 페르젠은 말을 이었다.
“미래의 네 남편이 그걸 보면, 잘도 좋아하겠군.”
“……”
“죄책감을 덜어내려 발버둥치지 말고, 얌전히 치료나 해주 거라.”
페르젠의 말에, 라우라는 그저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기에 보유하고 있는 원소 마법사의 시신을 꺼내들어 그의 상처를 가리고 있는 핏자국을 말끔하게 씻겨 내려주었다.
그리고는 솜에 소독약을 묻힌 뒤, 아주 조심스레 발라주고는 연고와 함께 붕대를 들고 페르젠의 상처를 꼼꼼히 치료해나갔다.
“다, 다 했어요……”
오랜 시간 끝에, 손을 거두어들인 라우라는 주인의 눈치를 보는 강아지처럼 무릎을 꿇고 다소 곤히 손을 모은 뒤 페르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잘 했구나.”
스윽 확인을 끝낸 페르젠은 피로 얼룩진 셔츠의 단추를 덤덤히 잠그고서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라우라는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살포시 움켜쥐었다.
“하, 하다못해…… 오, 옷이라도 벼, 변상……”
“필요 없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로젠베르크의 여식.
목줄을 쥐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채감을 쌓아 둬서 나쁠 건 없으리라.
하지만 거절하기 무섭게 라우라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한다.
“그리도 죄책감을 탕감하고 싶으냐.”
“타, 탕감 까지는……”
단추를 모두 잠그고 나서려던 페르젠은 라우라를 물끄러미 내려 보았다.
그러자 팬티를 제외하면 적나라한 나신이었기에, 라우라는 이제 와서 슬그머니 자신의 분홍빛 유두를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삐걱!
페르젠이 침대에 걸터앉는다.
“대충 9시간 40분 정도였으니, 반올림해서 10대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네 생각은 어떠할까.”
“네……?”
되묻는 라우라의 의문에, 페르젠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페르젠이 말하는 10대가 무얼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저 수치심 때문에 한 번 되물어 보았던 것이었다.
“……”
“……”
맴도는 침묵 속.
피로 얼룩진 그의 셔츠를 한 번 보고는……
“아, 알겠어요……”
기어코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개처럼 엉금엉금 기어 페르젠의 무릎 위로 자신의 배를 가져다 대고 조심스레 눕는다.
스륵.
“아……!”
짜악!
“히윽!”
작고 가녀린 몸에 비하면, 어느 정도 살집이 있는 포동포동한 엉덩이가 커다란 페르젠의 손길에 붉게 물들어간다.
하지만 그런 아픔보다 라우라를 가장 수치스럽게 만드는 건, 페르젠이 살짝 내린 팬티 너머에서 적나라하게 퍼져 나가는 음탕하기 그지 없는 암컷의 냄새였다.
“이, 입으로…… 수, 숨 쉬어…… 주, 주, 주세요……”
그에 라우라는 침상에 얼굴을 묻은 채, 페르젠을 향해 자그마한 목소리로 애원하듯 부탁했다.
짜악!
“아윽!”
하지만 그 애원이 무색하리 만큼 페르젠은 그녀의 볼기짝을 2대, 3대, 4대…… 묵묵히 때려 나갔다.
“흐, 윽……”
그렇게 채 5분도 되지 않았을 시간이 흐르고.
화끈 거리는 자신의 엉덩이를 붙든 라우라는, 몸을 일으켜 우산을 드는 페르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침대 시트, 이불, 그리고…… 하는 김에 청소도 끝낸 뒤에 아카데미로 돌아가거라. 이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
“네……”
수긍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페르젠은 검은색 우산을 펼친 뒤 문을 열고 느긋이 걸어 나갔다.
타악!
곧이어 문이 닫히자, 라우라는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페르젠이 말했던 대로,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은 부분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나 괴벽이 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반부는 무척이나 선명히.
