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8 068─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오늘 따라 유독 힘이 없어 보였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유페미아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수도에 그 노괴가 내려왔었으니……’
저기압의 원인은 아마 문책을 받았기 때문일 터.
핵심적인 목적은 시엘 미드포드의 제거였지만, 부수적으로 클로디아 가문이 엮여있는 알프레드를 견제하려는 속셈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가문 간의 갈등으로 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시대적 배경상……’
너무나도 흔하고, 비일비재한 일.
하지만 이서진의 자아가 섞여 들어 있다 보니, 일말의 죄책감이 느껴지기는 했다.
그 당시 연회장에서 유리엘이 그러지 말아 달라고 팔을 붙들기 까지 했었으니까.
물론, 그래봤자……
약간의 동정, 거기까지였다.
해줄 말도 딱히 없었고.
이미 칼로 찔렀는데, 미안하다고 해봤자 위선 밖에 더되겠나.
애초에 고민해야 할 문제는 유리엘이 아니라 북부 쪽이었다.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다.’
현 북부의 수장, 아스란 백작이 약속 받은 건 황비의 자리.
때문에 그로서는 특정 황자를 지지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제 1 황자를 지지했다가, 2 황자가 황태자가 된다면?
약속대로 자신의 딸이 그와 결혼해 황비가 될 수는 있겠으나, 적잖은 눈치가 보일 테고 입지도 줄어들겠지.
그래서 그는 중립을 유지하며, 휘하의 세력들을 나누어 제 1 황자와 제 2 황자를 지지하게끔 만들었다.
‘여기서 2 황자를 지지하는 세력은…… 어렵지 않게 거두어들일 자신이 있다. 솔직히 그러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는 거겠지.’
북부의 염원은 중앙으로의 진출.
황비를 배출할 아스란 백작도 연줄로써 나쁘지는 않겠으나, 브뤼테인이 뒤에 서있는 루에르그보다 먹음직스럽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곧 다가올 6월,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아카데미는 3개월의 기나긴 방학에 들어간다.
이 때, 북부로 올라가 교통정리를 끝내고.
‘제 2 황자를 만나, 로벨리움 왕국에 대해 상의를 해야겠지.’
벌써부터 타이트한 일정에 피로가 느껴지지만, 자초한 일이니 묵묵히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브뤼테인하고의 연이 끊길 각오도 하고 있었는데,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대가가 이 정도라면 싸게 먹히는 셈이었으니.
‘다 왔나.’
생각이 끝나갈 때쯤, 마차가 마도 협회 앞에 멈추어 선다.
아폴리온 등급으로 승격을 했으니, 해당 사안을 보고하고 검증 날짜를 잡아야 했다.
“유페……”
그 잠깐의 이동시간 동안 잠들었나.
하기야 무리도 아니겠지.
입덧을 시작했으니까.
보통은 임신 4주차부터라고 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몸에 변화가 온 모양이다.
아침에 식사를 하자마자 헛구역질을 했을 때는 독이라도 타져 있었나 싶어 얼마나 놀랬는지……
정작 본인은 냄새가 너무 역하다며 울먹이던 게 전부였던 터라 십년감수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갔다 올 테니, 접촉하는 사람이 있다면 돌려보내거라.”
“예. 알겠습니다.”
마부에게 간단한 언질을 주고서, 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 * * * *
끼릭.
점심시간을 잠깐 활용하여, 마도 협회에 들린 리지는 논문 목록을 확인하고서는 조심히 사서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첫째 오빠가 알프레드 가문의 장녀와 결혼을 한 터라 리지는 운 좋게 알프레드 가문에서 보유 중인 유클리드 등급의 원소 마법사의 시신을 대여 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학문적 지식을 늘리기 위해, 그녀는 원소 마도학 쪽에서 마음에 드는 논문을 골라 읽으려 했다.
이 세계의 원소 마도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자연적인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등급이 조금씩 오를수록 ‘현실적인’ 면모는 서서히 탈피 된다.
그도 그럴게 간섭이 아닌 변환의 영역에 속하는 불과 물, 얼음과 전류의 경우 기본적인 성질을 바꿀 수 있었으니까.
이런 것을 활용한 마법적 기술이 얼마나 많겠나.
끼릭.
하지만 고심 끝에 선택을 하고 로비로 오니, 먼저 사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손님이 보였다.
