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7 067─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콜레오네 웨인 바레타 알프레드.
알프레드 가문의 노괴.
에르네스 제국의 암흑가를 주름 잡고 있는 수장.
그는 유리엘이 들어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다 커튼을 치고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없이, 아침부터 은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런 잔에 와인을 따른 뒤 입가로 가져다댔다.
“……”
오직 침묵만이 존재하는, 옅은 어둠이 드리운 방 안에서 유리엘은 시들어가는 꽃처럼 전신의 피가 바싹 마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느긋하게 시간이 흘러 잔이 모두 비워졌을 때, 콜레오네는 품안에서 연초를 꺼내들고 유리엘을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그 행동의 의미를 어림짐작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기에 유리엘은 연초 끝에 자그마한 불을 피웠다.
후……
방 안으로 자욱이 퍼져나가는 연기.
“유리엘.”
“예……”
“못 본지 오래 되어서 그런지, 주제를 모르게 되었구나.”
내려두었던 은색의 잔을 쥐어들고, 조심스레 매만지던 콜레오네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을 유리엘의 머리를 향해 집어 던졌다.
퍼억──!
감히 막는다라는 행위는 할 수 없었기에, 유리엘에게 있어서 최선의 수는 고개를 숙이는 게 전부였다.
주륵.
이마 위쪽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유리엘의 오른쪽 눈을 서서히 덮어나간다.
“잔을 비우는 동안 충분히 기다려주었을 텐데. 네가 지금 똑바로 서서 나를 마주할 상황 이느냐?”
“죄송, 합니다……”
피를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유리엘은 오른쪽 눈을 감은 채 처연히 무릎을 꿇었다.
“1 황자가 로벨리움 왕국에 간섭할 수 있는 방안이 사라졌기에 최선의 수를 펼쳐봤자 동점이 되는 게 전부이지.”
물론, 2 황자가 로벨리움 왕국의 1 왕자를 왕위에 올려놓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뱉은 말은 지키기 위해, 브뤼테인은 루에르그의 성을 빌려 2 황자를 지원하리라.
제국 시중에 유통되는 주요 광물의 60%를 담당하고 있는 가문의 재력이 들어서는데, 실패하는 것이 더욱 웃길 터.
“유리엘.”
“예……”
“우습지 않느냐. 해당 일은 네가 자리를 비우지만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연극을 할 수 있는 틈만 주지 않았다면, 미적지근하고 흐지부지하게 막을 내렸겠지. 하지만 너는 그 간단한 걸 해내지 못하고 결국 이 사태를 불러 일으켰구나.”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반박할 거리는 존재했다.
유리엘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나스 왕자가 잠시 화장실을 간다는 명목으로 자리를 피했다가 페르젠과 마주할 수 있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유리엘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변호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해당 연회에, 몸이 아팠던 가주──자신의 오라버니를 대신해 참가하겠다고 의견을 밝힌 건 스스로의 판단이었으니까.
책임이 따르지 않는 선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알프레드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유리엘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억울 하느냐.”
“저는……”
“세상 모두가 각자 가지고 있는 무기로 주어진 상황에서 싸운다. 그러한데 너는 적의 무기가 더 강력했다고 조약한 변명이라도 할 생각인 게냐?”
“……”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었다면, 잘려진 목만 돌아왔을 텐데.”
“만회할, 기회를 주세요……”
“그래, 만회할 기회라……”
콜레오네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짚어 한 걸음 한 걸음, 무릎을 꿇은 유리엘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기회를 주면, 어떤 식으로 만회를 할 게냐. 로벨리움 왕국의 1 왕자를 2 황자의 장기말로 돌리지 않는 한은 의미가 없을 텐데.”
“……”
“네가 그럴 주제가 되느냐?”
터억!
쿵──!
흘러내리는 피로 점칠 된 유리엘의 이마가, 내려찍는 지팡이에 의하여 바닥에 강제로 처박힌다.
그 통증에 유리엘은 눈물이 살짝 흘러나왔지만, 아픔을 호소하는 비명은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유리엘.”
