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6 076─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끼익!
조용히 열리는 명계의 문 너머를, 페르젠은 그저 바라보았다.
‘……조건은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순간인가.’
내심 그 때와 같은, 명계의 장부라 할 수 있었던 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이윽고 시시각각 변화하기 시작하는 명계의 문, 그 위의 명패.
3층과의 거래는 페르젠도 처음이었던 터라 명패가 고정 되기 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가 없어 우산을 든 채로 10분 정도를 기다렸다.
‘오래 걸리는 군……’
3층 정도에 서식하고 있으면, 정석적인 거래에는 큰 관심이 없는 건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품은 순간, 명계의 명패가 고정 되었다.
이것은 거래를 할 괴이가 주선 되었다는 증거.
“거래 방식은 즉납. 기한은 미정. 거래 품목은…… 강림.”
그에 필요 과정을 빠르게 진행한 뒤, 페르젠은 흐릿하게 보이는 명계의 문 너머를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주시했다.
고정된 명패의 형태는…… 검은색 깃털.
그러하다면, 저 문 너머에서 튀어나올 괴이는 조류의 모습일까.
툭.
“……”
그러나 문 너머에서 나온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평범한 호루라기였다.
“……저런 형태의 괴이가 보고 된 적 있었소?”
“모르겠군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괴이들은, 그 모습이 기괴하더라도 전부 생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데…… 으음.”
제 2 황자의 질문에, 로즈웰 공작가의 어르신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꼬맹아. 얼른 불어 보거라.”
간섭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로즈웰 공작가의 어르신──테오르는 페르젠을 독촉했다.
그에 페르젠도 잠시 뜸을 들이다, 은은하게 발광하는 은색 호루라기를 입가로 가져다 댄 뒤……
“후!”
숨을 불어 넣었다.
───!
울려 퍼지는 소리는 맑았으나, 시중에서 판매되는 호루라기와 별 다를 바 없는 음색이었던 터라 페르젠은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이 소리를 듣게 되는 사람들은 매혹에 빠진 다거나, 환각 증세에 시달린다거나…… 그러한 효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기에.
하지만 뒤편에 서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자신과 동일하게 의아한 기색을 머금고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
“저, 저거……!”
그러나 잠시 뒤, 뒤편에 서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하늘을 가리키자 페르젠 또한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
밤하늘의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랬다.
바다에서 발생하는 용오름처럼.
밤하늘의 어둠이 끌려 나오며, 그것들은……
까악!
온 몸에 기괴한 눈을 수십 개 달고 있는, 흉측한 형태의 까마귀로 변모해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흐아악!”
그 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존재하는 어둠.
심지어 색깔이 검은색이라면, 옷과 눈동자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고.
끌려나오는 어둠은 까마귀로 변해 사방팔방을 날아다녔다.
그렇게 수백 수천 마리의 까마귀들이 마도 학회의 옥상에 내려앉아 몸에 달려있는 수십 쌍의 눈동자로 주변 사람들을 노려본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의 어둠에서 끊임없이 끌려나오는 까마귀들은 무질서 그 자체로, 수도의 밤하늘을 배회했다.
──!
이내 한 번 더, 페르젠이 호루라기를 불자.
부는 당시 머금었던 의지대로.
옥상에 내려앉았던 까마귀들이 하늘로 올라가, 밤하늘의 수만 마리의 까마귀들과 합류해 질서 있게 원을 그리며 날아다닌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둠으로부터 끊임없이 끌려나오는 까마귀들은 그 세를 순식간에 넓혀 나갔고, 머지 않아 수도의 상공을 온전히 뒤덮은 뒤 내리던 비까지 멎게 해버렸다.
“꼬맹아…… 저거 태워 봐도 되느냐.”
로즈웰 공작가의 어르신의 말에, 페르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르륵!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수한 불덩이들이 하늘로 날아가 까마귀들을 산채로 태워 죽여 버리지만……
밤하늘의 어둠과 주변의 어둠.
그리고 검은색을 품고 있는 여러 요소들로부터.
순식간에 태어나는 까마귀들이 빈자리를 메꾸어버렸다.
영원불멸의 군세가 있다면 아마도 이러 할까.
‘누군가를 지정하고…… 이 호루라기를 불게 된다면……’
수만 마리를 떠나, 수십만 마리가 되어 있는 저 까마귀들이.
그 자를 둘러싸고, 육체를 파먹겠지.
죽게 되더라도, 어둠만 있다면.
아니, 설령 어둠이 없더라도.
자그마한 검은색 점이 하나만 있어도.
저 까마귀들은 무한대로 증식이 가능했다.
이것이 명계의 3층에 서식하는 괴이.
“백작! 이만 하면 되었소! 까마귀는 본디 불온의 상징이니…… 이이상 수도의 상공을 어지럽혔다가는 백성들의 동요가 적지 않을 것이오.”
제 1 황자가 정신을 차리고 페르젠에게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에 페르젠은 열려있는 명계의 문 너머로, 쥐고 있는 호루라기를 무심하게 집어 던져 반납해버렸다.
그러자 어둠으로부터 끌려나오던 까마귀들의 증식이 멈추고.
수도의 상공을 질서 있게 배회하던 까마귀들은, 한줌의 검은색 깃털이 되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투둑.
