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64화 (64/260)

EP.64 064─마무리

시간 감각이 사라진 감옥 내부에서, 시엘 미드포드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쇠창살 밖의 옅은 불빛을 바라보았다.

시간 감각이 없어졌기에, 며칠 전인지 확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나가듯 자신의 앞에 서서, 모종의 도움을 주었던 얼굴을 알 수 없는 한 사내와의 마주침을 어렴풋하게 떠올렸다.

──시엘 미드포드, 단순한 너의 주장과 죽음만으로는 이나스 왕자의 결백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에르네스 제국이 그럴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해버리겠지.

입 밖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오지도 않았는데, 뇌리에 그윽이 울려 퍼지던 잡음이 잔뜩 끼어 있는 목소리는 절망과 좌절에 휩싸여 있던 자신조차도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그러니 네가 이나스 덴 프로이센 로벨리움을 명계의 길동무로 삼고 싶지 않다면 위증해라. 알프레드 가문을 끌어 들여, 그들이 너의 시신으로 검증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게끔 해라.

만남은 찰나, 고작 5초 밖에 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 충고 덕분에, 시엘 미드포드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흘러가는 흐름에 얌전히 몸을 맡기고 있던 자신을 질책했다.

그 말대로, 깊게 생각을 해보니 에르네스 제국이 이 상황에서 이나스 왕자에게 좋은 편의를 허락 해줄 리가 없어 보였으니까.

이나스 왕자의 생존은 엘마르크 제국의 장기말이 된다는 걸 뜻하고, 반대로 죽음은 로벨리움 왕국에서 에르네스 제국이 독주 할 수 있다는 걸 뜻하니……

자신이라는 실타래에 억울하게 묶여진 타인과의 매듭을 확실히 풀기 위해서는, 진실 속에 거짓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추가적인 조사에서 시엘 미드포드는 알프레드 가문을 끌어들여 브뤼테인 가문과 엮어 버렸다.

죄인으로 붙잡힌 일개 왕국 기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

그 이후로, 시엘 미드포드는 한 번도 감옥 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나 자신을 거두어준 로벨리움 왕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 아니 지금……

평소와 다르게 문밖에서 싸늘한 냉기를 풍기며 도열해 있는 에르네스 제국의 황실 기사들을 보고, 시엘 미드포드는 직감했다.

‘아……’

끝이, 다가왔노라고.

철컥!

감옥의 문이 열리고, 구속구에 사지를 결박당한 자신을 강제로 일으켜 어디론가 연행한다.

끼익……!

언제나 탁한 공기만이 가득 들어차 있던 감옥 내부, 그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신선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이 내리비춘다.

그에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린 시엘 미드포드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는, 이승에서 저승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의 향기가 가득 드리운, 처형장이 선명한 형태를 드러냈다.

“움직여라. 네 놈에게 멈춰 있을 시간은 없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죽음에 들고 난 이후뿐이겠지.”

“……”

끌어당기는 기사들의 손에 따라 시엘 미드포드는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고, 그 과정에서 처형장에 들어선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새길 수 있었다.

에르네스 제국의 황제.

로벨리움 왕국의 왕.

알프레드 가문의 어르신.

브뤼테인 가문의 가주.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그리고……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

그녀를 바라보며, 시엘 미드포드는 흑철로 만들어진──마치 관과 같은 자신의 마지막 보금자리 위로 몸을 눕혔다.

그러자 목과 허리, 두 손과 두발에 또 한 번 단단한 구속구가 채워지고 전신을 완전히 결박한다.

동시에 의원 한명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시엘 미드포드의 혈관을 짚기 시작했다.

전신이 화상을 입은 상태라, 좀처럼 혈관을 찾는 게 난관이었지만 의원은 능숙하게 시엘 미드포드의 혈관을 짚고서 에르네스 제국의 황제를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그러면…… 루에르그 백작을 시해하려 했던, 시엘 미드포드의 처형식을 시작하겠소.”

한 생명이 지는 순간이었지만,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아니, 슬퍼하는 이가 있었다.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열은 울음소리……

금방 사라졌지만, 시엘 미드포드는 그 울음소리의 주인이 누구 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에 채워진 구속구가 방해하더라도, 살이 까지는 통증을 묵묵히 참아내고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그녀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욕심, 이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주제에 넘는, 바람이었을까요……’

인생에는, 불행이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 스승은 어찌하여, 인생을 졸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을 가르쳐 주지 않고, 절망과 좌절만을 안겨 주는 걸까.

이내 혈관에 약물이 주입된다.

처음에는 잔잔했지만, 곧이어 약물이 전신으로 퍼져나가자 시엘 미드포드는 내부에서부터 격렬한 통증이 올라오는 걸 느끼며 세차게 발작하기 시작했다.