그에 리지는 조심스레 그 뒤로 가서 줄을 섰으나, 뒷모습이 어째서인지 너무나도 익숙했다.
아니, 익숙하다 못해……
잊을 수 없는 목소리와 특유의 향수 냄새는, 곧바로 그가 누구인지 자각시켜주었다.
“아……”
시선을 느낀 그가, 고개를 뒤로 돌린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결국에는 병상에서 아무런 탈 없이 일어난 걸까.
‘그냥…… 죽어버리지.’
허무하게 죽는 건 용납할 수 없다거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손에 죽는 건 인정할 수 없다는──그런 마음가짐 따위는 리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페르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만 한다면, 죽음의 형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니까.
이윽고 시선을 거둔 그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사서를 바라본다.
“승격 검증 신청을 하러 왔다.”
……승격, 검증 신청?
“네?”
의아한 건 사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자신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승격 검증 신청을 하러 왔다고 했다.”
“배, 백작님은 분명 유클리드 등급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운 좋게 벽을 깨트렸지. 케테르 등급인 그대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테니 검증 가능한 사람과 날짜를 주선 해주었으면 한다.”
“아, 알겠습니다. 시일이 정해지면 자택으로 서신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현재 제국 내에서 네 번째로 아폴리온 등급에 도달하셨군요. 그것도 24살의 나이에.”
사서가 굳이 최연소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은 건, 제국의 마녀──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 때문이었다.
그녀는 무려 16살의 나이에, 아폴리온 등급에 올라섰으니까.
하지만 만월의 괴벽을 앓는 대가로 손에 넣은 재능이었기에, 비교를 하자면 페르젠 쪽이 훨씬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남은 인생 동안, 육체의 노화와 함께 차근차근 성장할 마력이 테르미엘 등급까지 인도할지도 모를 노릇.
“아직 검증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말을 빼먹었는데, 강의가 있는 날은 저녁에만 시간을 낼 수 있으니 그 점을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언질을 주도록.”
“예. 최대한 빠르게 일정을 잡아보겠습니다.”
……어째서.
……왜.
저 남자는, 한 번도 고꾸라지지 않는 걸까.
업보라는 건, 반드시 돌아오는 게 아니었던 걸까.
“논문을 읽으러 왔나.”
“……”
용건을 마친 페르젠이, 자신에게 말을 건다.
“로즈웰 가문이군. 저작자가 테오르 영감이라면 가장 싼걸 읽어라. 비싼 건 과장된 광고로 호구들을 잡으려 했던 논문들이니 제값을 하지 못할 거다.”
“쓸데없는…… 참견 하지 마세요.”
끼릭.
페르젠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리지는 휠체어를 움직여 사서에게 다가가 돈을 지불한 뒤 해당 논문을 구매했다.
“아젤리아의 정장을 배상하기로 했던 걸 잊었나. 조언까지 무시하고 돈을 마구잡이로 쓸 정도라면 벌써 전부 모았나 보군.”
“……”
말 하나하나가, 신경을 긁어내린다.
“잊지 않았어요. 기억 하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 하지 말아요. 그날 더럽혔던 당신의 정장은, 반드시 배상 할 거니까. 사정이 안 되면 몸을 팔아서라도 마련할 거예요.”
“생각이 지나치게 극단적이구나.”
아.
훈계라도 하는 듯한, 저 한 마디가.
리지는, 역겨웠다.
그도 그럴게……
“벼랑 끝에 내 몰아 버린 장본인이 누구인데──!”
“……”
“그런 당신이…… 도대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어……”
갑작스런 감정과잉에 사서가 당황하며 페르젠을 쳐다보았다.
협회 내에서 이러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본능적으로 자신이 지켜봐서는 안 될 사정인 것 같았기에.
“……빈방의 열쇠를 다오.”
그에 페르젠은 한숨을 내쉬며, 사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네!”
1층은 자유 좌석만이 존재했지만, 2 ~ 3층에는 혼자 조용히 구매한 논문을 읽고 연구할 수 있는 방들이 마련되어져 있었다.
“도, 돌려줘요!”
흑마도에 관한 리지의 재능은, 특정 구현율에 도달하는 순간 타인에게 통제권을 강탈당하지 않는 것.
때문에 페르젠은 최대 구현율인 90%를 유지하며, 휠체어를 붙들고 있는 시신을 강제로 탈취한 뒤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딸칵!
“시, 싫……!”