쏴아아……
가로 막혔던 비가 다시금 쏟아진다.
검은색 깃털들은 그 비에 녹아 없어지기라도 한 건지, 어느새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우산을 고쳐 쓴 페르젠은 아공간을 열었다.
5억 7천 베른 정도의 물품이 사라졌다.
1억 2천 베른 정도의 손해가 있기는 했지만, 굳이 구질구질하게 그것까지 상세히 내놓으라 할 만큼 가난한 건 아니었기에 페르젠은 아공간을 닫고 걸음을 뒤로 돌렸다.
본래 자신의 승격 검증관이었던, 멜빈이라는 사내가 걸어온다.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미는 그의 손에는, 아폴리온 등급의 마법사를 지칭하는 브로치 형태의 휘장이 쥐어져 있었다.
“내일 아침부터는…… 수도가 떠들썩하겠군요.”
“뭐…… 괜히 이상한 종말설을 주장하는 사람만 없기를 바라지.”
“까마귀는…… 불온의 상징이기도 하니까요.”
“사실상 그만한 효자가 없는데도 말이야.”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페르젠은 세밀하게 세공된 브로치를 받아 자신의 넥타이 부분에 차고서 빙그레 웃었다.
저 너머……
콜레오네 웨인 바레타 알프레드.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열렬한 구애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는…… 브뤼테인의 핏줄을 향한 질척한 감정,
그것을 읽고 페르젠은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 * * * *
콜레오네는 전율을 머금었다.
과연…… 알아내지 못한 모종의 이유가 아니었다면.
자연스레 브뤼테인의 가주가 되었을 남자의 저력은 대단했다.
24살의 나이에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가 되었고.
명계의 3층을 열어 보여준 광경은 찬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저 피가……! 유리엘에게 뒤섞이기만 한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늙어빠진 비루한 몸에는 가공할 흥분이 맴돌아 쭈글해진 그의 흉물이 빨딱 서는 듯 했다.
이윽고 검증의 자리가 끝나고.
해산하는 과정에서, 콜레오네는 조심스레 페르젠의 뒤를 따랐다.
쫓아낸 유리엘이 페르젠과 만나고, 그가 마련해준 자그마한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 받았다.
동정심에서 그러했을까?
아니다.
어림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뒤늦게 입질이 왔다면……
유리엘이 시집을 가는, 아스란 백작가 때문일 터.
그것과 연관이 있다면, 북부에서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거겠지.
바라는 게 혼인을 무르고 싶은 거라면……
‘네가…… 데려가면 되는 것이다.’
페르젠의 등을 바라보며, 콜레오네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이 무안하리만큼.
비스듬히 옆으로 몸을 물린 페르젠은 콜레오네를 내려다보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암흑가를 주름잡는 수장답게, 쥐새끼처럼 은밀하게 따라 붙는 불쾌한 접촉 방식은…… 페르젠으로써도 별로 달갑지가 않아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해야 할 말은 네가 있지 않은고.”
“……”
“재미있는 짓거리를 하고 있더구나. 그래…… 유리엘 그 아이를 사육하는 즐거움은 나름대로 있었는가?”
“……”
“하지만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 다시금 그 아이를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참으로 곤란해. 아쉽게도 먼저 온 입찰자가 있으니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어들고 싶다면…… 너도 입찰자가 되어 경매를 하면 되겠구나. 이것이 정당한 방식이겠지.”
끌끌.
콜레오네가 웃는다.
그 주름진 면상을 쳐다보며, 페르젠도 함께 웃어주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경매라는 게 의미가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게 특히나 당신이라는 족속은……”
까득!
왼손의 검지를 깨물어, 뚝뚝 흘리는 핏방울을 그의 콧잔등 위로 떨어트리는 페르젠은 비릿하게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 피를, 거부 할 수가 없을 텐데.”
“……”
콧잔등을 타고, 뺨으로 뚝뚝 흘러내리는 페르젠의 핏방울에.
콜레오네의 두 눈동자가 격렬히 흔들린다.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일은 알아서 정하십시오. 하등 의미가 없을 겉치레가 되겠지만, 얼마든지 어울려주도록 하지요.”
조금은……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을까.
걸음을 돌린 페르젠은, 오른손의 검지를 살포시 깨물고서는 마차에 올라타 마부에게 출발 신호를 내렸다.
* * * * *
“흐, 흐흐……”
손수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콜레오네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페르젠의 피를 손으로 스윽 닦은 뒤 그것을 핥아 먹었다.
아아……
천상의 맛이 있다면 이러할까.
도저히 닿을 수가 없어, 오만하다고 불렀던 브뤼테인의 피가.
어쩌면 머지 않아, 자신들 핏줄에 뒤섞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희열이 느껴져, 콜레오네는 한 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다 비틀비틀 마차에 올라탔다.
“더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구나.”
오늘 부터 연초를 끊고, 술을 끊어야겠다.
그리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과 약초들을 닥치는 대로 섭취해야겠다.
브뤼테인과 알프레드의 피가 뒤섞인 사내아이를…… 이 품안에 안아 보기 전 까지, 설령 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이 세상에서 명계로 데려갈 수는 없으리라.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