“쿨럭──!”

선홍색이 아닌, 검게 죽은피가 입가에서 터져 나온다.

그러한 와중에도, 시엘 미드포드는 결코 눈가에서 유페미아를 떼어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페미아는 두 손으로 입가를 틀어 막았다.

‘아가씨……’

당신과의 만남은, 언제나 불행으로 얼룩진 저에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겨울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일까요.

함께 걸어 왔던 발자취와, 함께 만들어 나갔던 인연은……

마치, 눈길 위에 새겨진 듯.

그리고, 눈으로 이어진 듯.

봄이 오고, 여름이 다가오니……

서서히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군요.

쿵.

쿵……

심장이 멎어간다.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시엘 미드포드는 느꼈다.

‘아가씨……’

언젠가……

수많은 윤회의 굴레를 거쳐, 저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봄에 인연의 씨를 심고.

여름에 싹을 틔우고.

가을에 만개를 하고.

겨울에도 지지 않을.

그러한 만남을 가지고……

사랑을 합시다……

이윽고, 시엘 미드포드의 눈이 감겼다.

그래, 소설 속의 주인공──그가 죽었다.

구름 한점 없는 맑고 화창한 하늘에서는, 변함 없이 따스한 햇살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다.

* * * * *

“5월 23일. 오전 11시 45분…… 죄인, 시엘 미드포드의 사망을 확인했습니다.”

무심하고, 잔잔히 울려 퍼지는 의원의 한 마디에.

유페미아는 몸을 돌렸다.

울음 없는, 눈물을 흘렸다.

울음을 토해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리 노력을 해도……

시엘 미드포드가 알프레드 가문을 끌어들여 위증을 할 때, 살인 의뢰를 받아들일 동기가 있어야 말이 성립되기에 그는 얽혀 있는 페르젠과의 악연을 모조리 실토했다.

그래서 페르젠의 아내인 그녀가 저러는 이유를, 이 자리에 있는 관계자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페미아의 노력대로, 모르는 척 했다.

브뤼테인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그들의 눈을 가렸고.

그들의 귀와 입을 막았기에.

“그러면…… 교차 검증을 통해, 죄인 시엘 미드포드의 증언을 감별할 시간을 가지겠소.”

에르네스 황실 쪽의 흑마법사.

로벨리움 왕국 쪽의 흑마법사.

알프레드 가문 쪽의 흑마법사.

그리고……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그가 걸어 나왔다.

이윽고 순서대로, 각각의 흑마법사들이 죽어버린 시엘 미드포드의 시신을 사역해 그가 증언했던 사실을 토대로 피드백을 검증 받는 과정을 거쳐 나갔고……

“위증입니다.”

“위증이군요.”

“위증이었습니다.”

전부, 위증이라는 판결이 나왔을 때.

마지막으로, 페르젠이 마력을 방사해 시엘 미드포드를 사역한 다음 몸을 일으켰다.

당연히 그의 증언은 위증이었기에, 피드백은 받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페르젠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시엘 미드포드의 머리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가 애초부터, 그러한 증언을 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을까.

왜, 나중에 가서 자신의 증언에 살을 붙인 걸까.

오랜 생각을 거친 결과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세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면, 에르네스 제국이 이나스 왕자를 엘마르크 제국의 장기말로 넘겨 버릴 바에야 여기서 죽여 버리는 게 이득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파악 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페르젠은 의미 모를 위화감과 찝찝함이 들어, 이대로 넘어 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가사상태에 빠트리는 모종의 수단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만약, 약물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

수호를 관장하는 신의 축복을 받고.

고작 몇 개월 만에, 응어리진 마력을 개화한……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라는 존재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는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손에 넣을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툭.

이윽고 페르젠의 손이, 시엘 미드포드의 머리에 닿았다.

그리고 죽어버린 시신이라고 한다면, 1회에 한하여 자아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생전의 핵심 기억을 읽어 낼 수 있는 사이코 메트리(Psychometry)가 펼쳐진다.

“……”

하지만 읽혀지지 않았다.

거기서 페르젠은 확신했다.

시엘 미드포드가…… 죽은 게 아니었음을.

“백작.”

황제가 오랜 시간 입을 닫고 있는 페르젠을 불렀다.

그제야 페르젠은 정신을 차리고, 손을 떼어낸 뒤 말했다.

“위증…… 이군요.”

증언도.

그리고……

죽음조차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유페미아 우는 장면 관련해서 수정을 거쳤습니다.

안 그래도 의견이 분분할 줄 알고 2연참을 하려 했는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어제 못 올리기도 했으니 올렸는데……

크흥…… 죄송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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