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75화 (75/260)

EP.75 075─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저택으로 돌아온 페르젠은 시계를 확인 했다.

오전 8시 40분.

‘조금 지체 하기는 했나……’

침실로 들어오니, 아직 잠을 자고 있는 유페미아가 보인다.

날씨가 흐려서 아침인지 모르는 걸까.

아니……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 때문 일지도.

털썩.

침대에 걸터앉아, 자고 있는 유페미아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조심스레 쓸어내리며 페르젠은 그녀의 배를 어루만졌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한 혼인 및 일부다처제는 시대적 배경상 비난 할 사람도 없었고, 유페미아 또한 그걸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서진의 자아 때문인지, 느껴지는 죄책감이 조금 괴로워 페르젠은 그녀의 뺨에 상냥히 키스를 했다.

‘뜨개질을 하고 있었나……’

베개 옆에 놓인, 아이의 발 크기에 맞추어진 양말 한 짝.

그 위에는 미완성 상태의 나머지 한 짝이 보인다.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

그녀는 어찌 되었든, 자신의 아내이자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노력 하나 하나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으응……”

살포시 옆에 누워, 품안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뺨을 매만진다.

그러자 익숙한 향기와 따뜻한 체온을 느낀 건지, 꼼지락 거리며 고개를 파묻어 오는 유페미아.

“……”

그녀는 알까.

이렇게 몸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마치 마약에 중독되어 가듯 좀처럼 손을 떼어내기가 힘들다는 걸.

“다녀왔다……”

자고 있는 터라 들리지 않겠으나, 페르젠은 그 한마디를 내뱉고 당직으로 인해 몰려오는 피로와 수마에 몸을 맡겼다.

* * * * *

부스럭.

잠시 몸을 뒤척이다, 눈을 뜬 유페미아는 자기 전 예상했던 대로 자신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 페르젠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내려다보았다.

원래는 자신을 품안에 끌어안고, 머리맡에 얼굴을 묻고 자는 편인데.

오늘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었다.

“지워질 날이 없네……”

들어 올리는 손거울.

그 안에 비추어진 자신의 목에는, 없던 키스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보나마나, 잠들기 전 자신의 몸을 희롱하고 있었겠지.

임신을 하고 난 뒤, 가슴도 조금 커진 듯 했고.

살도 약간이나마 찐 것 같은데.

이 남자는…… 뭐가 그리 좋다고.

자신의 몸에 이리도 집착을 하는 걸까.

“……”

잠들어 있는 페르젠의 흐트러진 머릿결을 조심스레 정리해주다, 유페미아는 문득 무슨 생각인지 모르게……

네글리제의 오른쪽 어깨끈을 내리고, 자신의 가슴 한쪽을 드러낸 뒤 페르젠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젖이라도 물리듯, 페르젠의 입술을 조심스레 매만지다 살짝 벌리고 자신의 유두를 물렸다.

그냥…… 이 남자를, 아기처럼 다뤄보고 싶다는.

그러한 은밀한 욕망이 일었는지도 모른다.

“앙……”

오물거리는 페르젠의 입술이 자신의 유두를 살포시 깨물자, 유페미아는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흠칫 몸을 떨었다.

예상했던 건 아기처럼 쪽쪽 빠는 그런 그림이었는데.

“응, 아응……”

페르젠은 앞니로 유두를 잘근잘근 괴롭히기만 할 뿐이었다,

물려준 유두로 이갈이라도 하는 건지……

하지만 유페미아는 아픔 보다는,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오싹오싹한 쾌감에 페르젠의 뒷머리를 꼬옥 끌어안고 달뜬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도……’

욕구, 불만인걸까.

아래쪽 속옷이, 천천히 젖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뒤늦게 부끄러움이 샘솟기는 했지만, 유페미아는 너머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장막삼아 은밀하게 이 순간을 이어 나갔다.

“하, 흐응……”

그 끝에 머지 않아 몰려오는 희미한 절정.

남아서 맴도는 여운은, 오히려 아쉬움만을 남긴다.

그에 유페미아는 여전히 젖을 물린 채로, 손을 뻗어 페르젠의 탄탄한 가슴팍을 조심스레 더듬거렸다.

‘하고 싶어……’

순간적으로 드는 충동적인 생각.

그것에 유페미아는 얼굴을 붉혔다.

스륵.

그리고는 다시금, 조신하게 젖을 떼어내고 네글리제의 어깨끈을 올린다.

이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녀는 머나먼 시간이 이른 후, 태어날 자신의 아기를 위해.

뜨개질을 시작했다.

* * * * *

페르젠이 깊은 단잠에서 깨어난 시각은 오후 3시.

비틀비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욕실로 이동해 깔끔히 목욕을 하고.

식사를 침실로 올려 보내라는 명을 시녀들에게 전달한 뒤, 유페미아 곁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함께 들었다.

이후에는 점점 거세지는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개인적인 업무를 보던 페르젠이었지만…… 잠시 펜을 내려두고 시선을 돌렸다.

침대 위에 앉아 조용히 뜨개질을 하는 유페미아.

“왜요……?”

결국, 시선을 의식한 그녀가 물끄러미 페르젠을 마주본다.

“네 배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면…… 화가를 불러 특정 개월 마다 순간순간을 담을까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 정도 자라기 전 까지는 계속해서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육아 일기 같은 게 되겠지.”

“……?”

조금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방식에 유페미아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했지만,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승낙을 했다.