‘미쳤어……’
씨를 받아 주겠다느니.
사정하기 직전 심장을 터트려주겠다느니.
더듬더듬 내뱉었던 자신의 말이 되새겨지자 라우라는 자신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자해아닌 자해를 했다.
특히나, 이성이 공존하고 있었던 터라.
굳이 괴벽을 풀어낼 수 없게 제압 하지 않아도, 스스로 호흡을 멈춘다거나 치명상을 입히려 드는 자해로 그에게 협박했던 걸 생각하면……
또, 그걸 받아주어 묵묵히 상처 입었던 그를 생각하면.
라우라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내심 애송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어엿한 성인이었고, 또 듬직한 사내였던 것이다.
“……”
살포시 무릎을 끌어안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라우라.
귓가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가 들려온다.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조금씩 심신이 안정 되는 느낌.
그리고는 자신의 손끝에 묻어 있는, 페르젠의 피를 보며……
할짝.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게 한 번 핥아보았다.
물론, 생각했던 대로 맛은…… 무척이나 비릿했다.
하지만 그 비릿한 맛이 입안에 퍼져 나갈 때 마다 라우라는 이 손으로 그의 살을 할퀴고, 이빨로 몸을 물었던 감각이 희미하게 살아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직 옅게나마 괴벽의 여파가 남아 있어서 그런 걸까.
몸이 아릿한 흥분을 머금는다.
아니나 다를까 밑으로 손을 내려, 자신의 고간을 스윽 훑어보니.
투명하고 야릇한 애액이 묻어 나왔다.
찌덕.
점성은 또 얼마나 높은 건지, 손가락을 이리저리 비비니 꿀 못지않게 끈적거리며 실이 길게 늘어진다.
“하……”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라우라는, 힘없이 이마를 짚고는 뜨거운 한숨을 살포시 내쉬었다.
‘변태, 같아……’
자괴감만이 밑도 끝도 없이 깊어져 고개를 도리질 친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킨 다음 옷을 갈아입고, 페르젠이 부탁했던 대로 이 누추한 집안을 말끔하게 청소해나갔다.
그리고는 아카데미로 돌아왔으나……
쉴 틈도 없이, 그녀는 편지지를 들고 책상에 앉았다.
방학 기간.
괴벽을 통제 받기 위해서는, 어찌 되었든 페르젠 곁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페르젠은 지금 자신이 뿌려 놓은 연막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바꾸라고 했으니 그 포석을 새기려면 적기가 지금 밖에 없었다.
그러나……
뭐라고 해야 할까.
다른 연결 고리가 마땅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루에르그의 영지 마법사가 되기 위해, 방학 기간 동안 루에르그로 올라가려 한다는 동기는 곧이 고대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오히려 이미 뿌려진 연막과 어우러져, 괜한 착각을 더 불러일으키리라.
‘그렇지만 당장은 이것 밖에 여지가 없는데……’
펜촉을 새하얀 종이 위로 툭툭 두드리다, 라우라는 결국 더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자 해당 사안을 아름다운 필체로 적어 나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간이 좀 걸렸네요…… ㅠㅠ
금방 작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 보다 중간부터 써내리는 게 힘들었던 터라 ( 단순히 글 내용적 요소 ).
부디 만족 하셨기를 바라며……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유리엘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 * * * *
임신한 유페미아 일러스트에 관해 묻는 독자분이 계십니다.
현재 작업 중입니다!
그 당시 아마 만우절...... 사건 터지고 제가 경황도 없었고.
재개 하고 어영부영 하다 보니 다른 분꺼 작업 하고 계셨던 터라
최근에 제걸 맡아 주셨거든요.
5월 안으로는 아마 찾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배경도 함께 작업하고 있어서 표지 겸 삽화로도 한 번 써볼 예정입니다.
유페미아 작업을 마치고 나면 라우라 일러스트로 가져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바라요. ( __ )
사랑합니다. 독자님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