“예……”
“황실은 현 북부의 수장, 아스란 백작의 딸을 차기 황비로 들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곧 20세가 되는, 휘하의 아들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
원래는 이럴 생각이 없었다.
콜레오네는 1 황자를 황태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틀어진 이상, 보험을 준비해야 했다.
“그의 아들과 결혼을 하거라. 자리는 내가 주선 하겠다.”
“아……”
“네가 바라던 만회할 기회이지 않느냐? 그리고……”
꾸욱!
내려누르는 지팡이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
“너는 원래부터 철저하게 이러한 용도로 키워졌다는 걸 잊은 게냐? 11년 전 그날 이후로 잠시 재고품이 되었을 뿐이다.”
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그래, 그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력을 품었기 때문에 콜레오네는 그녀를 브뤼테인의 피를 뒤섞기 위한 최상급의 모체로써 나름 애지중지 키워냈다.
어릴 적부터 향과(香菓)를 먹일 정도였으니까.
향과(香菓)──이 세계에 존재하는 특이한 과일.
종류는 다양한데, 5년 이상 꾸준히 먹게 되면 섭취한 자의 체향이 해당 향과의 향으로 바뀌게 된다.
그 순간 체향은 맡는 자의 욕망을 은은히 자극하는 미향이 되기에, 하룻밤을 자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 창기의 경우 돈 대신 향과를 받을 때도 있었다.
유리엘은 그러한 자신의 체향이 싫어, 향수로 매번 감추고는 했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대답이 없구나. 유리엘.”
후……
연기를 뱉으며, 콜레오네는 발을 뻗어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유리엘의 턱을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알프레드 가문에서 후계자를 제외한 모든 자식은, 가문을 위한 도구로써 살아간다.
때문에, 수긍을 제외하고……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유리엘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분수를 모르던 아까도 그렇고, 망설일 필요가 없어야 할 대답에 저항감을 보이는 구나. 너무 오랜 시간 방치를 해두어서 그런가, 쓸데없는 자아가 생겨버렸어. 어울리지 않게 머리만 커져서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구나.”
쯧.
무표정한 얼굴로 혀를 차며, 콜레오네는 지팡이를 반대로 잡고 고리 부분을 유리엘의 목에 건 뒤 거칠게 들어올렸다.
“크흑!”
“주선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게다. 그러니 그간 네게 스며든 쓸데없는 물을 말끔히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야 아스란 백작에게도 민폐가 되지 않을 테니.”
터억.
“콜록……!”
목을 휘감은 지팡이를 빼내고, 다시금 걸음을 돌려 의자에 앉은 콜레오네가 말을 이었다.
“이 시간부로 모든 걸 거두어들이마. 당연하다고 느꼈던 알프레드라는 이름이 네게 얼마나 혜택을 주고 있었는지 몸소 깨닫거라. 23년의 인생, 네가 스스로 쌓은 건 없단다. 유리엘.”
“……”
“아카데미의 교수직 또한, 알프레드라는 성이 없었다면 과연 네가 간택될 수 있었을까.”
콜레오네가 비릿하게 웃었다.
“자. 그럼 나가 보거라. 그리고 명심해라. 다시 부르기 전 까지…… 너는 알프레드의 성이 없는, 그냥 유리엘이다.”
콜레오네의 축객령에 유리엘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방을 나섰다.
다시 부르기 전 까지는 유리엘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며,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겠다고 했으니 이 저택에 머무를 수도 없겠지.
때문에 멍한 표정으로,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는 머리의 상처도 망각한 채 유리엘은 1층으로 내려와 저택의 문을 열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시녀 한 명이 앞을 가로 막았기에.
그리고 그녀는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고, 품안에 들고 있던 옷가지를 유리엘에게 내밀었다.
“아…… 그래……”
힘없이, 실소를 지으며 유리엘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내려다봤자 커다란 가슴이 시야를 가렸기에 볼 수 있는 건 일부분 밖에 되지 않았다.
“기다려.”