그리고는 손을 꼼지락 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적응 안 돼…… 당신이, 당신이 아닌 것 같아……”

“……”

“첫날에 나를 강간하고, 심심하면 아랫배를 괴롭히고, 짐승이라도 다루듯 나를 길들이려 했던 사람이 맞는 건지……”

“네게 있어서, 나는 별로 좋은 남편은 아니겠지.”

부정 할 생각도 없었기에, 페르젠은 온전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이한테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 말에, 유페미아는 샐쭉 입술을 내밀었다.

“인정은 하면서…… 왜, 뉘우치려고는 하지 않아.”

“……”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

“나한테도…… 좋은 남편이, 되어 주세요……”

“……”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유페미아의 그 말에 페르젠은 참지 못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아…… 그래.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

“……”

“노력…… 하겠습니다.”

* * * * *

이틀 뒤, 승격 검증 자리가 성공적으로 마련되었다는 서신이 자택으로 도착하여 페르젠은  오후 강의를 끝마치고 마도 학회로 걸음을 옮겼다.

승격의 검증.

이름은 거창하지만, 과정은 지극히 간단했다.

예시로 유클리드 등급으로 승격했다는 걸 검증하기 위해서는, 하위의 케테르 등급의 마법사가 당사자의 마법 구성식을 인식하지 못하면 증명이 완료 되는 것이다.

그것만큼 명료한 건 없었으니까.

아마…… 오래 걸려봤자 채 5분일까.

벌컥.

마차가 멈추어 서고, 도착한 마도 학회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늘 따라 안이 어수선했다.

로비에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

무시하기에는, 어느 정도 얼굴을 아는 자들의 직위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페르젠은 눈치 챘다.

황실의 두 황자들과, 로즈웰 공작가의 어르신을 비롯해……

“……”

알프레드 가문의 노괴, 콜레오네도 보인다.

“루에르그 백작님.”

“그대가 내 검증을 도와줄 마법사인가.”

“예…… 멜빈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그러할 예정이었는데…… 정보가 새어나간 듯 하여, 조금 방식을 바꾸는 게 어떨까하는 논의가 오고 가고 있습니다. 그에 관해서 어떠한지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만……”

방식을 바꾸고 싶다.

그 말에 페르젠은 주변을 스윽 훑어보았다.

“설마, 3층을 열라는 소리인가?”

“네. 비용은…… 여기 모이신 귀빈들이 전부 지불하시겠다고……”

명계의 3층──프라타파나(Pratāpana).

이 세계의 역사도 꽤나 오래 되었지만, 3층에 존재하는 괴이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지극히 적었다.

아마 가문에서 개인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정보도, 그 양이 3 ~ 4개 정도가 된다면 많은 거리라.

한 마디로 여기에 모인 이들은 3층을 열고 거래를 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에, 그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괴이에 대한 정보를 얻어 가고 싶다는 것.

“수락하지.”

“아…… 알겠습니다!”

별로 손해 볼 것도 없었고.

페르젠 또한, 3층의 괴이가 가진 바의 능력을 한 번 체험하고 싶었다.

1층을 검의 내구도에 비유 한다면.

2층은 검의 날카로움이요.

3층은 해당 검에 오러를 덫 씌우는 격이라 할 수 있으니.

“그러면 올라가지.”

마도 학회의 최상층.

그 넓은 옥상으로 페르젠이 먼저 걸음을 내딛자,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늘 이들은 엄연히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었기에, 간단한 인사만을 나누고서 자신들의 직위를 드러내는 별다른 행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오직 한 명.

에르네스 제국의 2 황자는, 슬며시 페르젠의 옆으로 따라 붙었다.

“백작.”

“……말씀하십시오. 전하.”

“로벨리움 왕국에 관해서, 그대와 나누고 싶은 말이 참 많다.”

“송구하옵니다. 제가 긴히 빠른 시일 내에 날을 정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원치 않은 일정들이 잡혀 있는 터라……”

“이해한다. 다만, 빈말이 아니라 정말 빠른 시일 내로 그래 주기를 바라지. 로벨리움 왕국에서…… 아마 1 왕자를 순순히 왕위에 올리기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야.”

……그곳에서, 루에르그는 브뤼테인의 지원을 받는다.

2 황자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 점을 감안 하고서, 이런 말을 하는 거라면.

“……알겠습니다.”

“그래. 기다리고 있겠네.”

말을 마치고, 걸음 속도를 다시금 천천히 늦춘 제 2 황자는 후열로 돌아가서 페르젠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도달한 최상층.

그곳의 문을 열고, 추적추적 내리는 이슬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쓴 페르젠은 호화로운 물품들이 한 자리에 빼곡히 쌓여 있는 진귀한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도…… 4억 5천 베른 정도인가.’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3층의 명계의 괴이의 능력을 대여할 때는 1억에서 2억 베른 정도가 소모 되고.

직접적인 강림을 바랄 때는, 4 ~ 5억 베른 정도가 소모 된다.

헌데 저 정도 수준의 값비싼 물품들을 마련해놓은 거라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바라는 건, 직접적인 강림.

‘시간을 끌 것도 없겠지.’

뒤편에서 저 마다 자리를 잡는 걸 확인한 페르젠은, 가까이 다가가 해당 물품들을 자신의 아공간으로 쓸어 넣은 뒤 제단으로 삼은 반지를 쓰다듬어 명계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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