이윽고 받은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리지를 밀어 넣은 페르젠은 반만 닫은 채로 벽에 기대어 섰다.
이 환경 자체가, 트라우마를 유발하지 않을 선이라는 걸 자각시켜주는 게 먼저였으니까.
“리지.”
이내 서서히 안정화 되는 모습을 보고, 페르젠은 입을 열었다.
“에르네스 제국에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아폴리온 등급의 마법사가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흑마법사는 내가 유일하지.”
“……”
“명계의 3층을 열 수 있다는 의미는, 네가 더욱 잘 알 터.”
“……”
“브뤼테인의 재력이라면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1년에 4 ~ 5번 정도의 주선을 시도할 수 있다. 횟수가 반복적으로 쌓이다 보면 운이 좋든 나쁘든, 신체의 결손이나 부상을 회복시켜주는 괴이와 성공적으로 거래를 할 수 있을 거야.”
“그래서요……”
“이건 내가 내미는, 최후의 협상이다.”
“협상, 이요……”
“그래.”
페르젠의 말에, 리지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특유의 보랏빛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정말로 미안하다면…… 우선 해주고 보는 게 올바른 순서 아닌가요? 이제 와서…… 이까짓 다리가 고쳐진다 한들, 망가졌던 삶이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닌데…… 당신은 가해자에요. 그런 주제에 갑의 위치에 서서 대화를 시도 하지 마요. 나는 당신의 그런 잔혹한 이기심이 너무나도 싫어……”
“……”
“당신은, 이 다리를 고쳐보겠다고 저희가 발악하는 걸로 보여요?”
“본질은 알고 있다. 그리고 네 말대로, 지나간 시간은 과거라는 형태로 영원히 박제 되는데 그것을 무슨 수로 보상을 할 수 있을까? 너도 모르기에 내가 똑같은 고통을 겪기를 바라는 게 아니냐.”
“……”
“미안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뻔뻔한 사람……”
“리지. 클로디아 가문은 발악해도 내 목덜미를 물 수 없다. 네가 케테르 등급에서 머물고 있을 때 나는 아폴리온 등급으로 올라섰고. 이번에 알프레드 가문의 입지를 줄이는데도 성공했지.”
차이는, 이대로 계속해서 벌어질 터.
“고통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아무리 거센 불을 피워봤자 태우지 못하고 재만 남을 거야. 아니…… 재로만 남게 되면 다행이겠지. 명분을 제공하는 그 순간, 박제된 과거보다 더한 절망이 덮쳐들 거다.”
리지의 말대로, 페르젠 자신은 가해자였다.
강박증이라는 원인이 존재해도, 그걸 밝힌다고 해서 용서 받을 수준은 한참 지나버린 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의 끝을 용서로 매듭지을 수 있게 노력하는 게 도의적으로 올바른 행동이라 할 수 있겠지만……
클로디아 가문이 먼저 잘못을 했다는, 그러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까.
정말 운이 좋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얌전히 칼을 가는 클로디아 가문을 지켜보고 있을 만큼, 페르젠은 무르지 못했다.
그래, 이기적이라 해도 좋았다.
아니, 이기적이었다.
“통계에서 용병을 제외했을 때, 사람의 평균 수명은 80세.”
“……”
“5월 24일, 오후 1시 23분.”
시계를 힐끔 보고서, 페르젠은 말을 이었다.
“이 시각 이후로, 62년의 세월을 전부 버릴 생각이라면 거절을 하거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될 테니 신중……”
“필요 없어요…… 저희가 당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래……“
그게, 너의 선택 이느냐.
“후회 할 거다. 너는 도움조차 되지 못할 거야. 네 오라비가 처절하게 망가지는 걸 보고서, 그제야 울며불며 매달릴지도 모르겠지.”
“그럴……!”
“일이 없다고?”
페르젠은 웃었다.
잔혹하게,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딸칵.
문고리도 잠긴다.
폐쇄된 방 안에서, 리지는 페르젠과 단 둘이 남게 되었다.
“하, 흑……!”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숨이 턱하니 막혀왔다.
기도가 좁혀든 상태에서, 팽창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온 몸이 통제를 듣지 않고 덜덜 떨린다.
이윽고 그가 곁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끼릭!
끼릭!
필사적으로 휠체어를 뒤로 이동시켜 달아나보지만, 어느 새 구석진 벽이 가로 막는다.
그리고 앞에는, 그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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