입고 있는 아젤리아의 옷 또한 알프레드 가문의 돈으로 구입을 한 것이기에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때문에 유리엘은 근처의 비어있는 접객실로 들어가,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연한 나신이 된 뒤, 시녀가 건네주었던 옷을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거지꼴은 아니네……”
다시 부르는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간 동안에도 아카데미에 출근해 강의는 해야 했으니 구색을 맞출 수 있는 최저선의 옷이었다.
그렇게 말끔히 갈아입고 접객실을 나오자, 시녀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옷을 챙긴 뒤 어디론가 가버렸다.
“하……”
그나마 흘러내렸던 피를 잔뜩 닦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벌컥.
이후, 문을 열고 저택을 나선 유리엘은 아카데미로 향했다.
오늘은 강의가 없었다.
하지만 잘 곳이 없으니, 교수실에서 밤을 샐 수밖에.
더군다나 아카데미로 가면, 의원에게 머리의 상처를 공짜로 치료받을 수 있었다.
현재 수중에 보유한 돈은 0 베른……
아카데미의 교수로써 일하는 급여가 있기는 하지만, 지급이 1년 단위였다.
애초에 월 단위로 돈을 받을 만큼, 현재 교수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궁핍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월 단위로 돈을 받는 건, 그 밑에서 일하는 여러 조교들과 기타 사무직들뿐이었다.
‘모르겠어……’
여러 문제들이 뇌리에 속속 떠오르나, 유리엘은 그것을 고민하는 것조차 싫었기에 묵묵히 걸음을 내딛었다.
마차로 출근할 때 보다, 배는 몸이 힘들다.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왔기에, 쏟아지는 햇살은 어찌나 뜨거운지.
가슴골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래, 이 망할 만큼 커다란 가슴 때문에……
유리엘은 걸을 때 마다 어깨가 너무나 아파왔다.
또각.
이윽고 도착한 아카데미의 정문, 시계는 오후 1시……
강의가 끝난 A 교육관의 학생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리지……’
아니다.
그 아이한테 도움을 받기에는…… 그랬다.
유리엘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렇게 의원을 찾아간 유리엘은, 살짝 찢어진 머리의 상처를 치료 받고 본관의 4층으로 올라갔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당장 눈을 붙이고 싶었다.
애초에 어젯밤,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했으니까.
또각……
403호──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자신의 명패가 달린 교수실 앞.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고, 유리엘은 잠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404호──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
이걸, 왜 보고 있는 걸까.
이를 악물고, 유리엘은 무시한 채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딸칵.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404호에서 페르젠과 유페미아가 단란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허리에는 상냥하고 매너 있게, 페르젠의 왼손이 휘감겨 있었으며 바라보는 시선에는 애정이 듬뿍 스며들어 있었다.
‘……’
이 남자도, 오늘은 강의가 없는 날일 텐데.
“강의를 마치고 오는 길인가, 유리엘 교수.”
“……”
“수고하도록 하지.”
업무적인 말투로 짧은 인사를 건넨 뒤, 페르젠이 떠나간다.
그에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유리엘은, 가까스로 자신의 교수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누웠다.
“……나쁜 새끼.”
머리의 상처, 분명 봤을 텐데.
어쩌다 다친 거냐고, 물어 봐줄 법도 했을 텐데.
연회장에서 벌였던 일 때문에, 자신이 곤란해졌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
그래, 기대하는 게 이상했다.
알프레드와 브뤼테인은 원래부터 그러했으니까……
사실, 이게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새끼.”
유리엘은 페르젠을 원망하며, 눈을 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향과로 변질된 유리엘 본래의 체향, 살내음은 복숭아 입니다.
*
그레모리 엘딘 이슈타르 엘마르크는 본래 남자 캐릭터로 등장할 예정이었습니다.
다만 4월 1일 수정전에서 주인공을 살려가는 놈이 여자라면 반발이 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여자가 되었는데
수정이후 58화인가 59화에 등장하던 부분이라 결국 갈아엎어 졌을 때 본래의 성별인 남자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자로 고정되었습니다.
*
후원 편지는 11시나 ~ 12시 사이에 최신 수정 될 예정입니다.
약속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